맨위로가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폐 개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폐 개혁은 2009년 7.1 경제개혁 조치 이후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해소하고, 지하 자금을 통제하며 계획 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세대당 교환 가능한 금액을 10만 원으로 제한하고 초과 금액은 국가에 귀속시키는 조치로 인해 북한 사회에 큰 충격과 공황이 발생했으며, 현금 보유량이 많은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2009년 11월부터 2010년 3월까지 화폐 개혁과 관련된 일련의 조치들이 이루어졌으며, 시장 통제와 외화 사용 금지 등의 조치가 시행되었다. 화폐 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남기 등 고위 관계자들이 처형되기도 했다.

2. 목적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한 2002년 7.1 경제개혁조치 이후 화폐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해소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이 보유하여 암거래 시장에서 유통되는 지하 자금을 흡수하고, 이를 통해 시장과 시장 세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계획 경제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결과

화폐 교환 자체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조치였으나, 교환 조건을 명확히 정하지 않고 시작하여 큰 혼란을 빚었다.[1] 결과적으로 화폐 개혁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세대당 교환 가능한 금액을 10만원으로 제한하고, 남는 돈은 국가에 바치거나 은행에 맡기도록 한 조치는 북한 사회에 큰 충격과 공황 상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일부 특권층은 이전부터 북한 화폐를 신뢰하지 않아 재산을 이나 미국 달러, 유로, 런민비(중국 위안) 등 외화로 보유하고 있었고, 큰 상인인 '돈주'들도 주로 런민비나 달러로 거래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 시장에서 활동하는 일반 장사꾼들은 다른 주민들보다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2][3]

4. 화폐개혁 일지

(내용 없음)

4. 1. 2009년


  • 11월 30일: 세대당 교환 가능 액수를 10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으로 제한하며 화폐 개혁을 시작했다.
  • 12월 1일: 세대당 교환 가능 액수는 10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으로 유지하되, 초과하는 금액은 1/1000의 비율로 저금하도록 조치했다. 이는 사실상 초과 보유 현금의 가치를 대폭 절하하는 조치였다.
  • 12월 3일: 교환 한도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세대당 교환 가능 액수 10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에 더해, 가족 1명당 5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을 추가로 교환할 수 있도록 기준을 일부 완화했다.
  • 12월 7일: 새로운 화폐(신권)의 유통이 시작되었다.
  • 12월 8일 ~ 12월 9일: 재정일꾼회의를 열어 노동자 임금을 새로운 화폐 기준으로 400KPW대로 책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 12월 9일: 시장 경제 요소를 억제하기 위해 공산품의 시장 거래를 금지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품목들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실시했다.
  • 12월 11일: 장마당에서의 식량 판매를 금지하고 국영 상점에서만 식량을 판매하도록 통제하여 식량 유통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했다.
  • 12월 중순: 화폐 개혁으로 인한 민심 동요를 막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농민과 광부에게 1.5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씩 하사금을 분배하고, 군관(장교)의 월급을 100%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 12월 말: 노동자 임금을 기존 대비 100배로 인상했다. 이는 화폐 액면가 변경 비율(100:1)에 맞춘 것이나, 실질 구매력 변화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하락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 12월 28일: 외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여 자국 화폐 유통을 강제하고 시장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4. 2. 2010년


  • 1월 1일부터 1월 11일까지 장마당이 전면 폐쇄되었고, 모든 상행위가 금지되었다.
  • 1월 20일, 조선로동당 재정경제부장 박남기가 해임되었다.
  • 1월 28일, 김영일 내각총리가 평양 시내 인민반장들 앞에서 화폐개혁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
  • 2월 1일부터는 전국적으로 시장 통제가 완화되었고, 외화 사용 금지 조치도 해제되었다.
  • 3월 12일, 강건군관학교에서 전 노동당 재정경제부장 박남기와 전 부부장 김태영 등 관련자 약 100명에 대한 총살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3월 18일, 박남기가 경제 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처형되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참조

[1] 뉴스 北화폐개혁 혼란 계속..교환조건 잇따라 조정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 뉴스 북 화폐개혁 http://www.hani.co.k[...] 한겨레
[3] 뉴스 북한, 화폐개혁 왜 단행했나 https://www.yna.co.k[...] 연합뉴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