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쓰카 요트 스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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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쓰카 요트 스쿨 사건은 1976년 도쓰카 히로시가 설립한 요트 스쿨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훈련 중 학생들의 사망 사건이 잇따랐으며, 폭행, 감금치사 등의 혐의로 도쓰카와 코치들이 기소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도쓰카는 징역 6년을 선고받았고, 2006년 출소 후에도 체벌 옹호 입장을 고수했다. 이후에도 훈련생들의 자살 및 자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으며, 도쓰카는 옴진리교 관련 인물들과의 교류를 통해 옴진리교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 사건은 체벌의 정당성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한국 사회에도 아동 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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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쓰카 요트 스쿨 사건 | |
---|---|
사건 개요 | |
명칭 | 도쓰카 요트 스쿨 사건 |
공식 명칭 | 도쓰카 요트 스쿨 폭행치사 사건 |
발생 장소 | 아이치현 지타군 미하마정 |
발생 기간 | 1979년 - 1982년 |
사건 상세 | |
원인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동기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수단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공격 측 인원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무기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사망자 | 5명 |
부상자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행방불명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범인 | 도쓰카 히로시와 다른 코치 9명 |
관할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사법 처리 | |
혐의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동기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형사 소송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소년 심판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해난 심판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민사 소송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영향 | |
영향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유족회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피해자 모임 | 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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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내용 포함 경고 | 이 항목에는 폭력적이거나 엽기적인 묘사/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면책 조항도 읽어주십시오. |
2. 설립 배경 및 초기 목적
1976년, 도쓰카 히로시가 설립한 도쓰카 요트 스쿨은 처음에는 올림픽에 출전할 요트 선수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도쓰카는 "평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요트 교육을 실시했는데, 그중 등교 거부 아동 한 명이 입교하여 3번의 훈련만으로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내용을 1977년 일본의 유명 토크쇼인 테츠코의 방에 출연하여 이야기한 후, 정서 장애 아동의 입교 희망 문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도쓰카 요트 스쿨에서는 개교 이후 훈련 과정에서 여러 건의 심각한 사건 및 사고가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1979년부터 1982년 사이에 훈련생들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했으며,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폭행, 가혹 행위, 감금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의 결과였다.
3. 훈련 중 발생한 사건 및 사고
주요 사건으로는 1979년 복통을 호소하던 13세 소년이 적절한 치료 없이 폭행당해 사망한 사건, 1980년 입교 4일 만에 21세 청년이 폭행으로 사망한 'Y 사건', 1982년 여름 합숙 후 체벌을 피해 배에서 뛰어내린 15세 소년 두 명이 실종 후 사망 처리된 '아카츠키 호 사건', 그리고 같은 해 12월 13세 소년이 입교 일주일 만에 폭행과 가혹 행위로 사망한 'O 사건' 등이 있다. 이 사건들로 인해 도쓰카 히로시 교장과 코치들은 상해치사죄나 감금치사죄 등으로 기소되었다.
피해자 유족들은 이후 인터뷰 등을 통해 도쓰카 측의 진정한 사과나 반성이 없었음을 지적하며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1][2]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은 일본 사회에서 체벌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교육 문제 토론 등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3. 1. 1979년 소년 사망 사건
1979년, 당시 13세였던 소년이 심한 복통을 호소했으나, 도쓰카 요트 스쿨 측은 의사의 진찰을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폭행을 가하며 훈련을 강요했다. 결국 소년은 사망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도쓰카 측은 사인을 저체온증으로 인한 것이며 체벌과의 인과 관계는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병사로 판단하여 불기소 처분했다.
3. 2. Y 사건 (1980년)
1980년 11월 4일, 특별 합숙생으로 그해 10월 31일부터 입교했던 청년 Y(당시 21세)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Y는 새벽 체조, 구덩이 파기 작업, 해상 훈련 등의 과정에서 코치 등으로부터 폭행을 당했으며, 이것이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도쓰카 및 코치 등은 상해치사죄로 기소되었다.
3. 3. 아카츠키 호 사건 (1982년)
1982년 8월 14일 새벽, 가고시마현 아마미오시마섬에서 여름 합숙을 마친 소년 2명(당시 15세)이 고치현 앞 태평양을 항해 중이던 배 위에서 체벌을 피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이후 행방불명되었고 결국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사건으로 도쓰카와 코치 등은 감금치사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훗날 주간 현대 (2006년 11월 18일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행방불명된 소년 중 한 명의 아버지는 "아들이 정말 배에서 바다에 뛰어든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사실은 밀쳐 떨어진 것이 아닌가"라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3. 4. O 사건 (1982년)
1982년 12월 12일, 특별 합숙 중이던 소년 O(당시 13세)가 사망했다. 입교 일주일 만에 새벽 체조, 자율 훈련 등에서 폭행을 당했고, 해상 훈련 중에는 도쓰카와 코치들에게 요트에서 여러 차례 바다로 던져지는 가혹행위를 당했다. 소년은 12월 9일경부터 식사도 거의 하지 못했고 사망한 12일까지 어떠한 치료도 받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도쓰카와 코치 등은 상해치사죄로 기소되었다.
