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셔아일오브일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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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케임브리지셔아일오브일리 주는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존재했던 잉글랜드의 행정 구역이다. 1888년 지방 정부법에 따라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피터버러 소크 등 4개의 카운티가 인접하여 설치되었고, 1964년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조례를 통해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가 통합되어 형성되었다. 1974년 지방 정부 개혁으로 헌팅던 앤 피터버러와 합병되어 케임브리지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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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임브리지셔주 - 헌팅던피터버러주
헌팅던피터버러주는 1965년 잉글랜드의 헌팅던셔와 피터버러 소크가 통합되어 형성된 행정 구역으로, 1972년 헌팅던 앤드 피터버러 경으로 명명되었으나 1974년 케임브리지셔에 병합되었다. - 케임브리지셔주의 역사 - 헌팅던셔
헌팅던셔는 앵글로색슨 시대에 경계가 정해진 잉글랜드의 역사적인 카운티로, 행정 구역 개편을 거쳐 1974년 케임브리지셔에 통합되었으며, 현재 헌팅던셔 구 의회가 관할한다. - 잉글랜드의 폐지된 행정 구역 - 셔
셔는 고대 영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호주, 미국의 행정 구역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며, 특히 잉글랜드에서는 카운티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 잉글랜드의 폐지된 행정 구역 - 컴벌랜드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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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셔아일오브일리주 | |
---|---|
개요 | |
이름 |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주 |
소재지 | 케임브리지 |
정부 |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주 의회 |
지위 | 행정주 |
역사 | |
시작 | 1965년 |
종료 | 1974년 |
대체 | 케임브리지셔 |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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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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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 Sapientes Simus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
인구 통계 | |
1971년 인구 | 303,042 |
2. 역사적 배경
1888년 지방 정부법에 따라 잉글랜드 동부에는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피터버러 소크 등 네 개의 작은 행정 구역이 설정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들 지역의 통합을 포함한 지방 정부 개편 논의가 있었으나[1][2]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58년 잉글랜드 지방 정부 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지방 정부 개혁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었다. 위원회는 여러 검토 끝에 1961년 최종 보고서에서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를 통합하고, 헌팅던셔와 피터버러 소크를 합쳐 헌팅던과 피터버러라는 별도의 카운티를 신설하는 안을 제시했다.[3]
이 계획에 따라 1964년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조례'가 제정되었으나, 아일오브일리와 케임브리지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해리 레지-버크 경은 아일오브일리의 독립적인 지위 유지를 주장했고, 해밀턴 커 경은 케임브리지 시의 카운티 자치구 승격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례는 의회를 통과했다.[3]
결과적으로 1965년 4월 1일, 기존의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 행정 카운티(일부 경계 조정 및 소니 농촌 지역 제외)를 합쳐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행정 카운티가 공식 출범했다. 이는 행정 구역뿐 아니라 다른 법적 목적을 위한 단일 카운티로서의 지위를 가졌으며, 이에 따라 케임브리지셔 경 직함이 케임브리지셔 및 아일오브일리 경으로 변경되고, 고위 보안관 임명 및 사법 기구 통합 등이 이루어졌다.[3][4]
같은 시기, 1964년 경찰법에 따라 케임브리지 시 경찰, 케임브리지셔 카운티 경찰, 아일오브일리 경찰 등 인근 지역 경찰 조직들이 통합되어 미드-앵글리아 경찰이 창설되었다. 이 조직은 1974년 지방 정부 개혁을 거치며 현재의 케임브리지셔 경찰로 이어졌다.[5]
새롭게 형성된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카운티는 1971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잉글랜드의 46개 행정 카운티 및 카운티 자치구 중 33번째 규모였다.
2. 1. 1888년 지방 정부법과 행정 구역 개편
1888년 지방 정부법은 잉글랜드 동부에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피터버러 소크라는 4개의 작은 행정 구역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방 정부 경계 위원회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카운티 수준 행정 구역 검토를 위해 구성되었다. 위원회는 효과적인 행정 서비스 제공을 위해 카운티 인구가 20만에서 100만 명 사이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네 개의 카운티를 하나로 통합할 것을 권고했다.[1][2] 그러나 이 권고는 실행되지 않았다.
