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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빚진 자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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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두 빚진 자의 비유는 예수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죄인인 한 여인의 행동에 대한 시몬의 반응에 답하여 들려준 이야기이다. 예수는 두 채무자의 비유를 통해,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채권자를 더 사랑하는 것처럼, 많은 죄를 용서받은 여인이 더 큰 사랑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 비유는 죄와 용서,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며, 여인의 행동이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이 비유는 예수의 예언자적 능력과, 죄인으로 여겨지던 여인을 포용하려는 그의 시각을 보여준다. 이 비유는 예술 작품에서 여인의 향유 장면으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중세 미스터리 연극에서도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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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빚진 자의 비유
비유 정보
이름두 빚진 자의 비유
다른 이름향유 부은 여인 비유
내용 요약예수께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던 중, 죄 많은 여인이 향유를 가져와 예수의 발에 붓고 눈물로 씻기자, 시몬은 예수가 죄인을 용납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이에 예수는 두 빚진 자의 비유를 들어 죄를 많이 용서받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교훈을 준다.
등장인물예수
시몬 (바리새인)
죄 많은 여인
빚진 자 2명 (500 데나리온 빚진 자, 50 데나리온 빚진 자)
위치시몬의 집 (갈릴리 추정)
기록 성경누가복음 7:36-50
마태복음 26:6-13
마르코복음 14:3-9
주제용서, 사랑, 믿음, 은혜
중요성죄의 용서와 사랑의 관계,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비유
해석죄를 많이 용서받은 자가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며,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
관련된 비유되찾은 아들의 비유 (누가복음 15:11-32)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누가복음 10:25-37)

2. 내용

예수는 자신을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한 죄 많은 여인이 보인 행동에 대한 시몬의 속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응답하며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1] 예수는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을 각각 빚졌다가 모두 탕감받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빚을 없애 준 주인을 더 사랑할 것이라는 점을 시몬 스스로 인정하게 하셨다. 이를 통해 예수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용서받은 사람이 하느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점을 가르치셨다. (누가복음 7:40-43)

또한 예수는 손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시몬의 형식적인 대접과,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고 향유를 부으며 깊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한 여인의 행동을 극명하게 대조하셨다. (누가복음 7:44-46) 이를 통해 외적인 신분이나 평판보다 내면의 진실한 회개와 사랑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여인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음을 선언하셨다. (누가복음 7:47)

이 비유에 등장하는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화폐 단위였다.[1]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는 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동방 정교회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2] 당시 관습에 비추어 볼 때, 발 씻을 물 제공이나 입맞춤 인사 등 기본적인 예의를 생략한 시몬은 손님인 예수에게 매우 무례하게 행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3]

2. 1. 본문

이 비유는 바리새인 시몬 (때때로 나병환자 시몬과 동일시되기도 함)이 예수를 집에 초대했을 때 보인 그의 태도에 대한 예수의 응답이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를 자기 집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게 되었다. 예수가 식탁에 앉자, 그 동네에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인이 예수가 그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왔다. 여인은 예수의 등 뒤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는,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은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이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죄인인지 알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예수의 신성을 의심했다.

예수는 시몬의 생각을 아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네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선생님, 말씀하십시오."라고 대답하자, 예수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돈 빌려주는 사람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능력이 없자, 주인은 두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주었다. 그러면 둘 중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네 판단이 옳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는 여인을 돌아보며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내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내게 입맞춤으로 인사하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계속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랐다."

예수는 이어서 설명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한다.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여자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셨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동전이다.[1]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는 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동방 정교회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2] 당시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제공하고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였으므로, 바리새인 시몬은 손님인 예수에게 매우 무례하게 행동한 셈이다.[3]

2. 2. 문학적 특징

이 비유는 누가복음 7장 36절부터 50절[24][1]에 기록된 이야기로, 예수께서 바리새인 시몬 (때때로 나병환자 시몬과 동일시되기도 함)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 속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문학적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비유를 사용하여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몬에게 빚진 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사람은 500데나리온, 다른 사람은 50데나리온을 빚졌는데, 채권자가 두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주었다. 예수는 시몬에게 누가 더 채권자를 사랑하겠냐고 질문하고, 시몬은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답한다. 이 비유는 죄의 용서와 사랑의 깊이가 비례한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화폐 단위였다.[24][1]

