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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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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달진은 무위자연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시의 정신주의적 세계를 확립한 시인이다.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에서 출생하여 1929년 문단에 등단했다. 승려가 되어 시집 《청시》를 발간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4년부터 고전과 불경 번역에 전념하다가 1989년 사망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김달진문학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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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
기본 정보
본관김해 김씨
백련(白蓮)
생애
출생1907년 11월 2일
사망1989년 1월 3일 (향년 81세)
학력
출신 학교일본 도요 대학교 철학과 졸업
보성전문학교 법과 졸업
경력
주요 경력《문장》 추천으로 등단
조선일보 학예부장
민족일보 편집국장 겸 주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주요 작품
시집《청시》(靑柿)
《해바라기》
《오월의 창》
《포옹》
《묵조》
《사랑의 변주》
저서《문학개론》
《시론》
《국문학사》
《한국시가사》
《김달진전집》
수상
수상 내역서울특별시 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보관문화훈장
기타 정보
관련 정보조윤제, 이희승, 정지용 등과 교류
시조 부흥에 기여

2. 생애

월하(月下) 김달진은 무위자연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시의 정신주의적 세계를 확고히 한 시인이다. 그는 민족의 현실에 절망하여 입산, 승려가 되었으나 작품 활동은 계속 이어나갔다. 1989년 6월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2]

1990년부터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김달진문학상’이 제정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2]

2. 1. 유년기와 문단 등단

월하(月下) 김달진은 일제강점기 창원시에서 태어났다. 1929년 양주동의 추천으로 ≪문예공론(文藝公論)≫ 7월호에 <잡영수곡(雜詠數曲)>이 실리면서 문단에 등단했다.[2]

2. 2. 승려 생활과 작품 활동

1934년 김달진은 민족의 현실에 절망하던 중 찢어진 벽지 사이에서 '불(佛)' 자를 발견하고 입산을 결심, 금강산 유점사에서 김운악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승려가 되었다.[2] 그러나 승려가 된 해에 동아일보에 <유점사 찾는 길에>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35년에는 시 전문지 ≪시원≫ 동인으로 참가하고, 동아일보에 <나의 뜰> 외 여러 작품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2] 같은 해 백용성 스님을 모시고 함양 백운산 화과원(華果院)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유점사 공비생(公費生)으로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하여 11월 창간호에 <황혼>을 발표했고, 1938년에는 동아일보에 <샘물>을 발표했다.[2]

2. 3. 첫 시집 발간과 기자 생활

월하(月下) 김달진은 1940년 9월 청색지사에서 첫 시집 靑柿|청시중국어를 발간했다. 이 시집에는 관념이나 이념을 내세우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서정 세계를 담았다.[2]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이광수의 권유로 잠시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했다.[2]

2. 4. 번역 작업과 말년

1954년 해군사관학교에 출강하면서 ≪손오병서(孫吳兵書)≫를 출간했고, 이때부터 30여 년간 고전과 불경 번역에 전념했다.[2] 1989년 6월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2] 같은 해 ≪한국한시≫ 1∼3권과 ≪한산시≫가 나란히 출간되었다.[2]

3. 김달진문학상

월하(月下) 김달진은 무위자연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시의 정신주의적 세계를 확고히 한 시인이다. 1990년부터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김달진문학상’이 제정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1]

4. 평가

월하(月下) 김달진은 무위자연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시의 정신주의적 세계를 확고히 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29년 ≪문예공론(文藝公論)≫에 양주동의 추천으로 등단한 이후, 사상이나 관념보다는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추구했다.

1934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승려가 되었지만, ≪동아일보≫, ≪시원(詩苑)≫, ≪시인부락(詩人部落)≫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갔다. 1940년에는 첫 시집 ≪청시(靑柿)≫를 발간하여 자연 그대로의 서정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의 권유로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잠시 하기도 했으며, 1954년부터는 해군사관학교에 출강하며 ≪손오병서(孫吳兵書)≫를 출간했다. 이후 30여 년간 고전과 불경 번역 사업에 전념하다 1989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1990년부터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김달진문학상'이 제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김달진(金達鎭) http://encykorea.aks[...] 2022-09-14
[2] 웹사이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 2022-09-14
[3] 백과사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현대 문학/현대 전기 문학/근대 문예사조와 본격 문학기/김달진 https://ko.wikisou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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