소년 O의 어머니는 이후 주간 현대 2006년 11월 18일호와의 실명 인터뷰에서 도쓰카가 출소한 뒤에도 소상(소송 상대방)이나 사과가 전혀 없었다고 밝히며 재범을 우려했다. 또한 아들은 정서 장애가 아닌, "몸을 단련하고 싶다"는 이유로 스스로 입교했으나 불과 8일 만에 사망했다며 입교를 권유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폭력 집단을 끝까지 규탄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1][2]
4. 일반 훈련생 사망
1982년 12월 12일, 도쓰카 요트 스쿨에서 사망한 소년 O는 이른바 정서 장애 아동이 아니었다. 그는 "몸을 단련하고 싶다"는 이유로 스스로 스쿨에 입교했지만, 입교한 지 불과 8일 만에 사망했다. 소년 O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입교를 권유했던 것을 후회하며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폭력 집단을 끝까지 규탄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1][2]
5. 재판 과정
도쓰카 요트 스쿨에서 발생한 훈련생 사망 및 상해 사건으로 도쓰카 히로시 교장과 코치진 등이 상해치사죄, 감금치사죄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 재판은 나고야 지방 재판소(1심), 나고야 고등재판소(2심), 최고재판소(3심)를 거치며 기소부터 판결 확정까지 19년 동안 이어진 장기 재판이었다.
1심에서는 도쓰카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으나, 2심 재판부는 "훈련은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갱생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폭력을 행사했다. 더 이상 교육도 치료도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도쓰카에게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들에게 더 무거운 처벌을 내렸다. 상고심인 최고재판소는 2심 판결을 확정하여, 도쓰카를 포함한 기소된 15명 전원의 유죄가 최종 확정 판결되었다.
5. 1. 토츠카 및 코치진 재판
도쓰카 요트 스쿨에서 발생한 훈련생 사망 및 상해 사건과 관련하여, 교장 도쓰카 히로시와 코치진은 상해치사 및 감금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은 나고야 지방 재판소(1심), 나고야 고등재판소(2심), 최고재판소(3심)를 거치며 19년 동안 진행된 장기 재판이었다.1심에서는 도쓰카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는 이를 파기하고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들에게 더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2심 재판부는 훈련이 교육이나 치료가 아닌 인권을 무시한 폭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상고심인 최고재판소는 2심 판결을 확정하여 도쓰카를 포함한 기소된 15명 전원의 유죄가 최종 확정되었다.
5. 1. 1. 1심 (나고야 지방 재판소, 1992년)
1992년 7월 27일, 나고야 지방 재판소(고지마 히로시 재판장)는 Y 사건과 O 사건에 대해 각각 상해치사죄를, 아카츠키호 사건에 대해서는 감금치사죄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도쓰카에게는 징역 3년과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이는 검찰 측이 구형했던 징역 10년에 비해 낮은 형량이었다. 코치 A부터 I까지는 각각 징역 10개월에서 2년 6개월, 그리고 집행유예 2년에서 3년을 선고받았다.재판부는 도쓰카와 코치 C를 제외한 8명의 기소 후 구류 기간이 1100일을 넘었고, 코치 C 역시 1000일에 가까운 구류 기간을 보낸 점을 양형에 고려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3]. 변호인 측은 요트 스쿨에서의 체벌이 정당 업무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코치 F는 강제추행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에 불복하여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인 도쓰카, A, B, C, D, F 등 6명은 모두 항소했다.
5. 1. 2. 2심 (나고야 고등 재판소, 1997년)
1997년 3월 12일, 나고야 고등재판소(쓰치카와 고지 재판장)는 1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재판부는 "훈련은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갱생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폭력을 행사했다. 더 이상 교육도 치료도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피고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피고인 | 선고 형량 |
---|---|
도쓰카 | 징역 6년 (실형) |
코치 A | 징역 3년 6개월 (실형) |
코치 B | 징역 2년 6개월 (실형) |
코치 C | 징역 3년 (실형) |
코치 D | 집행유예 |
코치 F | 집행유예 |
또한, 1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던 Y, O의 사망 원인이 2심에서는 모두 외상성 쇼크로 인정되었다.[4]
이 판결에 대해 도쓰카, A, B, C 4명은 즉시 상고하였다.