둘째, 등장인물의 행동을 대조하여 주제를 강조한다. 예수는 자신을 초대한 주인 시몬의 행동과 죄인으로 취급받던 여인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비교한다. 시몬은 예수를 집에 초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손님에게 행하던 기본적인 예의, 즉 발 씻을 물을 주거나[3] 입맞춤으로 인사를 하거나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반면, 여인은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았으며, 발에 계속 입을 맞추고 값비싼 향유를 부었다. 이러한 극명한 대조는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시몬과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랑과 헌신을 보여준 여인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셋째, 이야기 구조는 반전의 요소를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바리새인 시몬이 더 높은 위치에 있고 경건하게 여겨졌지만, 예수께서는 죄인으로 낙인찍힌 여인의 행동을 더 높이 평가하며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한다. 이는 여인이 보여준 사랑의 깊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 누가복음 7:47). 이를 통해 외적인 신분이나 사회적 평판보다 내면의 진실한 사랑과 회개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보여준다.

3. 해석

이 비유는 바리새인 시몬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예수가 죄지은 여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몬에게 가르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4][5] 비유 속 여성은 당시 사회적으로 죄인으로 알려졌으며, 일부에서는 그녀가 매춘부였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4][5][6]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7] 만약 그녀가 매춘부였다면, 그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결례를 중시하는 바리새인에게는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여겨졌을 것이다.[4][5] 신학자 조엘 B. 그린은 당시 여성이 처했을 수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성노예와 같은 사회적 현실을 외면하고 단순히 부도덕한 인물로 치부하기 쉬웠음을 지적하며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필요성을 제기한다.[4]

예수는 이 여인의 죄가 이미 용서받았음을 확인시켜주며,[4][7] 시몬에게 그녀의 변화된 정체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그녀를 받아들이도록" 권유한다.[4] 또한 예수는 시몬이 마음속으로 품은 생각을 읽고 응답함으로써, 바리새인이 의심했던 예언자적 능력을 보여준다.[4][7]

이 비유는 죄의 용서와 사랑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질문을 던진다. 즉, 여인이 보여준 큰 사랑이 용서의 원인인지, 아니면 용서받은 것의 결과인지에 대한 해석은 후대 신학자들과 성경 번역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7][8][9][10][11][14]

3. 1. 죄의 용서와 사랑의 관계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의 식사'', c. 15세기.


이 비유는 바리새인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예수가 그 여인을 보는 시각을 바리새인 시몬에게 가르치려는 의도로 보인다.[4][5] 비유에 등장하는 여성은 당시 사회적으로 죄인으로 여겨졌고, 일부에서는 그녀가 매춘부였을 것으로 추정하지만[4][5][6]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7] 만약 그녀가 매춘부였다면, 그녀의 존재 자체가 정결례를 중시하는 바리새인에게는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여겨졌을 것이다.[4][5] 신약학자 조엘 B. 그린은 당시 사회적 현실을 고려할 때, 이 여성이 경제적 어려움이나 성노예와 같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배경 없이 단순히 부도덕하고 일탈적인 사람으로 치부하기 쉬웠음을 언급한다.[4]

예수는 이 여인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확인시켜 주며, 이는 아마도 이전에 이미 그녀를 용서했음을 암시한다.[4][7] 예수는 시몬에게 그녀의 변화된 정체성을 깨닫도록 하고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그녀를 받아들이도록" 권유한다.[4] 바바라 리드는 이 이야기가 시몬에게 "예수께서 보시는 대로, 즉 '큰 사랑을 가진, 용서받은 여인'으로 그녀를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해석한다. 만약 시몬이 그렇게 볼 수 있다면, 그는 예수를 단순히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하는 사랑을 실현하는 존재로 올바르게 인식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7]

''시몬의 집에서 성 마리아 막달레나'', 장 베로, 1891년


예수는 시몬이 속으로 품은 생각을 읽고 응답함으로써, 시몬이 의심했던 예언자적 능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두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시몬에게 여인의 행동이 단순히 빚을 갚으려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빚을 탕감받은 데서 오는 자유로운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게 한다.[4]

죄의 용서와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해석이 나뉜다. 장 칼뱅은 예수가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그녀의 많은 죄는 용서받았다. 그녀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7:47) 라고 말한 것에 대해, 사랑이 용서의 '원인'이 아니라 용서받았다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즉, 빚을 탕감받았기 때문에 많이 사랑하게 된 것이지,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탕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칼뱅은 이는 결과(사랑)를 통해 원인(용서)을 증명하는 ''후험적'' 논증이며, 예수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누가복음 7:50) 라고 말한 것처럼, 용서는 믿음을 통해 받는 것이고 사랑은 용서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8]

