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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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콜라이 신은 고려인 가문 출신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7년 가족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이후 미술 활동을 시작하여 1957년 모스크바 국제청년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1982년에는 44미터 길이의 대작 《레퀴엠》을 완성하여 강제 이주 고려인들의 고통을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1990년대부터 서구에도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받고 국립현대미술관에 《레퀴엠》을 기증했다. 또한 김소영 감독은 그의 삶과 예술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하늘색 고향》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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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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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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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Nikolay Sergeyevich Shin |
한글 표기 | 신순남 |
한자 표기 | 申順南 |
러시아어 표기 | Николай Сергеевич Шин |
인물 정보 | |
출생 | 1928년 |
사망 | 2006년 |
국적 | 소련, 우즈베키스탄 |
직업 | 화가 |
분야 | 미술, 회화 |
사조 | 사회주의 리얼리즘 |
2. 젊은 시절
니콜라이 신은 고려인 가문에서 태어나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니콜라이 신이 4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2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의 어머니는 1년 뒤에 재혼했다. 1937년, 니콜라이 신과 가족들은 다른 고려인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3] 강제 이주 후에 가족들은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거주했다. 1940년부터 타슈켄트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1949년 타슈켄트의 반코프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화가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1957년 모스크바 국제청년축제에서 대상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청년예술가 축제에서 2등상을 수상하며 처음으로 명성을 얻었다.[3] 초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을 주로 그렸으나, 점차 고려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자신의 작품 외에도 모교인 반코프 예술학교에서 교직을 맡았다.[1][3]
신의 어린 시절은 고난으로 가득했다. 신이 겨우 4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이듬해 재혼하여 신과 그의 누이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1937년, 그와 그의 가족은 다른 모든 러시아 극동 지역의 고려인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되었다.[3] 강제 추방 후, 그의 가족은 몇 년 동안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머물다가 1940년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에 정착했다.[3] 그의 누이는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16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신은 어머니와 할머니를 부양하는 유일한 가장이 되었다. 신은 맨손으로 돌밭을 갈며 생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결국 할머니를 돌볼 수 없게 되자 그는 할머니를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보냈고, 할머니 또한 그곳에서 돌아가셨다.[4][5]
3. 미술 활동
3. 1. 《레퀴엠》과 고려인 정체성
신 니콜라이는 1960년부터 1982년까지 22년에 걸쳐 대작 《레퀴엠》을 완성했다.[3] 세로 3미터, 가로 44미터의 캔버스에 원색으로 그려진 《레퀴엠》은 눈, 코, 입이 없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신 니콜라이는 이것이 강제이주로 인해 고려인들이 느낀 노예 상태와 무명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4]
3. 2. 국제적 명성
신 니콜라이는 1957년 모스크바 국제청년축제에서 대상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청년예술가 축제에서 2등상을 수상하며 처음으로 명성을 얻었다.[3] 1990년 모스크바 트레차콥스카야 미술관 개인전과 1991년 타슈켄트 국립미술관 개인전을 통해 서구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3]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레퀴엠》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2][6]
낮은 봉급에도 불구하고 모교인 벤코프 예술학교에서 교직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의 제자 중에는 2004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전시회를 가진 또 다른 고려계 우즈베키스탄 화가인 엘레나 리가 있다.[1][3]
4. 작품
1949년 타슈켄트의 벤코프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회화가로서 경력을 시작하여, 1957년 모스크바 국제청년축제에서 대상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청년예술가 축제에서 2등상을 수상하며 처음으로 명성을 얻었다.[3] 1960년 타슈켄트의 아트롭스키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까지 레퀴엠 작업을 했다. 레퀴엠은 강제이주로 인해 고려인들이 느낀 노예 상태와 무명성을 나타내는 작품이다.[4]
1990년 모스크바와 1991년 타슈켄트에서 개인전을 통해 서구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중앙아시아-미국 기업 기금(Central Asian-American Enterprise Fund)의 지원을 받아 더 많은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3] 1997년 한국 정부는 그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고, 국립현대미술관에 레퀴엠을 기증했다.[2][6]
4. 1. 주요 작품
니콜라이 신은 1980년부터 1991년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어머니와 딸〉(1980), 〈레퀴엠〉(1982), 〈장미색의 눈〉(1985), 〈수콕 메달들〉(1987), 〈하늘색의 고향〉(1988), 〈되살린 부채〉(1989), 〈또 다른 세계로 - 천국에서의 신혼〉(1990), 〈나와 아내〉(1991) 등이 있다. 특히 〈레퀴엠〉은 세로 3m, 가로 44m의 대작으로, 강제 이주로 인해 고려인들이 느낀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4]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민족유민사》, 《부채》, 《전설》 등이 발표되었다.[3]
4. 2. 전시회
1997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인 《한민족유민사》를 비롯한 《부채》, 《전설》 등이 발표되었다.[4]
5. 다큐멘터리: 하늘색 고향
2001년, 김소영 감독은 니콜라이 신의 삶과 예술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하늘색 고향》을 제작했다. 김소영 감독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레퀴엠'과 우즈베키스탄 거주 한국인에 대한 국내 언론 기사를 접하고 신 니콜라이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자 했다.[7]
《하늘색 고향》은 서울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한국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8] 또한 아시안 아메리칸 국제 영화제(Asian Americ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Yamagata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Amsterdam), 국제 시청각 프로그램 페스티벌(International Festival of Audio-visual Programs) 등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5][6][9] 대만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Taiwan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에서 아시아 영화 홍보 네트워크상을 수상했다.[10]
5. 1. 제작진
- 감독: 김소영
- 제작: 시네마야(Cine-Maya)
- 각본: 김소영
- 촬영: 니콜라이 게라시모프(Nikolay Gerasimov)
- 편집: 김소영
- 녹음: 소원종(Won-jong Soh)
- 음악: 덕현, 김준성, 이영조
- 해외판권: 시네마야(Cine-Maya)
- 상영용 필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6]
참조
[1]
뉴스
Культурная интеграция (Cultural Integration)
http://www.izvestia.[...]
2004-11-12
[2]
뉴스
(명복을 빕니다)‘아시아의 피카소’ 신순남 화백 별세
http://www.donga.com[...]
The Dong-a Ilbo
2006-08-25
[3]
웹사이트
The Painting of Nikolai Sergeevich Shin
http://www.ctman.net[...]
Kookmin University
[4]
웹사이트
Sky-Blue Hometown
http://www.sky-blue.[...]
Cinemaya
[5]
뉴스
"Hometown" erzählt eine vergessene Geschichte
http://www.koreaheut[...]
KOREAheute
2003-05
[6]
웹사이트
Sky-Blue Hometown
http://www.idfa.nl/i[...]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Amsterdam
[7]
뉴스
Movie looks at Russian migrants
http://www.e-ju.net/[...]
2003-03-18
[8]
웹사이트
2001 Official Catalogue: Sky-Blue Hometown
http://www.yidff.jp/[...]
Yamagata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2001-09-13
[9]
웹사이트
Sky-Blue Hometown
http://www.fipa.tm.f[...]
International Festival of Audiovisual Programs
[10]
뉴스
German filmmaker takes top prize at TIDF
http://www.taipeitim[...]
2002-12-16
[11]
뉴스
От вернисажа до Донгмака
http://jahon.mfa.uz/[...]
Jahon Information Agency
2006-10-11
[12]
뉴스
『수난과 영광의 한민족 유민사 -신순남 특별전』
http://www.chosu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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