5. 1. 3. 3심 (최고 재판소, 2002년)
2002년 2월 25일, 최고재판소(후쿠다 히로시 재판장)는 2심 판결을 지지하여, 토츠카 등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토츠카의 징역 6년과 코치진 등 기소된 15명 전원의 유죄가 확정 판결되었다. 기소부터 판결 확정까지 19년이 걸린 장기 재판이었다.인물 | 지위 | Y 사건 | 아카츠키호 사건 | O 사건 | 1심 판결 | 2심 판결 | 상고심 |
---|---|---|---|---|---|---|---|
도쓰카 히로시 | 교장 | ○ | ○ | ○ | 징역 3년, 집행유예 3년 | 징역 6년 | 상고 기각 |
A | 코치 | ○ | ○ | ○ |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 징역 3년 6개월 | 상고 기각 |
B | 코치 | ○ | ○ | ○ |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 징역 2년 6개월 | 상고 기각 |
C | 코치 | ○ | ○ | ○ |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 징역 3년 | 상고 기각 |
D | 코치 | / | / | ○ |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 |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 / |
E | 코치 | / | / | ○ |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 | / | / |
F | 코치 | ○ | ○ | / |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 |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 / |
G | 코치 | ○ | / | / |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 | / | / |
H | 코치 | / | / | / |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 | / | / |
I | 코치 | / | / | / |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 / | / |
5. 2. 기타 코치진 재판
사건에 연루된 다른 코치 및 지원자에 대한 재판 결과는 다음과 같다.
6. 사건 이후
2006년 4월 만기 출소한 도쓰카는 요트 스쿨 운영을 재개했으나, 이후에도 훈련생 사망 및 자살 시도 사건이 이어졌다.[6]
'''옴진리교와의 관계'''
도쓰카는 2020년 옴진리교의 후계 단체인 히카리의 고리 대표 우에사카 후미히로와 두 차례 대담을 가졌다. 이 대담에서 도쓰카는 요트 스쿨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었던 아사하라 쇼코와 옴진리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12] 그는 언론이 "아사하라 쇼코가 젊은이를 세뇌했다"고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아사하라가 자유주의 사상에 세뇌된 젊은이들의 세뇌를 푼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아사하라가 수행을 통해 '''진리'''를 얻었으며, 이 진리를 가르쳐 젊은이들을 자유주의의 세뇌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도쓰카는 "이과 계열은 천하의 수재이며,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현재 아사하라와 Aleph에 비판적인 우에사카(와세다 대학교 이공학부 출신)에 대해서는 "그저 편차치 수재", "동료를 경찰에 판 배신자", "수행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13]
2020년 2월 21일, 니코니코 동화에 게시된 일본 문화 채널 사쿠라의 동영상에서 가나하 마코와의 대담에서도 비슷한 견해를 보이며, "옴진리교는 불교", "불교는 과학"이라고 주장했다.[14]
6. 1. 토츠카 출소 및 요트 스쿨 재개
2006년 4월 29일, 만기 출소한 도쓰카는 시즈오카 형무소를 나왔다. 출소 후 열린 기자 회견에서 그는 "체벌은 교육이다. 올바른 교육론이 없기 때문에 교육 황폐가 일어난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며, 앞으로도 요트 스쿨을 계속 운영할 뜻을 밝혔다.[6]그러나 요트 스쿨이 재개된 이후에도 사건과 사고는 이어졌다.
- 2006년 10월 9일, 스쿨에서 같은 달 6일에 실종된 25세 남성 훈련생이 미하마정 카와의 해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7] 경찰은 자살과 사고의 양면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우울증으로 통원 치료 중이던 이 남성은 아버지도 스쿨에서 함께 숙식하고 있었지만, 눈을 뗀 사이에 사라져 스쿨에서 3k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해당 남성의 시신에는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8]
- 2009년 10월 19일, 18세 여성 훈련생이 기숙사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아이치현 한다 경찰서는 자살로 보고 수사했다.[9]
- 2011년 12월 20일, 30세 남성 훈련생이 기숙사 3층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다. 한다 경찰서는 자살 미수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10]
- 2012년 1월 9일, 21세 남성 훈련생이 기숙사 3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한다 경찰서는 자살로 보고 수사했다.[11]
6. 2. 이후 발생한 사건 및 사고
- 2006년 10월 9일, 같은 달 6일에 스쿨에서 실종된 훈련생 25세 남성이 미하마정 카와 해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7] 경찰은 자살과 사고 양쪽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보도되었다. 이 남성은 우울증으로 통원 치료 중이었으며, 아버지가 스쿨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라졌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스쿨에서 약 3km 떨어진 지점이었고,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8]
- 2009년 10월 19일, 훈련생 18세 여성이 기숙사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아이치현 한다 경찰서는 자살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9]
- 2011년 12월 20일, 훈련생 30세 남성이 기숙사 3층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다. 한다 경찰서는 자살 미수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10]
- 2012년 1월 9일, 훈련생 21세 남성이 기숙사 3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한다 경찰서는 자살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11]
7. 옴진리교와의 관계
도쓰카는 2020년 옴진리교의 후계 단체인 히카리의 고리 대표 우에사카 후미히로와 두 차례 대담을 가졌다. 이 대담에서 도쓰카는 요트 스쿨과 마찬가지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아사하라 쇼코와 옴진리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12]
- 언론은 "아사하라 쇼코가 젊은이를 세뇌했다"고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아사하라 쇼코가 젊은이를 세뇌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사상에 세뇌된 젊은이들의 세뇌를 풀어준 것이다.
