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요 백화점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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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이요 백화점 화재는 1973년 11월 29일 일본 구마모토시에 있는 다이요 백화점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사고이다.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서 시작된 화재로 인해 104명이 사망하고 12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백화점 건물 3층 이상이 전소되었다. 화재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부실한 소방 시설과 백화점 측의 미흡한 초기 대응이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화재는 건축 기준법 및 소방법 개정의 계기가 되었으며, 관련자들의 재판 과정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다이요 백화점은 화재 이후 재건되었으나 경영난을 겪었고, 현재는 다른 상업 시설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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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화재 - 센니치 백화점 화재
센니치 백화점 화재는 1972년 일본 오사카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118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했으며, 노후 건물, 방화 관리 미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피해가 커졌고, 일본 소방법령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
다이요 백화점 화재 | |
---|---|
기본 정보 | |
![]() | |
발생 위치 | 일본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시모도리 1초메 3-10 |
발생 날짜 | 1973년 11월 29일 |
발생 시간 | 13시 10분 ~ 13시 15분 사이 |
시간대 | 한국 표준시 |
면적 | 12,581 제곱미터 |
원인 | 불명 |
토지 이용 | 상업 지역, 방화 지역 |
용도 | 백화점 |
건물 | 다이요 백화점 본점 본관 (부지 면적 3,131.065 제곱미터, 건축 면적 2,402 제곱미터, 연면적 20,473 제곱미터, 철근 콘크리트조, 지상 7층, 일부 9층, 지하 1층, 옥상 탑옥 4층 포함) |
인명 피해 | |
사망자 | 104명 |
부상자 | 67명 |
기타 | |
가해자 | 주식회사 다이요 |
동기 | 정기 휴일에 임시 영업, 점포 영업 중에 증개축 공사를 병행 실시 |
2. 화재 발생 및 피해
화재는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서 원인 불명으로 시작되었다.[2] 자동 화재 감지 시스템은 공사로 인해 작동하지 않았고, 화재는 생중계되었다.[2] 유독가스 발생 보도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옥상에서 구조되었으며, 일부는 인근 아케이드(오락실) 천장으로 뛰어내려 부상을 입었다.[2]
최종적으로 104명이 사망하고 126명이 부상당했다. 사망 원인은 대부분 이산화탄소 중독(70명)과 질식(30명)이었다.[2] 시신은 3층에서 2구, 4층에서 11구, 5층에서 1구, 6층에서 26구, 7층에서 30구, 8층에서 1구가 발견되었다.[2]
구분 | 사망자 수 | 부상자 수 |
---|---|---|
백화점 직원 | 51명 (남성 10명, 여성 41명) | 79명 |
손님 | 51명 (남성 20명, 여성 31명) | 22명 |
기타 | 1명 (여성) | 25명 |
총계 | 104명 | 126명 |
이 화재는 일본에서 가장 치명적인 백화점 화재 중 하나였다.[2]
2. 1. 화재 발생 상황
1973년 11월 29일 오후 1시 15분경, 다이요 백화점 2층과 3층 사이 계단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4][5] 화재 원인은 불명[4]이나, 담배 불씨, 성냥 불, 방화 등의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5]당시 백화점은 인접 건물 증축 및 개조 공사 중이었고, 연말 성수기를 맞아 영업 중이었다. 화재 발생 장소는 건물 남서쪽 구석 종업원 전용 계단 2층과 3층 사이 계단참 부분으로, 평소 물건 보관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쌓여 있던 골판지가 불이 붙은 지점으로 추정된다.[5]
화재를 처음 발견한 것은 외벽 도장 공사 관계자 2명으로, 3층 계단 창문에서 흰 연기가 나오다가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주변에 알렸다.[4] 그러나 최초로 소방서에 신고한 사람은 백화점 맞은편 이발소 주인이었다.[4] 백화점 직원들은 화재로 인한 혼란 속에서 서로 "누군가가 신고하겠지"라고 잘못 판단하는 방관자 효과를 보였다.
백화점 내에서는 3층 침구 매장 점원이 흰 연기를 발견하고[4] 소화 작업을 시도했으나,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물동이 릴레이도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4] 3층에서는 방화 셔터가 내려졌지만, 전화 교환실에서는 화재 발생 통보를 망설이다 결국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대피했다.[13]
결국 백화점 전체에 화재 발생 통보는 없었고, 4층 이상의 각 층에서는 연기 침입 등으로 화재 발생을 인지하는 상황이었다.[13] 종업원 60명, 손님 70명 정도가 옥상으로 대피하여 사다리차 등으로 구조되었다.
