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현안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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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현안림동은 대한민국 충주시의 행정 구역이다. 1895년 충주군 북변면에서 시작되어, 여러 차례의 행정 구역 개편을 거쳐 현재의 교현동, 안림동, 종민동, 목벌동으로 구성되었다. 교현동은 교동과 야현리에서, 안림동은 안심과 어림에서 이름을 따왔다. 주요 시설로는 충주 활옥동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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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현안림동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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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한자 표기 | 校峴安林洞 |
영문 표기 | GyohyeonAllim-dong |
법정동 | 교현동, 안림동, 종민동, 목벌동 |
면적 | 28.58 |
행정 정보 | |
광역시도 | 충청북도 |
시군구 | 충주시 |
통 | 59 |
반 | 299 |
동주민센터 | 충주시 예성대로 208 |
홈페이지 | 교현안림동주민센터 |
인구 통계 | |
세대 | 8,635 |
세대 조사 기준 | 2011.7 |
인구 | 23,281 |
인구 조사 기준 | 2022년 2월 |
2. 역사
교현안림동은 과거 교현동과 안림동 지역이 통합되어 형성된 행정동이다. 이 지역의 역사는 조선 시대 충주군 북변면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여러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
2. 1. 명칭 유래
교현동과 안림동의 이름을 합쳐 만들어졌다. 각 동의 명칭 유래는 다음과 같다.- 교현동(校峴洞): 본래 충주군 북변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야현리(冶峴里), 주봉리(周峰里), 어림리(御林里), 교동(校洞), 대가미리(大佳味里), 봉계리(鳳鷄里)의 각 일부를 합치면서, 중심이 된 마을인 교동과 야현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교현동이라 부르게 되었다.[1]
- 교동(校洞): 충주향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충주향교는 정확한 창건 연대와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본래 여수월마을 동북쪽 400m 지점에 있었다고 전해지며 최근까지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579년(선조 12년) 3월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다시 지었다.[1]
- 야현(冶峴): 향교마을 서북쪽에 있던 마을 이름으로, 옛날 이 근처에 대장간이 많아 '풀무고개'라 불리던 것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1]
- 안림동(安林洞): 역시 충주군 북변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안심리(安心里), 범의동(泛蟻洞), 어림리(御林里), 교동(校洞)의 일부를 합치면서, 중심 마을인 안심리와 어림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안림동이라 부르게 되었다.[1]
- 안심(安心): 안림동의 중심 마을로, 예로부터 피란하기에 안전한 곳이라 하여 '안심'이라 불렸다. 이 이름은 현재도 안림동 내 마을 이름으로 남아있다 (구 충주소년원 부근).[1]
- 어림(御林): 백제 문주왕이 임시 궁궐인 가행궁(假行宮)을 짓고 머물렀던 솔밭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1]
2. 2. 연혁
- 북변면의 야현리, 주봉리, 어림리, 교동, 대가미리, 봉계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교동과 야현리의 이름을 따 교현리라 칭하고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
* 북변면의 안심리, 범의동, 어림리, 교동 일부를 병합하여 안림리라 칭하고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
* 북변면의 요각골, 원터, 진의곡을 병합하여 살미면 목벌리로 편입
* 북변면의 민종리, 범동, 종당을 병합하여 종민리라 칭하고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1917년 읍내면을 충주면으로 개칭 교현리, 안림리, 종민리 해당 1931년 4월 1일 충주면을 충주읍으로 승격 교현리, 안림리, 종민리 해당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함에 따라 다음과 같이 개칭
* 교현리 → 충주시 교현동
* 안림리 → 충주시 안림동
* 종민리 → 충주시 종민동교현동, 안림동, 종민동 해당 1987년 1월 1일 살미면 목벌리가 충주시로 편입되어 목벌동이 됨 목벌동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