지방 정부 개혁 논의는 1958년 잉글랜드 지방 정부 위원회(LGCE)가 임명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네 개의 카운티는 이스트 미들랜즈 일반 검토 구역에 포함되었고, LGCE는 1960년 4월 초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특히 케임브리지 시가 케임브리지셔 인구의 절반과 과세 가치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행정적 문제를 지적했다. 케임브리지는 카운티 자치구 지위를 얻어 행정 카운티에서 분리될 만큼 규모가 컸지만, 그렇게 될 경우 나머지 세 개의 농촌 지역으로 구성된 케임브리지셔가 지역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LGCE는 케임브리지를 카운티 자치구로 만들고, 나머지 지역을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피터버러 소크와 합병하여 새로운 행정 카운티를 만드는 초안을 제시했다.[3]
하지만 이 초안은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LGCE는 1961년 최종 보고서에서 입장을 바꿔, 헌팅던과 피터버러, 그리고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라는 두 개의 새로운 카운티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 안에서는 케임브리지가 후자의 카운티에 계속 포함되도록 했다.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조례는 1964년 2월 14일에 제정되었고, 같은 해 3월 9일 하원에 제출되었다. 이 통합안에 대해 아일오브일리 지역구의 국회의원(MP)인 해리 레지-버크 경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독립적인 카운티 의회를 유지하기를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틀랜드는 유지되는데 왜 아일오브일리는 카운티로서 폐지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해당 지역 일부는 케임브리지보다 피터버러와 더 많은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임브리지 지역구의 해밀턴 커 경 역시 새로운 카운티 형성에 반대하며, 원래의 초안대로 자신의 지역구를 카운티 자치구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례는 찬성 144표, 반대 84표로 통과되었다.[3]
새로운 카운티는 1965년 4월 1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카운티는 기존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 행정 카운티의 영역(일부 경계 조정 포함)에서 소니 농촌 지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는 행정 카운티일 뿐만 아니라 다른 법적 목적을 위한 카운티 지위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케임브리지셔 경의 직함은 케임브리지셔 및 아일오브일리 경으로 변경되었으며, 새로운 카운티에 고위 보안관이 임명되고 단일 치안 판사 위원회와 분기 법원이 설립되었다.[3][4]
카운티 창설과 함께, 1964년 경찰법에 따른 조례가 발효되어 케임브리지 시 경찰, 케임브리지셔 카운티 경찰, 아일오브일리 경찰, 헌팅던셔 경찰, 피터버러 통합 경찰이 통합된 미드-앵글리아 경찰이 창설되었다. 1974년 추가적인 지방 정부 개혁으로 이 경찰 조직은 현재의 케임브리지셔 경찰이 되었으며, 관할 구역 경계는 동일하게 유지되었다.[5]
이 카운티는 1971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잉글랜드의 46개 행정 카운티 및 카운티 자치구 중 33번째로 인구가 많았다.
2. 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방 정부 개혁 논의
1888년 지방 정부법은 잉글랜드 동부에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그리고 피터버러 소크라는 네 개의 작은 인접 행정 구역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카운티 수준 행정 구역을 검토하기 위해 지방 정부 경계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회는 효과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카운티 인구가 20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네 개의 카운티를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통합할 것을 권고했다.[1][2] 하지만 이 권고는 실행되지 않았다.
