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노 다다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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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시노 다다노리는 일본의 유도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시라누카 중학교 시절 유망주로 두각을 나타냈고, 도카이 대학 졸업 후 토요 수산에 입사하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고도칸 컵 4연패, 전일본 체급별 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으며, 199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2년 선수 은퇴 후 국제무도대학 강사가 되었고, 현재는 준교수이자 유도부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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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노 다다노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국가 | 일본 |
출생지 | 시라누카, 홋카이도, 일본 |
출생일 | 1966년 4월 3일 |
신장 | 159cm |
체중 | 60kg |
선수 정보 | |
종목 | 유도 |
체급 | 60kg급 |
단 | 6단 |
주요 성적 | |
올림픽 | 1992 바르셀로나 동메달 (남자 60kg급) |
세계 선수권 대회 | 1991 바르셀로나 금메달 (60kg급) 1989 베오그라드 은메달 (60kg급) |
아시아 경기 대회 | 1990 베이징 금메달 (60kg급)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1988 다마스쿠스 금메달 (60kg급) |
2. 생애
2. 1. 어린 시절
1966년 구시로 지청 시라누카정에서 어업을 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5] 소극적인 성격을 걱정한 부모님의 권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유도를 시작했다.[5] 시라누카 중학교 시절 홋카이도 내에서 유망주로 알려졌다. 중학교 졸업 후 어부가 되려 했으나, 유도를 계속하기 위해 부모님과 약속을 하고 고등학교 진학에 성공했다.[5]경제적인 이유로 시라누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유도부 활동을 했다.[5]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 고등학교 종합 체육 대회(인터하이) 경량급에서 3위를 기록했다.[5]
2. 2. 도카이 대학 시절
1985년 4월, 도카이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대학 유도계에서 최강을 자랑했고 지도자 사토 노부센이 같은 홋카이도 출신이었던 것이 도카이 대학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5]。 도카이 대학 유도부에서는 레귤러조차 되지 못했지만, 세계 주니어 선수권 예선[6]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니어 강화 선수로 진입했고, 2학년 봄에는 고도칸배 출전도 이루었다. 사토에게 옷깃을 잡는 기술을 배우면서 체중급의 상대도 메칠 정도로 성장했다[5]。이후 강화 랭크도 C에서 B로 올라, 2학년, 3학년 때 쇼리키배를 연패했다. 3학년 때는 고도칸배, 전일본 체중별 선수권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경량급에서 두각을 나타내, 호소카와 신지의 후계자로 기대를 모았다. 당시를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순조로웠다"라고 고시노는 말했다[5]。 사토로부터 "발 기술의 악함을 살려라"라는 가르침을 받아, 후배 카이 야스히로와 함께 익힌 발 기술 연계 기술은, 평생 고시노의 주특기가 되었다[7]。
대학 4학년이 되자 목표를 서울 올림픽으로 정했지만,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결승에서 호소카와에게 패배하여 올림픽 출전을 놓쳤다. 연습에서 오른쪽 무릎 반월상 연골을 손상당하여, 4개월간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5]。 이 기간 동안 고시노는 변칙 유도에 한계를 느껴, 야마시타 야스히로의 기술을 이상으로 삼았다[5]。 기술도 안다리걸이·밭다리걸기 등의 대기술 중심에서, 업어치기를 비롯한 정통 유도로 변경했다[5]。 세미 교관인 야마시타 야스히로 아래에서 진행한 '업어치기 연구'는, 현재도 지도할 때 활용한다고 한다[5]。
2. 3. 선수 경력
고시노는 초등학교 때 유도를 시작하여 중학교 때 홋카이도 현 챔피언이 되었다.[2]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하고, 1985년 도카이 대학에 입학했다.[2] 대학 졸업 후 토요 수산에 입사했다.[2] 1989년부터 1992년까지 4년 연속 고도칸 컵에서 우승했고,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연속 전일본 체급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3]1989년 현역 선수 생활을 위해 토요스이산에 입사하여 고도칸배에서 4연패,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에서 3연패를 달성하며 국내 경량급 1인자가 되었다.[3] 세계 선수권(베오그라드)에서 준우승, 1990년 아시아 경기 대회(베이징)에서 우승했다.[4][5] 세계 선수권(바르셀로나)에서 우승했다.[4][5] 1992년 올림픽 직전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에서 오토구로 야스오에게 패했지만, 훈련에 매달려 올림픽 본선 준결승에서 EUN의 나짐 구세이노프에게 패했다.[8] 3위 결정전에서 프랑스의 필립 프라디롤을 업어치기 한판승으로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4][5][8] 경기 후 인터뷰에서 "힘과 힘의 승부에서 (구세이노프에게) 졌으니 어쩔 수 없다. 나보다 강한 녀석이 있었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5]
2. 4. 지도자 경력
고시노 다다노리는 1992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후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3] 1993년 4월 국제무도대학의 강사가 되었다.[3] 이는 대학 시절 은사였던 사토가 "세계 챔피언이 되면 교원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5] 국제무도대학에서 조교, 유도부 코치를 거쳐 현재 준교수이자 유도부 감독을 맡고 있다.[9] 지도자로서 도카이 대학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5]3. 주요 경기 전적
고시노 다다노리는 1984년 전국 고등학교 종합 체육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2] 1986년에는 고도칸배와 선발 체중별에서 각각 3위를 기록했고, 쇼리키배와 신인 체중별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2] 1987년에는 쇼리키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고도칸배, 선발 체중별, 쇼리키배에서 모두 2위를 기록했다.[2]
1988년 아시아 선수권에서 우승했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고도칸 컵에서 4년 연속 우승했다.[3] 1989년에는 선발 체중별 우승과 세계 선수권 2위를, 1990년에는 아시아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3] 1991년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3]
4. 인물 및 평가
현역 시절에는 안다리걸기, 업어치기와 다채로운 발 기술(특히 소내 꺾기와 소외 꺾기) 외에, 밭다리걸기, 팔얽어 비틀기 등을 주특기로 했다. 야마구치 가오리의 소내 꺾기와 발목을 참고했다고 한다.
홋카이도 방언이 섞인 유머 넘치는 말투가 특징이며, 본인 왈 "다다미 위와 달리, 실생활의 나는 꽤 재미있다"라고 한다. 올림픽 이후의 "금메달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발언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5] 지도자로서 고시노는 도장 밖에서도 학생들을 잘 돌보고, 능숙한 화법으로 학생들과의 소통도 잊지 않는다.[5]
5. 소속 학회
- 일본무도학회
- 지바 체육학회
참조
[1]
Sports-Reference
[2]
뉴스
Sports Click : 柔道 - 1st Techicical Seminar
http://www.sportscli[...]
BASEBALL MAGAZINESHA
2008-02-15
[3]
뉴스
国際武道大学教員紹介 越野忠則
http://www.budo-u.ac[...]
国際武道大学
2009-08-05
[4]
웹사이트
Biography and Olympic Results
http://www.sports-re[...]
[5]
뉴스
転機-あの試合、あの言葉 第13回 -越野忠則-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2-11-20
[6]
문서
당시의 세계주니어유도선수권대회 대표는 현재와 같이 선발이 아닌, 예선 대회를 개최하여 대표자를 결정하고 있었다.
[7]
뉴스
テクニカル・セミナー第2回
http://www.sportscli[...]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9-08-29
[8]
뉴스
柔道王者の明暗 魔物に勝つ精神力-
http://www5.hokkaido[...]
北海道新聞社
2004-05-28
[9]
뉴스
교원소개 -越野忠則-
http://www.budo-u.ac[...]
국제무도대학
20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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