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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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토 신문은 1879년 창간된 일본의 일간 신문으로, 교토부와 시가현을 중심으로 발행된다. 교토 상사 순보로 시작하여 여러 차례 제호 변경을 거쳐 현재의 교토 신문이 되었으며, 시가현 지역 신문인 시가닛닛신문을 통합하여 교토부와 시가현의 지역 정보를 제공한다. 조간과 석간을 발행하며, 2006년부터 그룹 경영 체제로 전환하여 광고, 인쇄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고베 신문을 지원한 공로로 일본신문협회상을 수상했으며, 출신지 제한 채용 공고 및 회사 자금 유용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주요 주최 행사로는 전국여자역전에키덴 경주대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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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신문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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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교토 신문 |
원어 이름 | 京都新聞 (일본어) |
회사 이름 | 주식회사 교토 신문사 |
영문 회사 이름 | The Kyoto Shimbun |
유형 | 일간 신문 |
형식 | 블랭킷 판 (54.6 cm x 40.65 cm) |
창간일 | 1879년 6월 9일 |
소유주 | 주식회사 교토 신문사 |
발행인 | 나가시마 노부히코 |
언어 | 일본어 |
본사 | 교토시나카교구 |
웹사이트 | 교토 신문 공식 웹사이트 |
역사 | |
창간 | 1879년 (상보회사로서 설립) |
주요 전신 | 교토 상사 신보 (1879년 - 1881년) 교토 신보 (1881년 - 1892년) 교토 일출 신문 (1885년 - 1942년 3월 31일) 교토 일일 신문 (1912년 - 1942년) 고베 신문 (1898년 - 현재) 오사카 지지신보 (1905년 - 1942년) 시가 일일 신문 (1956년 - 1979년) |
발행 부수 | |
평균 발행 부수 (2021년 10월, 일본 ABC 협회 조사) | 조간: 354,435부 석간: 135,687부 |
2023년 10월 일본 ABC 협회 조사 | 조간: 311,390부 석간: 100,608부 |
가격 | |
1부 가격 | 조간: 180엔 석간: 70엔 |
월 구독료 | 세트판: 4,900엔 통합판: 3,900엔 |
회사 정보 | |
설립 | 1879년 |
자본금 | 1억 엔 |
매출액 | 약 64억 엔 |
직원 수 | 284명 (2024년 1월 기준) |
주요 주주 | 교토 신문 홀딩스 |
주요 자회사 | 교토 신문 COM 교토 신문 인쇄 |
주요 인물 | 시라이시 고쿄 (전 사장) 마스다 쇼조 (전 회장 겸 사장) 나가시마 노부히코 (전 사장) 야마우치 야스타카 (전 사장) 시라이시 히로코 (전 상담역) |
기타 | |
우편 번호 | 〒604-8577 |
본사 주소 | 교토부 교토시 나카교구 가라스마도리 에비스가와카미루 쇼쇼이초 239번지 |
2. 역사
1942년 4월, 전시 보도 통제에 따라 교토닛닛신문과 교토일출신문을 통합하여 "교토 신문"을 창간했다.[2] 같은 해 8월, 오우슈닛닛신문을 시가 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2] 1946년 5월에는 석간교토를 창간했으나 1982년 폐간되었다. 1949년 신년호 지면에 전후 간사이 지역 최초로 컬러 인쇄를 실시했으며, 같은 해 11월 전후 창간된 석간 교토닛닛신문을 합병하여 "석간·교토 신문"으로 발행하면서 조석간 체제를 부활시켰다.[4]
1951년 교토 방송(KBS 교토)이 라디오 방송을 개국했고(텔레비전 방송은 1969년 개국), 1958년에는 공동 출자로 간사이 텔레비전 방송(関西テレビ放送)이 개국했다. 1956년 3월 교토 신문사가 시가 신문의 경영에 참여했고,[4] 같은 해 9월 시가 신문을 "시가닛닛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4] 1979년 시가닛닛신문을 교토 신문과 통합하고 시가 본사를 설립했다.