1958년, 잉글랜드 지방 정부 위원회(LGCE)가 임명되면서 지방 정부 개혁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네 개의 카운티는 이스트 미들랜즈 일반 검토 구역에 포함되었고, LGCE는 1960년 4월에 개혁 초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특히 케임브리지셔의 행정 문제를 지적했는데, 케임브리지 시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카운티 과세 가치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었다. 케임브리지는 카운티 자치구 지위를 얻어 행정 카운티에서 분리될 만큼 규모가 컸지만, 이렇게 되면 나머지 세 개의 농촌 지역으로 구성된 케임브리지셔가 지역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따라서 LGCE는 케임브리지를 카운티 자치구로 만들고, 카운티의 나머지 지역을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피터버러 소크와 합병하여 새로운 행정 카운티를 만드는 방안을 초안으로 제시했다.[3] 그러나 이 초안은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고, LGCE는 1961년 최종 보고서에서 계획을 수정하여 헌팅던과 피터버러, 그리고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라는 두 개의 새로운 카운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케임브리지는 후자의 카운티에 계속 포함되도록 했다.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조례는 1964년 2월 14일에 제정되었고, 같은 해 3월 9일 하원에 제출되었다. 이 통합안에 대해 아일오브일리 지역구의 국회의원인 해리 레지-버크 경은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독립적인 카운티 의회를 유지하기를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틀랜드는 유지되는데 왜 아일오브일리는 카운티로서 폐지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해당 지역 일부는 케임브리지보다 피터버러와 더 많은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임브리지 지역구 국회의원인 해밀턴 커 경 역시 새로운 카운티 형성에 반대하며, 원래의 초안대로 자신의 지역구를 카운티 자치구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례는 찬성 144표, 반대 84표로 통과되었다.[3]
새로운 카운티는 1965년 4월 1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카운티는 기존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 행정 카운티의 영역(일부 사소한 경계 조정 포함)에서 소니 농촌 지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는 행정 카운티일 뿐만 아니라 다른 법적 목적을 위한 단일 카운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케임브리지셔 경의 직함은 케임브리지셔 및 아일오브일리 경으로 변경되었고, 새로운 카운티에 고위 보안관이 임명되었으며, 단일 치안 판사 위원회와 분기 법원이 설립되었다.[3][4]
카운티가 창설되면서 1964년 경찰법에 따른 조례가 발효되어, 기존의 케임브리지 시 경찰, 케임브리지셔 카운티 경찰, 아일오브일리 경찰, 헌팅던셔 경찰, 피터버러 통합 경찰이 통합되어 미드-앵글리아 경찰이 창설되었다. 1974년의 추가적인 지방 정부 개혁으로 이 경찰 조직은 현재의 케임브리지셔 경찰이 되었으며, 관할 구역 경계는 동일하게 유지되었다.[5]
이 카운티는 1971년 인구 기준으로 잉글랜드의 46개 행정 카운티 및 카운티 자치구 중 33위를 기록했다.
2. 3. 1958년 잉글랜드 지방 정부 위원회와 통합 논의 재개
1958년, 잉글랜드 지방 정부 위원회(LGCE)가 임명되면서 지방 정부 개혁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피터버러 소크 등 네 개의 카운티는 이스트 미들랜즈 일반 검토 구역에 포함되었고, LGCE는 1960년 4월 초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특히 케임브리지 시가 케임브리지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과세 가치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행정적 문제를 지적했다. 케임브리지는 카운티 자치구 지위를 얻어 행정 카운티에서 분리될 만큼 규모가 컸지만, 이렇게 될 경우 나머지 농촌 지역만으로는 효과적인 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LGCE는 케임브리지를 카운티 자치구로 만들고, 나머지 지역을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피터버러 소크와 합병하여 새로운 행정 카운티를 만드는 초안을 제시했다.[3]하지만 이 초안에 상당한 반대가 제기되자, LGCE는 1961년 최종 보고서에서 계획을 수정했다. 수정된 계획은 헌팅던과 피터버러, 그리고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라는 두 개의 새로운 카운티를 만드는 것이었고, 케임브리지는 후자에 계속 포함되도록 했다.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조례는 1964년 2월 14일에 제정되었고, 같은 해 3월 9일 하원에 제출되었다. 이 통합안에 대해 아일오브일리 지역구 국회의원인 해리 레지-버크 경은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이 "일반적으로 만족스러운 독립적인 카운티 의회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그는 러틀랜드는 유지되면서 아일오브일리가 카운티로서 폐지되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했고, 해당 지역 일부는 케임브리지보다 피터버러와 더 많은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임브리지 지역구 의원인 해밀턴 커 경 역시 새로운 카운티 형성에 반대하며, 원래의 초안을 옹호하고 자신의 지역구를 카운티 자치구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례는 찬성 144표, 반대 84표로 통과되었다.[3]
새로운 카운티는 1965년 4월 1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카운티는 기존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 행정 카운티의 영역(일부 경계 조정 포함)에서 소니 농촌 지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는 행정 카운티일 뿐만 아니라 다른 법적 목적을 위한 카운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케임브리지셔 경의 직함은 케임브리지셔 및 아일오브일리 경으로 변경되었고, 새로운 카운티에 고위 보안관이 임명되었으며, 단일 치안 판사 위원회와 분기 법원이 설립되었다.[3][4]
카운티 창설과 함께, 1964년 경찰법에 따른 조례가 발효되어 기존의 케임브리지 시 경찰, 케임브리지셔 카운티 경찰, 아일오브일리 경찰, 헌팅던셔 경찰, 피터버러 통합 경찰이 통합된 미드-앵글리아 경찰이 창설되었다. 1974년 추가적인 지방 정부 개혁으로 이 경찰 조직은 현재의 케임브리지셔 경찰이 되었으며, 관할 구역 경계는 동일하게 유지되었다.[5]
이 카운티는 1971년 잉글랜드 행정 카운티 및 카운티 자치구 인구 목록 기준으로 잉글랜드의 46개 행정 카운티 및 카운티 자치구 중 33번째로 인구가 많았다.
