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 (1888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경은 1888년 평안도 순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대한인국민회 결성에 참여하여 지방회 회장을 역임하며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3·1 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자금 모집에 힘썼으며, 1934년 임시정부 재무부 주미제6행서 재무위원으로 임명되어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지속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97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순천시 (평안남도) 출신 - 박동선 (1935년)
박동선(1935년)은 일제강점기 출생하여 미국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로비스트로, 코리아게이트와 석유 대 식량 스캔들에 연루되었으며 2024년 사망했다. - 순천시 (평안남도) 출신 - 김영란 (1894년)
김영란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로,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개신교도 - 김형직
김형직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김일성의 아버지로, 조선국민회에 참여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북한에서는 항일 독립운동 지도자로 추앙받지만 반공주의적 성향을 가졌다는 증언도 있다. - 일제강점기의 개신교도 - 심우섭 (1890년)
심우섭은 청송 심씨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매일신보》 기자와 소설가로 활동하며 이광수 소설 등장인물의 모델이기도 했으나, 친일 활동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 수안 김씨 - 김상철 (1947년)
김상철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언론인, 교육자, 사회운동가로서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고 월간 고시계 발행인, 대학교 겸임교수, 한미우호협회 회장,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 총재 등으로 활동했다. - 수안 김씨 - 김동하 (1918년)
김동하는 일제강점기 만주군 장교이자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에 참여한 군인, 정치인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나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었고,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김경 (1888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김경 |
원래 이름 | 김경 |
원래 이름 (한자) | 金慶 |
영어 이름 | Travis Wallace Johnson Zackards Kevin Kim |
출생일 | 1888년 1월 28일 |
출생지 | 조선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읍 서변리 |
사망일 | 1940년 2월 29일 (52세) |
사망지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
거주지 | 대한제국 평안남도 순천 미국 워싱턴 시티 |
국적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직책 | 구미외교위원회 총본부 재무부 외교분야 제6행서 재무행정보좌관 |
대표 |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회 위원장) |
부대표 | 남궁 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회 참사관) |
배우자 | 애니카 존슨 킴 (Annika Johnson Kim) |
자녀 | 3남 2녀 |
주석 | 송병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총수반) 이동녕 (대한민국 임시정부 총수반)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 |
본관 | 수안(遂安) |
학력 | |
학력 | 한성고등보통학교 중퇴 |
경력 | |
경력 |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외교행정위원 |
정치 | |
정당 | 무소속 |
임기 | 1934년 8월 21일 ~ 1938년 8월 26일 |
장관 | 김규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직무대행 서리)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
서훈 | |
서훈 | 1997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 추서 |
웹사이트 | |
웹사이트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1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2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3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4 |
2. 생애
평안남도 순천의 몰락 향반(鄕班)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신학문을 배웠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활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2. 1. 미국 이주와 대한인국민회 활동
미국으로 건너간 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지방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4년 대한제국 평안남도 순천을 떠나 일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06년 미국 영구거주권을 취득하였다. 미국에서 식당을 경영하며 한인 사회의 활성화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중, 1910년 대한인국민회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1909년 국민회(國民會)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흡수 통합하여 탄생한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였다.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미주 지역 한인 사회의 결집을 도모하며 같은 해 중화민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1928년 12월에는 임시정부의 김구(金九)로부터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고, 시카고 지역 동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자금 모집에 앞장섰다. 이를 통해 공동회(共同會)에서 모금한 200USD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미주 지역의 독립운동은 지역 특성상 교민 사회의 자치와 단합을 도모하는 동시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34년 8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재무부 주미제6행서(駐美第6行署) 재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10월부터는 재미교포로부터 징수하는 인구세(人口稅)와 애국의연금(愛國義捐金)을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보내는 등 꾸준히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펼쳤다.
2. 2.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미국에서의 활동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미주 지역 한인 사회의 결집을 도모하며 중화민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시작하였다.1928년 12월에는 임시정부의 김구로부터 재정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편지를 받고, 시카고의 동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자금 모집에 앞장섰다. 공동회(共同會)를 통해 모금된 200USD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미주 지역의 독립운동은 교민 사회의 자치와 단합을 강화하는 한편, 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중화민국에서 활동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김경은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1934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재무부 주미제6행서(駐美第6行署) 재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10월부터는 재미교포로부터 징수된 인구세(人口稅)와 애국의연금(愛國義捐金)을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보내는 등 꾸준히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3. 사후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97년 8월 15일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을 추서하였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