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레이비치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에 위치한 도시로, 1894년 윌리엄 S. 린턴이 농업 공동체를 건설하려 토지를 매입하면서 린턴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1901년 델레이로 개칭되었으며, 1911년 법인 도시가 되었다. 20세기 초부터 관광과 부동산 투기가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으며, 현재는 해변 관광지로 유명하다. 델레이비치는 1927년 델레이 비치와 통합되었으며, 현재는 다양한 예술 시설과 스포츠, 특히 테니스 관련 시설을 갖추고 있다. 2020년 인구는 66,846명이며, 4개의 자매 도시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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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레이비치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델레이비치 공식 문장
별칭
델레이
명칭 유래
디트로이트 델레이
표어
바닷가 마을
지리
항공 사진
모리카미 박물관 및 일본 정원의 레이크 하우스
내해 수로
좌표
26°27′33″N 80°4′59″W
면적
42.78km2
육지 면적
41.24km2
수면 면적
1.54km2
고도
20 피트
행정
군
[[File:Flag_of_Palm_Beach_County,_Florida.png|24px]] 팜비치 군
자에가 족은 델레이비치에 거주했던 초기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9] 테케스타 인디언들도 이 지역을 지나갔거나 거주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10][11] 1841년 미국 군사 지도에는 현재 레이크 이다(Lake Ida)로 알려진 지역에 세미놀족의 캠프가 표시되어 있었다.
1876년, 미국 생명 구조국은 난파된 선원들을 구조하고 보호하기 위해 오렌지 그로브 피난처를 건설했다. 이 집의 이름은 피난처 부지로 선택된 곳에서 발견된 튼튼한 신맛의 오렌지 및 기타 열대 과일 나무 숲에서 유래되었지만, 누가 나무를 심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2]
최초의 비원주민 집단 정착민은 플로리다 팬핸들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다. 이들은 1884년경부터 오렌지 그로브 피난처에서 약간 내륙 지역의 토지를 구입하여 농사를 시작했다. 1894년까지 흑인 공동체는 이 지역 최초의 학교를 설립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1]
1894년, 미시간주새기노 출신의 공화당 미국 하원의원 윌리엄 S. 린턴은 오렌지 그로브 피난처 서쪽의 토지를 구입하여 농업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부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는 린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896년, 헨리 플래글러는 플로리다 동부 해안 철도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까지 남쪽으로 연장하여 린턴에 역을 세웠다.[1]
린턴 정착민들은 우체국과 상점을 설립하고, 북부 시장을 위한 겨울 채소 트럭 농업에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1898년의 혹한은 큰 좌절을 안겨주었고, 윌리엄 린턴을 포함한 많은 정착민들이 떠났다.[12] 공동체의 행운을 바꾸거나 나쁜 평판을 떨쳐버리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1901년에 정착지의 이름은 델레이로 변경되었다. "델레이"는 델 레이의 영어식 표기이며, 이는 스페인어로 "왕의"를 의미한다. 델레이는 미국-멕시코 전쟁의 몰리노 델 레이 전투에서 이름을 따왔다. 1900년대 초부터 바하마 (당시 영국령 서인도 제도) 출신의 정착민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을 종종 나소라고 불렀다.[13]
1911년, 델레이는 플로리다주로부터 법인화된 마을로 특권을 부여받았고, 같은 해 파인애플과 토마토통조림 공장이 건설되었다. 1920년대 에버글레이즈의 배수로 인해 델레이의 지하 수위가 낮아져 파인애플 재배가 어려워졌다. 또한, 플로리다 동해안 철도가 키웨스트까지 연장되면서 북부 시장에서는 쿠바산 파인애플과의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44]
1920년대 플로리다 토지 붐은 델레이에 새로운 번영을 가져왔다. 관광과 부동산은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델레이는 상하수도, 포장 도로, 보도를 정비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했고, 여러 호텔도 건설되었다. 당시 델레이는 플로리다주 동해안의 웨스트팜비치와 포트로더데일 사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1926년 토지 붐이 꺼지면서 델레이는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고, 고정 자산세도 대폭 감소했다.[44] 1923년, 플로리다 동해안 운하(현재는 연안 내수로의 일부)와 바다 사이의 지역이 델레이 비치에 편입되었다. 1927년, 델레이와 델레이 비치는 합병되어 마을 이름은 델레이 비치가 되었다.[44]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델레이 다운타운은 대규모 수리를 받았다. 1992년에는 델레이 비치 테니스 센터가 건설되었다. 2004년 데이비스 컵(미국 대 스웨덴), 2005년 페드 컵(미국 대 벨기에), 델레이 비치 국제 테니스 선수권 대회(ATP 투어 250 시리즈) 등 여러 주요 국제 대회가 열렸으며, 크리스 에버트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의한 자선 행사도 개최되었다.[52]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에는 올드 스쿨 스퀘어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이 복원되었다.[52]
2007년 《뉴욕 타임스》는 델레이비치를 미국 최대의 회복 공동체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금주 주택을 보유한 미국의 마약 회복 중심지로 묘사했다.[70] 지역 마약 재활 산업은 중독 전문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으며, 일부 주민과 시 공무원에게는 공공의 골칫거리로 여겨졌다.[71] 의료 및 보험 사기, 공공 자원 고갈, 부적절한 규제와 재활 시설 검사 부족에 대한 불만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7년 7월, 《뉴욕 타임스》와 《NBC 뉴스》 등 전국 뉴스 매체들은 델레이비치의 금주 주택을 중심으로 남부 플로리다의 수십억 달러 규모 마약 재활 산업 내 사기 혐의를 상세히 다룬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7월 사이에 최소 30건의 불법 "환자 중개" 혐의로 체포가 이루어졌다.[72][73][74]
2. 1. 초기 정착
자에가 족은 델레이비치에 거주했던 초기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9] 테케스타 인디언들도 이 지역을 지나갔거나 거주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10][11] 1841년 미국 군사 지도에는 현재 레이크 이다(Lake Ida)로 알려진 지역에 세미놀족의 캠프가 표시되어 있었다.
