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데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야데비는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어머니로, 생몰 연대는 미상이다. 콜리야족 출신으로 추정되며, 석가족의 왕 슈도다나와 결혼했다. 전설에 따르면, 마야는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후 싯다르타를 임신했으며, 룸비니 공원에서 싯다르타를 출산했다. 불교 경전과 예술에서 마야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되며, 종종 출산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인도, 중국, 일본 등지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순산, 육아, 부인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여겨진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콜리야족 - 야쇼다라
야쇼다라는 석가모니 부처의 아내로, 싯다르타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으며, 싯다르타의 출가 후 비구니가 되어 수행하다가 석가모니 열반 2년 전에 열반에 들었다. - 콜리야족 - 안자나
- 인도의 왕비 - 락슈미 바이
락슈미 바이는 1828년 또는 1835년 인도에서 태어나 잔시 왕국의 왕비가 되었고, 남편 사후 영국에 저항하며 1857년 세포이 항쟁에 참여하여 반영 항쟁을 이끌다 1858년 전사, 인도 독립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 인도의 왕비 - 트리샬라
트리샬라는 자이나교 경전에서 24대 티르탕카라인 마하비라의 어머니로 묘사되며, 남편 싯다르타와 함께 23대 티르탕카라인 파르슈바나타를 추종했으며, 마하비라를 임신했을 때 여러 상서로운 꿈을 꾸었다고 전해진다. - 기원전 6세기 인도의 여자 - 야쇼다라
야쇼다라는 석가모니 부처의 아내로, 싯다르타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으며, 싯다르타의 출가 후 비구니가 되어 수행하다가 석가모니 열반 2년 전에 열반에 들었다. - 기원전 6세기 인도의 여자 - 트리샬라
트리샬라는 자이나교 경전에서 24대 티르탕카라인 마하비라의 어머니로 묘사되며, 남편 싯다르타와 함께 23대 티르탕카라인 파르슈바나타를 추종했으며, 마하비라를 임신했을 때 여러 상서로운 꿈을 꾸었다고 전해진다.
마야데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마야 |
다른 이름 | 마하마야 |
로마자 표기 | Māyā |
일본어 표기 | 摩耶夫人 (Maya-bunin) |
기본 정보 | |
출생지 | 데바다하, 콜리야 왕국 |
사망지 | 카필라바스투, 샤카 왕국 |
직업 | 샤카 왕국의 왕비 |
가족 관계 | |
배우자 | 슈도다나 |
자녀 | 싯다르타 가우타마 (붓다) |
부모 | 안자나 (아버지), 술락샤나 (어머니) |
형제자매 | 숩파붓다, 단다파니 (형제),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를 포함한 다섯 자매 |
왕조 정보 | |
왕조 | 샤카 공화국 |
종교 | |
종교 | 브라만교 -> 불교 |
기타 | |
![]() | |
![]() |
2. 생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불교 문헌에서 마야가 싯다르타 탄생 7일 후에 죽어 도솔천에 다시 태어났다는 점에 학자들은 동의한다. 깨달음을 얻은 지 7년 후, 부처가 아비달마를 설법한 도리천을 방문했을 때 마야도 그곳을 방문했다.[5] 싯다르타의 양어머니는 마야의 여동생 프라자파티 (팔리어: Pajāpatī 또는 Mahāpajāpatī Gotamī)가 맡았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후, 3개월 동안 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존경을 표하고 법을 가르치기 위해 방문했다.
2. 1. 탄생과 결혼
마야는 카필라바스투의 샤카 씨족의 통치자인 숫도다나 왕과 결혼했다. 그녀는 숫도다나 왕의 삼촌의 딸이었고 따라서 그의 사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데바다하의 왕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밤, 그녀는 남편 숫도다나의 궁궐에서 잠을 자다가 생생한 꿈을 꾸었다. 그녀는 네 명의 데바(영)에게 이끌려 히말라야의 아노타타 호수로 갔다. 호수에서 목욕한 후, 데바들은 그녀에게 천상의 옷을 입히고, 향수를 바르고, 신성한 꽃으로 장식했다. 곧 흰 연꽃을 코에 들고 있는 흰 코끼리가 나타나 그녀 주위를 세 바퀴 돌고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자궁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코끼리는 사라졌고 여왕은 깨어났다. 코끼리는 위대함의 상징이므로 그녀는 중요한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불교 전통에 따르면, 미래의 부처는 도솔천에 ''보살''로 머물면서 마지막으로 지구에 환생하기 위해 흰 코끼리 형태로 변하기로 결정했다. 마야는 기원전 563년경에 싯다르타를 낳았다. 임신 기간은 열 달이었다. 관습에 따라 여왕은 출산을 위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그녀는 가마에서 내려 룸비니 공원, 룸비니 구역, 네팔의 아름다운 꽃 정원에서 살 나무 (''Shorea robusta'') 아래에서 산책을 했는데, 이는 종종 아소카 나무 (''Saraca asoca'')와 혼동된다. 마야 데비는 공원에 기뻐하며 살 가지를 잡고 서서 출산했다. 전설에 따르면 싯다르타 태자가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4월 8일이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그에게 룸비니 구역의 푸스카리니 연못에서 첫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전설에 따르면 데바들이 신생아를 씻기 위해 비를 내리게 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그의 목표를 달성한 자" 또는 "완성된 목표"라는 뜻의 싯다르타로 불렸다.
