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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습래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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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고습래회사는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다룬 그림 두루마리이다. 분에이의 역과 고안의 역에 참전한 무사 다케자키 스에나가의 활약을 중심으로, 몽골군의 전투 방식과 일본 무사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몽골군의 경무장 병사, 군선, 데쓰하우 등의 모습은 다른 자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 그림은 역사 연구와 교육 자료로 널리 활용되며, 후대에 가필 및 수정된 부분이 있다는 논란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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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습래회사
개요
모코 슈라이 에코토바
모코 슈라이 에코토바
유형에마키모노
제작 시기가마쿠라 시대 후기
소장황궁
보관도쿄 국립 박물관
문화재 지정국보
소재지도쿄도 지요다구
내용
주제몽골의 일본 침공
길이약 20m
권수2권
화가다케자키 스에나가 (추정)
의뢰인다케자키 스에나가
역사적 의미
중요성몽골 침공 당시의 무기와 전술에 대한 귀중한 정보 제공
특징일본 무사의 갑옷과 무기, 전투 장면의 묘사가 매우 상세함
보존
상태양호 (일부 손상 부분 복원)
공개특별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

2. 내용 구성

다케자키 스에나가를 중심으로 무사들이 몽골군과 실제로 전투를 벌인 상황을 그렸으며, 몽골(원)의 경무장 병사나 군선, 사용된 「데쓰하우」 등을 그린 유일한 그림 자료로써 알려져 있다.[4]

이 그림은 야마토에 양식으로 그려진 삽화와 기록을 번갈아 보여주는 두루마리 형식이다. 히젠국 출신의 고케닌(쇼군의 가신)인 다케자키 스에나가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몽골 침략자들과의 육상 및 해상 전투에서 그와 다른 일본군을 묘사하고 있다. 전투 장면 외에도, 가마쿠라 막부의 뛰어난 무사에게 포상하는 제도와 스에나가와 그의 후원자인 아다치 야스모리와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4]

전권에서는 스에나가가 분에이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나 은상(恩賞)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가마쿠라로 가서 아다치 야스모리와 담판을 지어 토지와 말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후권에서는 지토(地頭)로 출세한 스에나가가 고안 전투에 참전해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말미에는 다케자키 가문의 가훈과 함께 제작 연도(1293년)가 기록되어 있다.[4]

다만, 몽골군과 일본 무사와의 전투 장면 부분에서는 후세의 가필 및 개찬 또는 편찬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특히 스에나가와 대치하는 세 명의 병사는 같은 그림의 몽골 병사와는 장비나 그림 선의 터치가 분명히 다르고, 또 이 부분의 종이가 위아래로 포개어 붙여진 위에 그려져 있는데 그림에 어긋나거나 흔들린 부분이 없는 등 근세에 해당 부분이 가필된 것이 아니냐 하는 설이 규슈 국립 박물관 전시 설명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후세의 가필이나 개작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이를 제작한 스에나가 본인의 지시로 추가 ・ 부기되었다고 보는 설도 있다.[4]

2. 1. 전권: 분에이의 역과 가마쿠라 담판

다케자키 스에나가는 8명의 노토(郎党)를 거느리고 분에이 전투에 참전하여 몽골군과 맞서 싸웠다.[4]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막부로부터 합당한 은상을 받지 못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스에나가는 가마쿠라로 직접 가서 아다치 야스모리에게 자신의 공을 호소하였고, 담판 끝에 토지와 말을 은상으로 받았다.[4] 이 과정은 당시 막부의 포상 제도와 고케닌들의 불만, 그리고 유력 고케닌과의 관계 등을 보여준다.

2. 2. 후권: 고안의 역 참전

스에나가는 가이토노사토(海東郷)의 지토(地頭)로 임명되어 고안의 역에 다시 참전한다.[4] 스에나가는 몽골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으며, 그의 활약상은 그림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후권 말미에는 다케자키 가문의 가훈과 함께 "에이닌 원년(1293년) 2월"이라는 제작 시기가 기록되어 있다.[4]

3. 역사적 가치와 의의

《몽고습래회사》는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다룬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자, 당시 일본 무사들의 전투 방식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그림 자료이다. 특히, 몽골군의 경무장 병사, 군선, '철포(데쓰하우)' 등은 다른 자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몽골군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다케자키 스에나가를 중심으로 무사들이 몽골군과 실제로 전투를 벌인 상황이 묘사되어 있으며, 몽골(원)의 경무장 병사나 군선, 사용된 철포 등을 그린 유일한 그림 자료로 알려져 있다.[4]

