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마르틴 발트제뮐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르틴 발트제뮐러는 1470년경 독일에서 태어나 1520년 사망한 지도 제작자이다. 그는 1507년, 마티아스 링만과 함께 제작한 세계 지도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신대륙 명칭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발트제뮐러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개정하고 유럽 도로 지도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1507년 세계 지도는 미국 의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독교 학자 - 레기오몬타누스
    레기오몬타누스는 15세기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빈 대학교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고 이탈리아에서 연구하며 《알마게스트》 요약, 《삼각형에 대하여》 저술, 뉘른베르크 과학 출판 인쇄소 설립, 천문 관측 및 역법 개혁 기여, 천문표 제작 등으로 탐험가들에게 활용되었다.
  • 기독교 학자 - 이안 바버
    이안 바버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연구하고 네 가지 유형을 제시하여 과학과 종교 간의 다양한 관점을 분석하는 틀을 제공한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신학자이며, 과학과 종교 사이의 대화를 위한 노력으로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 독일의 기독교 성직자 - 레기오몬타누스
    레기오몬타누스는 15세기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빈 대학교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고 이탈리아에서 연구하며 《알마게스트》 요약, 《삼각형에 대하여》 저술, 뉘른베르크 과학 출판 인쇄소 설립, 천문 관측 및 역법 개혁 기여, 천문표 제작 등으로 탐험가들에게 활용되었다.
  • 독일의 기독교 성직자 -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는 1483년 독일에서 태어난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가로, '오직 믿음으로' 칭의 교리를 확립하고 95개 논제를 발표하여 종교 개혁을 촉발했으며, 독일어 성경 번역과 성직자 결혼 허용에 기여했으나 후기에는 반유대주의적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독일의 지도 제작자 - 마르틴 베하임
    마르틴 베하임은 뉘른베르크 출신의 독일 상인이자 지리학자로, 1492년에 제작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구본인 "에르다프펠"로 유명하며, 이는 당시 유럽인들의 세계관과 지리적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독일의 지도 제작자 - 게오르크 요아힘 레티쿠스
    오스트리아 태생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지도 제작자인 게오르크 요아힘 레티쿠스는 코페르니쿠스의 유일한 제자로서 지동설을 알리고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출판을 추진했으며, 삼각법 연구와 지도 제작에도 기여했으나 말년에 불운을 겪었다.
마르틴 발트제뮐러 - [인물]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마르틴 발트제뮐러
원어 이름Martin Waldseemüller
출생일1470년경
출생지신성 로마 제국 바덴 변경백국 볼펜바일러 (현재의 독일 샬슈타트)
사망일1520년 3월 16일
사망지신성 로마 제국 로렌 공국 생디에 (현재의 프랑스 생디에데보주)
직업지도 제작자
모교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사조독일 르네상스
기타
참고

2. 생애

발트제뮐러의 삶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470년경 독일 볼펜바일러에서 태어나 정육점 주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프라이부르크로 이주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마티아스 링만(Matthias Ringmann)을 알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로렌 공국생디에데보주에서 천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지도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520년 생디에데보주에서 생을 마감했다.[6][7]

2. 1. 출생과 교육

마르틴 발트제뮐러는 1470년경 독일 볼펜바일러(Wolfenweiler)에서 정육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480년경 가족과 함께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로 이주했다.[1][2] 1490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University of Freiburg)에 입학하여 저명한 인문주의 학자 그레고어 라이슈(Gregor Reisch)에게 가르침을 받았다.[1][2] 인쇄업자 요하네스 쇼트(Johannes Schott)가 그의 동급생이었다.[3] 대학교 졸업 후 바젤(Basel)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바젤의 인쇄업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인쇄 및 조각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4][5]