2. 2. 싯다르타 잉태와 탄생
마야는 카필라바스투의 샤카 씨족 통치자인 숫도다나 왕과 결혼했다. 그녀는 숫도다나 왕의 삼촌의 딸로 그의 사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데바다하의 왕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밤, 마야는 남편 숫도다나의 궁궐에서 잠을 자다가 생생한 꿈을 꾸었다. 네 명의 데바(영)에게 이끌려 히말라야의 아노타타 호수로 갔다. 호수에서 목욕한 후, 데바들은 그녀에게 천상의 옷을 입히고, 향수를 바르고, 신성한 꽃으로 장식했다. 곧 흰 연꽃을 코에 들고 있는 흰 코끼리가 나타나 그녀 주위를 세 바퀴 돌고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자궁으로 들어갔다. 코끼리는 위대함의 상징이므로 그녀는 중요한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불교 전통에 따르면, 미래의 부처는 도솔천에 보살로 머물면서 마지막으로 지구에 환생하기 위해 흰 코끼리 형태로 변하기로 결정했다. 마야는 기원전 563년경에 싯다르타를 낳았다. 임신 기간은 열 달이었다. 관습에 따라 여왕은 출산을 위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그녀는 가마에서 내려 룸비니 공원 (룸비니 구역, 네팔)의 아름다운 꽃 정원에서 살 나무(Shorea robusta) 아래에서 산책을 했는데, 이는 종종 아소카 나무(Saraca asoca)와 혼동된다. 마야 데비는 공원에 기뻐하며 살 가지를 잡고 서서 출산했다. 전설에 따르면 싯다르타 태자가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4월 8일이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그에게 룸비니 구역의 푸스카리니 연못에서 첫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전설에 따르면 데바들이 신생아를 씻기 위해 비를 내리게 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그의 목표를 달성한 자" 또는 "완성된 목표"라는 뜻의 싯다르타로 불렸다.
『라리타 비스타라』(『보요경』, 『방광대장엄경』) 등에 따르면, 마야는 바이샤카 달에 6개의 엄니를 가진 흰 코끼리가 태내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싯다르타를 잉태했다고 전해지며, 그 출산의 모습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들른 룸비니 동산에서 꽃(북방전에서는 아쇼카수〈무우수]〉, 남방전에서는 사르〈
2. 3. 죽음과 도리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불교 문헌에서 마야가 부처 탄생 7일 후에 죽어 도솔천에 다시 태어났다는 점에 학자들은 동의한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지 7년 후, 마야는 부처가 나중에 아비달마를 설법한 도리천을 방문했다.[5]3. 불교 경전과 예술에서의 묘사
불교 문헌과 예술에서 마야 왕비는 아름답고 다산의 전성기에 있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라리타비스타라 수트라에서는 마야 왕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1]
> 그녀의 아름다움은 순금 덩어리처럼 빛난다.
> 그녀는 큰 검은 벌과 같은 향기로운 곱슬머리를 가졌다.
> 연꽃 잎과 같은 눈, 하늘의 별과 같은 이빨을 가졌다.
그녀는 고타마 붓다를 임신했음을 예고하는 꿈을 꾸거나 남편 수도다나 왕과 함께 아들의 삶에 대한 예언을 구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종종 고타마를 출산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사건은 일반적으로 현대 테라이 지역의 룸비니에서 일어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야는 보통 나무 아래 서서 출산하고, 지지하기 위해 머리 위로 손을 뻗어 가지를 잡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불교 학자 미란다 E. 쇼는 마야 왕비의 탄생 장면 묘사가 약시니로 알려진 초기 불교의 나무 정령 묘사에서 확립된 패턴을 따른다고 말한다.[1]
3. 1. 불교 경전
불교 경전에 따르면, 미래의 부처는 도솔천에 보살로 머물면서 마지막으로 지구에 환생하기 위해 흰 코끼리 형태로 변하기로 결정했다. 마야는 기원전 563년경에 싯다르타를 낳았다.[5]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불교 문헌에서 마야가 부처의 탄생 7일 후에 죽어 도솔천에 다시 태어났다는 점에 동의한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지 7년 후, 그녀는 부처가 나중에 아비달마를 설법한 도리천을 방문했다.[5]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후, 그는 존경을 표하고 법을 가르치기 위해 3개월 동안 천국에 있는 어머니를 방문했다.