1982년 다색 인쇄 시스템을 완성했고,[1] 1983년 신인쇄 시스템으로 지면 이전을 완료하여 93년간의 납판(鉛版)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2] 1994년 고베 신문(神戸新聞社)과 긴급 상황 발생 시 신문 발행 지원 협정을 체결했다.[3]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 발생 당시 이 협정에 따라 고베 신문의 지면 제작을 지원했고, 이후 고베 신문과의 공동 기획으로 일본신문협회(日本新聞協会)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인터넷을 통한 정보 발신을 시작했다.[4]
2004년 2월, 시가 본사에서 본지와 별도로 주간지 "시가 신문"을 창간했으나[7], 2007년 2월 24일자를 마지막으로 발행을 종료했다.[7] 2006년 4월 경영 기반 강화를 위해 그룹 경영으로 전환하여 3사로 분할했다.[5] 2007년 고베 신문(神戸新聞社)의 기기 고장으로 교토 신문사에서 지면 제작을 실시했다. 2011년 후쿠이 신문(福井新聞)과 대규모 재해 시 인쇄 지원 위탁 협정을 체결했다.[9]
2014년 4월 1일, 구 법인인 주식회사 교토 신문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며, 상호를 '''주식회사 교토신문홀딩스'''[6]로 변경했다. 신문 편집 사업은 신설 법인인 '주식회사 교토 신문사'에 승계했다.[7] 2018년 2월 7일 후쿠이 신문(福井新聞)과 맺은 재해 지원 위탁 협정에 따라 후쿠이 신문 조간 일부를 교토 신문인쇄 공장에서 인쇄 및 수송하여 지원했다.[8]
2021년 3월 16일과 2023년 10월 6일 두 차례에 걸쳐 조·석간 세트 월정액 구독료를 인상했다.[9][10] 2024년 6월 28일, 교토 신문홀딩스는 자본금을 6억엔에서 1억엔으로 감자하기로 결의했다.[11]
2. 1. 창간과 초기 (1879년 ~ 1942년)
1879년 6월 9일, 하마오카 미쓰테쓰(浜岡光哲)가 "교토상사순보(京都商事迅報)"라는 이름으로 창간했다.[1] 이후 여러 차례 제호를 변경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연도 | 제호 및 기타 변경 사항 |
---|---|
1879년 | 교토상사순보(京都商事迅報) 창간[1] |
1880년 | 교토상사순보(京都商事迅報) → 상사순보(商事迅報)로 변경[1] |
1881년 | 교토신보(京都新報) 창간[1] |
1882년 | 교토신보(京都新報) → 교토시가신보(京都時事新報)로 변경 |
1884년 | 교토시가신보(京都時事新報) → 중외전보(中外電報)로 변경[2] |
1885년 | 중외전보(中外電報)의 자매지로 일출신문(日出新聞) 발행[2] |
1892년 | 중외전보(中外電報) 폐간, 일출신문(日出新聞)만 발행[2] |
1897년 | 일출신문(日出新聞) → 교토일출신문(京都日出新聞)으로 변경[2] |
1912년 | 교토석간신문(京都夕刊新聞) 창간 |
1916년 | 교토석간신문(京都夕刊新聞) → 간사이닛닛신문(関西日日新聞)으로 변경 |
1920년 | 간사이닛닛신문(関西日日新聞) → 교토닛닛신문(京都日日新聞)으로 변경 |
1921년 | * 합자회사 교토일출신문사(京都日出新聞社) 설립[2] * 오우슈닛닛신문(欧州日日新聞) 창간[2] |
1931년 | 고베신문사(神戸新聞社), 오사카지지(大阪時事), 교토닛닛신문(京都日日新聞) 3사가 합병하여 삼도합동신문사(三都合同新聞社) 설립 |
1933년 | 교토닛닛신문사(京都日日新聞社)가 삼도합동신문사(三都合同新聞社)에서 독립 |
1942년 | 전시 보도 통제에 따라 교토닛닛신문(京都日日新聞)과 교토일출신문(京都日出新聞)을 통합하여 교토 신문(京都新聞) 창간[2] |
2. 2. 전시 통합과 재편 (1942년 ~ 1979년)
1942년, 전시 보도 통제에 따라 교토닛닛신문과 교토일출신문을 통합하여 "교토 신문"을 창간했다.[4] 1946년 5월, "석간교토"를 창간했다(1982년 폐간). 1949년 11월, 전후 창간된 석간 "교토닛닛신문"을 합병하여 "석간·교토신문"으로 발행, 조석간 체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1951년, 교토 방송(KBS 교토)이 개국했다(라디오. 텔레비전 개국은 1969년). 1956년 3월, 교토 신문사가 시가 신문의 경영에 참여했고,[4] 같은 해 9월, 시가 신문을 "시가닛닛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4] 1979년, 시가닛닛신문을 교토 신문과 통합하고 시가 본사를 설립했다.
