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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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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티움 동맹은 기원전 6세기경 알바 롱가 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결성된 동맹이다. 유피테르 신 숭배 의식을 공유하고, 에트루리아의 침략을 막는 등 공동의 목표를 가졌으며, 기원전 493년에는 로마와 상호 방위를 약속하는 카시우스 조약을 맺었다. 로마는 점차 동맹 내에서 주도권을 확보했으며, 기원전 358년에는 로마의 우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조약을 갱신했다. 이후 라티움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면서 기원전 338년 동맹은 해체되었고, 로마는 라티움 지역의 도시들을 자치시 또는 식민시로 편입시켰다.

2. 동맹의 성립

원래 라티움 동맹은 알바 롱가 시의 지도 아래 적에게서 주변 지역을 지키기 위해 결성되었다. 알바롱가 시가 이 연맹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유피테르 신 숭배의식을 포함한 여러 종교 제전은 알바롱가에 있는 알바 산에서 열렸다. 또한 동맹국 회원들은 이 도시에 모여 법을 집행하기도 했다. 기원전 6세기경 에트루리아 왕들은 아리키아를 지배하려고 했으나, 라티움 동맹이 이들의 침략을 막았다.[10] 소 카토가 기록한 비문의 불완전한 단편에 따르면, 한때 이 동맹은 투스쿨룸, 아리키아, 라누비움, 라비니움, 코라, 티부르, 포메티아, 아르데아가 있었다고 한다.[12]

기원전 493년에 로마인들과 라티움 동맹은 카시우스 조약(foedus Cassianum)을 맺어 상호 방위를 약속했다. 이 조약은 로마의 평민 지도자 스푸리우스 카시우스(Spurius Cassius)가 주선하였으며, 그 조약문은 4백년 뒤 키케로의 시대에도 로마 광장에서 여전히 볼 수 있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뉘시오스(6, 95, 1-3)는 이 조약의 요약문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13]

: 로마인과 모든 라티움 도시들은 하늘과 땅이 같은 장소에 있는 한 계속해서 평화 관계를 유지한다. 그들은 서로 간에 전쟁하지 않으며, 외국의 적들을 불러들이지도 말며, 어느 편과 전쟁을 하는 제3자에게 안전한 통로도 제공하지 않는다. 공격을 받을 때에는 모든 힘을 바쳐서 서로 돕고 공동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과 약탈품들은 동등한 몫으로 공평하게 나눈다. 사적인 계약과 관련된 모든 소송사건은 그 계약을 체결된 당사자들끼리 10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한다. 로마인과 모든 라티움 도시들의 공동 합의를 통하지 않고 이 조약의 어떤 내용을 빼거나 더하지 못한다.

이 조약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공동 방위를 위한 절반의 군대를 제공하기로 했고, 라티움 동맹은 나머지 절반을 제공하기로 했다. 군대를 소집한 쪽에서 그 군대를 지휘하도록 했으며, 노획물은 공평하게 반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로마는 단일 시이면서 노획물의 절반을 차지한 반면, 동맹국들은 다른 나머지 절반을 서로 나눠 가졌다. 동맹군 소집 결정권은 로마에게만 있었던 반면, 라티움 동맹은 소집에 응하기 전에 동맹국들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했다. 이 조약은 로마의 지위를 라티움 동맹 전체의 지위와 동등하게 규정하여 라티움에서 로마의 세력 확장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14]

3. 로마의 성장과 동맹

원래 라티움 동맹은 알바 롱가 시의 지도 아래 적에게서 주변 지역을 지키기 위해 결성되었다. 알바롱가 시가 이 연맹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유피테르 신 숭배 의식을 포함한 여러 종교 제전은 알바롱가에 있는 알바 산에서 열렸다. 또한 동맹국 회원들은 이 도시에 모여 법을 집행하기도 했다. 기원전 6세기경 에트루리아 왕들은 아리키아를 지배하려고 했으나, 라티움 동맹이 이들의 침략을 막았다.[10] 소 카토가 기록한 비문의 불완전한 단편에 따르면, 한때 이 동맹에는 투스쿨룸, 아리키아, 라누비움, 라비니움, 코라, 티부르, 포메티아, 아르데아가 있었다고 한다.[12]

라틴족이 로마를 동맹의 회원으로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로마와 라티움 동맹 간에 조약이 체결되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3. 1. 카시우스 조약 (기원전 493년)

기원전 493년, 로마인들과 라티움 동맹은 카시우스 조약(foedus Cassianum)을 맺어 상호 방위를 약속했다. 이 조약은 로마의 평민 지도자 스푸리우스 카시우스(Spurius Cassius)가 주선하였으며, 그 조약문은 4백년 뒤 키케로의 시대에도 로마 광장에서 여전히 볼 수 있었다.[13]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뉘시오스(6, 95, 1-3)는 조약의 요약문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조약에 따르면 로마는 공동 방위를 위한 절반의 군대를 제공하고, 라티움 동맹은 나머지 절반을 제공하기로 했다. 군대를 소집한 쪽에서 그 군대를 지휘하며, 노획물은 공평하게 반분하기로 했다. 동맹군 소집 결정권은 로마에게만 있었던 반면, 라티움 동맹은 소집에 응하기 전에 동맹국들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했다. 이 조약은 로마의 지위를 라티움 동맹 전체의 지위와 동등하게 규정하여 라티움에서 로마의 세력 확장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14]

