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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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곳으로, 현재의 강원도 원주에 위치했다. 1395년에 처음 설치되어 1895년 23부제가 실시될 때까지 약 500년 동안 존속했다. 관찰사의 업무 공간인 선화당을 비롯하여 청음당, 대은당, 포정루 등 다양한 건물과 시설을 갖추었으며, 2002년 사적 제43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이 남아 있으며, 매년 10월 강원감영제가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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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감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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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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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원주 강원감영 |
로마자 표기 | Wonju Gangwongamyeong |
분류 | 사적 |
지정 번호 | 439 |
지정일 | 2002년 3월 9일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원일로 85 (일산동) |
시대 | 조선시대 |
면적 | 9,608m2 |
꼬리표 | 원주 일산동 |
문화재청 ID | 13,04390000,32 |
2. 역사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행정 중심지로서, 1395년(태조 4년)부터 1895년(고종 32년)까지 약 500년간 존속하였다.[1]
2. 1. 조선시대 강원감영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관찰사의 소재지이다. 따라서 감영이 있던 원주는 강원도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1395년(태조 4년)에 처음 감영이 설치되었으며, 1895년(고종 32년)에 8도제가 종식되고 새로 23부제가 실시될 때까지 약 500년 동안 존속하였다.[1]2. 2. 현대의 복원 노력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인 강원감영에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 포정루, 동서남북의 4대문, 객사 및 각급 관아 부속건물 등 31동의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원주시 청사, 재향군인회관 등이 생기면서 그 모습을 잃어버렸고,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대문), 청운당(내아)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1]2000년대에 들어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 중삼문터, 내삼문터, 공방고, 책방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포정루에서 중삼문터와 내삼문터를 거쳐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보도, 선화당을 중심으로 외곽으로 둘러쳐진 담장터, 행각터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선화당 뒤편에 있는 연못터인 방지의 호안석축 등도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1]
강원감영지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고, 중삼문, 내삼문, 공방고터, 책방고, 보도, 담장, 행각 등이 있던 흔적과 같은 관련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우리나라 관아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1]
3. 구조
강원감영에는 선화당, 청음당, 대은당, 관풍각, 봉래각, 영리청, 포정문 등의 건물이 있었다.[2] 감영 북동쪽에는 객사가, 북쪽에는 중군의 지휘 공간인 중영이 인접해 있었다.[3] 감영 남동쪽 약 200미터 거리에는 원주 행정을 담당하던 이아가, 동남동쪽 약 300미터 거리에는 인조의 아내 인열왕후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어서비각이 있었다.[4][6] 원주 고을에는 4대문이 있었다.[5]
3. 1. 주요 시설
강원감영에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건물이 있었다.- 선화당 : 종2품 관찰사의 업무 공간
- 청음당 : 관찰사를 보좌하는 종5품 도사(都事)의 업무 공간
- 대은당 : 관찰사 가족의 생활 공간인 내아(內衙)의 중심 건물
- 관풍각 : 감영 후원의 연못에 있던 누각
- 봉래각 : 감영 후원의 연못에 있던 누각
- 영리청 : 감영에서 일하는 아전의 업무 공간
- 포정문 : 감영 정문[2]
감영의 규모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 포정루, 동서남북의 4대문, 객사 및 각급 관아 부속건물 등 31동 건물이 있었으나 원주시 청사, 재향군인회관 등이 생기면서 그 모습을 잃어 버렸다.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대문), 청운당(내아)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 중삼문터, 내삼문터, 공방고, 책방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포정루에서 중삼문터와 내삼문터를 거쳐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보도, 선화당을 중심으로 하여 외곽으로 둘러쳐진 담장터, 행각터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선화당 뒤편에 있는 연못터인 방지의 호안석축 등도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다.
강원감영지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고, 중삼문, 내삼문, 공방고터, 책방고, 보도, 담장, 행각 등이 있던 흔적과 같은 관련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또한 강원감영 이전의 관아 건물터 등이 그 아래층에 그대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아 건축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3. 2. 주변 시설
강원감영 주변에는 다음과 같은 시설이 있었다.[3][4][5][6]4. 문화재
강원감영은 2002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39호 '''원주강원감영지'''로 지정되었고,[7] 2011년 7월 28일 '''원주 강원감영'''으로 사적 명칭이 변경되었다.[8] 원주시에서는 매년 10월에 강원감영제를 개최하고 있다.
4. 1. 사적 지정
2002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39호 '''원주강원감영지'''로 지정되었고,[7] 2011년 7월 28일 '''원주 강원감영'''으로 사적 명칭이 변경되었다.[8]4. 2. 강원감영제
원주시에서는 매년 10월에 강원감영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강원감영제 기간에 감영 안으로 들어가 행사에 참여하거나 기념품 또는 먹거리를 구입하려면 행사 기간 동안 화폐 용도로 사용되는 상평통보로 환전해야 한다.5. 갤러리
참조
[1]
문서
[2]
문서
[3]
문서
[4]
문서
[5]
문서
[6]
실록
영조실록
1758-11-25
[7]
관보
문화재청고시제2002-14호(문화재지정)
http://gwanbo.mois.g[...]
관보(정호)
2002-03-09
[8]
관보
문화재청고시제2011-116호(국가지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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