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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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성은 일본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에 위치했던 일본의 성이다. 1334년 난부 모로유키가 축성했으며, 남조 세력의 거점 역할을 했다. 이후 난부씨 일족의 거주지였으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속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폐성되었지만, 1941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94년에는 혼마루가 복원되었다. 현재는 하치노헤 시 박물관과 인접해 있으며,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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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성 | |
---|---|
기본 정보 | |
위치 | 하치노헤, 아오모리현, 일본 |
좌표 | 40°30′22.83″N 141°27′34.6″E |
종류 | 히라야마 방식의 일본 성 |
축조 | 1334년 |
축조자 | 난부 씨 |
사용 기간 | 남북조 시대-에도 시대 |
철거 | 1627년 |
상태 | 재건됨 |
공개 여부 | 예 |
문화재 지정 | 일본 국가 사적지 |
구글 지도 검색어 | 네 성 |
역사 | |
건축 연도 | 건무 원년 (1334년) |
건설자 | 난부 모로유키 |
통치자 | 네 성 남부 씨 |
폐성 연도 | 간에이 4년 (1627년) |
유적 | 토루, 해자, 우물, 공양탑, 은행나무 |
구조 | |
성곽 구조 | 연곽식 평산성 |
천수각 구조 | 없음 |
재건된 건물 | |
재건된 건물 목록 | 주전, 가미우마야, 나카우마야, 공방, 대장장이 공방, 판창, 창고, 동문, 북문, 서문, 번소, 나카다테 우마야 |
2. 역사
1334년 난보쿠초 시대에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의 가신이었던 난부 모로유키가 무쓰 국의 고쿠시로서 이 지역의 황실 행정 중심지로 삼기 위해 네 성을 건설하고 남조에 충성을 맹세했다. 같은 난부 가문의 다른 지파는 북조에 충성을 맹세하며 인근의 산노헤, 모리오카 지역을 통치했으나, 1393년 두 가문은 화해했다.
1590년 오다와라 정벌 때 산노헤성주 난부 노부나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속하여 난부 7군을 안도받았다. 이 무렵 네 성을 중심으로 한 하치노헤 가문도 산노헤 난부 가문의 지배에 편입되었다.
난부 노부나오의 아들 난부 도시나오가 구노헤 성에서 모리오카 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모리오카 번이 성립되었고, 네 성이 있는 하치노헤 지역도 모리오카 번령이 되었다. 1627년 하치노헤 가문 22대 하치노헤 나오히데는 난부 도시나오로부터 도노 성을 하사받고 도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네 성은 폐성되었다.
1941년 12월 13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3년부터 11년간 발굴 조사 및 정비 사업이 진행되었고, 1994년 혼마루에 건물 등이 복원되었으며, 주위는 《사적 네성의 광장》으로 정비되었다. 2006년 4월 6일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되었다.
2. 1. 난보쿠초 시대 (1334년 ~ 1393년)
1333년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고 고다이고 천황의 친정이 시작되자, 고다이고 천황은 막부 세력 토벌과 간토 무사 복속을 위해 아들 노리요시 친왕을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와 함께 무쓰 국으로 파견하였다. 이때 난부 모로유키도 동행하였다.1334년 난부 모로유키는 누카노부 군 하치모리에 성을 쌓고, 남조의 거점이 될 성이라는 의미로 네성(根城)이라 명명하였다. 난부 모로유키는 다이코지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쓰가루 지방까지 세력을 넓혔다.[6]
1338년 난부 모로유키는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와 함께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토벌하기 위해 출정하였으나, 이즈미 국 이시즈 강에서 북조 군의 공격을 받고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와 함께 전사하였다.
난부 모로유키 사후, 동생 난부 마사나가가 뒤를 이었다. 마사나가는 무로마치 막부의 항복 권고를 거부하고 남조에 충성하였다. 그러나 정세는 남조에 불리해졌고, 난부 가문의 세력도 약화되었다.