2. 2. 생디에데보주 시기

1500년경, 로렌 공국생디에데보주(Saint-Dié-des-Vosges)에서 르네 2세의 후원 아래 인문주의 학자들의 모임인 '김나지움 보가장(Gymnasium Vosagense)'이 결성되었다. 발터 루드(Walter Lud)가 이 그룹의 지도자였으며, 발트제뮐러는 지도 제작 기술을 인정받아 그룹에 초청되었다. 마티아스 링만(Matthias Ringmann)도 그리스어와 라틴어 지식을 바탕으로 그룹에 합류했으며, 발트제뮐러와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다.[6][7] 이들의 초기 목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Geography)』의 새로운 판을 출판하는 것이었다.[6]

대학 졸업 후, 발트제뮐러는 로트링겐 공국의 생트디에(Saint-Dié, 현재 프랑스 로렌생디에데보주)에서 천문학 교수직을 맡았으며, 링만과 함께 지도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2. 3. 말년

1514년부터 성 디에 대성당의 교구 사제로 재직했다.[6][7] 1520년 3월 16일, 신성 로마 제국 상라인주(당시 로렌 공국) 성 디에에서 사망했다.[6][7]

3. 주요 업적

1507년 제작 지도


1520년 제작 지도


발트제뮐러는 지도 제작, 측량, 인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507년 4월 25일, 마티아스 링만과 함께 두 종류의 세계 지도를 제작하여 그 안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첫 번째 지도는 구형 세계 지도의 전개도였고, 다른 하나는 12장으로 나뉜 거대한 세계 지도였다. 이 지도들에는 지도학 입문서인 「우주誌入門」이 함께 출판되었으며, 여기에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항해 기록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기록이 위작이라고 생각한다. 책에는 신대륙을 발견자인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명명했다는 설명이 있다.

> ''ab Americo Inventore...quasi Americi terram sive Americam'' (아메리고 발견자로부터… 마치 아메리쿠스의 땅, 즉 아메리카처럼)

1513년, 베스푸치의 역할이 과대평가되었다는 항의 또는 북아메리카 발견에 대한 기대로 인해 발트제뮐러는 "아메리카"라는 명칭을 재고하여, 개정된 지도에서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이미 "아메리카"라고 기록된 지도가 1,000부 유통되어 신대륙은 "아메리카"로 알려지게 되었다. 일부 문서에서 북아메리카는 "인도 제국"(Indies)으로 기록되었지만, 점차 "아메리카"로 통일되었다.[9]

벽걸이용 세계 지도는 오랫동안 소실되었지만, 1901년 조제프 피셔에 의해 복사본이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유일한 복사본은 미국 의회 도서관에 의해 2003년에 매입되었다. 구형 세계 지도는 4부가 미절단 상태로 미네소타 대학교 트윈 시티 캠퍼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10]

3. 1. 1507년 세계 지도

1506년, 김나지움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에게 귀속되는 소책자인 소데리니 편지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입수했다. 이 편지는 베스푸치가 대서양 서쪽에서 발견된 땅의 해안을 탐험했다는 네 번의 항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으며, 김나지움은 이것이 고전 작가들이 가정했던 "신세계" 또는 "대척점"이라고 추측했다. 소데리니 편지는 이 새로운 대륙의 발견에 대한 공로를 베스푸치에게 돌리고, 새로 입수한 포르투갈 지도가 그의 탐험을 기반으로 했다고 암시했다.[8]

링만이 우주지리학 개론을 쓰는 동안, 발트제뮐러는 프톨레마이오스, 헨리쿠스 마르텔루스, 알베르토 칸티노, 니콜로 데 카베리오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지도를 포함한 여러 자료를 사용하여 세계 지도 제작에 집중했다. 1507년 4월, 발트제뮐러는 링만과 함께 두 종류의 세계 전도를 제작하여 그 안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는 설명이 링만이 쓴 ''개론''에 있다.[9] 링만은 편지 서문에서 "저는 명석한 천재인 발견자 아메리고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에 대해 누군가가 적절하게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적절한 형태는 아메리게(Amerige), 즉 아메리고의 땅, 또는 아메리카(America)가 될 것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는 여성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니까요."라고 썼다.[8]