1914년 7월 4일, 독립 기념일 퍼레이드
1876년, 미국 생명 구조국은 난파된 선원들을 구조하고 보호하기 위해 오렌지 그로브 피난처를 건설했다. 이 집의 이름은 피난처 부지로 선택된 곳에서 발견된 튼튼한 신맛의 오렌지 및 기타 열대 과일 나무 숲에서 유래되었지만, 누가 나무를 심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2]
최초의 비원주민 집단 정착민은 플로리다 팬핸들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다. 이들은 1884년경부터 오렌지 그로브 피난처에서 약간 내륙 지역의 토지를 구입하여 농사를 시작했다. 1894년까지 흑인 공동체는 이 지역 최초의 학교를 설립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1]
1894년, 윌리엄 S. 린턴은 미시간주 새기노 출신의 공화당 미국 하원의원으로, 오렌지 그로브 피난처 서쪽의 토지를 구입하여 농업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부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는 린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896년, 헨리 플래글러는 플로리다 동부 해안 철도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까지 남쪽으로 연장하여 린턴에 역을 세웠다.[1]
린턴 정착민들은 우체국과 상점을 설립하고, 북부 시장을 위한 겨울 채소 트럭 농업에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1898년의 혹한은 큰 좌절을 안겨주었고, 윌리엄 린턴을 포함한 많은 정착민들이 떠났다.[12] 공동체의 행운을 바꾸거나, 나쁜 평판을 떨쳐버리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정착지의 이름은 1901년에 델레이로 변경되었다. "델레이"는 델 레이의 영어식 표기이며, 이는 스페인어로 "왕의"를 의미한다. 델레이는 다시 미국-멕시코 전쟁의 몰리노 델 레이 전투에서 이름을 따왔다.
1900년대 초부터 바하마 (당시 영국령 서인도 제도) 출신의 정착민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을 종종 나소라고 불렀다.[13]
2. 2. 린턴과 델레이
1894년, 미시간주새기노 출신의 공화당 미국 하원의원인 윌리엄 S. 린턴은 오렌지 그로브 피난처 서쪽의 토지를 구입하여 농업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며 부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는 린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896년, 헨리 플래글러는 플로리다 동부 해안 철도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까지 남쪽으로 연장하여 린턴에 역을 세웠다.[1]
린턴 정착민들은 우체국과 상점을 설립하고, 북부 시장을 위한 겨울 채소 트럭 농업에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1898년의 혹한은 큰 좌절을 안겨주었고, 윌리엄 린턴을 포함한 많은 정착민들이 떠났다.[12] 공동체의 행운을 바꾸거나 나쁜 평판을 떨쳐버리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1901년에 정착지의 이름은 델레이로 변경되었다. ("델레이"는 델 레이의 영어식 표기이며, 이는 스페인어로 "왕의"를 의미한다.) 델레이는 미국-멕시코 전쟁의 몰리노 델 레이 전투에서 이름을 따왔다.
2. 3. 법인 도시 설립과 성장
1876년, 오렌지 그로브 해난 구조소가 건설되면서 델레이비치의 기록된 역사가 시작되었다. '오렌지 그로브'라는 이름은 구조소 건설 장소에 있던 잘 익은 시큼한 오렌지와 다양한 열대 과일 나무에서 유래되었지만, 누가 이 나무들을 심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44]
1884년경, 플로리다 북부 펜핸들 지역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오렌지 그로브 해난 구조소 내륙의 토지를 구입하여 경작하면서 정착이 시작되었다. 1894년에는 최초의 학교가 건설될 정도로 흑인 커뮤니티가 성장했다.[44]
1894년, 미시간주새기노 출신의 하원 의원 윌리엄 S. 린턴이 오렌지 그로브 해난 구조소 서쪽의 토지를 구입하여 농업 공동체를 목표로 소구획 판매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이 공동체를 린턴이라고 불렀다. 1896년, 헨리 플래글러가 플로리다 동해안 철도를 웨스트팜비치에서 마이애미로 연장하면서 린턴에 역이 설치되었다.[44]
린턴 주민들은 북부 시장을 위한 겨울 채소 재배에 성공했지만, 1898년 강한 한파로 인해 윌리엄 린턴을 포함한 많은 주민들이 이 지역을 떠났다. 1901년, 공동체의 운세를 바꾸고 나쁜 평판을 없애기 위해 디트로이트 근교의 델레이(스페인어로 "왕의~"라는 뜻의 "Del Rey"를 영어식으로 바꾼 것)에서 이름을 따 델레이로 개명했다.[44]
1909년, 델레이 정착지는 데이드군에 편입되었고, 같은 해 데이드군의 북부가 팜비치군으로 분리되었다. 1915년, 팜비치군과 데이드군이 거의 같은 넓이의 지역을 내놓아 브로워드군이 설치되면서 델레이는 팜비치군 남동부에 위치하게 되었다.[275]
1910년 델레이의 인구는 250명이었다. 1911년, 델레이는 플로리다주로부터 법인화된 마을로 특권을 부여받았고, 같은 해 파인애플과 토마토통조림 공장이 건설되었다. 파인애플은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이었으며, 이는 현재 델레이 비치의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파인애플 그로브라는 이름에 반영되어 있다. 1920년까지 델레이의 인구는 1,051명에 달했다.[44]
1913년에 지어진 델레이 학교. 현재 코넬 박물관에 있으며, 올드 스쿨 스퀘어의 일부.