반면, 암브로시우스는 여성의 사랑을 용서의 '조건'으로 본다. 그는 죄인이 눈물과 간절한 회개를 통해, 특히 다른 신자들의 도움을 구하며 용서를 간청해야 하며, 이러한 깊은 사랑과 회개가 있을 때 비로소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되었으니, 그녀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9]

그러나 칼뱅의 해석이 비유의 내용과 그리스어 원문에 더 부합한다는 견해가 많다.[7][10][11] 많은 현대 성경 번역본들도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기 때문에, 그녀가 큰 사랑을 보였다"는 의미로 번역하여 칼뱅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 번역(Contemporary English Version)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녀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고, 바로 그 때문에 그녀가 큰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적은 용서를 받은 사람은 적은 사랑을 보일 것이다."라고 번역했고,[12] 새 미국 성경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큰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라고 번역했다.[13]

코르넬리우스 아 라피데는 비유를 해석하며, 많은 빚을 진 사람이 채권자에게 더 큰 존경을 표하듯, 죄가 많은 막달레나가 더 큰 사랑을 보였고 그 사랑으로 인해 용서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비유가 "우리가 사랑하면 할수록 더 많은 용서를 받게 된다"는 점을 가르쳐준다고 보았다.[15]

C. S. 루이스는 이 비유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당신도 다른 사람 안의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14]

3. 2. 한국 교회의 관점



이 비유는 바리새인 시몬을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예수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도록 가르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4][5] 비유에 등장하는 여성은 당시 사회적으로 알려진 죄인으로 여겨지는데,[4][5][6] 이러한 해석에는 논란의 여지도 있다.[7] 만약 그녀가 매춘 여성이었다면, 그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바리새인의 정결례 관념을 더럽히는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4][5] 신학자 조엘 B. 그린(Joel B. Green)은 당시 여성이 처했을 수 있는 사회적 현실, 예를 들어 경제적 어려움이나 성적 노예 상태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부도덕하거나 부정하다고 낙인찍는 태도를 지적한다.[4]

예수는 이전에 이미 여성을 용서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용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줌으로써[4][7] 시몬에게 그녀의 변화된 정체성을 인정하고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라고 촉구한다.[4] 바바라 리드(Barbara Reid)는 이 이야기가 시몬에게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지 묻는다고 해석한다. 즉, 예수가 보는 것처럼 큰 사랑을 보이는 용서받은 여인으로 그녀를 볼 수 있는지, 만약 그렇게 본다면 예수를 단순히 예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하는 사랑을 실현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7]

예수는 시몬이 마음속으로 품은 생각을 읽고 응답함으로써, 바리새인이 의심했던 예언자적 능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비유를 통해 시몬에게 사랑이란 빚을 갚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빚이 탕감된 자유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임을 깨닫게 한다.[4] 존 칼빈(John Calvin)은 예수의 말씀("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에 대해, 사랑이 용서의 원인이 아니라 증거라고 해석한다. 그는 500데나리온 빚을 탕감받은 채무자의 비유를 들어, 빚진 자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용서받았기 때문에 많이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여인의 사랑은 그녀가 받은 용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이는 그녀가 이미 용서받았다는 후험적 증거라는 것이다. 칼빈은 예수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누가복음 7:50)라고 말한 것을 근거로, 용서는 믿음으로 받고 사랑은 그에 대한 감사와 증언이라고 강조한다.[8]

반면, 암브로시우스(Ambrose)는 여성의 사랑을 용서의 조건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죄인이 눈물과 간청으로 회개하고, 다른 신자들의 도움을 구하며 겸손하게 용서를 구할 때, 비로소 주 예수께서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되었으니, 그녀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고 보았다.[9]

그러나 칼빈의 해석이 비유의 내용과 그리스어 원문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그녀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는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7][10][11] 이러한 해석에 따라, 많은 현대 성경 번역본(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모두 포함)은 누가복음 7장 47절을 의미가 더 명확하도록 번역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 번역(Contemporary English Version)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녀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고, 바로 그 때문에 그녀가 큰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적은 용서를 받은 사람은 적은 사랑을 보일 것이다."[12]라고 번역했고, 새 미국 성경(New American Bible)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큰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13]라고 번역했다.

