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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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파엘 봄벨리(1526–1572)는 이탈리아의 수학자로, 복소수 이론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572년에 출판된 저서 《대수(Algebra)》에서 당시 알려진 대수학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음수를 사용한 계산 방법을 기록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알려져 있다. 봄벨리는 복소수의 연산 규칙을 제시하고, 허수가 4차 및 삼차 방정식을 푸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예측했다. 또한 그는 제곱근을 계산하기 위해 연분수와 관련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달의 크레이터에 봄벨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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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봄벨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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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라파엘 봄벨리 |
출생 | 1526년 이탈리아 볼로냐 |
사망 | 1572년 |
국적 | 이탈리아 |
연구 분야 | |
분야 | 수학 |
업적 | 허수의 개념을 명확히 함, 대수학 발전 |
주요 저서 | |
저서 | 《대수학》(L'Algebra) |
참고 자료 | |
참고 자료 | 라파엘 봄벨리의 대수학 라파엘 봄벨리의 대수학 원본 봄벨리에 대한 추가 정보 |
2. 생애
봄벨리는 당시 최고의 수학자들이 쓴 대수학 서적들이 이 분야를 주의 깊고 철저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학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논문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대수학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의 책은 자체적으로 완결되고 고등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될 예정이었다.
1572년 로마에서 사망했다.[2]
2. 1. 초기 생애와 배경
라파엘 봄벨리는 1526년 1월 20일 교황령 볼로냐에서 세례를 받았다.[2] 그는 양모 상인 안토니오 마졸리(Antonio Mazzoli)와 디아만테 스쿠디에리(Diamante Scudieri)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졸리 가문은 한때 볼로냐에서 매우 강력한 가문이었다. 1506년 율리우스 2세가 권력을 잡자 통치 가문인 벤티볼리오(Bentivoglio) 가문을 추방했다. 벤티볼리오 가문은 1508년 볼로냐를 탈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라파엘의 할아버지는 쿠데타 시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이후 안토니오는 마졸리 가문의 악명을 피하기 위해 성을 봄벨리(Bombelli)로 바꾸고 볼로냐로 돌아올 수 있었다. 라파엘은 여섯 자녀 중 맏이였다. 라파엘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피에르 프란체스코 클레멘티(Pier Francesco Clementi)라는 건축가이자 기술자에게 교육을 받았다.3. 《대수(Algebra)》
봄벨리는 1572년에 출판된 《대수(Algebra)》에서 당시 알려진 대수학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그는 음수를 사용한 계산 방법을 기록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다음은 본문의 발췌이다.
- 플러스 곱하기 플러스는 플러스이다.
-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이다.
- 플러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마이너스이다.
- 마이너스 곱하기 플러스는 마이너스이다.
- 플러스 8 곱하기 플러스 8은 플러스 64이다.
- 마이너스 5 곱하기 마이너스 6은 플러스 30이다.
- 마이너스 4 곱하기 플러스 5는 마이너스 20이다.
- 플러스 5 곱하기 마이너스 4는 마이너스 20이다.
봄벨리는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한 언어를 사용했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내용을 다루었다.
3. 1. 표기법
봄벨리는 그의 저서 『대수』(Algebra) 2권에서 인쇄된 문서에 처음으로 지수 표기법을 도입했다.[3] 방정식 x3 = 6x + 40은 1U3 a. 6U1 p. 40.[3]과 같이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U3은 위에 숫자 3이 있는 둥근 그릇 모양(대문자 U의 곡선 부분과 유사)으로 표기했다. 완전한 기호 표기법은 그 후 곧 프랑스 수학자 프랑수아 비에트에 의해 개발되었다.3. 2. 복소수
봄벨리는 복소수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형태의 방정식의 해에서 인 경우, 즉 삼차 방정식의 판별식이 음수일 때 복소수가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종류의 방정식을 풀려면 어떤 음수의 제곱근과 다른 수의 합의 세제곱근을 구해야 한다.봄벨리는 허수를 실제로 사용하기 전에 복소수의 성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제시한다. 그는 곧바로 허수의 산술 규칙이 실수의 규칙과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이는 후대의 많은 수학자들조차 이 주제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했던 점을 고려하면 큰 업적이었다.
봄벨리는 다른 수학자들처럼 음수의 제곱근을 일반적인 근호로 다루는 대신 특별한 이름을 붙여 혼란을 피했다. 이를 통해 이러한 수들이 양수도 음수도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오일러가 만났던 혼란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봄벨리는 허수 i를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plus of minus)"라고 부르고, -i를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minus of minus)"라고 불렀다.
봄벨리는 허수가 4차 및 삼차 방정식을 푸는 데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예측했다. 당시 사람들은 복소수를 실용적인 방정식을 푸는 도구로만 여겼다. 따라서 봄벨리는 스키피오네 델 페로의 규칙을 사용하여, 카르다노와 같은 다른 수학자들이 포기했던 불능의 경우에서도 해를 구할 수 있었다.
봄벨리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복소수 연산을 설명한다.
- 플러스 바이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는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이다.
- 마이너스 바이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는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이다.
- 플러스 바이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는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이다.
- 마이너스 바이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는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이다.
-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 바이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는 마이너스이다.
-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 바이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는 플러스이다.
-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 바이 플러스 오브 마이너스는 플러스이다.
-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 바이 마이너스 오브 마이너스는 마이너스이다.
실수와 허수의 곱셈을 다룬 후, 봄벨리는 덧셈과 뺄셈의 규칙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실수 부분은 실수 부분끼리, 허수 부분은 허수 부분끼리 더한다는 점을 주의 깊게 지적한다.
4. 봄벨리의 제곱근 계산법
봄벨리는 연분수와 관련된 방법을 사용하여 제곱근을 계산했다. 그는 아직 연분수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아래는 피에트로 카탈디(1613)가 제시한 후대 버전의 알고리즘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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