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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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건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 때 발탁되어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특히 연안군수와 제주목사 재임 시 백성을 위한 선정을 펼쳤다. 문종 때 개성부유수를 지냈으며, 단종 즉위 후 대사헌으로 활동했다. 계유정난 이후 수양대군에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절개를 지켰으며, 사후 전라남도 장성의 추산서원에 제향되었다. 정종의 후궁인 숙의 기씨는 그의 누이이다.
기건은 기면(奇勉)의 아들이며, 정종의 후궁 숙의 기씨는 그의 누이이다. 세종 때 벼슬길에 올랐다. 계유정난 이후 관직을 버리고 은둔 생활을 하였으며, 사후 전라남도 장성 추산서원(秋山書院)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기건은 사후 전라남도 장성의 추산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기건의 애민정신과 절개는 조선시대 사림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2. 생애
2. 1. 관직 생활
기면(奇勉)의 아들로 세종 때에 포의(布衣)로 발탁되어 지평에 제수되었다. 연안군수(延安郡守) 시절, 진상품인 붕어를 군민들이 어렵게 잡는 것을 배려하여 3년간 이를 먹지 않았고, 제주목사 시절에는 주민을 생각해 전복을 먹지 않았다. 또한 당시 제주에서는 부모가 죽으면 구덩이나 언덕에 버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도록 교화하였다.
집의, 형조참의, 이조참의를 거쳐 1448년(세종 30), 전라도도관찰사 겸 전주부윤에 부임하였고 이듬해에 호조참판이 되었다. 문종 재위 시절에는 개성부유수로 있었으며, 단종이 즉위하자 대사헌이 되어 강맹경, 황보인, 김종서 등을 탄핵하였다. 이후에는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서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고 판중추원사의 자리에 올랐다.
2. 2. 계유정난과 절개
문종 재위 시절에는 개성부유수로 있었으며, 단종이 즉위하자 대사헌이 되어 강맹경, 황보인, 김종서 등을 탄핵하였다. 이후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고 판중추원사의 자리에 올랐으나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으며 끝까지 절개를 지켜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3. 가족 관계
구분 내용 할아버지 기중평 (신돈의 일파로, 공민왕 때 처형) 아버지 기면 어머니 정부인 청풍 김씨 (청로장군 김중원의 딸) 누이 숙의 기씨 (조선 정종의 후궁) 부인 정부인 홍씨 (남양 홍씨, 홍보의 딸) 아들 기축 딸 (2명) 류흡, 김득의 처
4. 사후 평가 및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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