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타파 7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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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케시타파 7봉행은 자유민주당 내 최대 파벌인 다케시타 노보루의 헤이세이 연구회 소속 유력 정치인 7명을 지칭한다. 이들은 오부치 게이조, 하시모토 류타로, 오자와 이치로, 카지야마 세이로쿠, 하타 쓰토무, 와타나베 고조, 오쿠다 요시카즈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 이후 다케시타파의 영향력 아래에서 요직을 거치며 권력을 행사했다. 7봉행은 자민당 내 파벌 갈등과 정계 개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일부는 탈당하여 신생 정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2021년 기준으로 오자와 이치로만이 7봉행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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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치 유코는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으로, 아버지 오부치 게이조의 딸이며, 와세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경제산업대신을 역임했으나 정치자금 오용 의혹으로 사임했다.
다케시타파 7봉행 | |
---|---|
기본 정보 | |
소속 | 다케시타파 |
주요 인물 | 오자와 이치로 하타 쓰토무 가지야마 세이로쿠 오부치 게이조 하시모토 류타로 고무라 마사히코 와타나베 히로시 |
별칭 | 다케시타파 7봉행 다케시타 7봉행 |
상세 정보 | |
역할 | 다케시타파 내의 젊은 핵심 인물 그룹 |
특징 |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 파벌 내 주요 의사 결정 주도 |
주요 활동 | 파벌 운영 및 정책 결정 참여 정치 자금 관리 선거 전략 수립 다른 파벌과의 교섭 |
배경 |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 지지 기반 강화 목적 파벌 내 세대교체 및 젊은 인재 육성 |
결과 | 파벌 내 주도권 장악 및 영향력 확대 일본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 |
평가 | 긍정적: 파벌 정치의 효율성 증대, 정책 결정의 신속성 확보 부정적: 파벌 간 갈등 심화, 정치 부패의 원인 제공 |
참고 | |
관련 인물 | 다케시타 노보루 |
관련 사건 | 리크루트 사건 |
2. 다케시타파 7봉행
다케시타파 7봉행(일본어: 竹下派七奉行)은 1980년대 자유민주당 내 최대 파벌이었던 다케시타파의 핵심 인물 7명을 가리킨다. 7봉행은 오부치 게이조, 하시모토 류타로, 가지야마 세이로쿠, 하타 쓰토무, 와타나베 고조, 오쿠다 게이와, 오자와 이치로로 구성되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다케시타 노보루가 총리가 되면서 자민당은 다케시타파의 지배하에 놓였다. 이 무렵부터 7봉행이 요직에 기용되며 권력의 중추에 자리잡았다. 우노 내각이 제1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참패한 뒤, 가이후 내각이 출범하고 오자와 이치로가 간사장에 취임하면서 그의 권력이 크게 증대했다.
1991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오자와가 패배하면서 간사장에서 물러나고 오부치 게이조가 후임으로 취임했다. 이후 오자와는 다케시타파 부회장에서 회장 대리로 승격하면서 파벌 내 영향력을 강화했다.
1992년 도쿄 사가와큐빈 사건으로 가네마루 신이 다케시타파 회장직에서 물러나자, 후임 회장 자리를 두고 파벌 내에서 항쟁이 일어났다. 다케시타 계열은 오부치 게이조를, 가네마루 계열은 하타 쓰토무를 지지했다. 결국 오부치가 후임 회장이 되었고, 이에 반발한 오자와와 하타는 의원들을 이끌고 다케시타파를 이탈해 하타파를 결성했다.
2. 1. 7봉행 명단
(1992)(1995)
(1997)
(1998)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태양당 대표
민정당 대표
자유당 대표
민주당 대표
국민의 생활이 제일 대표
생활의 당 대표
신생당 간사장
신진당 간사장
민주당 간사장
민주당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