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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도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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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천안도독부(天安都督府)는 고려 태조 왕건이 930년에 후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현재의 천안시에 설치한 행정 구역이자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설치 배경 및 목적:


  •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후백제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천안 지역에 군사적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 왕건은 후백제의 수도인 전주와 고려의 수도인 개경 사이에 위치한 천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곳에 도독부를 설치하여 후백제를 압박하고 공격과 방어를 용이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 "천안이 삼국의 중심으로 다섯 마리 용이 구슬을 놓고 다투는 모양이므로, 이곳에 큰 관청을 설치하면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는 술사 예방의 말을 듣고 천안도독부 설치를 결심했다고 전해집니다.

주요 내용:

  • 930년(태조 13년)에 대목군(大木郡)에 행차하여 동서 두솔(東西兜率)을 합쳐 천안부를 설치하고 도독(都督)을 두었습니다.
  • 대승(大丞) 제궁(弟弓)을 도독부사(都督府使)로, 원보(元甫) 엄식(嚴式)을 부사(副使)로 삼았습니다.
  • 왕건은 왕자산(王子山)에 성을 쌓고 군사 훈련소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 천안도독부는 고려의 남진 정책의 전초 기지 역할을 수행했으며, 중앙군이 파견되어 주둔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역사적 의의:

  • 천안도독부 설치는 고려가 후삼국 통일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936년 왕건은 천안에 군대를 집결시켜 후백제를 공격하여 승리하고, 후삼국 통일을 완수했습니다.
  •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뜻으로,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 하지만, 천안으로 개칭되기 전의 이름이 '도솔'인 것으로 보아 불교 용어인 '도솔천'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변천:

  • 고려 성종대에 10도제가 실시되며 천안도독부는 공주목(公州牧)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후 환주(歡州)라는 이름으로 개칭됩니다.
  • 현종대에 5도 양계제가 실시되며 1018년, 환주는 다시 천안부(天安府)로 개칭되고 수령으로 도독 대신 지부사가 파견됩니다.
  • 조선시대에도 천안이라는 지명은 유지되었고, 1963년 천안시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천안의 향토사학을 연구하는 언론인들이 천안도독부 설치의 역사적 의의를 되살려, 천안을 남북통일의 초석이 되는 도시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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