발트제뮐러는 12개 패널로 된 대형 벽걸이 지도 외에도 더 작고 단순화된 지구본을 만들었다. 벽걸이 지도에는 프톨레마이오스아메리고 베스푸치의 두드러진 초상화가 장식되어 있었다. 이 지도와 지구본은 신세계를 아시아와 분리된 대륙으로 보여주고 남쪽 대륙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지도, 지구본, 그리고 딸린 책인 ''우주지리학 개론''은 1507년 4월까지 출판되었고, 천 권이 인쇄되어 유럽 전역에 판매되었다.[9]

''개론''과 지도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첫 해에만 네 번의 판본이 인쇄되었다. 이 지도는 대학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제작에 들어간 장인 정신에 감탄한 지도 제작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종종 포함한 다른 지도들이 인쇄되었다. 발트제뮐러는 이 이름이 브라질의 특정 지역에만 적용되도록 의도했지만, 다른 지도에서는 이 이름을 대륙 전체에 적용했다. 1538년,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는 자신의 영향력 있는 지도에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명명하는 데 아메리카를 사용했고, 이 시점에서 이 이름은 신세계에 확실하게 고정되었다.[10]

1513년, 발트제뮐러는 "아메리카"라는 명명에 대해 재고한 것으로 보이며, 개정된 지도에서 이 대륙을 단순히 라틴어로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이 개정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라고 기록된 두 장짜리 세계 지도는 이미 1,000부가 유통되었고, 이 신대륙은 "아메리카"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벽걸이용 세계 지도는 오랫동안 소실되었지만, 1901년 요제프 피셔에 의해 남독일의 성에서 복사본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현존하는 유일한 복사본이며, 미국 의회 도서관에 의해 2001년 구매가 제안되어 2003년에 공식적으로 매입되었다. 구형 세계 지도는 4부가 미절단 상태로 현존하며, 그중 일부가 아메리카 대륙 쪽에 있고, 미네소타 대학교 트윈 시티 캠퍼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3. 2. 1513년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

1507년 이후, 발트제뮐러와 링그만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의 새로운 판을 계속해서 작업했다. 1508년, 링그만은 이탈리아로 여행하여 《지리학》의 그리스어 사본(Codex Vaticanus Graecus 191|코덱스 바티카누스 그라이쿠스 191grc)을 입수했다.[11][12] 이 중요한 참고 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은 계속해서 진전을 이루었고, 발트제뮐러는 지도 제작을 완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후원자였던 르네 2세 공작이 1508년에 사망하면서 완성은 지연되었다. 새로운 판은 마침내 1513년 스트라스부르의 요하네스 쇼트(Johannes Schott)에 의해 인쇄되었다. 그때까지 발트제뮐러는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었고, 그의 지도 제작 작업에 대한 공로는 인정받지 못했다.[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도는 지도 제작 과학에 중요한 공헌으로 인정받았으며 수십 년 동안 표준 참고 자료로 간주되었다.[13]

발트제뮐러의 약 20개의 '타불라에 모데르네(tabulae modernae)'(근세 지도)가 새로운 《지리학》에 별도의 부록인 '클라우디이 프톨레마이이 수플레멘툼(Claudii Ptolemaei Supplementem)'으로 포함되었다. 이 부록은 최초의 근세 아틀라스를 구성한다.[14] 로렌과 라인 상류 지역의 지도는 그 지역의 최초의 인쇄 지도였으며, 아마도 발트제뮐러 자신이 수행한 측량 작업을 기반으로 했을 것이다.[15]

1513년 《지리학》에 출판된 세계 지도는 발트제뮐러가 서대서양에서 발견된 땅의 이름과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했음을 시사한다. 신대륙은 더 이상 아시아와 분리된 대륙으로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았고,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미지의 땅)로 바뀌었다. 그가 이러한 변경을 하게 된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아메리고 베스푸치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발견 우선권을 빼앗았다는 당시의 비판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16]