2. 2. 피해 상황
1973년 11월 29일 화재 당시, 총 104명이 사망하고 126명이 부상당했다.[11] 사망자 대부분은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 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화재 직후에는 사망자가 103명, 부상자가 124명 또는 121명으로 기록되기도 했다.[6][4] 그러나 이후 다이요 백화점 화재 사건 항소심 판결에서 1980년 12월 16일에 화재로 부상당했던 남성이 일산화탄소 중독에 따른 뇌 병변으로 사망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망자는 104명으로 정정되었다.[11]
구마모토현 경찰본부의 1973년 12월 13일 오후 5시 발표에 따르면,[10] 사망자는 백화점 직원 51명(남성 10명, 여성 41명), 손님 51명(남성 20명, 여성 31명), 기타 1명(여성)이었고, 부상자는 백화점 직원 79명, 손님 22명, 기타 25명이었다.
구분 | 사망자 수 | 부상자 수 |
---|---|---|
백화점 직원 | 51명 (남성 10명, 여성 41명) | 79명 |
손님 | 51명 (남성 20명, 여성 31명) | 22명 |
기타 | 1명 (여성 1명) | 25명 |
총계 | 103명 (남성 30명, 여성 73명) | 126명 (입원 24명, 귀가 102명) |
화재 원인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담배꽁초나 방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백화점 측의 초기 대응 미흡과 소방 시설 부재는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3]
최종적으로 다이요 백화점 화재 사건 상고심 판결에서는 사망자 104명, 부상자 126명으로 기록되었다.[15]
국립 구마모토 병원은 가장 가까운 대형 병원이었기에 중상 환자를 받았지만, 이송된 6명은 모두 기도 화상으로 사망이 확인되었다. 경상자는 개업의에게 이송되었다.
3. 화재 원인 및 대응 문제점
화재 직후, 한 대학교수는 불에 탄 백화점을 살펴보고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3]
구마모토시 의사협회는 이러한 재해에 대비하여 모든 의사 협회가 의료 기기를 갖춘 구조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규모 재해 발생 시 지침을 제공하는 통합 시스템의 필요성과 의료 종사자의 자원봉사 참여를 강조했다.
3. 1. 초기 대응 문제점
백화점 측의 초기 대응은 미흡했다. 화재 발생 시, 판지 상자에서 연기가 난다는 보고를 받고 직원들이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소방 호스는 수압이 낮아 작동하지 않았고, 소화기는 사용법을 몰랐을 수도 있었다.[3] 20통의 물로는 불길을 잡기에 역부족이었다. 방화벽은 버튼을 두 번 누른 후에 내려갔지만, 일본식 방석이 끼어 불이 붙었다.[3]
전화 교환원은 화재 신고를 받고도 상사에게 연락하느라 119 신고가 지연되었고, 내부 방송 시스템은 상사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상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3] 결국, 전화 교환원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다른 직원들과 함께 대피하였다.[3]
최초 화재 신고는 백화점 직원이 아닌 길 건너편 이발소 주인이었다.[4] 백화점 직원들은 화재로 인한 혼란 속에서 서로 "누군가가 신고하겠지"라고 잘못 판단하는 방관자 효과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점포 전체에 화재 발생 통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4층 이상의 각 층에서는 연기가 침입하고 나서야 화재 발생을 인지하는 상황이었다.[13]
소화기 사용 미숙, 소방 호스 수압 부족 등의 문제와 더불어, 전화 교환원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초기 진화에 실패하였다.[3][4]
3. 2. 소방 시설 문제점
자동 화재 탐지 설비, 스프링클러 설비, 피난 기구, 유도등 등은 설치 공사 중이어서 작동하지 않았다.[4] 화재 건물의 계단 및 에스컬레이터 주변 방화 셔터는 정비 불량으로 23개 중 7개만 완전히 작동하여 닫혔으며, 방화 셔터 옆의 통과문은 방범을 이유로 잠겨 있었다.[4] 또한, 화재 건물의 창문 대부분이 합판으로 막혀 무창층과 같은 상태였으며, 안쪽에 상품 선반이 설치되어 있어 피난에 지장을 주었다.[4]
4. 사건의 영향 및 사회적 파장