2. 4.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조례와 통합 과정
1888년 지방 정부법은 잉글랜드 동부에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그리고 피터버러 소크 등 4개의 작은 인접 행정 구역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카운티 수준 행정 구역을 검토하기 위해 지방 정부 경계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회는 효과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카운티의 인구가 20만에서 100만 명 사이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이 네 개의 카운티를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통합할 것을 권고했다.[1][2] 하지만 이 권고는 실행되지 않았다.
지방 정부 개혁 논의는 1958년 잉글랜드 지방 정부 위원회(LGCE)가 임명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네 개의 카운티는 이스트 미들랜즈 일반 검토 구역에 포함되었고, LGCE는 1960년 4월에 초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케임브리지셔의 행정 구조, 특히 케임브리지 시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카운티 과세 가치의 3분의 2 이상을 점유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케임브리지는 카운티 자치구 지위를 얻어 행정 카운티에서 분리될 만큼 규모가 컸지만, 그렇게 될 경우 나머지 세 개의 농촌 지역으로 구성된 케임브리지셔가 지역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LGCE는 초안에서 케임브리지를 카운티 자치구로 만들고, 나머지 지역을 아일오브일리, 헌팅던셔, 피터버러 소크와 합병하여 새로운 행정 카운티를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3] 그러나 이 초안은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고, LGCE는 1961년 최종 보고서에서 헌팅던과 피터버러, 그리고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라는 두 개의 카운티를 새로 만들고, 케임브리지는 후자에 계속 포함시키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 조례는 1964년 2월 14일에 제정되었고, 같은 해 3월 9일 하원에 제출되었다. 이 통합안에 대해 아일오브일리 지역구의 국회의원(MP)인 해리 레지-버크 경은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독립적인 카운티 의회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러틀랜드는 유지되는데 왜 아일오브일리는 카운티로서 폐지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해당 지역 일부는 케임브리지보다 피터버러와 더 많은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케임브리지 지역구의 국회의원인 해밀턴 커 경 역시 새로운 카운티 형성에 반대하며, 원래의 초안대로 자신의 지역구를 카운티 자치구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례는 찬성 144표, 반대 84표로 통과되었다.[3]
새로운 카운티인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는 1965년 4월 1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카운티는 기존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 행정 카운티의 지역(일부 사소한 경계 변경 포함)에서 소니 농촌 지역을 제외한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케임브리지셔와 아일오브일리는 행정 카운티일 뿐만 아니라 다른 법적 목적을 위한 카운티로도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케임브리지셔 경의 직함은 케임브리지셔 및 아일오브일리 경으로 변경되었으며, 새로운 카운티에는 고위 보안관이 임명되었고, 단일 치안 판사 위원회와 분기 법원이 설립되었다.[3][4]
카운티 창설과 함께 1964년 경찰법에 따른 조례가 발효되어, 케임브리지 시 경찰, 케임브리지셔 카운티 경찰, 아일오브일리 경찰, 헌팅던셔 경찰, 피터버러 통합 경찰을 통합한 미드-앵글리아 경찰이 창설되었다. 1974년의 추가적인 지방 정부 개혁으로 이 경찰 조직은 현재의 케임브리지셔 경찰로 개편되었으며, 관할 구역 경계는 동일하게 유지되었다.[5]
이 카운티는 1971년 인구 기준으로 잉글랜드의 46개 행정 카운티 및 카운티 자치구 중 33위를 기록했다.
3. 행정 구역
케임브리지셔아일오브일리 주는 12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는데, 2개의 자치구, 4개의 도시 자치구와 6개의 농촌 자치구가 있었다. 각 구역은 이전 케임브리지셔 또는 아일오브일리 주에서 편입되었다.[6] 각 구역의 상세 정보는 하위 섹션을 참조하라.