2. 3. 현대 (1982년 ~ 현재)
1982년, 다색 인쇄 시스템을 완성했다.[1] 1983년에는 새로운 인쇄 시스템으로 지면 이전을 완료하여 93년간의 납판(鉛版)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2] 1994년, 고베 신문(神戸新聞社)과 긴급 상황 발생 시 신문 발행을 지원하는 협정을 체결했다.[3]1995년 1월 17일, 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이 발생했다. 교토시 내에도 피해가 있었지만 규모는 작았고, 교토 신문사 건물도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진원지에 가까운 효고현(兵庫県) 고베시(神戸市)는 큰 피해를 입었고, 전년도에 발행 지원 협정을 체결한 고베 신문 본사가 전파되었다. 고베 신문 편집국장 야마네 히데오(山根秀夫)의 요청으로 협정을 발동, 고베 신문 직원 일부가 교토 신문사에서 고베 신문 지면을 제작·발행했다. 이후 고베 신문과의 공동 기획 '살아남다(生きる)'로 일본신문협회(日本新聞協会)상을 수상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발신도 시작했다.[4]
2006년 4월, 경영 기반 강화를 위해 그룹 경영으로 전환했다. 주식회사 교토신문사(그룹 총괄·편집·제작), 주식회사 교토신문COM(광고 영업·신문 판매), 주식회사 교토신문인쇄(신문 인쇄)의 3사로 분할했다.[5]
2014년 4월 1일, 구 법인인 주식회사 교토신문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며, 상호를 '''주식회사 교토신문홀딩스'''[6]로 변경했다. 교토 신문COM, 교토 신문인쇄를 완전 자회사로 만들고, 신문 편집 사업은 신설 법인인 '주식회사 교토신문사'에 승계했다.[7]
2018년 2월 7일, 후쿠이 신문(福井新聞)과 맺은 재해 지원 위탁 협정에 따라, 호쿠리쿠 지방의 폭설로 인한 도로 마비로 후쿠이 신문 조간 34,000부를 교토 신문인쇄 공장에서 인쇄 및 수송하여 지원했다.[8]
2021년 3월 16일, 4월 1일부터 조·석간 세트 월정액 구독료를 4400JPY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9] 2023년 10월 6일, 11월 1일부터 조·석간 세트 월정액 구독료를 4900JPY으로, 통합판을 3900JPY으로 각각 인상한다고 발표했다.[10]
2024년 6월 28일, 교토 신문홀딩스는 자본금을 6억엔에서 1억엔으로 감자하기로 결의했다.[11]
3. 사시 및 기업 이념
교토 신문의 사시는 정의, 자유, 진실을 지키는 것이며,[2] 기업 이념은 언론 보도를 기본으로 한 종합 정보 활동을 통해 인간성 풍부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3. 1. 사시
정의, 자유, 진실을 지킨다.[2]3. 2. 기업 이념
언론 보도를 기본으로 한 종합 정보 활동을 통해 인간성 풍부한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4. 발행 및 사업
은 신문 발행 외에도 출판, 광고, 문화 사업, 여행, 시스템 개발, 인쇄, 빌딩 임대, 부동산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4. 1. 발행 부수 및 지역