1972년 센니치 백화점 화재와 1973년 다이요 백화점 화재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 사건들은 건축기준법과 소방법 개정을 통해 대형 건물 소방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17]
4. 1. 소방 및 건축 법규 강화
1972년 센니치 백화점 화재와 1973년 다이요 백화점 화재는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켜, 건축기준법과 소방법의 개정을 이끌었다. 이 개정안은 연기가 탈출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의무화했다.[17]화재 후 현장을 시찰한 일본 대학의 쓰카모토 고이치 교수는 "지극히 평범한 백화점이었기에, 이러한 사태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소방법이 개정되어, 특정 방화 대상물에 대해 자동 화재 탐지 설비뿐만 아니라 모든 소방 설비 등의 소급 설치 등이 규정되었다.[17] 스프링클러 설치가 확대되었고, 동시에 내장재로 석고 보드의 보급과 오래된 건물 재고의 급격한 감소 등으로 인해, 1970년부터 1975년을 기점으로 일본에서는 내화 구조 건축물의 평균 소실 면적이 착실하게 감소했다.[17]
천일 백화점 화재를 계기로, 기존 노후 건축물의 방화 대책으로 특정 방화 대상물에는 자동 화재 탐지 설비가 소급 적용되어 설치되게 되었다.[17] 그러나 천일 백화점 화재 발생 1년 반 만에 소급 적용 기간 중에 다이요 백화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소방청은 특정 방화 대상물에 대한 모든 소방 설비 등(옥내 소화전 및 스프링클러 설비 등)의 소급 설치를 단행하여 소방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1974년 6월 성립).[17]
건축기준법에 관해서도, 방화 구획이나 피난 시설 등의 건축 구조에 관한 방화 대책에 대해 1974년 3월부터 1976년 5월까지 지속적인 심의가 이루어졌지만, 소방용 설비 등에 비해 기술적, 경제적으로 곤란하다는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17] 결국, 1976년 5월에 공사 중인 건축물의 가사용 승인 제도가 창설되어 결착되었다.[17]
4. 2. 재판 과정
이 사건으로 1974년 업무상 과실 치사죄 혐의로 당시 경영진인 야마구치 키카쿠 사장, 상무이사 B, 이사 인사부장 C, 영업부 제3과장 D, 방화 관리자로 임명된 영선과원 E 등 5명이 체포·기소되었다. 이 중 야마구치 사장과 상무이사 B는 1심 도중 사망하여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 C, D, E 3명에 대해서는 1심 구마모토 지법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화재 사고에 대해 안전 관리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흐름이 강해졌지만, 일반 이사에게는 책임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검찰 측은 항소했다.2심 후쿠오카 고법은 3명에게 역전 유죄 판결을 내렸다[13]。C는 사장에게 소방 훈련을 하도록 진언할 의무가 있었고, D는 적절한 소화를 하지 않았으며, E는 소방법상의 방화 관리자로 임명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판결에 대해 변호 측은 상고했다.
최고 재판소 제1소법정(오호리 세이이치 재판장)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5명의 재판관 전원 일치로 무죄로 판단했다(최1소판헤이세이 3년11월 14일 형집 45권 8호 221면)[14][15][16]。건물의 화재 방지에 대해서는 대표 이사가 해야 하며, 이사에게는 어떤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사상에 대한 과실 책임은 물을 수 없다는 최고 재판소의 첫 판단으로 C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D에 대해서도 셔터를 내리는 등 했다면 연소를 억제할 수 있었지만 소화 노력을 했다고 하면서 사후적인 판단으로 유죄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소방법상의 방화 관리자에게는 방화 관리에 필요한 권한이 필요하다는 첫 판단을 보여주며, 영선과원인 채로 사장에게 방화 관리자로 임명된 E는 소방법상의 방화 관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고 재판소의 판단에서는 사장 등은 업무상 과실 치사죄가 성립하지만, 2명은 사망하여 형사 책임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날 판결까지 17년이라는 긴 재판 끝에 1심, 2심, 최고 재판소에서 무죄, 역전 유죄, 재역전 무죄로 판단이 흔들리는 이례적인 재판이었다.