천상의 마야 부인은 『마하마야경』이나 『화엄경』 입법계품 등의 불전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마하마야경』에 수록된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후, 도리천의 천상으로 올라 마야 부인에게 보고했다는 설화는 유명하며, 그 귀환의 모습을 "삼도보계"라 칭하며 불교 미술의 좋은 소재 중 하나가 되었다.
3. 2. 불교 예술
불교 문헌과 예술에서 마야 왕비는 아름답고 다산의 전성기 여성으로 묘사된다.라리타비스타라 수트라에서는 마야 왕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1]
> 그녀의 아름다움은 순금 덩어리처럼 빛난다.
> 그녀는 큰 검은 벌과 같은 향기로운 곱슬머리를 가졌다.
> 연꽃 잎과 같은 눈, 하늘의 별과 같은 이빨을 가졌다.
그녀는 고타마 붓다를 임신했음을 예고하는 꿈을 꾸거나 남편 수도다나 왕과 함께 아들의 삶에 대한 예언을 구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종종 고타마를 출산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사건은 일반적으로 현대 테라이 지역의 룸비니에서 일어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야는 보통 나무 아래 서서 출산하고, 지지하기 위해 머리 위로 손을 뻗어 가지를 잡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불교 학자 미란다 E. 쇼는 마야 왕비의 탄생 장면 묘사가 약시니로 알려진 초기 불교의 나무 정령 묘사에서 확립된 패턴을 따른다고 말한다.[1]
천상의 마야 부인은 『마하마야경』이나 『화엄경』 입법계품 등의 불전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마하마야경』에 수록된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후, 도리천의 천상으로 올라 마야 부인에게 보고했다는 설화는 유명하며, 그 귀환의 모습을 "삼도보계"라 칭하며 불교 미술의 좋은 소재 중 하나가 되었다.[1]
4. 신앙
마야데비 신앙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니치렌 종 사찰에서 마야 부인을 숭상하는 경우가 많다. 마야 부인은 일반적으로 순산, 육아, 부인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묘에 쇼닌이나 이즈미 쿄카처럼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갖는 경우도 있다.
4. 1. 인도
인도에서의 신앙이 중국, 일본에 전파되었고, 특히 일본에서는 니치렌 종의 사찰에서 마야 부인을 숭상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순산, 육아, 부인병 등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묘에 쇼닌(明恵上人)이나 이즈미 쿄카처럼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4. 2. 한국
마야데비 신앙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니치렌 종 사찰에서 마야 부인을 숭상하는 경우가 많다. 마야 부인은 일반적으로 순산, 육아, 부인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묘에 쇼닌이나 이즈미 쿄카처럼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갖는 경우도 있다.[1]5. 다른 종교와의 비교
부처의 탄생 설화와 예수의 탄생 설화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점이 제시되어 왔다.[6] Z. P. Thundy는 마야가 낳은 부처와 마리아가 낳은 예수의 탄생 설화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사했으며, 유사점이 있을 수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마리아는 예수를 키운 후 그보다 오래 살지만, 마야는 불교 전통에서 모든 부처의 어머니가 그렇듯 부처가 태어난 직후 죽는다.[6] Thundy는 기독교의 예수 탄생 설화가 불교 전통에서 파생되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어쩌면 기독교 학자들이 그 아이디어의 출처를 불교 전통에서 찾아볼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한다.[6]
Eddy와 Gregorio A. Boyd는 외부 출처가 신약의 저자에게 역사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하며, 일부 학자들은 1세기 일신교 갈릴리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교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에 열려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그러한 역사적 영향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7]
참조
[1]
웹사이트
La reine Maya Devi donnant naissance au prince Siddhârta, le futur Buddha Cakyamuni
https://www.photo.rm[...]
2020-11-14
[2]
서적
Buddhist Goddesses of India
2006-10-16
[3]
서적
History of Buddhist Thought
2000-12-01
[4]
논문
Sanskrit "mā-" 'To Make, Produce, Create'
https://www.jstor.or[...]
1980
[5]
웹사이트
Māyā
http://www.palikanon[...]
2018-04-07
[6]
서적
Buddha and Christ
1993
[7]
서적
The Jesus legend: a case for the historical reliability of the synoptic gospels
2007
[8]
서적
岩波『哲学・思想事典』「ゴータマ・ブッダ」
[9]
웹사이트
摩耶夫人
https://kotobank.jp/[...]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