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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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은 1956년 개장하여 미네소타 트윈스, 미네소타 바이킹스, 미네소타 킥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다. 1960년 미네소타 트윈스가 메이저 리그 팀으로 이적하면서 야구와 미식축구 경기가 모두 열렸으며, 1965년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과 월드 시리즈가 개최되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노후화가 진행되었고, 1981년 트윈스와 바이킹스가 메트로돔으로 이전하면서 폐쇄되었다. 이후 1985년 철거되었으며, 현재는 몰 오브 아메리카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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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 - [경기장/극장]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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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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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The Met (더 멧) "Met Stadium" ("멧 스타디움") "Old Met" ("올드 멧") |
위치 | 미국 미네소타주 블루밍턴 Cedar Avenue South 8000 |
기공 | 1955년 6월 20일 |
개장 | 1956년 4월 24일 |
폐장 | 1981년 12월 20일 |
철거 | 1985년 1월 28일 |
소유주 | 미니애폴리스 시 (1956–1977) 메트로폴리탄 스포츠 시설 위원회 (1977–1981) |
표면 | 천연 잔디 |
건설 비용 | 850만 미국 달러 ($ }} in dollars) |
설계사 | 오스본 건축 & 엔지니어 토르쇼프 앤 체르니 |
구조 엔지니어 | 테퍼 엔지니어링 |
일반 시공사 | 존슨, 드레이크 & 파이퍼/킴메스/악셀 오만 |
이전 명칭 | 해당 없음 |
사용 | |
테넌트 | 미니애폴리스 밀러스 (AA) 1956–1960 미네소타 트윈스 (MLB) 1961–1981 미네소타 바이킹스 (NFL) 1961–1981 미네소타 킥스 (NASL) 1976–1981 시카고 카디널스 (NFL) 1959 (2경기) |
좌석 수 | 야구: 18,200 (1956) 21,000 (1957–1959) 30,022 (1960–1961) 39,525 (1962) 40,073 (1963–1964) 45,182 (1965–1969) 45,914 (1970–1972) 45,921 (1973–1974) 45,919 (1975–1981) 미식축구: 41,200 (1961–1964) 47,900 (1965–1970) 49,784 (1971–1973) 47,900 (1974–1976) 48,446 (1977–1981) |
규모 | 왼쪽 필드: 343 ft (약 104.5 m) 왼쪽 중간: 365 ft (약 111.3 m) 중앙 필드: 402 ft (약 122.5 m) 오른쪽 중간: 370 ft (약 112.8 m) 오른쪽 필드: 330 ft (약 100.6 m) 백스톱: 60 ft (약 18.3 m) |
벽 높이 | 8 ft (약 2.4 m) |
2. 역사
1950년대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팀을 미네소타로 유치하기 위해 현대식 경기장 건설이 추진되었다. 여러 부지가 검토된 끝에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시내에서 거의 같은 거리에 있는 블루밍턴의 160에이커 농지가 경기장 부지로 선정되었다.[4][7] 1955년 6월 20일 기공식이 열렸으나,[5] 부지 소유주들과의 분쟁으로 공사가 지연될 뻔했다. 이 분쟁은 기공식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제때 해결되었다.[5] 1956년 4월 24일,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은 미니애폴리스 밀러스와 위치타 브레이브스 간의 마이너 리그 경기를 개최하며 개장했다.[4]
1950년대에 메이저 리그 구단주들은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을 마이너 리그 최고의 시설이라고 평가했다.[7]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비롯해 워싱턴 세너터스(현 미네소타 트윈스), 신시내티 레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 여러 팀과의 협상이 진행되었다.[8] 그러나 자이언츠는 브루클린 다저스(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구단주 월터 O'말리의 권유에 따라 브루클린 다저스와 함께 서부 해안으로 이전했다.[5]
1960년 10월, 캘빈 그리피스는 자신의 워싱턴 세네터스를 미네소타 트윈스로 개명하고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9] 1961년 4월 21일, 트윈스는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에서 첫 홈 경기를 치렀다.[9] 트윈스 유치를 위해 900만 달러를 들여 좌석을 30,000석 이상으로 확장했다.[9]
내셔널 풋볼 리그(NFL)도 메트에 팀을 유치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시카고 카디널스와 팀 이전 관련 논의가 있었고,[8] 카디널스는 1959년 정규 시즌 홈 경기 중 필라델피아 이글스 및 뉴욕 자이언츠와의 두 경기를 블루밍턴에서 치렀다.[12] 1956년부터 1960년까지 매년 9월 메트에서 프리시즌 풋볼 경기가 열렸다.