1393년 난부 마사미쓰는 본거지인 가이 국에서 네 성으로 이주하였고, 이들은 하치노헤 씨로 불렸다. 이후 난부 가문 내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산노헤 난부 가문이 점차 세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2. 2. 무로마치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393년 ~ 1603년)
1393년 난부 마사미쓰는 본거지인 가이 국을 떠나 네 성으로 이주했으며, 이들 씨족은 하치노헤 씨로 불렸다.[2] 그 후 난부 가문 내에서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차츰 산노헤 난부 가문이 전권을 잡게 된다.1590년 센고쿠 시대 말, 오다와라 정벌 때 산노헤성주 난부 노부나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속하였고, 소령인 난부 7군을 안도받았다.[2] 이 무렵 네 성을 중심으로 세력 기반을 가진 하치노헤 가문도 산노헤 난부 가문의 지배에 편입되었다.
1592년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성 자체는 파괴되었지만 관청은 남겨졌으며, 이후에도 하치노헤 씨의 본거지로 계속 사용되었다.
2. 3. 에도 시대 (1603년 ~ 1868년)
- 난부 노부나오의 아들 난부 도시나오가 구노헤 성에서 모리오카 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모리오카 번이 성립되었고, 이때 네 성이 있는 하치노헤 지역도 모리오카 번령으로 귀속되었다.
- 1627년 하치노헤 가문 22대 하치노헤 나오히데는 난부 도시나오로부터 도노 성을 하사받고 도노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네 성은 폐성되었다.[2]
- 종가인 난부 도시나오는 모리오카 성을 쌓아 모리오카 번을 개창했고, 동시에 하치노헤도 모리오카 번 영지에 귀속되었다.
- 1627년 (간에이 4년) 하치노헤 씨 22대 나오요시는 도시나오에 의해 도노성 (이와테현 도노시)으로 이봉되어 네 성은 폐성되었다.
2. 4. 메이지 시대 이후 (1868년 ~ 현재)
- 1941년 (쇼와 16년) 12월 13일 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2]
- 1983년 (쇼와 58년)부터 11년간에 걸쳐 발굴 조사 및 정비 사업이 진행되었다.
- 1994년 (헤세 6년) 혼마루 주전 등이 복원되었고, 주변은 "사적 네성 광장"으로 정비되었다.
- 2006년 (헤세 18년) 4월 6일 일본 100명성 (5번)에 선정되었다.[3]
3. 구조
네성은 하치노헤시 시가지 서쪽에 있는 마베치 강의 하안단구 위에 조성되었다. 성은 혼마루, 나카다테, 도젠지, 오카마에다테, 사와사토다테 등 5개의 구루와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성터에는 초석과 해자, 성루의 흔적이 보이며, 혼마루에는 여러 건물과 문 등이 복원되어 있다.[4]
네성은 대략 L자형의 하천단구 위에 5개의 구루와(보호 구역)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쪽 강둑에 위치하고 길이 약 500m, 폭 300m이다. 당시 전형적인 양식으로, 요새는 주로 나무 울타리와 흙 성루로 구성되었으며, 20m 폭의 해자가 있었다. 이 지역은 여러 구역, 즉 배일리(baileys)로 나뉘었으며, 고도가 다양했다. 혼마루에는 돈전이 없었으며, 넓은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고, 아마도 쇼인 양식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기초 기둥의 흔적에 근거하며, 지배 난부 씨족의 거주지였다. 다른 구역에는 중요한 가신들의 거주지와 병영, 작업장 및 창고가 있었다. 일부 건물은 수혈주거로 지어졌으며, 이는 이 고대 건축 양식이 무로마치 시대까지 생존했음을 나타낸다. 구역 중 하나에는 난부 씨족의 보리사 역할을 한 불교 사찰인 도젠지(東禅寺)가 있었다.