5. 다이요 백화점의 역사와 현재
다이요 백화점은 1952년 창업하여 구마모토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지역 대표 백화점이었으나, 1973년 대형 화재로 큰 피해를 입고 경영난을 겪다 결국 도산했다.[22]
화재 이후 다이요 백화점은 재개장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화재 후유증과 경영 악화로 1976년 회사 갱생 절차를 신청하며 사실상 문을 닫았다.[22] 이후 백화점 건물은 "구마모토성옥", "성옥 다이에", 다이에 구마모토시모도리점 등으로 이름이 바뀌며 영업을 이어갔다.[23]
2014년 5월, 건물 노후화로 다이에 구마모토시모도리점이 폐점하고 건물은 해체되었다.[23][24][25] 이후 해당 부지에는 복합 상업 시설 COCOSA가 건설되어 2017년 4월 27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26]
5. 1. 화재 이전
다이요 백화점은 1952년에 창업했다. 화재 당시에는 구마모토 시내 최고의 백화점으로, 당시 시민들은 시내에 나가는 것을 '''"다이요에 간다"'''라고 말할 정도였다.[19] 옥상에는 일본 악기 제조가 제조·판매하던 뮤직 사이렌이 설치되어 아침에는 "아침이다 힘내자", 저녁에는 "석양 노을"을 연주하여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렸다.1956년 6월, 증축 공사로 8층에 "다이요 문화 홀"을 설치했다. 1,200석의 고정석과 회전 무대, 분장실, 욕실까지 갖춘 본격적인 시설이었다. 당시 시내에는 이 정도 규모의 극장이나 홀이 없었기 때문에 구마모토 문화 활동의 중심지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1966년, 매장 확장을 위해 폐지되었다.[20]
백화점 이름 표기는 "'''다'''이요"와 "'''타'''이요"가 혼용되었다. 위령비에는 "타이요"가 사용되었지만, 화재 당시 옥상 간판은 "다이요"였고, 마크는 원 안에 "타"였다.
5. 2. 화재 이후
1975년 11월 16일, 다이요 백화점은 방재 설비를 완비하고 로고와 점명 표기를 변경하여 재개장했다. 매장 면적은 축소되었고, 지상 8층, 지하 1층 건물이 되었다. 미쓰코시와의 제휴를 강화하여 패션 특화 점포를 지향했으며, 시모도리 측 아케이드 출입구 1층에는 위령비가 설치되었다. 또한, 1층에는 맥도날드 구마모토 다이요점이 큐슈 제1호점으로 문을 열었다.[21]화재로 약해진 콘크리트 기둥은 보강되었고, 기둥이 주는 압박감을 줄이기 위해 거울로 마감되었다.[21] 재개장 첫날에는 12만 명이 방문했지만, 화재의 후유증으로 경영난을 겪었다. 1976년 10월 27일, 회사는 구마모토 지방 법원에 회사 갱생 절차 개시를 신청하여 사실상 도산했다. 사망자 유족에 대한 배상금은 24.53억원에 달했다.[22]
재개장 당시 매장 구성은 다음과 같다.
8F | 식당가 |
---|---|
7F | 장난감, 학용품, 서적(요시히사 서점) |
6F | 가구, 가전 |
5F | 불명 |
4F | 기모노, 아동복 |
3F | 신사복 |
2F | 부인복 |
1F | 유행 액세서리, 맥도날드 구마모토 다이요점 |
B1F | 식료품 |
1979년 10월, 다이요 백화점 부지에 '''"구마모토성옥"'''이 개업했다. 이후 '''"성옥 다이에"'''를 거쳐,[23] 1995년에 '''"다이에 熊本下通점"'''이 되었다.[23] 그러나 건물 노후화로 인해 2014년 5월에 폐점하고 남영개발에 매각되었으며, 8월부터 해체 공사가 시작되었다.[23][24][25] 2014년 7월 2일에는 남영개발 주최로 위령제가 거행되었다.
이후 부지에는 복합 상업 시설 '''"COCOSA"'''가 건설되어 2017년 4월 27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이온 그룹 자회사가 된 다이에 대신, 같은 그룹의 맥스밸류 규슈(현: 이온 규슈)가 식품 슈퍼 사업을 맡게 되었다.[26]
6. 추모 및 기억
구마모토 시내에는 다이요 백화점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건립되어 있다.[27]
2014년 건물 해체를 앞두고 위령제가 실시되었다.[27] 2022년 11월 29일 50주기를 맞아 구마모토시 주오구의 묘엔지에서 8년 만에 위령제가 다시 열렸다.[27]
2023년 12월 20일 오니시 가즈후미 구마모토 시장은 회견을 통해 5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기념하고 기억을 이어가기 위해 화재 발생일인 11월 29일을 "구마모토시 소방 대피 훈련의 날"로 제정한다고 발표했다.[28][2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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令和5年(2023年)12月20日 第4回定例会後市長記者会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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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洋デパート火災の11月29日 市の「消防避難訓練の日」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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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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