3. 3. 기타 작품

발트제뮐러는 측량과 측량 장비에도 관심이 많았다. 1508년 그레고어 라이슈의 『마르가리타 필로소피카』(Margarita Philosophica) 4판에 측량과 원근법에 관한 논문을 기고했다. 그는 자신이 폴리메트룸(polimetrum)이라고 부르는 측량 장비인 세오돌라이트의 전신을 묘사한 그림을 포함시켰다.[17] 1511년 유럽의 중요한 무역로와 중부 유럽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길을 보여주는 유럽의 도로 지도인 『카르타 이티네라리아 유로파에』(Carta Itineraria Europae)를 출판했는데, 이는 유럽 최초의 인쇄된 벽지도였다.[17]

1516년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인쇄된 또 다른 대형 세계 벽지도인 『카르타 마리나 나비가토리아』(Carta Marina Navigatoria)를 제작했다. 이 지도는 포르투란 해도 스타일로 디자인되었으며 12장의 인쇄된 시트로 구성되었다.

파리 녹색 지구본(또는 ''Globe vert'')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전문가들에 의해 발트제뮐러의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러한 귀속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3. 4. 1507년 지도의 재발견

1507년에 제작된 벽걸이 지도는 오랫동안 소실되었으나, 1901년 남부 독일 볼페크 성(Schloss Wolfegg)에서 조제프 피셔에 의해 사본이 발견되었다.[19] 이 사본은 현재 알려진 유일한 사본이며, 2003년 5월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이 구입하였다.[19]

4. 유산 및 평가



발트제뮐러는 1507년 4월 25일 링그만과 함께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두 종류의 세계 지도를 제작했다. 하나는 구매자가 잘라서 구체에 붙여 사용하도록 고안된 구형 세계 지도의 전개도였고, 다른 하나는 12장으로 나뉘어 액자에 넣어 전시하기 위한 거대한 세계 지도였다. 이 지도들에는 지도학 입문서인 「우주誌入門」이 함께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는 위작으로 의심받는 베스푸치의 항해 기록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 발트제뮐러는 신대륙을 발견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로 명명할 것을 제안했다.

1513년, 발트제뮐러는 아메리카 발견 및 명명에 있어 베스푸치의 역할이 과대평가되었다는 항의 때문인지, 혹은 북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지역의 발견을 기대했기 때문인지 "아메리카"라는 명칭을 재고했다.[1] 그는 개정된 지도에서 이 대륙을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이라고 표기했다.[1] 그러나 이미 "아메리카"라고 기록된 두 장짜리 세계 지도가 1,000부나 유통되었기 때문에, 신대륙은 "아메리카"로 알려지게 되었다.[1] 일부 문서에서 북아메리카는 "인도 제국"(Indies)으로 계속 기록되었지만, 점차 "아메리카"라는 명칭으로 통일되었다.[1]

오랫동안 소실되었던 벽걸이용 세계 지도는 1901년 요제프 피셔에 의해 남독일의 성에서 복사본이 발견되었다.[2] 현존하는 유일한 복사본인 이 지도는 미국 의회 도서관이 2003년에 공식적으로 매입했다.[2] 구형 세계 지도는 4부가 미절단 상태로 현존하며, 그중 일부가 아메리카 대륙 쪽에 있고, 미네소타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남극에 있는 발트제뮐러 암석은 마르틴 발트제뮐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3]

참조

[1] 서적 Lester
[2] 서적 Meurer
[3] 웹사이트 A Tour of Ptolemy's Maps https://apps.lib.umn[...] University of Minnesota 2021-08-11
[4] 서적 Lester
[5] 서적 Fernández-Armesto
[6] 서적 Lester
[7] 서적 Baldi
[8] 서적 Fernandez-Armesto
[9] 서적 Meurer
[10] 서적 Fernandez-Armesto
[11] 서적 Lester
[12] 서적 Meurer
[13] 서적 Wolff
[14] 서적 Wolff
[15] 서적 Meurer
[16] 서적 Meurer
[17] 서적 Wolff
[18] 서적 Van Duzer 2011
[19] 뉴스 The Map That Named America https://www.loc.gov/[...] Library of Congress 2003-09
[20] 백과사전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두산백과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