京都新聞일본어의 발행 부수는 조간 326,071부, 석간 116,797부이다(2022년 10월 기준).[3]교토부, 시가현 외에도 오사카부 (게이한 본선 요도야바시, 덴마바시, 히라카타시, 쿠즈하 각 역과 한큐 교토선 다카츠키시 역, 호와이티 우메다 내 매점, 미시마군 시마모토정 일부 등)이나 나라현 (긴테쓰 교토 선 타카노하라 역 매점 등)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시가현에서는 블록지인 중일신문과 판매 지역이 겹치지만, 중일신문은 히코네시 등 현 동부를 중심으로 점유율이 높고, 오쓰시 등 현 서부에서는 京都新聞일본어의 점유율이 높다.[6]
5. 특징
교토 신문은 준블록지적 성격을 지니며, 시가현의 현지 신문 역할도 수행한다. 시가니치니치신문을 흡수 합병했기 때문이다.[3] 교토에는 역사적인 문화재가 많고, 많은 대학이 있어 역사·문화 및 대학 관련 기사가 많다. 불교 관련 기사나 연재도 많으며, 1면 칼럼 제목은 "범어"이다.[4] 노나카 히로무, 타니가키 사다카즈, 이부키 분메이, 마에하라 세이지 등 지역 출신 정치인이 정부·여당의 요직에 있을 때는 도쿄에서의 취재에 인원과 지면을 할애했다.
5. 1. 편집 방향
교토 신문은 준블록지적 성격을 지니며, 시가현의 현지 신문 역할도 수행한다. 시가니치니치신문을 흡수 합병했기 때문이다.[3] 노나카 히로무, 타니가키 사다카즈, 이부키 분메이, 마에하라 세이지 등 지역 출신 정치인이 정부·여당의 요직에 있을 때는 도쿄에서의 취재에 인원과 지면을 할애했다.교토에는 역사적인 문화재가 많이 존재하고, 또한 많은 대학이 설립되어 있는 특성으로 인해 역사·문화 관련 기사와 대학 관련 기사가 많다. 불교 각 종파의 현황을 정리한 기사나 연재 등도 많아, 같은 교토시에 본사를 두는 전문지 츄가이니치와 경쟁하는 등 다른 부현의 지역 신문과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1면 칼럼 제목은 "범어"이다.[4]
5. 2. 기사 내용
교토에는 역사적인 문화재가 많이 존재하며, 또한 많은 대학이 설립되어 있는 특성으로 인해 역사·문화 관련 기사와 대학 관련 기사가 많다. 또한 불교 각 종파의 현황을 정리한 기사나 연재 등도 많아, 같은 교토시에 본사를 두는 전문지 츄가이니치와 경쟁하는 등 다른 부현의 지역 신문과의 차이가 두드러진다.[4] 1면 칼럼 제목은 "'''범어'''"(ぼんご)이다.[4]5. 3. 1면 칼럼
교토 신문은 불교 각 종파의 현황을 정리한 기사나 연재 등이 많으며, 1면 칼럼 제목은 "'''범어'''"(ぼんご)이다.[4]6. 날씨 예보
조간은 1면 제호 광고 아래에 교토 남부·교토 북부·시가 남부·시가 북부의 당일 6~12시, 12~18시, 18~24시의 날씨 예보와 최저 기온·최고 기온, 그리고 다음 날의 날씨 예보를 게재하고, 오사카, 고베, 나라, 도쿄, 나고야, 후쿠오카의 당일 날씨 예보를 함께 제공한다.[1]
석간은 1면 우측 하단에 날씨 지도와 개황을 싣고, 교토 남부·북부, 시가 남부·북부의 당일 18시부터 다음 날 0시까지 6시간 간격의 날씨 예보와 다음 날의 최저·최고 기온을 게재한다. 또한 오사카, 고베, 나라, 후쿠이, 삿포로, 도쿄, 나고야, 후쿠오카의 다음 날 날씨와 당일 교토, 마이즈루, 오쓰, 히코네의 최저 기온, 비와호 수위를 함께 제공한다.[1]
7. 관련 기업 및 단체
関連企業일본어 및 단체는 다음과 같다.