미국 국립 역사 유적지에 등록된 존 & 엘리자베스 쇼 선디하우스
1920년대 에버글레이즈의 배수로 인해 델레이의 지하 수위가 낮아져 파인애플 재배가 어려워졌다. 또한, 플로리다 동해안 철도가 키웨스트까지 연장되면서 북부 시장에서는 쿠바산 파인애플과의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44]
1920년대 플로리다 토지 붐은 델레이에 새로운 번영을 가져왔다. 관광과 부동산 등기는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델레이는 상하수도, 포장 도로, 보도를 정비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했고, 여러 호텔도 건설되었다. 당시 델레이는 플로리다주 동해안의 웨스트팜비치와 포트로더데일 사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1926년 토지 붐이 꺼지면서 델레이는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고, 고정 자산세도 대폭 감소했다.[44]
1923년, 플로리다 동해안 운하(현재는 연안 내수로의 일부)와 바다 사이의 지역이 델레이 비치에 편입되었다. 1927년, 델레이와 델레이 비치는 합병되어 마을 이름은 델레이 비치가 되었다.[44]
2. 4. 1920년대 플로리다 토지 붐과 대공황
1920년대, 에버글레이즈의 배수로 인해 델레이의 지하 수위가 낮아져 파인애플 재배가 어려워졌다. 한편, 플로리다 동해안 철도가 키웨스트까지 연장되면서 북부 시장에서는 쿠바산 파인애플과의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1920년대의 플로리다 토지 붐은 델레이에 새로운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관광과 부동산 등기는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델레이는 상하수도, 포장 도로, 보도를 정비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했다. 호텔도 여러 채 건설되었다.[48] 당시 델레이는 플로리다주의 동해안의 웨스트팜비치와 포트로더데일 사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1926년에 토지 붐이 터지면서 델레이는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고, 고정 자산세도 대폭 감소했다.
델레이는 플로리다 동해안 운하(현재는 연안 내수로의 일부)에 의해 대서양의 모래 해변과 격리되어 있었다. 1923년, 운하와 바다 사이의 지역은 델레이 비치에 편입되었다. 1927년, 델레이와 델레이 비치는 합병되어 마을 이름은 델레이 비치가 되었다.
2. 5. 예술가와 작가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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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플로리다 주도 806호선(애틀랜틱 애비뉴)을 따라 주간고속도로 95호선 동쪽에서 해변으로 뻗어 있는 델레이 다운타운은 대규모 수리를 받았다. 1992년에는 델레이 비치 테니스 센터가 건설되었다.
데이비스 컵(2004년, 미국 대 스웨덴), 페드 컵(2005년, 미국 대 벨기에), 델레이 비치 국제 테니스 선수권 대회(ATP 투어 250 시리즈) 등 여러 주요 국제 대회가 열렸으며, 크리스 에버트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의한 자선 행사도 개최되었다.[52]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이 복원되었다. 대표적으로 과거 델레이 초등학교, 델레이 고등학교였으며 이후 문화 센터, 콜로니 호텔이 된 올드 스쿨 스퀘어가 있다.[52]
올드 스쿨 스퀘어는 과거 고등학교 건물을 활용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무대 예술 공연이 열리는 크레스트 극장, 외관을 유지한 채 복원되어 결혼식이나 댄스 등 지역 행사가 열리는 1925년 체육관, 초등학교를 복원한 코넬 역사 예술 박물관, 그리고 최근 건설되어 뮤지컬 공연이나 정치 집회 등에 사용되는 야외 파빌리온으로 구성되어 있다.[52]
구 솔로몬 D. 스페이디 교사 저택은 복원되어 스페이디 문화 유산 박물관이 되었다. 박물관 내 흑인 기록 보관소에서는 델레이 비치 및 팜비치 카운티의 발전에 기여한 흑인들의 노고를 기리는 전시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52]
애틀랜틱 커뮤니티 고등학교는 2005년에 이전과는 다른 장소에 재건되었으나, 계획 단계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52]
애완동물 전용 항공사인 펫 에어웨이즈는 델레이 비치에 본사를 두고 있다. 데이젯 사는 2007년까지 델레이 비치에 본사를 두었으나, 2008년에 파산했다.[52]
2. 7. 역사 지구 재활성화와 도심 개발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이후, 플로리다 주도 806호선(애틀랜틱 애비뉴)을 따라 주간고속도로 95호선 동쪽에서 해변으로 뻗어 있는 델레이 다운타운은 대규모 수리를 받았다. 1992년에는 델레이 비치 테니스 센터가 건설되었다.
