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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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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둥 회의는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의 회의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 국가들이 냉전 체제 속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아시아-아프리카 각국 간의 협력, 식민주의 문제, 세계 평화 증진 등을 논의했으며, '세계 평화와 협력 증진에 관한 선언'(반둥 10원칙)을 채택했다. 반둥 회의는 비동맹 운동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제3세계 국가들의 연대와 남남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정권의 친미, 반공 노선으로 인해 초청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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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둥 - 반둥 공과대학교
    반둥 공과대학교는 1959년에 설립된 인도네시아의 공과대학교로, STEM 분야는 물론 예술 및 경영 분야에서도 인정받으며, 12개의 학부 및 학교를 운영하고, 2024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281위를 기록했다.
반둥 회의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반둥 회의 본회의
회의명아시아-아프리카 회의
다른 이름반둥 회의
개최 기간1955년 4월 18일 ~ 24일
개최 장소반둥, 인도네시아
의장루슬란 압둘가니
참가 대표304명
회의 결과
주요 결과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간의 협력 증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반대
인권 및 자기 결정권 지지
경제 개발 및 상호 협력 촉진
세계 평화와 협력 추구
최종 성명https://www.cvce.eu/en/obj/final_communique_of_the_asian_african_conference_of_bandung_24_april_1955-en-676237bd-72f7-471f-949a-88b6ae513585.html
관련 자료https://web.archive.org/web/20120513090833/http://www.dailynews.lk/2005/04/21/fea01.htm
배경
배경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함
냉전 시대의 양극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비동맹 국가들이 결속을 다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개최됨
과거 식민 지배의 경험을 공유하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이 연대하여 자주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경제적 발전을 모색하고자 함
참가국
참가국아프가니스탄
버마
캄보디아
실론 (현재 스리랑카)
중국
이집트
에티오피아
골드코스트 (현재 가나)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일본
요르단
라오스
레바논
라이베리아
리비아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시리아
태국
터키
베트남 민주 공화국 (북베트남)
베트남국 (남베트남)
예멘
코트디부아르
기타 정보
참고 문헌https://doi.org/10.29362/IST20VEKA.2017.2.BOG.101-118

2. 역사적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등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했다.[37] 그러나 이들 신생 독립국들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의 심화와 새로운 형태의 간섭에 직면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4년 인도중국의 수뇌 회담에서 네루저우언라이평화 5원칙을 발표하며 국가 간의 상호 존중과 내정 불간섭을 강조했다.[38] 이는 반둥 회의의 기본 정신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4월 28일 ~ 5월 2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콜롬보 회의에서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개최를 제안했고, 이는 1955년 반둥 회의로 이어졌다.

콜롬보 회의에는 알리 사스토로아민지(인도네시아 수상), 네루 (인도 수상), 모하메드 알리지나(파키스탄 총리), 존 코타라와라(스리랑카 총리), 우누(버마 총리) 5명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인도네시아 총리가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다른 4명도 찬성하여 1단계로 1954년 12월 28일 ~ 29일 보고르에서 준비 회의를 가졌다.

콜롬보 회의에 참가한 5개국은 "콜롬보 그룹"이라고 불린다. 이 회의의 안건은 다음과 같았다.

안건
아시아 아프리카 간의 협력, 상호 이익, 우호 증진
대표 각국 관계 및 사회, 정치, 문화 문제 검토
국가 주권, 민족 문제, 식민주의 등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에 특히 중요한 여러 문제 검토
현대 세계,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위와 세계 평화 추진을 위한 가능한 공헌 검토



이들 5개국과 이집트, 중국이 중심이 되어, 다음 해 1955년 4월 18일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개최를 성사시켰다. 30개국이 초대되었지만, 중앙 아프리카의 로디지아는 국내 정세 불안으로 참여할 수 없었고, 29개국이 참가했다. 또한, 중국과 적대 관계에 있던 중화민국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몽골은 초청되지 않았다.

3. 회의 과정 및 주요 내용

1954년 4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스리랑카콜롬보에서 개최된 콜롬보 회의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개최 계획이 시작되었다.[38] 이 회의에는 알리 사스트로아미조요(인도네시아 총리), 자와할랄 네루(인도 총리), 무함마드 알리 진나(파키스탄 총리), 존 코타라와라(스리랑카 총리), 우누(미얀마 총리) 5명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인도네시아 총리가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다른 4명도 이를 검토하여 1954년 12월 28일부터 29일까지 보고르에서 준비 회의를 열었다.[38]

이들 5개국과 이집트, 중국이 중심이 되어, 1955년 4월 18일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가 개최되었다. 30개국이 초청되었지만, 로디지아는 국내 정세 불안정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고, 29개국이 참가했다. 대한민국중국과의 적대 관계 때문에 초청받지 못했다.[37]

회의의 주요 의제는 다음과 같았다.[38]