관련 기업 및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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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교토 FM 방송(α-STATION), 시가 FM 방송(e-radio)은 관련 기업이자 단체이다.
7. 1. 관련 기업
7. 2. 관련 단체
8. 방송 프로그램표
교토 신문에는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표가 게재된다. 지상파 TV, 위성 TV, 라디오 채널의 프로그램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2010년 9월까지는 중간 면에 펼침면 형태로 편성표가 게재되었으나(오른쪽은 위성방송 및 인접 현 지상파 TV, 왼쪽은 라디오), 같은 해 10월부터 지면 쇄신으로 TV와 라디오 모두 1페이지로 통합되었다.
2011년 7월 24일, 지상 디지털 방송 완전 이행에 따라 TV 및 라디오 란이 대폭 변경되었다. 기존 중간 면에 있던 민영 BS 디지털 방송은 최종 면으로 이동하고 크기도 축소되었으며, 중간 면의 산 테레비와 나라 테레비도 크기가 작아졌다. 라디오 란에서는 FM후쿠이 프로그램 란 게재가 중단되었다.
8. 1. 지상파 TV
- NHK 종합(1) (교토부판은 교토국, 시가현판은 오쓰국 기준의 것을 게재. 국명 컷 하단의 전화번호는 오사카국의 것을 수록)
- NHK E테레(2)
- MBS 테레비(4)
- ABC 테레비(6)
- 간테레(8)
- 요미우리 테레비(10)
※1969년 3월까지는 간사이 테레비를 크게 다루고 있었다(동국만 틀이 넓어져서 해설 기사도 많았다. 이것은 간사이 테레비의 개국에 즈음하여 교토 신문의 자본 제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교토 테레비(5) (교토부판은 풀 사이즈, 시가현판은 하프 사이즈)[14]
(서비스 방송이 시작된) 1969년 2월 1일자 조간부터 게재. 서비스 방송 시는 NHK 교육 옆에 그날의 프로그램 해설과 함께 하프 사이즈이면서 폭을 약간 넓게 하여 게재, 정식 개국 후는 적어도 1980년대 전반까지 가장 왼쪽 끝에 싣고 있었다(즉, 처음에 긴키 방송 테레비가 게재되고, 그 다음이 재오사카국이었다)가, 그 이후는 일반적인 신문과 같이, 재오사카국부터 시작하여, 교토부판에서는 요미우리 테레비 옆 풀 사이즈, 시가현판은 비와호 테레비[15] 옆 하프 사이즈로 싣고 있다.
** 석간의 경우, 교토부판·시가현판 모두 양국 풀 사이즈.
** 비와호 방송이 저녁 중심의 편성이었던 시대는, 교토·시가 모두 긴키(교토)는 풀, 비와호는 쿼터 사이즈로 해설란에 기재되어 있었다.
- TV 오사카(7) (교토부판·시가현판 모두 하프 사이즈. 석간도 같음. 조간의 경우 교토부판은 비와호 방송, 시가현판은 KBS 교토의 란 아래, 석간은 비와호 방송 옆 광고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 산 테레비(3)
- 나라 테레비(9)
매년 1월 1일자는, 교토 테레비, 비와호 테레비의 테레비란은 교토·시가 모두 풀 사이즈로 게재. 그 때문에 테레비 오사카는 제2 테레비면에서 게재된다.