2004년 데이비스 컵(미국 대 스웨덴), 2005년 페드 컵(미국 대 벨기에), 델레이 비치 국제 테니스 선수권 대회(ATP 투어 250 시리즈) 등 여러 주요 국제 대회 외에 크리스 에버트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의한 자선 행사도 열리고 있다.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이 복원되었다. 여기에는 과거 델레이 초등학교, 델레이 고등학교였으며, 이후 문화 센터, 콜로니 호텔이 된 올드 스쿨 스퀘어도 포함된다.
올드 스쿨 스퀘어는 과거 고등학교가 있던 건물로, 무대 예술이 열리는 크레스트 극장, 외관을 유지한 채 복원되어 결혼식이나 댄스 등 지역 행사가 열리는 장소가 된 1925년 체육관, 초등학교를 복원한 코넬 역사 예술 박물관, 그리고 최근 건설된 뮤지컬 공연장이나 정치 집회 등의 행사에도 사용되는 야외 파빌리온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 솔로몬 D. 스페이디 교사 저택은 복원되어 스페이디 문화 유산 박물관이 되었다. 박물관 내 흑인 기록 보관소에서는 델레이 비치 및 팜비치 카운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흑인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전시 및 프로그램이 있다.
애틀랜틱 커뮤니티 고등학교는 2005년에 이전 교사와는 다른 장소에 재건되었지만, 계획에는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애완동물 전용 항공사 펫 에어웨이즈는 델레이 비치에 본사를 두고 있다.
데이젯 사는 2007년까지 델레이 비치에 본사를 두고 있었지만, 2008년에 파산했다.
2. 8. 오피오이드 위기와 회복 산업
2007년 《뉴욕 타임스》는 델레이비치를 미국 최대의 회복 공동체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금주 주택을 보유한 미국의 마약 회복 중심지로 묘사했다.[70] 지역 마약 재활 산업은 중독 전문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으며, 일부 주민과 시 공무원에게는 공공의 골칫거리로 여겨졌다.[71] 의료 및 보험 사기, 공공 자원 고갈, 부적절한 규제와 재활 시설 검사 부족에 대한 불만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7년 7월, 《뉴욕 타임스》와 《NBC 뉴스》 등 전국 뉴스 매체들은 델레이비치의 금주 주택을 중심으로 남부 플로리다의 수십억 달러 규모 마약 재활 산업 내 사기 혐의를 상세히 다룬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7월 사이에 최소 30건의 불법 "환자 중개" 혐의로 체포가 이루어졌다.[72][73][74]
플로리다주 골드 코스트 지역의 중부, 팜비치군의 남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보카레이턴, 남쪽으로는 보인턴비치와 접한다. 연안 내수로의 동쪽에 있는 배리어 아일랜드의 남쪽으로는 하이랜드 비치 타운과, 배리어 아일랜드의 북쪽, 국도 1호선의 동쪽으로는 걸프스트림 타운과 접한다.
시의 서쪽 경계선과, 더 서쪽에 있는 에버글레이즈의 일부인 록사하치 국립 조류 보호 구역 사이에도 팜비치군에 미편입된 도시 지역이 펼쳐져 있다. 델레이비치 시내와 하이포인트, 킹스포인트, 빌리지 오브 오리올의 인구 조사 지정 지역, 그리고 몇몇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많은 주민과 기업도 주소로 델레이비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도시 지역을 통틀어 "웨스트 델레이"라고 비공식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국 인구 조사국에 따르면, 시 면적은 41.2km2이며, 이 중 육지는 40km2, 수역은 1km2이다.
3. 1. 도심 위치
시 초창기 델레이의 다운타운은 애틀랜틱 애비뉴를 따라 서쪽으로는 스윈턴 애비뉴, 동쪽으로는 연안 내수로까지 뻗어 있었다. 이후 다운타운은 점차 확장되었다.[281]
2010년까지 다운타운은 서쪽으로는 주간 고속도로 제95호선에서 동쪽으로는 대서양까지 뻗어 있었다. 남북으로도 확장되어 대략 애틀랜틱 애비뉴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2개 블록을 이루고 있다.[281]
4. 기후
델레이비치의 기후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열대 우림 기후(Af)의 조건을 간신히 충족한다. 강수량이 가장 적은 달은 2월로 약 6.48cm이며, 열대 우림 기후의 성립 조건인 최소 강수량 약 5.99cm 이상을 약간 초과한다.[304][282]
델레이비치의 기후 (2010년 8월 기준)[304][282]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연간
평균 최고 기온 (℉)
약 24.4°C
약 25.0°C
약 26.1°C
약 27.8°C
약 30.0°C
약 31.7°C
약 32.2°C
약 32.2°C
약 31.1°C
약 29.4°C
약 26.7°C
약 24.4°C
약 28.3°C
평균 최저 기온 (℉)
약 14.4°C
약 15.0°C
약 16.7°C
약 18.9°C
약 21.7°C
약 23.3°C
약 24.4°C
약 24.4°C
약 23.9°C
약 22.2°C
약 18.9°C
약 15.6°C
약 19.4°C
평균 강수량 (inch)
약 9.53cm
약 6.48cm
약 9.35cm
약 9.07cm
약 13.69cm
약 19.25cm
약 15.16cm
약 16.89cm
약 20.57cm
약 13.87cm
약 14.10cm
약 7.98cm
약 155.93cm
평균 강수 일수
8.8
7.8
8.8
7.4
9.8
16.9
16.9
18.1
17.7
13
9.4
8.9
143.4
델레이비치의 기후 (2010년 8월 기준)[282]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연간
평균 최고 기온 (℉)
약 23.9°C
약 24.4°C
약 26.1°C
약 27.8°C
약 30.0°C
약 31.7°C
약 32.2°C
약 32.2°C
약 31.7°C
약 29.4°C
약 26.7°C
약 24.4°C
약 28.3°C
평균 최저 기온 (℉)
약 13.9°C
약 14.4°C
약 16.7°C
약 18.3°C
약 21.1°C
약 23.3°C
약 23.9°C
약 23.9°C
약 23.9°C
약 21.7°C
약 18.9°C
약 15.6°C
약 19.4°C
평균 강수량 (inch)
약 9.53cm
약 6.48cm
약 9.35cm
약 9.07cm
약 13.69cm
약 19.25cm
약 15.16cm
약 16.89cm
약 20.57cm
약 13.87cm
약 14.10cm
약 7.98cm
약 155.93cm
5. 인구
다음은 2000년(기본 데이터는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른 델레이비치의 인구 통계 자료이다.