  • 아시아·아프리카 각국 간의 협력, 상호 이익, 우호 증진
  • 대표국 관계 및 사회·정치·문화 문제 검토
  • 국가 주권, 민족 문제, 식민지주의 등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에게 특히 중요한 여러 문제 검토
  • 현대 세계, 특히 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지위와 세계 평화 증진을 위해 가능한 기여 검토


회의에서는 소련의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정책에 대한 비판 문제가 논의되었으나,[13] 최종적으로는 '모든 형태의 식민주의'를 규탄하는 데 합의했다.[14] 중국저우언라이 총리는 온건하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여 회의의 성공적인 진행에 기여했다.[15][16][17][18]

회의 결과, '세계 평화와 협력 증진에 관한 선언'(반둥 10원칙)이 채택되었다.[37] 이 선언은 다음 10가지 원칙을 담고 있다.

# 기본적인 인권과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존중

# 모든 국가의 주권영토 보전을 존중

# 모든 인류의 평등과 크고 작은 모든 나라의 평등을 승인

# 타국의 내정에 불간섭

# 유엔 헌장에 의한 단독 또는 집단적인 국토방위권을 존중

# 집단적 방위를 강국 특정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

# 침략이나 침략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는 타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침범하지 않는다.

# 국제 분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

# 상호 이익과 협력을 촉진

# 정의와 국제 의무를 존중

4. 반둥 10원칙 (세계 평화와 협력 증진에 관한 선언)

정식 명칭은 '''세계 평화와 협력 증진에 관한 선언'''으로, '''반둥 10원칙'''이라고도 불린다.


  • 기본적인 인권과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존중한다.
  • 모든 국가의 주권영토 보전을 존중한다.
  • 모든 인류의 평등과 크고 작은 모든 나라의 평등을 승인한다.
  • 타국의 내정에 불간섭한다.
  • 유엔 헌장에 의한 단독 또는 집단적인 국토방위권을 존중한다.
  • 집단적 방위를 강국 특정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
  • 침략이나 침략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는 타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침범하지 않는다.
  • 국제 분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
  • 상호 이익과 협력을 촉진한다.
  • 정의와 국제 의무를 존중한다.

1955년 4월, 반둥 회의 중 경제 분과 전체 회의를 개최한 대표단

5. 참가국

총 29개국이 반둥 회의에 참가했으며,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이었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몽골은 초청받지 못했다.[4] 주요 참가국으로는 인도, 인도네시아, 중화인민공화국, 이집트, 일본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와 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비동맹 운동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마오쩌둥 또한 그의 영향력 있는 오른팔인 주석 겸 외무장관 저우언라이의 지원을 받아 주요 조직자였다.[5]

국가비고
-- 아프가니스탄 왕국
-- 예멘 왕국
-- 이라크 왕국
-- 이란 제국
-- 인도콜롬보 그룹
-- 인도네시아콜롬보 그룹
-- 영국령 골드코스트
-- 영국-이집트 공동 통치 수단
-- 이집트 공화국
-- 에티오피아-에리트리아 연방
-- 캄보디아 왕국
-- 사우디아라비아
-- 시리아 공화국
-- 실론콜롬보 그룹
-- 태국 왕국
-- 중화인민공화국
-- 터키
-- 일본
-- 네팔 왕국
-- 파키스탄콜롬보 그룹
-- 미얀마 연방콜롬보 그룹
-- 베트남 공화국
-- 베트남 민주 공화국
-- 필리핀
-- 요르단
-- 라오스 왕국
-- 리비아 왕국
-- 라이베리아
-- 레바논



일본에서는 다카사키 다쓰노스케 경제심의청 장관을 대표로 가세 슌이치 외무상 참여(후에 국제연합 대사가 됨) 등 외무대신 대리로 참석한 10여 명이 참가했다. 다른 국가들은 중화인민공화국저우언라이, 인도네루, 이집트나세르 등 모두 국가원수, 총리급이 참석하여 정부 차원의 국제회의가 되었다.[39]

6. 의의 및 영향

반둥 회의는 제3세계 국가들이 국제무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 회의는 비동맹 운동의 출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개발도상국 간의 협력(남남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34] 반둥 회의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며, 국제 평화와 협력 증진을 위한 중요한 지침으로 남아있다.

반둥 회의는 다음과 같은 의의와 영향을 가진다.


