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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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낙산은 서울에 있는 산으로, 풍수지리상 한양의 내사산 중 하나이며,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에는 도성 5대 명승지로 꼽혔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기도 했다. 현재는 낙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한양도성 순성길을 따라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낙타 등처럼 생겨 낙산 또는 타락산으로 불렸으며, 동대문역, 혜화역, 한성대입구역, 창신역 등 여러 지하철역이 인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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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 |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
높이 | 125m |
한국어 이름 | |
한글 | 낙산 |
한자 | 駱山 |
로마자 표기 | Naksan |
2. 역사
낙산은 조선시대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여겨져 한양이 수도로 정해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남산, 인왕산, 북악산과 함께 내사산(內四山)을 이루며,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고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과 마주본다. 한양도성이 능선에 축성되었다.
조선 시대 도성 5대 명승지에 이름을 올렸으며, 문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 만큼 풍광이 아름다웠다. 특히 이화동에 있던 쌍계동은 기묘한 암석과 울창한 수림, 두 줄기의 맑은 시냇물로 유명했다.[1]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을 막기 위해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가, 1926년에는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동숭동에 설립되었다.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법대, 의대로 바뀌었다.
해방 후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 시절,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권력에 맞서 싸웠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산으로 이전하면서 서울대 터는 마로니에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낙산은 마로니에 공원 맞은편의 나지막한 언덕으로 보이게 되었다.
2. 1. 조선 시대
풍수지리상 명당이라 하여 한양에 수도가 입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낙산은 남산, 인왕산, 북악산과 함께 내사산(內四山)을 이루며,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고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과 마주본다. 한양도성이 능선에 축성되었다.조선 시대 도성 5대 명승지에 이름을 올린 낙산은 조선시대 때 문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 만큼 풍광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왔다. 조선시대에는 삼청(三淸)·인왕(仁王)·쌍계(雙鷄)·백운(白雲)·청학(淸鶴)을 도성 안의 5대 명승지로 손꼽았는데, 이 중 현재의 이화동에 있던 쌍계동이 기묘한 암석과 울창한 수림에 두줄기의 맑은 시냇물까지 있다 하여 세 번째로 꼽혔다.[1]
일제는 1920년부터 펼쳐진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을 봉쇄하기 위해 동숭동에 1924년에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설립했고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설립했다. 해방된 뒤에 이곳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법대, 의대로 바뀌었다. 해방 뒤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가 계속되자 서울대 학생들은 권력에 맞서 싸웠고,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 종로의 교통이 막혀 시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5년에 흩어져 있던 서울대를 통합해서 관악산 자락으로 옮겼고, 그 뒤 서울대 터는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공원화되었다. 낙산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반대편의 나지막한 언덕으로 보이는 곳이다.
2. 2. 일제강점기
일제는 1920년부터 펼쳐진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을 봉쇄하기 위해 동숭동에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설립했고, 1926년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설립했다. 해방 후 이곳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법대, 의대로 바뀌었다. 해방 후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가 계속되자 서울대 학생들은 권력에 맞서 싸웠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면 종로의 교통이 마비되어 시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5년 흩어져 있던 서울대를 통합하여 관악산 자락으로 옮겼고, 그 뒤 서울대 터는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공원화되었다. 낙산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반대편의 나지막한 언덕으로 보이는 곳이다.2. 3. 해방 이후
해방 후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가 계속되자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권력에 맞서 싸웠고,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 종로의 교통이 막혀 시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5년 흩어져 있던 서울대학교를 통합해서 관악산 자락으로 옮겼고, 그 뒤 서울대 터는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공원화되었다. 낙산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반대편의 나지막한 언덕으로 보이는 곳이다.[1]3. 지명 유래
산의 모습이 낙타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하여 낙산 또는 낙타산(駱駝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려 시대에 우유를 담당하는 우유소(牛乳所)라는 기관이 조선 시대에 타락색(駝酪色)으로 바뀌었는데, 낙산 일대에 궁중에 우유를 보급하던 왕실 직영 목장이 있어 타락산(駝酪山)으로도 불렸다.
낙산의 서쪽 동네는 동숭동이다. 조선 시대에는 낙산 자락에서 잣나무를 많이 길렀다 하여 본래 ‘백동’(栢洞)이라고 불렸는데, 1914년에 일제가 경성부의 동명을 만들면서 ‘숭교방 동쪽에 있는 동네’라고 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4. 낙산공원
2002년 6월 12일에 동숭동 산2-10 일대 152443m2 면적이 낙산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원래 산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으나 서울특별시의 녹지 확충 계획에 의해 공원으로 바뀌었다.
4. 1. 시설
낙산공원은 2002년 6월 12일에 서울 종로구 동숭동 산2-10 일대 152443m2 면적에 조성되었다. 원래 산 중턱까지 아파트가 있었지만, 서울시의 녹지 확충 계획으로 공원으로 바뀌었다.[1]낙산공원에는 다음과 같은 시설이 있다.
5. 사진
6.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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