2000년 기준으로, 가구의 18.9%는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42.4%는 함께 사는 부부였으며, 10.2%는 남편 없이 여성 가구주가 있었고, 43.7%는 비가족이었다. 전체 가구의 35.3%는 개인으로 구성되었으며, 18.3%는 65세 이상의 혼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가구당 평균 가구원은 2.22명, 평균 가족 구성원은 2.87명이었다.
2000년 시의 인구 분포는 18세 미만이 18.2%, 18세에서 24세가 6.3%, 25세에서 44세가 27.1%, 45세에서 64세가 22.4%, 65세 이상이 25.9%였다. 중앙 연령은 44세였다. 여성 100명당 남성은 91.2명이었다. 18세 이상 여성 100명당 남성은 88.0명이었다.
2000년 시의 가구당 중간 소득은 43371USD였고, 가족당 중간 소득은 51195USD였다. 남성의 중간 소득은 33699USD였고 여성은 28469USD였다. 시의 1인당 소득은 29350USD였다. 약 8.2%의 가족과 인구의 11.8%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으며, 여기에는 18세 미만의 17.6%와 65세 이상의 7.8%가 포함되었다.
2000년 기준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 주민의 75.44%를 차지했고, 아이티 크리올어가 11.73%, 스페인어가 7.02%, 프랑스어가 1.87%, 이탈리아어가 0.88%, 독일어가 인구의 0.75%를 차지했다.
2000년 기준으로, 델레이비치는 미국에서 아이티인 거주 비율이 16번째로 높았으며, 인구의 10.50%를 차지했다.[286]
5. 2. 소득 및 빈곤
2000년, 델레이비치의 가구당 중간 소득은 43371USD였고, 가족당 중간 소득은 51195USD였다. 남성의 중간 소득은 33699USD였고 여성은 28469USD였다. 시의 1인당 소득은 29350USD였다. 약 8.2%의 가족과 인구의 11.8%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으며, 여기에는 18세 미만의 17.6%와 65세 이상의 7.8%가 포함되었다.[303]
델레이 비치는 남부 플로리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변 관광지 중 하나이다.[59][60] 이 지역은 레스토랑, 소매점, 나이트클럽, 미술관, 호텔로 유명하며,[61][62][63] 특히 이스트 애틀랜틱 애비뉴는 유흥, 식사, 쇼핑으로 유명하다.[61][64][63] 델레이 비치 마켓은 플로리다에서 가장 큰 푸드 홀이자 이벤트 장소로, 2021년 개장식에는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산티스가 참석했지만, 2023년 상반기 동안 새로운 건설을 위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65]
델레이비치의 주요 고용주에 대한 정보는 하위 섹션("주요 고용주")에 상세히 나와있으므로, 여기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다.
6. 1. 주요 개발
델레이비치 시내에는 2003년경부터 건축 붐이 일었다. 최근 개발은 시내의 새 도시 계획과 해안가 부동산의 대형 주택화 추세를 반영하며, 때로는 역사 지구와 역사 유적지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66][67] 새로운 복합 용도 개발 프로젝트가 최근 건설되었으며, 애틀랜틱 애비뉴 바로 북쪽과 남쪽에 더 많은 프로젝트가 계획되어 있다. 예상되는 성장을 수용하기 위해 시는 또한 두 개의 새로운 시립 주차장을 건설했다.[68][69]
6. 2. 주요 고용주
델레이비치의 2018-2019년 종합 연간 재무 보고서에 따르면,[75] 이 도시의 주요 고용주는 다음과 같다.
