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로우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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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매로우 논쟁은 18세기 초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일어난 신학적 논쟁으로, 《현대 신학의 정수》라는 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발생했다. 이 책은 토머스 보스턴 목사가 연구하여 1718년 제임스 호그의 서문과 함께 재출간되었으나, 스코틀랜드 교회 주류는 이 책이 율법폐기론적이라고 비판했다. 논쟁은 교리의 순수성을 위한 위원회 보고서, 대표자들의 청원, 총회의 결정 등을 거치며 진행되었고, 결국 매로우 지지자들은 스코틀랜드 교회를 떠나 연합 장로회를 결성했다. 매로우 형제들은 보편 속죄를 거부했지만, 일반 은총과 하나님의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점을 믿었으며, 행위 언약의 재공포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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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로우 논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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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주제 | 1718–1720년대 스코틀랜드 신학 논쟁 |
관련 주제 | 오처터디어 신조 마로우 오브 모던 디비니티 에드워드 피셔 마로우 형제단 토마스 보스턴 제임스 호그 에베네저 어스킨 로버트 리칼턴 랠프 어스킨 준회중교회 신율주의자 제임스 하도우 총회 행위 언약의 공화국 확신 복음의 자유로운 제안 언약 신학 율법과 복음 율법폐기론 율법주의 오직 믿음으로 회개 |
2. 역사적 배경
18세기 초 스코틀랜드 교회 내 신학적 논쟁의 배경 속에서 매로우 논쟁이 발생했다. 1700년, 토머스 보스턴 목사는 심프린 교구에서 《현대 신학의 정수》라는 책을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1717년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에서 동료 목회자들에게 추천했으며, 그 결과 1718년 제임스 호그가 서문을 써서 책이 재출간되었다.
이 책의 재출간과 맞물려, 오처더레이터 노회는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 죄를 뉘우치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내용의 오처더레이터 신조를 발표했다.[3][4][5][6] 하지만 이 신조는 1717년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비판받았으며, 총회는 회개를 통해 죄를 버려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7][8]
《현대 신학의 정수》의 재출간은 교회 내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신학 교수였던 제임스 해도우는 1719년 설교를 통해 이 책이 율법폐기론적 사상을 담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책의 서문을 썼던 제임스 호그는 해도우가 책의 내용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팸플릿을 통한 본격적인 신학 논쟁이 시작되었다.
2. 1. 《현대 신학의 정수》 출간과 초기 반응

1700년,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였던 토머스 보스턴은 작은 시골 교구인 심프린을 방문하던 중 《현대 신학의 정수》(The Marrow of Modern Divinity)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을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1717년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 목사들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이러한 논의를 계기로 1718년, 카녹의 제임스 호그가 서문을 써서 《현대 신학의 정수》가 재출간되었다.
한편, 이 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오처더레이터 노회는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 죄를 뉘우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의 오처더레이터 신조를 발표했다.[3][4][5][6] 그러나 이 신조는 1717년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에서 비난받았으며, 총회는 사람이 회개를 통해 죄를 없앤 후에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확인했다.[7][8]
《현대 신학의 정수》 재출간은 스코틀랜드 교회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신학 교수이자 세인트 메리 칼리지 학장이었던 제임스 해도우는 1719년 4월 파이프 시노드 개회 설교에서 이 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반대 입장을 주도했다. 이 설교는 후에 ''하나님의 기록과 그 안에 요구되는 믿음의 의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해도우는 《현대 신학의 정수》가 율법폐기론 사상을 담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이에 대해 책의 서문을 쓴 제임스 호그는 해도우가 책의 내용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팸플릿을 통한 논쟁을 벌였다.
2. 2. 오처더레이터 신조와 초기 논쟁
1700년,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였던 토마스 보스턴은 작은 시골 교구인 심프린을 방문하던 중 ''현대 신학의 정수''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으며, 1717년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 목사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이 추천을 계기로 1718년에는 카녹의 제임스 호그가 서문을 덧붙여 ''현대 신학의 정수''를 다시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오처더레이터 노회는 오처더레이터 신조를 발표했는데, 이는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 죄를 뉘우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입장을 담고 있었다.[3][4][5][6]
그러나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는 1717년에 이 오처더레이터 신조를 공식적으로 비난했다.[7] 총회는 사람이 회개를 통해 죄를 없앤 후에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8]
이 논쟁은 1719년 4월,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신학 교수이자 세인트 메리 칼리지 학장이었던 제임스 해도우가 파이프 시노드 개회 설교에서 ''현대 신학의 정수''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이 설교는 이후 ''하나님의 기록과 그 안에 요구되는 믿음의 의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해도우는 ''현대 신학의 정수''를 반율법주의 이단으로 규정했고, 이에 제임스 호그는 해도우가 책의 내용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서로 팸플릿을 통한 논쟁을 벌였다.
2. 3. 제임스 해도우의 비판과 반박
1700년,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였던 토머스 보스턴은 심프린 교구를 방문하던 중 ''현대 신학의 정수''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을 높이 평가하여 1717년 총회에서 동료 목사들에게 추천했고, 그 결과 1718년 제임스 호그가 서문을 써서 이 책이 재판되었다.그러나 이 책의 재출간은 스코틀랜드 교회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신학 교수이자 세인트 메리 칼리지 학장이었던 제임스 해도우는 1719년 4월, 파이프 시노드 개회 설교에서 ''현대 신학의 정수''를 강하게 비판하며 논쟁의 선두에 섰다. 이 설교는 이후 ''하나님의 기록과 그 안에 요구되는 믿음의 의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해도우는 이 책이 율법폐기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책의 서문을 썼던 제임스 호그는 해도우가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로 인해 해도우와 호그 사이에는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팸플릿 논쟁이 벌어졌다.
