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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다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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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즈노 다다토는 기하타 미즈노 모리미쓰의 차남으로, 오카자키 번주 미즈노 다다토키의 양자가 된 인물이다. 다다토키가 미즈노 소동으로 은거하면서 가독을 상속받았고, 1762년 히젠 가라쓰 번으로 전봉되었다. 가라쓰 번 재정 확보를 위해 증세 정책을 추진했으나, 영민들의 반발로 니지노마쓰바라 잇키가 발생하여 철회했다. 1775년 양자 미즈노 다다카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1811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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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다다토
기본 정보
씨명미즈노 씨
인물 정보
시대에도 시대 중기 - 후기
출생교호 19년 (1734년)
사망분카 8년 12월 30일 (1812년2월 12일)
관위종5위하직물정, 화천수
막부에도 막부
주군도쿠가와 이에시게 → 이에하루
미카와오카자키 번주, 비젠가라쓰 번주
씨족미즈노 씨
부모아버지: 미즈노 모리미쓰, 어머니: 불명
양아버지미즈노 다다토키
배우자정실: 미즈노 다다토키의 딸
양자다다쓰나, 미즈노 다다쓰나 정실
번주 정보
임기1752년 ~ 1762년
대수7
이전 번주미즈노 다다토키
다음 번주마쓰다이라 야스요시
임기1762년 ~ 1775년
대수1
이전 번주도이 도시사토
다음 번주미즈노 다다카네

2. 생애

기하타 미즈노 모리미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레키 원년(1751년), 동족[1]오카자키번의 번주 미즈노 다다토키의 딸을 정실로 맞이하여 양자가 되었다. 다다토키는 번 재정 재건을 목표로 정치 개혁을 시도했지만, 중신들에 의해 좌절되었고, 유흥에 빠지게 되었다. 호레키 2년(1752년), 다다토키는 중신들에 의한 주군 밀어내기를 당해 은거를 강요당하고, 다다토가독을 상속했다. 이 일련의 소동은 미즈노 소동이라 불린다.

호레키 12년(1762년), 히젠 가라쓰번으로 전봉되었다. 다다토는 궁핍해지는 재정을 위해 새로운 영지에서 증세 정책을 폈지만, 이는 종래 가라쓰에서의 관행을 무시하는 것이어서 영민들의 반발을 샀다. 메이와 8년(1771년) 니지노마쓰바라 일규가 발생하여, 영민들의 요구에 의해 증세 정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안에이 4년(1775년) 가독을 양자인 다다카나에게 물려주고 은거했다. 분카 8년(1811년) 사망했다.

2. 1. 출생과 가독 상속

기하타 미즈노 모리미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레키 원년(1751년), 동족[1]오카자키번의 번주 미즈노 다다토키의 딸을 정실로 맞이하여, 그의 양자가 되었다.

다다토키는 번 재정 재건을 목표로 정치 개혁을 시도했지만, 중신들에 의해 좌절되었고, 유흥에 빠지게 되었다. 호레키 2년(1752년), 다다토키는 중신들에 의해 주군 밀어내기를 당해 은거를 강요당했고, 다다토가 가독을 상속했다. 이 일련의 소동은 미즈노 소동이라 불린다.

2. 2. 가라쓰 번 전봉과 니지노마쓰바라 잇키

호레키 12년(1762년), 미즈노 다다토는 히젠 가라쓰번으로 전봉되었다. 다다토는 궁핍해지는 재정을 해결하고자 새로운 영지에서 증세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는 기존 가라쓰에서의 관행을 무시하는 것이어서 백성들의 반발을 샀다.[1] 메이와 8년(1771년)에는 니지노마쓰바라 잇키(백성들의 봉기)가 발생하여, 결국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증세 정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2. 3. 은거와 사망

안에이 4년(1775년)에 양자인 다다카나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1] 분카 8년(1811년)에 사망했다.

3. 가계

미즈노 모리미쓰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미즈노 다다토키에게 입양되었다. 정실은 미즈노 다다토키의 딸이다. 아사노 무네히사의 차남 미즈노 다다카네를 양자로 들였으며, 다다카네의 정실 역시 미즈노 다다토키의 딸이다.[1]

3. 1. 부모


  • 미즈노 모리미쓰 (친부)
  • 미즈노 다다토키 (양부)

3. 2. 정실

미즈노 다다토키의 딸

3. 3. 양자, 양녀


  • 미즈노 다다카네 - 아사노 무네히사의 차남[1]
  • 미즈노 다다카네의 정실 - 미즈노 다다토키의 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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