두루마리는 야마토에 양식으로 그려진 삽화와 기록이 번갈아 나타난다. 히젠국 출신의 고케닌(쇼군의 가신)인 다케자키 스에나가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몽골 침략자들과의 육상 및 해상 전투에서 그와 다른 일본군을 묘사하고 있다. 전투 장면 외에도, 가마쿠라 막부의 뛰어난 무사에게 포상하는 제도와 스에나가와 그의 후원자인 아다치 야스모리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권에서는 스에나가가 8명의 낭당을 이끌고 분에이의 역에 출진하여 싸우고, 그 후 제일의 무공에 대한 은상이 나오지 않음을 불복하여 가마쿠라로 가서 아다치 야스모리와 담판하여 은상지와 말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후권에서는 해동향의 지토(地頭)로 출세한 스에나가가 고안의 역에 출진하여 싸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말미에는 가훈과 함께 "에이닌 원년 2월"(1293년)의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4]

히고 호소카와 가문의 사료를 보존하는 에이세이 문고에는, 에도 시대의 사본인 백묘본(먹으로 쓴) "몽골 습래 회사"와 채색본 "몽골 습래 회사"가 남아 있으며, 잃어버린 색이나 그림이 복원된다. 다케자키 스에나가 본인의 제작 지시에 의한 원본(산노마루 쇼조칸본)은 오랜 세월을 거쳐 흩어져 있었고, 호소카와 번의 학자에 의한 순서의 고찰 결과에 의해 에도 시대에 성권되었다.[4]

3. 1. 몽골군과 일본군의 비교

미야모토 쓰네이치는 몽고습래회사에 나타난 몽골군과 일본군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5]

  • 군선: 그림 속 군선에는 무사 외에 뱃사공(노를 젓는 자)이 타고 있는 경우와 잡병이 배를 젓고 있는 경우가 있다.
  • 전술: 일본군은 진종이나 진고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몽골군은 이미 집단 전법이 발달해 있었다.
  • 활: 일본군과 몽골군의 활에 차이가 있다.
  • 무기: 몽골군은 투창을 많이 사용했지만, 일본군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장도를 사용하는 것은 잡병에 한정되었다.
  • 철포: 몽골군은 이때 철포(てつはう)를 사용하고 있었다.

3. 2. 가필 및 수정 논란

《몽고습래회사》에는 후대에 가필되거나 수정된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스에나가와 대치하는 세 명의 몽골 병사는 다른 몽골 병사들과 복장 및 그림 기법이 다르다는 점이 지적된다.[4] 이 부분의 종이가 위아래로 포개어 붙여진 위에 그려져 있는데 그림에 어긋나거나 흔들린 부분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규슈 국립 박물관에서는 근세에 해당 부분이 가필되었을 것이라는 설을 제시하였다.[4] 그러나 이러한 가필 및 수정이 후대의 작업이 아니라, 스에나가 본인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4]

4. 현대의 연구 및 활용

몽고습래회사는 몽골의 일본 원정 및 중세 일본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며, 몽골 측의 경장병, 군선, 철포 등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어 역사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한다.[4]

규슈 국립 박물관에서는 몽골병과 일본 기마 무사의 묘사 차이, 그림이 어긋나지 않게 붙여진 종이 등을 근거로 후대에 가필되거나 수정되었다는 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다케자키 스에나가 본인의 지시에 의한 추가 및 수정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에이세이 문고에는 에도 시대 사본인 백묘본(먹으로 쓴)과 채색본이 남아있어, 원본에서 손상된 부분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준다.

4. 1. 관련 서적


  • 이시이 스스무 『가마쿠라 사람의 소리를 듣다』 NHK 출판, 2000년.
  • 오쿠라 류지 『「몽고 습래 회사」를 읽다』 해조사, 2007년.
  • 오타 아야 편 『일본의 미술 414 두루마리 그림=몽고 습래 회사』 시분도, 2000년 11월.
  • 고마쓰 시게미 편 『몽고 습래 회사 일본의 두루마리 그림 13』 중앙공론사, 1988년 4월.
  • 사토 테츠타로 『몽고 습래 회사와 타케자키 스에나가 연구 (긴세이샤 사학 총서)』 긴세이샤, 2005년 4월.
  • 핫토리 히데오 『몽고 습래』 야마카와 출판사, 2014년 12월.
  • 핫토리 히데오 『몸짓·표정 몽골 습래 회사 복원 영청 문고 백묘본·채색본에서』 해조사, 2022년 3월

참조

[1] 논문 "Mōko Shūrai Ekotoba" (Illustrated Account of the Mongol Invasions) https://revistas.ucm[...] 2020-07-03
[2] 서적 新詳日本史B 山川出版社
[3] 간행물 令和3年9月30日文部科学省告示第161・162号 2021-09-30
[4] 서적 しぐさ・表情 蒙古襲来絵詞復原 永青文庫白描本・彩色本から https://www.amazon.c[...] 海鳥社 2022-03
[5] 서적 絵巻物に見る日本庶民生活誌 中公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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