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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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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대견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제주 출신이며 비석에 비문을 새기고 인감을 제작하는 등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뛰어난 솜씨는 중원 제일로 칭송받았으며, 양산박에 합류하여 인감 및 증거문 제작을 담당했다. 이후 조정으로 들어가 휘종 황제의 눈에 들어 조정 대신들의 인수를 제작하는 관직에 천거되어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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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견
진대견
인물 정보
이명옥비장 (玉臂匠)
출신장인
출생지계주 (冀州, 현재의 지닝 및 허쩌 일대, 산둥 성)
첫 등장39회
양산박 정보
직위수공업 책임자
순위66위
별호지교성 (地巧星)
소속양산박

2. 생애

제주(濟州) 출신의 조각가로, 비석에 글자를 새기거나 인감, 보석 등을 조각하는 뛰어난 솜씨로 '옥갑 공장'(玉臂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예가 소양과 함께 태산의 도사로 위장한 대종의 계략에 빠져 양산박 산적들에게 납치되었고, 가족들까지 양산박으로 오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합류하게 되었다. 이는 오용송강을 구출하기 위한 가짜 편지를 만드는 데 그의 조각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양산박에서는 자신의 기술을 살려 주로 인감이나 증거 문서 등의 제작 및 관리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08성이 모두 모인 후에도 같은 임무를 수행했으며, 요나라와 전호(田虎)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의 비문을 새기기도 했다. 왕경과의 전투 중 포로가 되었으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 기개를 보였다. 왕경 세력을 평정한 후 동경으로 개선했을 때, 그의 뛰어난 솜씨가 휘종 황제의 눈에 띄어 황보단과 함께 조정에 발탁되었다. 이후 궁정에서 인수(印綬)를 제작하는 관직을 맡아 그곳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2. 1. 양산박 합류 이전

제주(濟州) 출신이다. 본래 비석(碑石)에 비문(碑文)을 새기는 일이나 인감(印鑑) 제작, 보석(寶石) 조각(彫刻) 등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인정받았다. 특히 옥에 도장이나 석비, 문양을 새기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 '옥갑 공장'(玉臂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양산박(梁山泊)에 합류하기 이전부터 오용(吳用)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2. 2. 양산박 합류 과정

제주(濟州) 출신으로, 본래 비석에 비문을 새기거나 인감, 보석 등을 조각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인정받았다.

어느 날 서예가인 소양과 함께, 세상에 평판이 자자한 태산에 거주하는 한 도사로부터 비석과 비문 제작 의뢰를 받았다. 의뢰를 수행하러 태산으로 가던 중, 소양과 함께 양산박 산적들에게 납치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의뢰인이었던 태산의 도사는 바로 강주(江州)의 옥리(獄吏)인 대종이었다. 대종의 친한 친구인 오용은 강주에 유배된 후 처형될 위기에 처한 송강을 구출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송강을 수도인 동경(東京)으로 호송하라는 내용의 가짜 편지를 써서, 호송 부대가 양산박 근처를 지날 때 송강을 구하자는 것이었다. 이 가짜 편지를 만들기 위해 채경 태사의 글씨를 모방할 수 있는 소양과 그의 개인 도장을 복제할 수 있는 김대견의 도움이 필요했다.

대종은 사찰 보수를 핑계로 김대견과 소양을 양산박 근처로 유인했고, 그들은 산채로 끌려갔다. 양산박 산적들이 그들의 가족까지 양산박으로 데려오자, 김대견과 소양은 어쩔 수 없이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김대견과 소양은 오용의 지시에 따라 가짜 편지를 완벽하게 만들었지만, 오용이 편지에 찍을 인감을 잘못 고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주고받는 편지에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도장이었던 것이다. 이 편지는 강주 지사 채구를 속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하급 관리였던 황문병에게 간파당하고 말았다. 결국 편지가 가짜임이 드러나면서 편지를 전달한 대종마저 체포되어 송강과 함께 처형될 위기에 처했다. 실수를 깨달은 오용은 급히 양산박 두령들을 강주로 보내 처형 직전에 두 사람을 구출했다.

양산박에 합류한 이후 김대견은 자신의 기술을 살려 인감이나 증거 문서 등의 제작 및 관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2. 3. 양산박에서의 활동

제주(濟州) 출신으로 본래 비석(碑石) 조각, 인감(印鑑) 제작, 보석(寶石) 조각(彫刻)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뛰어난 재능으로 주변에 알려졌다. 어느 날 서예가(書藝家)인 소양(蕭樣)과 함께 태산(泰山)의 한 도사(道士)로부터 비석 제작 의뢰를 받고 가던 중, 양산박(梁山泊) 산적들에게 납치되었다.

이후 그 도사가 실제로는 강주(江州)의 옥리(獄吏)인 대종(戴宗)이었으며, 대종의 친구인 오용(吳用)이 유배 중이던 송강(宋江)을 구하기 위해 가짜 호송 명령서를 만들 목적으로 김대견과 소양을 납치했음을 알게 되었다. 양산박 측이 김대견과 소양의 가족까지 양산박으로 데려오자, 이들은 양산박에 합류하게 되었다.

오용이 만든 가짜 편지는 정교했으나, 인감 선택 과정에서의 실수로 인해 가짜임이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대종마저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놓이자, 양산박 산적들은 직접 나서 송강과 대종을 구출했다. 이후 김대견은 양산박에서 인감 및 증거 서류 등의 제작과 관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108성이 모두 모인 후에도 김대견은 계속해서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요나라(遼)와 전호(田虎)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의 비문을 새기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왕경(王慶)과의 전투 중 형남(荊南) 공격 시 소양, 배선(裴宣)과 함께 포로가 되었으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했다. 왕경 세력이 평정된 후 동경(東京)으로 개선했을 때, 휘종(徽宗) 황제의 눈에 띄어 인수(印綬) 제작을 담당하는 어용 장인으로 발탁되었다. 송강황보단(皇甫端)과 함께 김대견을 조정으로 보냈고, 김대견은 남은 생애를 궁정에서 보냈다.

2. 4. 조정으로의 귀환과 최후

왕경과의 전투 중 형남(징저우, 후베이성 일대) 공격 당시, 소양, 배선과 함께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 세 사람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항복을 권유하는 적에게 굴하지 않고 저항하며 버텼다. 왕경 일행을 평정한 뒤에는 동경으로 개선했다.

이후 휘종 황제의 눈에 들어 조정 대신들의 인수(印綬)를 제작하는 관직에 천거되었다. 양산박의 두령 송강방랍을 토벌하러 가기 전, 어쩔 수 없이 함께 천거된 황보단과 함께 김대견을 조정으로 보냈다. 그 뒤 김대견은 조정에서 어용 장인으로 일하며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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