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적조사 쇠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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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개성 적조사 쇠부처는 개성 박연리 적조사 절터에 있던 석조 불상으로, 앉아 있는 부처를 묘사하며 무게가 1톤이 넘는다. 1925년 경복궁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1935년 개성시 박물관으로 반환되어 전시되었다. 1935년경과 1950년대 사진에는 양손이 부러진 채 높은 받침대 위에 놓인 모습이 담겨 있으며, 현재는 복원된 양손과 함께 낮은 받침대 위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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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적조사 쇠부처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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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 | |
이름 | 적조사 쇠부처 |
한글 | 적조사쇠부처 |
한자 | 寂照寺쇠부처 |
로마자 표기 | Jeokjosa-soebucheo |
엠알 표기 | Chŏkchosa-soebuch'ŏ |
문맥 | 북한 |
상세 정보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유형 | 국보 |
지정 번호 | 137 |
소재지 | 개성시 방직동 고려박물관 |
시대 | 고려 |
2. 역사
개성 박연리(開城 朴淵里) 적조사(寂照寺) 터에 있던 이 석조 불상은[1]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복궁 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1] 1935년 9월 개성시 박물관으로 다시 옮겨져 현재에 이른다.[1] 과거 사진에는 양손이 파손된 모습도 보이나 현재는 복원된 상태로 전시 중이다.[1]
2. 1. 일제강점기 이전
개성 박연리(開城 朴淵里)의 적조사(寂照寺) 절터에 있었던 석조 불상이다. 흔히 적조사 쇠부처 또는 철불로 불리며, 앉아 있는 부처를 묘사하고 있다. 무게는 1ton이 넘는다.2. 2.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개성 박연리(開城 朴淵里)의 적조사(寂照寺) 절터에 있던 이 쇠부처(석조 불상 또는 철불)는 무게가 1ton이 넘는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쇠부처는 원래 자리에서 경복궁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0년 뒤인 1935년 9월, 다시 개성시 박물관으로 돌아와 주요 전시관에 자리 잡게 되었다.1935년경과 1950년대에 촬영된 사진에는 쇠부처의 양손이 부러진 채 높은 받침대 위에 안치된 모습이 남아있다. 정확한 훼손 시점이나 경위는 불분명하지만, 불상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현재는 양손 부분이 복원되었으며, 과거 사진 속 모습과는 달리 낮고 장식이 덜 된 화강암 받침대 위에 놓여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2. 3. 현재 상태
현재 불상은 개성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무게는 1ton이 넘으며, 과거 1935년경과 1950년대에 촬영된 사진에서는 불상의 양손이 부러진 채 높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으나, 현재는 양손이 복원되었고 낮고 장식이 간결한 화강암 받침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3. 불상의 특징
석조 불상으로, 앉아 있는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다.[1] 무게는 1ton이 넘는다.[1] 과거 사진(1935년경, 1950년대)에는 양손이 부러진 채 높은 받침대 위에 있었으나,[1] 현재는 양손이 복원되어 낮고 장식이 덜 된 화강암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1]
4. 사진 자료
1935년경과 1950년대에 촬영된 사진 자료를 통해 개성 적조사 쇠부처의 과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사진들 속 불상은 양손 부분이 파손된 상태였으며, 높은 받침대 위에 안치되어 있었다.[1] 이는 1925년 개성 박연리(朴淵里)의 적조사(寂照寺) 터에서 발견되어 경복궁 박물관을 거쳐 1935년 9월 개성시 박물관으로 옮겨진 이후의 모습으로 보인다.[1]
현재 개성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불상은 과거 사진과 비교했을 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파손되었던 양손이 복원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 사진 속 높았던 받침대와 달리, 현재는 낮고 장식이 비교적 단순한 화강암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1] 이러한 사진 자료들은 불상이 겪은 손상과 복원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조
[1]
웹사이트
Koryo Museum
https://www.flickr.c[...]
2014-08-05
[2]
뉴스
Koryo History Museum in Kaesong
http://www.kcna.co.j[...]
Korean Central News Agency
2014-08-05
[3]
thesis for PhD
A HISTORIOGRAPHY OF CULTURAL HERITAGE INTERPRETATION AND POLICY IN KAESŎNG, DPR KOREA AND THEIR POSSIBLE IMPACT ON INTER-KOREAN RAPPROCHEMENT
http://discovery.ucl[...]
Institute of Archaeology, University College of London
201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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