델레이비치는 플로리다 주도 A1A에서 접근 가능한 약 3.22km의 공공 해변을 가지고 있으며, ''트래블 홀리데이'' 잡지에서 미국 남동부 최고의 해변으로 선정되었다.[76][77] 시에서는 5개의 운동장, 5개의 해변 및 해안 공원, 8개의 커뮤니티 공원, 2개의 해안 내 공원, 청소년 센터, 스케이트 공원,[78] 스플래시 파크,[79] 수영장, 테니스 클럽을 관리하며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활동 및 시설을 제공한다.[80][81]
1903년 9월 11일 침몰한 영국 증기선 인철바호의 잔해는 델레이 난파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공공 해변 근처 얕은 물에서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 명소로 활용되고 있다.[92][93]
와코다해치 습지(Wakodahatchee Wetlands)는 1.2km 산책로를 통해 151종 이상의 조류, 거북이, 악어, 토끼, 개구리, 너구리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습지 공원이다.[96]
7. 1. 예술 지구
파인애플 그로브 예술 지구(Pineapple Grove Arts District)는 애틀랜틱 애비뉴 북쪽의 시내에 위치해 있으며, 갤러리, 공연 예술, 문화 단체로 유명하다.[82][83][84] 아츠 개러지(Arts Garage)는 비영리 멀티미디어 예술 장소로, 음악 콘서트, 라이브 연극, 예술 교육 및 봉사 프로그램, 시각 예술 갤러리를 개최한다.[85] 1947년 레이크 이다 이스트 파크(Lake Ida East Park)에 문을 연 델레이비치 플레이하우스(Delray Beach Playhouse)는 연극, 뮤지컬, 인터랙티브 스튜디오 극장, 책 무대, 어린이 극장 제작, 강좌 및 캠프를 개최한다.[86]
올드 스쿨 스퀘어(Old School Square)는 델레이 초등학교와 델레이 고등학교의 이전 부지로, 이후 문화 센터로 바뀌었다.[87] 올드 스쿨 스퀘어 단지는 고등학교 건물에 있는 공연 예술 장소인 크레스트 극장, 외관을 유지하기 위해 복원된 1925년 체육관(결혼 피로연, 댄스 등 지역 행사 장소로 사용), 복원된 초등학교에 지어진 올드 스쿨 스퀘어의 코넬 미술관(Cornell Art Museum at Old School Square), 음악 공연 및 정치 집회와 같은 기타 행사를 위한 야외 장소인 더 파빌리온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리에이티브 아츠 스쿨(Creative Arts School)은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초급부터 마스터 레벨의 미술, 사진, 글쓰기 강좌를 제공한다.[88]
애틀랜틱 애비뉴(Atlantic Avenue)는 다양한 미술 박람회와 거리 축제의 정기적인 개최지이기도 하다.[89]
7. 2. 공연 예술
델레이비치에는 다양한 유형의 예술을 위한 장소가 있다. 파인애플 그로브 예술 지구(Pineapple Grove Arts District)는 애틀랜틱 애비뉴 북쪽 시내에 있으며, 갤러리, 공연 예술, 문화 단체로 유명하다.[82][83][84] 비영리 멀티미디어 예술 장소인 아츠 개러지(Arts Garage)는 음악 콘서트, 라이브 연극, 예술 교육 및 봉사 프로그램, 시각 예술 갤러리를 개최한다.[85] 1947년 레이크 이다 이스트 파크(Lake Ida East Park)에 문을 연 델레이비치 플레이하우스(Delray Beach Playhouse)는 연극, 뮤지컬, 인터랙티브 스튜디오 극장, 책 무대, 어린이 극장 제작, 강좌 및 캠프를 개최한다.[86]
올드 스쿨 스퀘어(Old School Square)는 델레이 초등학교와 델레이 고등학교의 이전 부지로, 이후 문화 센터로 바뀌었다.[87] 올드 스쿨 스퀘어 단지는 고등학교 건물에 있는 공연 예술 장소인 크레스트 극장, 외관을 유지하기 위해 복원된 1925년 체육관(결혼 피로연, 댄스 등 지역 행사 장소로 사용), 복원된 초등학교에 지어진 올드 스쿨 스퀘어의 코넬 미술관(Cornell Art Museum at Old School Square)과 음악 공연 및 정치 집회와 같은 기타 행사를 위한 야외 장소인 더 파빌리온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리에이티브 아츠 스쿨(Creative Arts School)은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초급부터 마스터 레벨의 미술, 사진, 글쓰기 강좌를 제공한다.[88]
애틀랜틱 애비뉴(Atlantic Avenue)는 또한 다양한 미술 박람회와 거리 축제의 정기적인 개최지이기도 하다.[89]
7. 3. 박물관 및 자연
델레이비치에는 역사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이 있다. 케이션 코티지 하우스 박물관(Cason Cottage House Museum)은 한때 델레이비치 개척자 가족의 집이었으며, 1915년부터 1935년까지 남부 플로리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박물관은 델레이비치 역사 협회에서 관리 및 운영한다.[90] 교사이자 교장이었던 솔로몬 D. 스파디의 역사적인 집은 개조되어 스파디 문화 유산 박물관(Spady Cultural Heritage Museum)으로 바뀌었다. 스파디 박물관에는 흑인 기록 보관소가 있으며, 델레이비치와 팜비치 카운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흑인들의 노력을 기리는 전시회와 프로그램이 열린다.[30] 2007년에는 1935년에 지어진 코티지를 어린이 문화 클럽하우스로 개조하고, 흑인 교육 개척자인 C. 스펜서 폼페이를 기리는 50석 규모의 원형극장을 건설하여 박물관을 확장했다.[31]
이 도시에서 가장 특색있는 박물관 중 하나는 150개 이상의 클래식하고 플레이 가능한 핀볼 기계와 아케이드 게임을 갖춘 핀볼 중심의 실버볼 박물관(Silverball Museum)이다.[91]
실버볼 박물관 (델레이 비치)(Silverball Museum)의 1층
1903년 9월 11일에 침몰한 영국 증기선 인철바호의 잔해는 공공 해변 근처 얕은 물에 있으며, 토종 물고기와 산호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92] 오늘날 델레이 난파선으로 알려진 이 장소는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으로 유명하다.[93]
역사적인 선디 하우스(Sundy House)는 현재 고급 에코 리조트로 운영되고 있다. 구내에는 손님 숙소로 개조된 선디 가족의 옛 아파트와 코티지, 카페, 골동품점, 열대 타루 가든이 있다.[22]
142 사우스 오션 대로에 있는 J.B. 에반스 하우스(J.B. Evans House)는 네이티브 식물, 살아있는 동물, 그리고 전 세계의 조개 껍데기 대규모 컬렉션을 갖춘 자연사 박물관이자 환경 센터인 샌도웨이 디스커버리 센터로 용도가 변경되었다.[94]
현재 샌도웨이 디스커버리 센터의 본거지인 J.B. 에반스 하우스(J.B. Evans House)는 미국 국립 사적지에 등재되어 있다.