3. 1. 자치구
케임브리지셔아일오브일리 주는 12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는데, 2개의 자치구, 4개의 도시 자치구와 6개의 농촌 자치구가 있었다. 이전 행정 구역에서 이전된 구역은 다음과 같다.[6]
† 이전에는 케임브리지셔에 속함
‡ 이전에는 아일오브일리 주에 속함
3. 2. 도시 자치구
케임브리지셔아일오브일리 주에는 4개의 도시 자치구(Urban District, UD)가 있었으며, 모두 이전 아일오브일리 주에 속해 있었다.[6]구역 | 면적 (에이커) | 1961년 인구[7] | 1971년 인구[8] |
---|---|---|---|
채터리스 UD‡ | 15,107 | 5,491 | 5,578 |
일리 시 UD‡ | 14,659 | 9,803 | 9,965 |
마치 UD‡ | 19,787 | 13,144 | 14,285 |
휘틀시 UD‡ | 22,263 | 9,322 | 10,458 |
‡ 이전에는 아일오브일리 주에 속함
3. 3. 농촌 자치구
케임브리지셔아일오브일리 주에는 6개의 농촌 자치구가 있었다. 각 농촌 자치구의 면적과 인구는 다음과 같다.[6]구역 | 면적 (에이커) | 1961년 인구[7] | 1971년 인구[8] |
---|---|---|---|
체스터턴 RD† | 111,692 | 44,576 | 53,660 |
일리 RD‡ | 66,082 | 14,442 | 15,355 |
뉴마켓 RD† | 81,101 | 20,879 | 23,786 |
노스 위치포드 RD‡ | 24,700 | 4,740 | 4,352 |
사우스 케임브리지셔 RD† | 112,213 | 29,402 | 36,754 |
위스베치 RD‡ | 49,841 | 12,551 | 12,994 |
† 이전에는 케임브리지셔에 속함
‡ 이전에는 아일오브일리 주에 속함
4. 문장(Coat of arms)
카운티 의회는 1965년 9월 1일에 문장원으로부터 문장을 부여받았다. 이 문장은 통합된 두 카운티 의회, 즉 케임브리지셔 카운티 의회와 아일 오브 일리 카운티 의회의 문장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문장의 문장학적 설명은 다음과 같다.
''금색 바탕에 빨간색 엇갈린 플로리 문양이 있는 이중 테두리, 전체적으로 파란 물결형 띠에 금색 왕관 3개; 방패는 금색 성벽관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지자: 양쪽에 큰가슴들이 있고, 바깥쪽 다리는 금색으로 장식된 붉은색 닫힌 책 위에 놓여 있다. 배지: 십자형으로 4개의 백합 문양이 솟아나는 고리 안에 열린 금색 왕관이 있다.''[9]
문장의 금색 바탕과 빨간색 ''엇갈린 플로리 문양''은 스코틀랜드 왕실 문장에서 유래했다. 이는 12세기에 케임브리지 백작령을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1세가 소유했던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다. 중앙의 파란색 물결무늬는 케임강을 상징하며, 세 개의 금색 왕관은 엘리 교구의 문장에서 가져왔다. 방패 위에는 금색 성벽관이 장식되어 있다.
문장의 양쪽을 지지하는 동물은 큰가슴들이다. 이 새는 한때 잉글랜드에서 멸종되었으며, 마지막 서식지가 이 지역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큰가슴들의 발 아래에는 붉은색 책이 놓여 있는데, 이는 이전 케임브리지셔 문장의 지지자와 구별하기 위한 요소이다. 이 책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채택된 라틴어 모토인 ''Sapientes Simus''는 "우리가 이해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뜻으로, 이 역시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나타낸다.
5. 해체 및 이후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는 짧은 기간만 존재했다. 1972년 지방 정부법에 따라 대런던 외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모든 행정 구조가 개편되었다. 1974년 4월 1일, 케임브리지셔 아일오브일리는 헌팅던 앤 피터버러와 합병되어 새로운 비 광역 자치구인 케임브리지셔가 형성되었으며, 이는 1947년에 처음 제안된 합병안을 시행한 것이다.
참조
[1]
간행물
Report for the Year 1946
Local Government Boundary Commission
1947-04-03
[2]
논문
The Boundaries of Local Government Areas
1948-04/06
[3]
웹사이트
Local Government (East Midlands) HC Deb 09 March 1964 vol 691 cc170–211
https://api.parli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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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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