8. 2. 위성 TV
8. 3. 라디오
- NHK 제1 (주파수는 오사카 방송국 666kHz와 히코네 방송국 945kHz만 기재)
- NHK 제2 (석간은 미게재)
- 교토 방송(주파수는 교토 본국 1143kHz와 와이드 FM 주파수만 기재[17].)
- ABC 라디오
- MBS 라디오
- 라디오 오사카 (석간은 미게재)
- 라디오 간사이 (주파수는 고베 본국 558kHz와 와이드 FM 주파수만 기재)
- NHK-FM (주파수는 교토국 82.8MHz와 오쓰국 84.0MHz만 기재. 오사카국 88.1MHz는 기재되지 않음)
- α-Station
- e-radio
- FM802
- FM오사카
- KissFM (석간은 미게재)
- 라디오NIKKEI (석간은 미게재)
FM COCOLO는 개국 당초에는 게재되지 않았고, 개국 후 약 5년 후인 2000년경에 이르러서야 게재되기 시작했다.
시민판에는 산조라디오카페, 라디오믹스의 편성표를 게재(자체 제작 프로그램만 게재. FM845는 미게재)하였고, 야마시로판에는 FM우지의 편성표를 게재(자체 제작 프로그램만 게재. FM오토쿠니는 미게재)하였다. 탄고츄탄판에는 FM이카루, FM탄바, FM마이즈루(2017년1월 9일부터)의 편성표를 게재(자체 제작 프로그램만 게재. FM탄고는 미게재)하였다.
2010년 9월 말까지 중면에 편성표가 펼침면(오른쪽은 위성방송, 인접현 지상파텔레비전, 왼쪽이 라디오)으로 게재되었으나, 같은 해 10월부터 지면 쇄신으로 텔레비전·라디오 모두 1페이지로 통합하여 게재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2011년 7월 24일부터 지상 디지털 방송의 완전 이행에 따라, 텔레비전·라디오 란이 대폭 쇄신되었다. 종래 중면에 게재되고 있던 민영 BS 디지털 방송이 최종면으로 이동(크기도 반쪽 크기에서 작은 크기로 변경)되었고, 중면의 산테레비와 나라테레비도 반쪽 크기에서 작은 크기로 축소되었다. 라디오 란에서는 이전 FM후쿠이의 프로그램 란도 게재되었지만, 2011년 7월 23일자로 동국 게재를 중단했다.
9. 지역판
교토 신문은 교토부와 시가현 각 지역별로 지역판을 발행하고 있다.
9. 1. 교토부
- 교토 시민판
- 야마시로(山城)판
- 라쿠사이(洛西)판
- 단바(丹波)판
- 단고(丹後)・추단(中丹)판
9. 2. 시가현
시가현에서 발행되는 신문에는 1면 제호 아래에 '''시가''', '''시가 석간'''(滋賀夕刊|시가 석간일본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1] 지역면은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4회 '지역 플러스면', '간사이 광역 뉴스면'을 게재하며, 4페이지 분량이다.[1]10. 4컷 만화
교토 신문에는 4컷 만화가 연재되고 있다. 2017년 4월 1일부터 ゴンちゃん일본어 (가마치 요시로)가 연재되고 있으며, 2014년 12월 27일까지는 소라 아스카의 '코요미짱(コヨミちゃん)'이 연재되었다.[1]
10. 1. 현재 연재
ゴンちゃん일본어 (가마치 요시로)는 2017년 4월 1일부터 연재되고 있다. 오사카 니치니치 신문, 시즈오카 신문, 기후 신문 등 각지의 지방 신문에도 컬러로 게재되고 있다.[1]10. 2. 과거 연재
과거 저녁 신문에 소라 아스카의 '코요미짱(コヨミちゃん)'이 2014년 12월 27일까지 연재되었다.[1]11. 논란 및 사건
교토 신문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논란 및 사건이 있었다.