델레이비치에는 또한 일본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인 모리 카미 박물관 및 일본 정원(Morikami Museum and Japanese Gardens)이 있다. 캠퍼스에는 두 개의 박물관 건물, 로지-엔 일본 정원: 이슬 정원, 분재 정원, 도서관, 기념품점, 그리고 푸드 네트워크에 소개된 코넬 카페라는 일본 레스토랑이 있다. 순환 전시가 두 건물 모두에 전시되며, 다도회와 수업을 포함한 시연이 본관에서 열린다. 전통 일본 축제가 1년에 여러 번 열린다.[95]
와코다해치 습지(Wakodahatchee Wetlands)는 일반에 공개된 습지 공원이다. 시설로는 개방된 연못, 신생 습지, 얕은 선반, 관목과 고사목이 있는 섬 사이를 가로지르는 1.2km의 산책로가 있어 둥지와 횃대를 조성한다. 이 부지는 그레이트 플로리다 조류 관찰로의 남쪽 부분에 속하며 조류를 자연 서식지에서 관찰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뿔논병아리, 눈새 및 검은배 휘파람 오리를 포함하여 151종 이상의 조류가 공원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이 공원에는 거북이, 악어, 토끼, 개구리 및 너구리가 서식하고 있다.[96]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시설들이 있다.
콜로니 호텔[294] -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델레이비치 역사 건축물로 지정되었다.[295]
올드 스쿨 스퀘어
델레이비치 테니스 센터 - 8,200석 규모의 관람석을 갖춘 테니스 경기장.
세인트 빈센트 페러 가톨릭 협회 - 다운타운 외곽에 위치해 있다.
모리카미 박물관(森上ミュージアム)
일본 정원 로지엔 (Roji-en)
델레이 비치 시립 도서관
케이슨 코티지 (Keeson Cottage)
스페이디 박물관[296]
다운타운 델레이 예술 지구
더 아티스트 길드 (The Artists Guild)[297]
ETTRA 아트 갤러리[298]
사우스 카운티 법원
샌드웨이 하우스 자연 센터
와코다해치 습지
7. 4. 축제
델레이비치에는 3.2km 길이의 공공 해변이 있으며, 플로리다 주도 A1A 도로에서 접근할 수 있다. 대서양의 얕은 바다에는 1903년 9월 11일에 침몰한 증기선의 잔해가 있으며, 야생 물고기와 산호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델레이비치의 다운타운은 이스트 애틀랜틱 애비뉴(단순히 "더 애비뉴"라고도 불림)를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루어졌다. 이 지역은 환락가, 음식점가, 상점가 등으로 유명하다. 2009년에는 다운타운 예술 지구의 확장 부분이 개설되었다. 예술 지구는 애틀랜틱 애비뉴 북쪽의 파인애플 그로브 중심부에 위치하며, 갤러리, 공연 예술, 예술 문화 단체 등으로 알려져 있다. 아트 & 재즈 온 더 애비뉴는 매년 6번 개최된다.
8. 스포츠
델레이비치는 스포츠, 특히 테니스가 발달한 도시이다. 전미 테니스 협회는 델레이비치를 미국의 최고 테니스 도시 중 하나로 선정했으며, 이를 기념하여 2010년 7월 20일에는 시의 이름을 일주일 동안 "테니스 비치"로 변경하기도 했다.[101]
8. 1. 테니스
델레이 비치 오픈은 매년 열리는 ATP 투어 250 시리즈 남자 프로 테니스 토너먼트이다.[97] 델레이 비치 테니스 센터는 페드컵, 데이비스 컵, 크리스 에버트 프로-셀러브리티 테니스 클래식을 개최했다.[98]
프로월드 테니스 아카데미는 델레이 비치에 위치해 있다.[99] 델레이 비치 테니스 센터는 14개의 클레이 코트, 6개의 하드 코트, 대서양가 인근 다운타운에 위치한 8,200석 규모의 경기장을 갖춘 풀 서비스 공공 테니스 시설이다. 센터는 위층 파빌리온과 회의실, 프로 샵, 락커룸, 라켓 스트링, 상품 등을 갖추고 있다. 이 클럽은 다양한 성인 및 주니어 프로그램, 리그, 클리닉 및 캠프를 제공한다. 두 번째 장소인 델레이 수영 & 테니스 클럽은 24개의 클레이 코트와 상품 및 락커룸이 있는 프로 샵이 있는 클럽 하우스를 갖추고 있다.[100]
2010년 7월 20일, 시의 위원들은 미국 테니스 협회가 미국 최고의 테니스 타운 중 하나로 지명한 것을 기념하여 시의 이름을 1주일 동안 공식적으로 테니스 비치로 변경한다고 선포했다.[101] 델레이비치 오픈은 매년 시내에서 개최되는 ATP 투어 250 남자 테니스 토너먼트이며, 하드 코트에서 경기가 열린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는 코럴스프링스에서, 1999년부터는 델레이비치 테니스 센터로 장소를 옮겨 개최되고 있다. 미국인 토드 마틴이 1993년 첫 대회의 우승자였다.