3. 교리의 순수성을 위한 위원회 보고
1719년 5월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에서는 기존의 "교리 순수성 위원회"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과 일치하지 않는 교리를 퍼뜨리는 책과 팸플릿의 출판 및 유포를 조사하고 해당 저자들을 소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720년 5월, 위원회는 보고서를 제출하여 현대 신학의 정수(The Marrow of Modern Divinity)라는 책이 율법폐기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총회는 이 보고서를 압도적으로 승인하고, 스코틀랜드 교회의 모든 목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매로우를 추천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교인들에게 이 책을 읽지 않도록 경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총회의 결정은 역설적으로 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책을 스코틀랜드 전역에 알리는 결과를 낳았다. 많은 사람들이 금지된 책에 호기심을 느껴 사본을 구하고 주의 깊게 읽기 시작했다.
4. 대표성과 청원
1721년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에서 토머스 보스턴, 제임스 호그, 랄프 어스킨, 에베네저 어스킨을 포함한 12명의 목회자들이 "진술 및 청원"을 제출했다. 이들은 총회가 《매로우》를 비난하면서 성경적인 내용과 정통 신학자들이 가르쳐 온 표현들, 그리고 스코틀랜드 교회의 교리 기준에 맞는 내용까지 정죄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총회 보고서가 책의 여러 표현을 문맥에서 벗어나게 인용하여 가르침을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의 청원은 기각되었다.
1722년 총회에서는 《매로우》에 대한 비난을 재확인했으며, 청원을 제출했던 12명의 목회자들은 훈계를 받았다. 이후 《매로우》 반대파들은 해당 교리를 가르치는 목회자를 제지하려 했지만, 실제로 효율적인 징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5. 연합 장로회(Associate Presbytery)
매로우 논쟁 이후, 『매로우』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매로우 교리를 지지하는 목사들이 더 영향력 있는 목회직을 얻지 못하도록 노력했지만, 실질적인 징계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교회 내의 공식적인 논쟁은 점차 줄어들었으나, 신학적인 견해 차이는 계속되었다.
1730년대에 들어서면서, 후원 문제와 같은 다른 사안에 대한 갈등이 발생하자 매로우 신학의 일부 지지자들은 스코틀랜드 교회를 떠나 연합 장로회를 새롭게 결성했다. 이들이 세운 새로운 교회의 신학적 토대는 『매로우』의 독특한 교리에 기반을 두었다.
한편, 1726년에는 토마스 보스턴이 서문과 함께 광범위한 주석을 달아 『매로우』의 새로운 판을 출판했다. 이 판본은 성경을 근거로 매로우의 가르침을 옹호하고 설명했으며, 이후 약 300년 동안 여러 차례 다시 인쇄되면서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6. 매로우 형제들의 신학적 관점
매로우 형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보편 속죄는 거부했지만, 일반 은총의 개념과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9] 그들은 당시 엄격한 교리를 강조하던 "고칼뱅주의"를 비판하며,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오직 믿음만이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로우 형제는 회개나 내적, 외적 개혁과 같은 행위들이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대신, 이러한 행동들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라고 이해했다.
또한 매로우 형제는 행위 언약의 재공포라는 신학적 개념을 가르쳤다.[10] 그들은 신자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며,[11] 이러한 확신의 근거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당시 총회가 확신을 얻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노력이나 요소를 강조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입장이었다.[12]
참조
[1]
서적
The "Marrow of Modern Divinity" and the Marrow Controversy
https://archive.org/[...]
Scottish Church History Society
2018-08-25
[2]
웹사이트
The Whole Christ: Legalism, Antinomianism, and Gospel Assurance – Why the Marrow Controversy Still Matters
https://journal.rts.[...]
2022-11-09
[3]
웹사이트
A Short History of Scotland, by Andrew Lang on Undiscovered Scotland: XXXII: The First Secession
https://www.undiscov[...]
2022-11-13
[4]
웹사이트
Ordained Servant October 2015: A Righteousness Apart from the Law That Is Not against the L
https://opc.org/os.h[...]
2022-11-13
[5]
웹사이트
The Marrow Controversy—Lessons in Free Grace
https://www.monergis[...]
2022-11-13
[6]
웹사이트
Chapter 6: The Marrow Controversy
http://www.prca.org/[...]
2022-11-13
[7]
서적
Scottish Federalism and Covenantalism in Transition: The Theology of Ebenezer Erskine
https://books.google[...]
James Clarke & Co
2022-11-14
[8]
웹사이트
Ordained Servant October 2015: A Righteousness Apart from the Law That Is Not against the L
https://opc.org/os.h[...]
2022-11-13
[9]
서적
The Presbyterian Philosopher: The Authorized Biography of Gordon H. Clark
https://books.google[...]
Wipf and Stock Publishers
2017-01-24
[10]
서적
The Covenant Theology of Jonathan Edwards: Law, Gospel, and Evangelical Obedience
https://books.google[...]
Wipf and Stock Publishers
2021-05-13
[11]
서적
The Marrow Controversy and Seceder Tradition: Atonement, Saving Faith, and the Gospel offer in Scotland (1718-1799)
https://books.google[...]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1-11-01
[12]
서적
The Shaping of Ulster Presbyterian Belief and Practice, 1770–1840
https://books.google[...]
OUP Oxford
200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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