- 2022년 4월 21일, 교토신문홀딩스는 장기간 교토신문을 동족 경영해 온 백석(白石) 가문 출신 고문인 백석 고자(浩子)에게 근무 실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16억엔이 넘는 급여를 지급한 사실을 밝혔다. 이는 제3자 위원회로부터 회사법 120조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신문사에 대한 불법 급여 지급 지적은 매우 이례적이다.[19] 주간신초(週刊新潮) 2022년 5월 19일호에 따르면, 백석 고자 전 고문은 1987년부터 34년간 연 4000만엔에서 6000만엔의 급여를 받았으며, 그 총액은 16.477억엔에 달하고, 사저 관리비 2.595억엔도 부담했다.[20] 교토신문HD는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책임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다"며 백석 고자 전 고문에 대한 반환 청구를 언급했다. 그러나 주식은 백석 가문의 자산 관리 회사인 "문화원(文化院)"이 25.9%를 보유하고, 백석 고자 전 고문이 2.5%, 그녀의 아들인 HD 이사 백석 경대(京大)도 1.5%를 보유하고 있어 "백석 가문의 패밀리 기업인 교토신문에서 백석 가문을 배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20]
같은 해 6월 29일, 교토신문 기자 여러 명이 이익 제공에 의한 회사법 위반 혐의로 백석 고자 전 고문과 백석 경대 HD 이사를 교토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백석 경대는 같은 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HD 이사직에서 사퇴함으로써 백석 가문은 교토신문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21][22] 2023년 3월 20일, 교토지방검찰청은 백석 등 2명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23]
11. 1. 채용 공고 출신지 제한 논란
2012년 3월 2일 본사 채용 공고에 출신지를 제한하는 내용의 응모 자격을 기재한 것에 대해 교토노동국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다.[18]11. 2. 백석(白石) 가문에 대한 이익 제공 문제
2022년 4월 21일, 교토신문홀딩스는 장기간 교토신문을 동족 경영해 온 백석(白石) 가문 출신 고문인 백석 고자(浩子)에게 근무 실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총액 16억엔이 넘는 급여를 지급한 사실을 밝혔다. 이는 제3자 위원회로부터 회사법 120조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신문사에 대한 불법 급여 지급 지적은 매우 이례적이다.[19]주간신초(週刊新潮) 2022년 5월 19일호에 따르면, 백석 고자 전 고문은 1987년부터 34년간 연 4000만엔에서 6000만엔의 급여를 받았으며, 그 총액은 16.477억엔에 달하고, 사저 관리비 2.595억엔도 부담했다.[20] 교토신문HD는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책임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다"며 백석 고자 전 고문에 대한 반환 청구를 언급했다. 그러나 주식은 백석 가문의 자산 관리 회사인 "문화원(文化院)"이 25.9%를 보유하고, 백석 고자 전 고문이 2.5%, 그녀의 아들인 HD 이사 백석 경대(京大)도 1.5%를 보유하고 있어 "백석 가문의 패밀리 기업인 교토신문에서 백석 가문을 배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20]
같은 해 6월 29일, 교토신문 기자 여러 명이 이익 제공에 의한 회사법 위반 혐의로 백석 고자 전 고문과 백석 경대 HD 이사를 교토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백석 경대는 같은 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HD 이사직에서 사퇴함으로써 백석 가문은 교토신문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21][22] 2023년 3월 20일, 교토지방검찰청은 백석 등 2명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23]
12. 주최 이벤트
13. 사사 및 기념지
제목 | 발행일 | 페이지 수 | 비고 |
---|---|---|---|
교토 신문 90년사 | 1969년 6월 1일 | 575쪽 | 교토신문사사편찬위원회 편 |
교토 신문사 소사 | 1974년 3월 | 230쪽 | 교토신문사소사작성위원회 편 |
교토 신문 100년사 | 1979년 12월 | 661쪽 | 교토신문사사편찬소위원회 편 |
교토 신문 105년 소사 | 1984년 6월 | 203쪽 | 교토신문사사편찬위원회 편 |
교토 신문 110년사 | 1989년 10월 | 488쪽 | 교토신문 창간 110주년 기념사업 실행위원회사사편찬부회 편 |
교토 신문 115년 소사 | 1994년 10월 | 261쪽 | 교토신문 115년 소사편찬위원회 편 |
교토 신문 120년사 | 1999년 10월 | 303쪽 | 교토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사업 실행위원회사사편찬부회 편 |
교토 신문 그룹 130년사 | 2009년 3월 | DVD-ROM | 교토신문홀딩스 편 |
교토 신문 그룹 140년사 | 2020년 1월 | DVD-ROM | 교토신문홀딩스 편 |
참조
[1]
웹사이트
京都新聞HDが資本金を減資 株主総会、グループ各社の新役員決まる|経済|地域のニュース|京都新聞
https://www.kyoto-np[...]