연도 | 경기 |
---|---|
1956년 9월 15일 | 피츠버그 스틸러스 14, 필라델피아 이글스 12 |
1957년 9월 21일 | 그린베이 10, 피츠버그 10 |
1958년 9월 21일 | 시카고 카디널스 31, 그린베이 24 |
1959년 9월 20일 | 그린베이 13, 피츠버그 10 |
1960년 9월 11일 | 그린베이 28, 댈러스 카우보이스 23 |
아메리칸 풋볼 리그(AFL)가 1960년 시즌 창립 도시 중 하나로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을 발표하면서 메트는 풋볼 팀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NFL은 1960년 1월 팀 소유주들을 설득하여 AFL에서 탈퇴하고 확장 팀으로 1961년에 NFL에 합류하도록 했고, 이 팀은 나중에 미네소타 바이킹스로 명명되었다. 1961년, 미네소타 바이킹스가 창단되어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은 캔틸레버 구조를 사용하여 관중석 시야를 가리는 기둥을 없앴다.[5] 파울 라인은 좌측(동쪽) 약 104.55m, 우측(남쪽) 약 100.58m로 짧은 편이었다.[7] 풋볼 경기 시에는 3루 부근에서 우익수(남북 방향)로 경기장이 설치되었으며, 경기장과 엔드 존을 설치할 공간이 거의 없었다.[5] 1965년에는 좌익수에 2층 그랜드 스탠드가 설치되어 풋볼 경기 시 최고의 사이드라인 좌석을 제공했다.[18]
2. 1. 초기 역사 및 건설
1953년, 보스턴 브레이브스가 밀워키로 이전한 것에 영감을 받아, 미니애폴리스 상공회의소 회장 제럴드 무어는 메이저 리그 팀을 미네소타로 유치하기 위해 현대식 경기장 건설을 추진했다. 여러 부지가 거부된 후, 블루밍턴의 160acre 농지가 경기장 부지로 승인되었다.[4] 이 부지는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시내에서 거의 같은 거리에 있어 최적의 장소로 여겨졌다.[7]건축가 손쇼 & 세르니의 계획에 따라 1955년 6월 20일, 에릭 G. 호이어 미니애폴리스 시장과 미니애폴리스 밀러스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이 열렸다.[5] 그러나 부지 소유주들이 대금 미지급을 이유로 항의하면서 공사가 지연될 뻔했다. 이 분쟁은 기공식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제때 해결되었다.[5]
1956년 2월 7일, 경기장 지하에서 콘크리트 양생용 히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50000USD의 수리 비용과 3주간의 지연 끝에,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은 1956년 4월 24일 미니애폴리스 밀러스와 위치타 브레이브스 간의 마이너 리그 경기를 개최하며 개장했다.[4]
2. 2. 메이저 리그 팀 유치 노력
1950년대에 메이저 리그 구단주 캘빈 그리피스와 호레이스 스톤햄은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을 마이너 리그 최고의 시설이라고 평가했다. 스톤햄은 "당시 메이저 리그 경기장 중 이보다 더 좋은 곳은 두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7]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5] 당시 메이저 리그 규정에 따라 밀러스를 소유함으로써 자이언츠는 미니애폴리스에 대한 메이저 리그 권리를 소유했다. 워싱턴 세너터스(현 미네소타 트윈스), 신시내티 레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도 협상이 진행되었다.[8] 그러나 자이언츠는 브루클린 다저스(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구단주 월터 O'말리의 권유에 따라 브루클린 다저스와 함께 서부 해안으로 이전했다. O'말리는 밀러스의 라이벌인 세인트폴 세인츠를 소유하고 있었다.2. 3. 미네소타 트윈스와 바이킹스의 홈구장
