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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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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괴량은 후한 말, 삼국 시대에 활약한 인물이다. 형주 자사 유표를 섬기며 종적 진압 방안에 대한 조언을 했고, 이부상서에 임명되었다. 유표가 호족 대처법에 대해 묻자 인애와 신의로 백성을 위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유표는 괴월의 계책을 채택했다. 아들 괴균은 남양태수를 지냈고, 손견을 물리치는 계책을 제시하는 등 군사적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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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량
인물 정보
이름蒯良 (쿠아이량)
子柔 (자유)
출생생년 미상
사망미상
출신지형주남군중려후국
주군유표
관직이부상서

2. 생애

괴량은 후한 말의 인물로, 조조를 섬기며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다. 아들 괴균(蒯鈞)은 남양태수(南陽太守)를 지냈고, 괴균의 딸은 사마염(司馬炎)의 측실이 되었다.[1]

세설신어』의 주석에 인용된 『진양추』에 따르면, 괴량은 이부상서까지 지냈다고 한다.

2. 1. 유표를 섬기다

초평 원년(190년), 형주에서 종적(宗賊)이라는 도적이 날뛰어 백성들을 괴롭혔다. 형주자사(荊州刺史) 유표는 괴량 · 괴월 · 채모를 찾아가 종적을 진압할 방안을 물었는데, 괴량은 인의(仁義)에 따라 행동하여 군사를 모으면 된다고 하였고 괴월은 도적들을 꾀어내어 사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유표는 괴월의 의견을 채택하였고, 괴월로 하여금 도적들을 꾀어내어 죽이게 하였다.[1]

훗날 괴량은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임명되었다.[1]

유표가 형주 자사로 부임했을 때, 괴월 · 채모와 함께 초청되어, 복종하지 않는 호족에 대한 대처법에 대해 상담받았다. 이에 괴량은 "인애와 신의로 백성을 위로해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괴월은 "이익으로 유혹한 다음 무도한 자를 주살하고, 나머지는 안무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유표는 괴량의 진언을 "(인의를 존중한 진의) 옹계의 논의와 같다"고 평가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괴월의 진언을 채택하여 형주를 통일했다.

2. 2. 삼국지연의에서의 모습

손견유표를 공격했을 때, 황조를 선봉으로 내세워 막게 했으나 황조는 손견에게 패했다. 괴량은 원소에게 원군을 청할 것을 제안했지만, 유표는 이를 듣지 않고 채모를 내세웠다가 패하고 양양성이 포위되었다. 유표가 다시 조언을 구하자, 괴량은 천문이 손견에게 불리한 것을 보고 다시 원소에게 원군을 청하도록 했다. 이때 원군을 청하러 갈 장수로 지목된 여공에게 손견의 포위를 뚫을 계책을 알려주었는데, 여공을 추격하던 손견이 이 계책에 걸려 전사하면서 유표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괴량은 손견의 시체와 황조를 교환하자는 강동 측의 제안을 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유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괴량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괴월이 유표에게 적로를 타지 말라고 간언할 때, 괴량이 자신과 함께 말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괴월이 괴량을 선형(先兄)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이 시점에는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191년 양양 전투에서 손견을 격파하기 위한 계책을 내놓은 것으로 묘사된다. 괴량은 황조에게 퇴각하여 손견을 현산(峴山)으로 유인하도록 제안했고, 그곳에서 손견은 매복해 있던 황조의 궁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괴량은 연평 출신이며, 괴월의 형으로 등장한다. 정사와는 달리, 손견을 물리치는 계책을 제시하는 등 군사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또한, 손견의 유해를 손책에게 돌려주는 것을 반대하고, 이 기회에 손씨 일가를 멸망시킬 것을 주장하는 등, 냉혹한 인물로 그려진다.

3. 가계

괴량

3. 1. 친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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