2024-12-24
[2]
웹사이트
京都新聞 グループ概要
https://www.kyoto-np[...]
京都新聞社
2020-03-23
[3]
웹사이트
発行部数
https://pr.kyoto-np.[...]
京都新聞COM
2020-03-23
[4]
문서
戦時中は「神泉」。
[5]
문서
2005年4月29日創刊、同年9月17日で事実上廃刊。
[6]
웹사이트
発行エリアマップ
https://pr.kyoto-np.[...]
2020-03-23
[7]
웹사이트
滋賀新聞
https://web.archive.[...]
[8]
문서
滋賀新聞の発行は「みんなの滋賀新聞」創刊の動きを察知して先手を打った対抗策の側面もあった。ちなみに、みんなの滋賀新聞が創刊前の2003年、一般から題字を公募した際、最も応募数が多かったのはその名も「滋賀新聞」であったが、本紙が先に商標登録を行っていたため使用できなかった
2021-07
[9]
웹사이트
北陸で大雪 福井が京都に印刷委託 援助協定発動 敦賀以西の3万4千部
https://web.archive.[...]
[10]
문서
新聞社の持株会社移行は読売新聞グループ本社、毎日新聞グループホールディングスに次いで3番目で、地方新聞社としては初の事例となる。
[11]
웹사이트
【購読料改定】京都新聞社 4月から朝夕刊4400円
https://www.bunkanew[...]
2021-03-22
[12]
웹사이트
京都新聞が11月値上げ セット版月決め4900円
https://www.kyoto-np[...]
2023-10-06
[13]
웹사이트
京都新聞HDが資本金を減資 株主総会、グループ各社の新役員決まる|経済|地域のニュース|京都新聞
https://www.kyoto-np[...]
2024-12-24
[14]
문서
京都府版のKBS京都が載っているポジションに同じ。
[15]
문서
滋賀県版のKBS京都が載っているポジションに同じ。
[16]
문서
以前は最終面に掲載。
[17]
문서
かつては滋賀県向け、舞鶴・福知山向け差し替え放送番組は解説欄に掲載されていたが、2009年よりレギュラーでの差し替え放送を行わなくなったため、現在は掲載されていない。
[18]
뉴스
京都新聞、採用告知資格に出身地制限 労働局が指導
2012-03-02
[19]
뉴스
京都新聞HD、元相談役に総額16億円超の違法報酬か 第三者委指摘
https://mainichi.jp/[...]
2022-04-21
[20]
뉴스
「女帝」白石浩子元相談役への報酬19億円 違法認定でも「白石家」支配が続く「京都新聞」
https://www.dailyshi[...]
2022-05-24
[21]
웹사이트
記者の労組、京都新聞HDの81歳大株主らを告発…違法な利益供与の疑い
https://www.yomiuri.[...]
2022-06-29
[22]
웹사이트
京都新聞HDの違法報酬 同紙記者が元相談役らを刑事告発へ
https://mainichi.jp/[...]
2022-06-28
[23]
뉴스
京都新聞HD違法利益供与疑惑 告発の元相談役らか人不起訴
https://www.sankei.c[...]
2023-03-21
[24]
뉴스
地域の人に感動と勇気 京都新聞大賞 2氏1団体に贈呈
京都新聞社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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