2010년 7월 20일, 전미 테니스 협회가 델레이비치를 미국의 최고 테니스 도시 중 하나로 지명한 것을 기념하여, 공식 시명을 일주일 한정으로 "테니스 비치"로 변경했다.
8. 2. 기타
델레이 비치 오픈은 매년 열리는 ATP 투어 250 시리즈 남자 프로 테니스 토너먼트이다.[97] 델레이 비치 테니스 센터는 페드컵, 데이비스 컵, 크리스 에버트 프로-셀러브리티 테니스 클래식을 개최했다.[98]
프로월드 테니스 아카데미는 델레이 비치에 있다.[99] 델레이 비치 테니스 센터는 14개의 클레이 코트, 6개의 하드 코트, 대서양가 인근 다운타운에 위치한 8,200석 규모의 경기장을 갖춘 풀 서비스 공공 테니스 시설이다. 센터는 위층 파빌리온과 회의실, 프로 샵, 락커룸, 라켓 스트링, 상품 등을 갖추고 있다. 이 클럽은 다양한 성인 및 주니어 프로그램, 리그, 클리닉 및 캠프를 제공한다. 두 번째 장소인 델레이 수영 & 테니스 클럽은 24개의 클레이 코트와 상품 및 락커룸이 있는 프로 샵이 있는 클럽 하우스를 갖추고 있다.[100]
2010년 7월 20일, 시의 위원들은 미국 테니스 협회가 미국 최고의 테니스 타운 중 하나로 지명한 것을 기념하여 시의 이름을 1주일 동안 공식적으로 테니스 비치로 변경한다고 선포했다.[101]
9. 교통
Tri-Rail 통근 철도 시스템과 암트랙이 델레이비치 역에서 운행한다.[107][108] 팜트랜은 이 지역에서 시내 버스 서비스를 제공한다.[109][299]
델레이비치는 인트라코스탈 수로를 통해 배로 접근할 수 있다. 시에는 애틀랜틱 애비뉴 교차로 남쪽에 임대 선석이 있는 시립 마리나가 있으며, 애틀랜틱 애비뉴 도개교 북쪽에 있는 베테랑 공원에서는 매일 요트 크루즈가 출발한다.[110][111]
9. 1. 도로
델레이비치에는 주민과 지역 사업체를 중심으로 도로 주행이 가능한 골프 카트 커뮤니티가 존재한다.[1]
플로리다 주도 A1A는 현지에서 "오션 대로"로 알려져 있으며, 인터코스탈 수로와 대서양 사이를 지나는 남북 경관 및 역사적 해안 도로이다.[1]
1번 국도는 "연방 고속도로"로도 알려져 있으며, 시내 동부의 상업 지구와 주거 지역을 통과하는 남북 도로이다. 1번 국도는 시내를 관통하는 분리된 일방통행으로 나뉜다.[1]
95번 주간고속도로는 델레이비치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두 개의 인터체인지를 가지고 있다.[1]
플로리다 턴파이크는 델레이비치 미편입 지역을 통과하는 남북 유료 도로로, 애틀랜틱 애비뉴에 인터체인지를 갖추고 있다.[1]
441번 국도는 "7번 주도"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시 경계 서쪽의 주거 및 상업 지역을 통과하는 남북 고속도로이다.[1]
그 외 주요 남북 도로는 콩그레스 애비뉴, 밀리터리 트레일, 조그 로드 등이 있다.[1]
플로리다 주도 806선은 현지에서 "애틀랜틱 애비뉴"로 알려져 있으며, A1A 주도와 441번 국도 사이의 주요 동서 간선 도로이며, 시내 중심 상업로이다.[1]
린튼 대로와 조지 부시 대로도 인터코스탈 수로를 가로지르는 개폐교를 통해 A1A 주도와 연결되는 다른 두 도로이다.[1]
9. 2. 철도
델레이비치 역의 Tri-Rail 통근 열차
Tri-Rail 통근 철도 시스템과 암트랙이 델레이비치 역에 정차하며 이 도시를 운행한다.[107][108]
9. 3. 버스
팜트랜은 이 지역에서 시내 버스 서비스를 제공한다.[109][299]
9. 4. 수상 교통
델레이비치 시내는 인트라코스탈 수로를 통해 배로 접근할 수 있다. 시에는 애틀랜틱 애비뉴 교차로 남쪽에 임대 선석이 있는 시립 마리나가 있다.[110] 애틀랜틱 애비뉴 도개교 북쪽에 있는 베테랑 공원에서는 매일 요트 크루즈가 출발한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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