초기 로마 공화국은 기원전 493년에 라틴 동맹과 동맹을 맺었다. 로마의 전통에 따르면, 이 조약, 즉 ''카시우스 조약''[5]은 레길루스 호수 전투에서 로마가 동맹을 상대로 승리한 후에 체결되었다. 조약은 로마와 라틴 동맹이 군사적 정복으로 얻은 전리품을 공유하고 (이것은 나중에 기원전 341-338년의 라틴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두 국가 간의 모든 군사 작전은 로마 장군이 지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동맹은 아페닌 산맥의 부족인 아이퀴와 볼스키와 같은 민족들의 공격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연합된 군대로 인해 이들이 라티움을 침략하는 것을 막았다.[1]

3. 2. 로마의 동맹 주도권 장악

로마는 점차 라티움 동맹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된다. 기원전 358년, 로마는 원래의 조약을 갱신하여 로마의 우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는데, 이는 이후 라티움 전쟁(기원전 343년~338년) 발발의 도화선이 되었다.[10] 로마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맹은 해체되었다. 기원전 338년 이후, 라티움 동맹이 없어지자 로마는 라티움 지역 각 도시를 자치시로 삼고 식민시를 건설했다. 그리하여 이들 각 성읍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로마인 식민자로 간주되었다.[15]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통치 기간 동안, 라틴족은 로마의 지도력을 인정하도록 설득되었다. 로마와의 조약이 갱신되었고, 라틴족 군대는 지정된 날에 로마 군대와 연합된 군사력을 형성하기 위해 참석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타르퀴니우스는 로마군과 라틴군으로 구성된 연합 부대를 편성했다.[4]

초기 로마 공화국은 기원전 493년에 라틴 동맹과 동맹을 맺었다. 로마의 전통에 따르면, 이 조약, 즉 ''카시우스 조약''[5]은 레길루스 호수 전투에서 로마가 동맹을 상대로 승리한 후에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로마와 라틴 동맹이 군사적 정복으로 얻은 전리품을 공유하고 (이는 나중에 기원전 341년-338년의 라티움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두 국가 간의 모든 군사 작전은 로마 장군이 지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동맹은 아페닌 산맥의 부족인 아이퀴와 볼스키와 같은 민족들의 공격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연합된 군대로 인해 이들이 라티움을 침략하는 것을 막았다.[1]

로마 왕정의 제7대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치세 하에서, 로마는 라티움 동맹의 주도적 입장에 놓였고, 동맹은 로마가 지정하는 시기에 군대를 제공하여 연합군을 결성하는 조약을 맺었다. 그렇게 하여 타르퀴니우스는 로마와 라티움 군의 혼성을 진행해 갔다.[9]

4. 라티움 전쟁과 동맹의 해체 (기원전 343년 ~ 338년)

로마의 힘이 점차 커지면서 동맹을 지배하게 되었다. 기원전 358년에 원본 조약을 갱신하면서 로마의 지도력이 공식적으로 확립되었고, 결국 라틴 전쟁 (기원전 343년~338년)의 발발을 촉발했다.[1] 로마의 승리 이후, 동맹은 해체되었다.

기원전 338년, 라틴 동맹이 종말을 고한 후, 로마는 도시의 이름을 ''무니키피아''로 변경하고 그 안에 ''콜로니아''를 설립했다. 이는 이제 도시가 로마(또는 로마 공화국)에 의해 통치되며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로마 식민주의자로 간주됨을 의미했다.[5]

5. 동맹 도시

라티움 동맹은 원래 주변 지역의 적(에트루리아인)에 대한 방어를 위해 알바 롱가 도시의 지도 하에 창설되었다.[1] 카토 (장로)가 기록한 비문의 불완전한 파편에 따르면, 한때 동맹은 투스쿨룸, 아리키아, 라누비움, 라비니움, 코라, 티부르, 포메티아 및 아르데아를 포함했다.[3]

도시
알바 롱가 (창립 도시, 기원전 7세기 중반에 파괴됨)
아르데아
아리키아
카메리아 (기원전 502년 파괴)
코라
라누비움
라비니움
포메티아
티부르
투스쿨룸


참조

[1] 서적 The Encyclopedia of World History Houghton Mifflin 2001
[2] 서적 The Beginnings of Rome: Italy and Rome from the Bronze Age to the Punic Wars Routledge 1995
[3] 서적 The City-State in Latium Kgl. Danske Videnskabernes Selskab 2000
[4] 서적 Ab urbe condita
[5] 서적 The Complete Idiot's Guide to the Roman Empire Alpha Books 2001
[6] 서적 The Encyclopedia of World History Houghton Mifflin 2001
[7] 서적 The Beginnings of Rome: Italy and Rome from the Bronze Age to the Punic Wars Routledge 1995
[8] 서적 The City-State in Latium Kgl. Danske Videnskabernes Selskab 2000
[9] 서적 ローマ建国史
[10] 서적 The Encyclopedia of World History Houghton Mifflin 2001
[11] 서적 The Beginnings of Rome: Italy and Rome from the Bronze Age to the Punic Wars Routledge 1995
[12] 서적 The City-State in Latium Kgl. Danske Videnskabernes Selskab 2000
[13] 서적 로마문명사 현대지성사 1997-12-01
[14] 서적 로마사(A History of the roman people) 현대지성사 1999-03-10
[15] 서적 The Complete Idiot's Guide to the Roman Empire Alpha Book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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