1960년 10월, 캘빈 그리피스는 자신의 워싱턴 세네터스를 미네소타 트윈스로 개명하고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1961년 4월 21일, 트윈스는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에서 첫 홈 경기를 치렀으나 새로운 워싱턴 세네터스(현재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패했다.[9] 트윈스 유치를 위해 900만 달러를 들여 좌석 수를 30,000석 이상으로 확장했다.[9] 트윈스가 메트에서 보낸 첫 10시즌 동안 매년 평균 아메리카 리그 팀보다 더 많은 관중을 동원했다.[8]내셔널 풋볼 리그(NFL)도 메트에 팀을 유치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시카고 카디널스의 소유주인 바이올렛 비드윌 울프너와 팀 이전 관련 논의가 있었다.[8] 카디널스는 1959년 정규 시즌 홈 경기 중 필라델피아 이글스(10월 25일, 관중 20,112명)[10] 및 뉴욕 자이언츠(11월 22일, 관중 26,625명)[11]와의 두 경기를 블루밍턴에서 치렀다.[12] 1956년부터 1960년까지 매년 9월 메트에서 프리시즌 풋볼 경기가 열렸다.
연도 | 경기 |
---|---|
1956년 9월 15일 | 피츠버그 스틸러스 14, 필라델피아 이글스 12 (관중: 14,742명) |
1957년 9월 21일 | 그린베이 10, 피츠버그 10 (관중: 17,226명) |
1958년 9월 21일 | 시카고 카디널스 31, 그린베이 24 (관중: 18,520명) |
1959년 9월 20일 | 그린베이 13, 피츠버그 10 (관중: 18,018명) |
1960년 9월 11일 | 그린베이 28, 댈러스 카우보이스 23 (관중: 20,151명) |
새로운 아메리칸 풋볼 리그(AFL)가 1960년 시즌 창립 도시 중 하나로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을 발표하면서 메트는 풋볼 팀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NFL은 1960년 1월 팀 소유주들을 설득하여 AFL에서 탈퇴하고 확장 팀으로 1961년에 NFL에 합류하도록 했고, 이 팀은 나중에 미네소타 바이킹스로 명명되었다. 1961년, 미네소타 바이킹스(NFL)가 창단되어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 4. 경기장 구조 및 특징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은 캔틸레버 구조를 사용하여 관중석 시야를 가리는 기둥을 없앴다.[5] 파울 라인은 좌측(동쪽) 약 104.55m, 우측(남쪽) 약 100.58m로 짧은 편이어서 하몬 킬레브루와 같은 당겨치는 타자에게 특히 유리했다.[7] 우측의 330 피트 표시는 실제로는 우중간에 더 가까워서 우익수 거리가 더 짧다는 추측을 낳았다.[7][30] 그러나 메트가 1956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이는 트윈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는 1958년 이후에 건설된 모든 구장에 최소 약 99.06m의 파울 라인을 요구했다.[16] 메트 스타디움 거리 표시는 1974~77년에 미터로 표시되었다.풋볼 경기 시에는 3루 부근에서 우익수(남북 방향)로 경기장이 설치되었으며, 경기장과 엔드 존을 설치할 공간이 거의 없었다.[5] 1965년에는 좌익수에 2층 그랜드 스탠드가 설치되어 풋볼 경기 시 최고의 사이드라인 좌석을 제공했다.[18] 이로 인해 메트는 좌익수에 2층 구조, 3루 뒤에 관람석이 있는 독특한 구성을 갖게 되었다.