C.S. 루이스(C.S. Lewis)는 이 비유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당신도 다른 사람 안의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14]

코르넬리우스 아 라피데(Cornelius a Lapide)는 비유 42절에 대해, 많은 빚을 진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더 큰 존경심을 보이는 것처럼,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더 큰 사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석했다. 그는 시몬이 막달레나(죄지은 여인)가 자신보다 예수를 더 사랑해야 함을 알았어야 했으며, 그녀의 큰 사랑이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음을 증명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비유는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은 용서를 받게 된다는 점을 가르쳐준다고 설명했다.[15]

3. 3. 사회적 함의



이 비유는 바리새인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가 그 여성을 보는 방식대로 여성을 보도록 가르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4][5] 비유 속 여성에 대한 묘사는 그녀가 사회적으로 알려진 성 노동자였음을 암시하지만,[4][5][6] 이 해석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7] 만약 그녀가 성 노동자였다면, 그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결례를 중시하는 바리새인의 기준에서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4][5] 신학자 조엘 B. 그린(Joel B. Green)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 노동을 하거나 성적 노예로 팔렸을 수도 있는 여성의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채, 그저 부도덕하고 부정하며 일탈적인 사람으로 치부하기 쉽다"고 지적하며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는 시각을 비판한다.[4]

예수는 이전에 이미 그 여성에게 베풀었을 것으로 보이는 용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면서,[4][7] 시몬에게 그녀의 변화된 정체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그녀를 받아들이라"고 권유한다.[4] 바바라 리드(Barbara Reid)는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시몬이 과연 다르게 볼 수 있을까? 예수가 보는 것처럼, 큰 사랑을 보여주는 용서받은 여인으로 그녀를 볼 수 있을까? 만약 그가 그녀를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그는 예수를 제대로, 즉 단순히 예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하는 사랑을 실현하는 대행자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7]

예수는 시몬이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의심에 직접 응답함으로써, 바리새인이 의심했던 자신의 예언자적 능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비유는 시몬에게 "여성의 행동이 빚을 갚으려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빚이 탕감된 자유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도록" 촉구한다.[4] 존 칼빈(John Calvin)은 예수의 말씀("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 "이 말씀을 통해 예수는 사랑을 용서의 원인이 아니라 용서의 증거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 비유는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받은 채무자의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다. 채무자는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빚을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용서받았기 때문에 많이 사랑한 것이다. 이 비유는 이렇게 적용되어야 한다. 당신은 이 여자가 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녀를 더 이상 죄인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녀가 보여준 사랑, 즉 그녀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그 사랑이 그녀가 용서를 받았다는 증거가 되어야 했다. 이는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론하는 후험적 논증이다. 우리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누가복음 7:50)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녀가 용서받은 근거가 믿음임을 분명히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용서를 받고, 사랑으로 감사하며 주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것이다."[8]

반면, 암브로시우스(Ambrose)는 여성의 사랑을 그녀가 용서받기 위한 조건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 "만일 숨겨진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에 힘쓴다면, 교회의 친교에 회복되지 않고서 어떻게 그 상을 받겠는가? 나는 죄인이 용서를 바라며 눈물과 탄식으로, 모든 사람의 눈물의 도움으로 그것을 구하고, 용서를 간청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친교가 두세 번 미뤄진다면, 그는 자신의 간청이 충분히 간절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며, 더 큰 고통 속에서 다시 와서 신자들의 발을 팔로 껴안고 입 맞추며 눈물로 씻고 놓아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주 예수께서 그에 대해서도 '그의 많은 죄가 용서되었으니, 이는 그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9]

그러나 존 칼빈의 해석이 비유의 내용과 그리스어 원문에 더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스어 본문에서 "그녀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는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7][10][11] 이러한 해석을 반영하여,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의 많은 현대 성경 번역본들은 누가복음 7장 47절을 의미가 더 명확하도록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그녀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다. 바로 그 때문에 그녀가 큰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적은 용서를 받은 사람은 적은 사랑을 보일 것이다." (현대 영어 번역)[12]

: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큰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새 미국 성경)[13]

C.S. 루이스(C.S. Lewis)는 이 비유의 핵심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당신 또한 다른 사람의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요약했다.[14]