- 아사하라 쇼코는 수행을 통해 '''진리'''를 깨달았다.
- '''진리'''를 가르침으로써 자유주의에 세뇌된 젊은이들을 그 속박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또한 도쓰카는 "이과 계열 학생들은 뛰어난 인재이며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현재 아사하라 쇼코 및 알레프(Aleph)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우에사카(와세다 대학교 이공학부 출신)에 대해서는 "단순히 성적만 좋은 수재", "동료를 경찰에 팔아넘긴 배신자", "수행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13]
2020년 2월 21일, 니코니코 동화에 게시된 일본 문화 채널 사쿠라의 영상에서 가나하 마코와의 대담 중에도 위와 같은 견해를 반복하며, "옴진리교는 불교이며, 불교는 과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14]
8. 전 훈련생의 증언
광문사가 발행하는 사진 주간지 『FLASH』에 실린 전 훈련생의 증언에 따르면, 스쿨 내에서 코치와 지원자에 의해 다음과 같은 성추행이 벌어졌으며, 이를 본 도쓰카 히로시는 웃고 있었다고 한다.[15]
- 코치가 마사지를 핑계로 여자 학생을 불러내 옷 속에 손을 넣었다.
-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코치와 지지자가 남자 학생 2명의 하반신을 노출시키고, 웃으면서 음부를 만지며 쫓아다녔다.
또한, 이 증언을 한 전 훈련생은 피폭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원폭"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폭행을 당하면서 "원폭 머리니까 사람들보다 튼튼하겠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16]
참조
[1]
논문
思わず涙・・・木を取り直す 喪服姿の母親
1983-10-31
[2]
웹사이트
『戸塚ヨットスクール事件とは何だったのか』
https://ameblo.jp/ri[...]
2024-09-28
[3]
문서
LEX/DB 27814801
[4]
뉴스
戸塚ヨットスクール事件 控訴審判決<要旨>
朝日新聞
1997-03-13
[5]
뉴스
Aコーチまず有罪 傷害致死が成立 名古屋地裁判決
朝日新聞
1985-02-18
[6]
뉴스
戸塚ヨットスクール校長「体罰は教育」 出所、再び指導へ
朝日新聞
2006-04-30
[7]
뉴스
戸塚ヨットスクールの25歳訓練生水死体 先月9日に発見/愛知・美浜
読売新聞
2006-11-06
[8]
문서
2006年11月7日現在、新聞報道による
[9]
뉴스
戸塚ヨットで入校生自殺か 18歳、寮から転落死
朝日新聞
2009-10-19
[10]
뉴스
訓練生転落か、男性が大けが 愛知「戸塚ヨットスクール」
朝日新聞
2011-12-20
[11]
뉴스
訓練生、飛び降り死亡 メモに「死にたい」 戸塚ヨットスクール
朝日新聞
2012-01-10
[12]
Youtube
戸塚先生の寺子屋(4) 『現在の日本教育と偏差値秀才』
https://www.youtube.[...]
2020-12-30
[13]
Youtube
戸塚先生の寺子屋(4) 『現在の日本教育と偏差値秀才』
https://www.youtube.[...]
2020-12-30
[14]
간행물
【我那覇真子「おおきなわ」#108】戸塚宏~定義無き「体罰」批判、リベラル教育の偽善を斬る![桜R2/2/21] - ニコニコ動画
https://sp.nicovideo[...]
2020-02-21
[15]
웹사이트
「女子生徒の服の下に手を」「“原爆頭”と呼ばれ殴られた」戸塚ヨットスクール元生徒が語る“地獄の日々”“復活への憤り”
https://smart-flash.[...]
2024-09-23
[16]
웹사이트
「女子生徒の服の下に手を」「“原爆頭”と呼ばれ殴られた」戸塚ヨットスクール元生徒が語る“地獄の日々”“復活への憤り”
https://smart-flash.[...]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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