1994년에 성은 대부분 재건축되었으며, 내부 성채에 어느 정도 중점을 두었다.[4] 현재 부지에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하나는 영주와 손님을 위한 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인과 일꾼을 위한 더 간단한 문이다. 성터에는 재건축된 부분이 많다. 엄밀히 말해 네성은 일본 성 개발의 주 시대 이전에 건설되었으므로, 문, 성벽 및 ''야구라'' 망루가 있지만, 주요 천수각은 없다. 석조 건축물은 거의 없으며, 벽은 바깥쪽에는 단순한 나무 기둥 울타리이고, 중앙 구획에는 단순한 널빤지 나무 벽이다.[2] 네성은 하치노헤 시가지의 서쪽 끝에 위치하며 마베치강 남안의 하안 단구 위에 있다.[5]
본환, 중관, 동선사, 오카마에 관, 사와사토 관의 5개 관(구루와)이 늘어선 연곽식의 평산성이다. 현재는 본환, 중관, 동선사의 3개 구루와가 현존한다. 현재 관터의 초석, 구루와, 해자, 토루가 유구로서 인정된다. 본환에는 주전, 상마구, 중마구, 공방, 대장간, 판창, 납옥, 동문, 서문, 북문, 번소, 중관 마구가 복원되어 있다.
4. 현대적 의의
네성은 1994년에 대부분 재건축되었으며, 내부 성채에 어느 정도 중점을 두었다.[4] 현재 부지에는 영주와 손님을 위한 문과 하인과 일꾼을 위한 더 간단한 문, 두 개의 문이 있다. 성터에는 재건축된 부분이 많다. 엄밀히 말해 네성은 일본 성 개발의 주 시대 이전에 건설되었으므로, 문, 성벽 및 ''야구라'' 망루가 있지만, 주요 천수각은 없다. 석조 건축물은 거의 없으며, 벽은 바깥쪽에는 단순한 나무 기둥 울타리이고, 중앙 구획에는 단순한 널빤지 나무 벽이 있다.[2]
5. 교통
JR 동일본 하치노헤역에서 난부 버스 《사법센터 경유》행으로 환승, 《박물관 앞》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5분이면 도착한다. 또는 JR 도호쿠 본선・도호쿠 신칸센 하치노헤 역에서 난부 버스 "사법 센터 경유"로 약 15분, "박물관 앞"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분이면 혼마루 터에 도착한다.
6. 주변 시설
하치노헤 시 박물관
7. 관련 인물
- 난보쿠초 시대의 무장 기타바타케 아키이에는 고다이고 천황의 아들 노리요시 친왕과 함께 무쓰 국으로 갔으며, 이때 난부 모로유키도 동행했다.[1] 1338년 난부 모로유키는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와 함께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토벌하기 위해 출진했다가 전사했다.[1]
- 난부 모로유키 사후, 동생 난부 마사나가가 뒤를 이었다.[1]
- 1393년 난부 마사미쓰는 본거지인 가이 국을 떠나 네 성으로 이주했으며 그들 씨족은 하치노헤 씨로 불렸다.[1]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590년 오다와라 정벌때 산노헤성주 난부 노부나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속하였고, 이 무렵 네 성을 중심으로 세력기반을 가진 하치노헤 가문도 산노헤 난부 가문의 지배에 편입되었다.[1]
- 에도 시대 난부 노부나오의 아들 난부 도시나오가 모리오카 성으로 거처를 옮겼다.[1]
- 1627년 하치노헤 가문 22대 하치노헤 나오히데는 난부 도시나오로부터 도노 성을 하사받고 도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1]
- 고이카와 준지로는 「네성 잡기」(1939년) 등을 집필하여 네성 사적 지정에 기여했다.[1]
- 시바 료타로는 『가도를 간다』 시리즈의 「무츠의 길」에서 네성을 방문했다.[1]
참조
[1]
웹사이트
根城跡
https://bunka.nii.ac[...]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16-12-25
[2]
웹사이트
Ne Castle Profile
http://www.jcastle.i[...]
2016-05-20
[3]
웹사이트
Japan Castle Foundation
https://web.archive.[...]
[4]
웹사이트
Japan Castle
http://castle.jpn.or[...]
2016-05-20
[5]
웹사이트
(地図閲覧サービス) 国土地理院
http://watchizu.gsi.[...]
[6]
서적
일본성곽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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