3. 주요 경기 및 행사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와 NFL을 유치하는 데 기여했지만, 1970년대 초반 노후화가 심각해졌다. 미네소타 바이킹스는 이전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AFL-NFL 합병에 따라 NFL은 50,000석 미만의 경기장은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선언하면서 새로운 경기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28] 초기에는 바이킹스를 위한 경기장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미네소타 트윈스도 곧 논의에 참여했다. 야구 시즌 초와 말에 트윈 시티스에서 흔히 발생하는 혹독한 추위를 감안할 때, 돔구장 건설은 트윈스에게 특히 매력적이었다.[28] 이는 1982년에 완공된 Hubert H. Humphrey Metrodome 건설을 가속화했다.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경기장 마지막 시즌까지 관중석 3층의 부서진 난간은 심각한 안전 위험이 되었고,[30] 선수들은 경기 조건, 특히 내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31]
미네소타 킥스의 마지막 정규 시즌 경기는 1981년 8월 19일 댈러스 토네이도를 상대로 2-1로 승리한 경기였다. 킥스의 메트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털사 로프넥스를 상대로 한 승부차기 플레이오프에서 1-0으로 승리한 경기였다. 킥스의 마지막 경기는 1981년 9월 6일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를 상대로 한 3-0 플레이오프 홈 패배였다.
트윈스는 1981년 9월 30일에 메트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에게 5-2로 패했다.[18] 바이킹스는 1981년 12월 20일에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캔자스시티 치프스에게 10-6으로 패했다.[32] 경기 마지막 몇 분 동안, 팬들은 좌석과 스탠드를 해체하기 시작했고, 경기가 끝나자 수천 명이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22] 골대는 뜯겨 나갔고, 경기장 일부가 파헤쳐졌으며, 전광판의 스피커와 전구가 제거되었다.[22]
메트 스타디움은 바이킹스와 트윈스가 1982년 1월 메트로돔으로 이전하고 킥스가 1981년 축구 시즌 이후 해체되면서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3. 1. 야구
1961년 4월 21일, 트윈스의 새 홈 구장 첫 경기가 세너터스와의 경기에서 열렸으며, 트윈스는 3-5로 패했다.[1]1965년 7월 13일, 올스타 게임이 개최되어 내셔널 리그가 6-5로 아메리칸 리그를 꺾었다. 같은 해 트윈스가 월드 시리즈에 출전하여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2]
1971년 8월 10일, 하몬 킬브루가 통산 500홈런을 달성했다.[3]
1981년 9월 30일, 경기장에서의 트윈스 마지막 경기가 비가 오는 가운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열렸으며, 트윈스는 2-5로 패했다.[4]
3. 2. 미식축구
미네소타 바이킹스는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에서 11번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8승 3패를 기록했다. 1969년 NFL 챔피언십 게임이 이 곳에서 열렸고, 바이킹스는 이 경기에서 승리하여 제4회 슈퍼볼에 진출했다.[2]3. 3. 축구
미네소타 킥스 축구팀은 1976년부터 1981년 11월 팀이 해체될 때까지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북미 축구 리그(NASL) 소속이었던 킥스는 미네소타에서 큰 기대를 모았고, 티켓을 구매하려는 많은 인파를 수용하기 위해 메트에서의 첫 경기를 15분 연기해야 했다.[22] 킥스 구단주들은 상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2천 명의 팬들을 무료로 경기장에 입장시켰다.[22] 한 달 후, 펠레와 뉴욕 코스모스가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에 46,164명의 관중을 불러모아 NASL 관중 기록을 세웠다.[5][22] 킥스 경기에 계속 많은 관중이 몰렸으며, 그 해 플레이오프 개막전에는 41,505명이 찾아왔다. 4일 후, 킥스가 산호세를 3–1로 꺾는 경기에 49,571명의 팬들이 찾아와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5] 이 팀은 미네소타에서 첫 4시즌 동안 매년 디비전 타이틀을 따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5] 그러나 프랜차이즈 말기에는 관중 수가 감소하여 마지막 시즌인 1981년에는 경기당 평균 16,605명이었다.[23] 축구 경기장의 필드 크기는 1976–78년에는 약 91.44m x 약 65.84m, 1979–81년에는 약 95.10m x 약 65.84m였다.3. 4. 콘서트
캐니벌 앤 더 헤드헌터스브렌다 할러웨이
사운즈 인코퍼레이티드
파블로 크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