코르넬리우스 아 라피데(Cornelius a Lapide)는 비유 42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며 암브로시우스와 유사한 관점을 보인다. "그 의미는, 많은 빚을 진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극진한 존경을 보여 빚의 탕감은 아니더라도 유리한 지불 조건을 얻으려 하듯이, 많은 용서를 받은 자는 자신의 공로 때문에 용서받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몬, 너는 막달레나가 너보다 나를 더 큰 사랑으로 사랑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더 큰 증거를 보여주었고, 따라서 그녀의 죄가 많지만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용서받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며, 네 생각처럼 내 발을 만질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보다 더 거룩하고 내가 만질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우리가 사랑하면 할수록 더 많은 용서를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준다."[15]

4. 예술 작품에서의 묘사

예수의 비유 자체는 예술 작품으로 거의 묘사되지 않지만, 산드로 보티첼리, 안토니오 캄피, 디르크 보우츠, 오노프리오 아벨리노, 치골리, 니콜라 푸생,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페테르 파울 루벤스 등 여러 화가들이 여인이 예수에게 향유를 붓는 장면을 묘사했다. 일부 그림에서는 여인의 과거 직업이 매춘부였음을 암시하기 위해 노란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16]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종교 예술에서는 이 향유 사건이 다른 복음서의 내용과 다르게 묘사되기도 한다.[17] 장 베로는 1891년 그림에서 참회하는 매춘부로 알려진 고급 창부 리안 드 푸지를 모델로 삼아 이 사건을 19세기 파리의 사회상에 맞게 재해석했다.[18] 리안 드 푸지는 나중에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다.[19]

또한 이 비유는 중세[20]와 그 이후 시대의 미스터리 연극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관련된 이야기로 다루어졌다. 예를 들어, 1550년에서 1566년 사이에 제작된 루이스 웨이거의 연극이 있다.[21][22]

참조

[1] 서적 The Bible Knowledge Background Commentary: Matthew-Luke https://books.google[...] David C. Cook
[2] 웹사이트 Catholic Encyclopedia: Mary Magdalene http://www.newadvent[...]
[3] 서적 Stories with Intent: A comprehensive guide to the parables of Jesus https://books.google[...] Eerdmans
[4] 서적 The Gospel of Luke https://books.google[...] Eerdmans
[5] 서적 Women in the Ministry of Jesus: A study of Jesus' attitudes to women and their roles as reflected in his earthly life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6] 서적 Women's Bible Commentary https://books.goog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7] 서적 Choosing the Better Part?: Women in the Gospel of Luke https://books.google[...] Liturgical Press
[8] 서적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http://www.ccel.org/[...]
[9] 간행물 Concerning Repentance http://www.newadvent[...]
[10] 서적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Eerdmans
[11] 서적 Essays in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2] 웹사이트 Luke 7:47, CEV. http://www.biblegate[...]
[13] 웹사이트 Luke 7:47, NAB. http://www.usccb.org[...]
[14] 웹사이트 Essay on Forgiveness by C.S. Lewis http://oholy.net/sto[...] 2011-11-18
[15] 서적 The great commentary of Cornelius à Lapide http://www.catholica[...] London: John Hodges
[16] 서적 Senses of Touch: Human dignity and deformity from Michelangelo to Calvin BRILL
[17] 서적 Armenian Gospel Iconography: The tradition of the Glajor Gospel https://books.google[...] Dumbarton Oaks
[18] 서적 Some Poets, Artists and 'A reference for Mellors' https://books.google[...] Timewell Press
[19] 서적 Articulations of Difference: Gender studies and writing in French https://books.google[...] Stanford University Press
[20] 서적 The Biblical Drama of Medieval Europe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1]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British Theatre: Origins to 1660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2] 서적 English Dramatic Interludes, 1300-1580: A reference guide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3] 웹사이트 Catholic Encyclopedia: Mary Magdalene. http://www.newadvent[...]
[24] 서적 The Bible Knowledge Background Commentary: Matthew-Luke https://books.google[...] David C. Cook
[25] 웹사이트 Catholic Encyclopedia: Mary Magdalene. http://www.newadvent[...]
[26] 서적 The Gospel of Luke https://books.google[...] Eerdmans
[27] 서적 Women in the Ministry of Jesus: A study of Jesus' attitudes to women and their roles as reflected in his earthly life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 서적 Women's Bible Commentary https://books.goog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9] 서적 Choosing the Better Part?: Women in the Gospel of Luke https://books.google[...] Liturgical Press
[30] 서적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http://www.cce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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