  •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민족 자결의 정신.
  • 미국(서방 국가)이나 소비에트 연방(동구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기본적인 지향. 이는 이른바 제3세계의 존재를 부각하게 되었다.
  • 미국, 소련의 대립을 완화하는 입장(균형자)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회의에서 "세계 평화와 협력 증진에 관한 선언"을 채택했다.[37]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새롭게 등장하는 국가들의 지지를 얻고자 비동맹 운동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루는 인도 독립 직전인 1947년 3월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 관계 회의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구상을 떠올렸다.[4]

중국마오쩌둥 또한 그의 영향력 있는 오른팔인 주석 겸 외무장관 저우언라이의 지원을 받아 주요 조직자였다. 마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반식민지 민족주의 및 반제국주의 의제가 진행 중이라고 믿었고, 중국을 이러한 세력의 지도자로 만들고 싶어했다.[5]

반둥 회의는 조직자들이 냉전 긴장 속에서 아시아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서구 열강과 협의하려는 주저함으로 간주한 것을 반영했다. 중국과 미국 간의 긴장에 대한 우려, 중국과 자신들 및 서구와의 평화 관계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려는 욕구, 식민주의(특히 북아프리카에서의 프랑스의 신식민주의알제리에 대한 식민 통치)에 대한 반대,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와의 서뉴기니 분쟁에서 자신의 주장을 홍보하려는 욕구 등이었다. 수카르노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의 서파푸아에 대한 영유권 주장에 대한 지지를 구축하고 네덜란드가 서파푸아의 주권을 원주민 파푸아인들에게 이전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9]

주요 논쟁은 소련의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정책을 서구의 식민주의와 함께 비난해야 하는지 여부에 집중되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형태의 식민주의"를 규탄하는데 의견이 모아졌고, 이는 서구뿐 아니라 소련을 암묵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었다.[14] 중국은 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회의 참석 도중 암살 시도를 극복한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는 온건하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여 반공 대표단의 중국 의도에 대한 우려를 다소 가라앉히는 데 기여했다.

회의 후반부에 저우언라이는 인도네시아 외무장관 수나리오와 이중 국적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세계는 저우의 행보를 주목했다. 그는 혁명적 공산주의를 축소하고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를 포함한 자신의 경제 및 정치 체제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온건함과 합리성은 그의 외교적 명성과 중국에 대한 인식에 매우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반둥 회의 이후 1957년 9월 카이로에서 아프로아시아 인민 연대 회의[33]가 열렸고, 이어 1961년 베오그라드 정상회담(베오그라드 정상회의)[34]이 개최되어 비동맹운동이 출범하게 되었다.

7. 반둥 회의 이후

반둥 회의는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이후,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의 연대와 협력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1961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제1차 비동맹 정상회의가 개최되어 비동맹 운동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34] 이는 반둥 회의의 정신을 이어받아 제3세계 국가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한 중요한 움직임이었다.

2005년에는 반둥 회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되었다.[35] 이 회의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새로운 아시아-아프리카 전략적 동반자 관계(NAASP)를 선언하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채택하였다.

2015년에는 반둥 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의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되었다.[45] 이 회의에는 100여 개 국가와 25개 국제기구의 대표들이 참석하여, 개발도상국 간의 협력(남남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반둥 메시지, NAASP 선언, 팔레스타인 지지 선언 등 3개의 중요한 문건을 채택했다.[46] 특히, 일본아베 신조 총리와 중국시진핑 국가주석은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개선에 합의했다.[41] 그러나 아베 총리의 연설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 문구가 없어 대한민국의 비판을 받았다.[43]

8. 대한민국의 입장과 관련된 논란

2015년 4월 21일부터 25일까지 반둥과 자카르타에서 "세계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기 위한 남남협력 강화"라는 주제로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60주년 및 신흥 아시아-아프리카 전략 동반자 관계(NAASP) 10주년 기념 제3차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주최한 이 회의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109개국 대표, 옵서버 국가 16개국, 국제기구 25개 기관이 참여했다.[35] 일본 총리 아베 신조, 중국 주석 시진핑 등이 참가했다.

8. 1. 친일, 친서방 외교에 대한 비판

1955년 반둥 회의 당시 대한민국은 이승만 정권의 친미, 반공 노선으로 인해 초청받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35] 이는 당시 한국 외교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일본전쟁범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참석하여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한 반면,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8. 2. 현실적 한계론

대한민국은 당시 북한, 중국과의 적대적 관계와 미국의 정책적 지원을 위해 회의 초청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 관계에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을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3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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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논문 Sukob Titovog koncepta univerzalizma i Sukarnovog koncepta regionalizma na Samitu nesvrstanih u Kairu 1964. Institute for Contemporary History, Belgrad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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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뉴스 バンドン会議60周年で記念式典 結束強化を宣言 https://www.nikkei.c[...] 2015-04-24
[41] 웹사이트 日中首脳会談 https://www.mofa.go.[...] 外務省
[42] 뉴스 安倍首相演説全文 『Unity in diversity〜共に平和と繁栄を築く』 https://www.sankei.c[...] 産経ニュース 2015-04-22
[43] 뉴스 安倍首相の演説、韓国が遺憾表明 「おわび」なしを批判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15-04-23
[44] 웹사이트 Asian-African Conference Archives http://www.unesco.or[...] Memory of the World - UNESCO
[45] 뉴스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개막 : 아베·시진핑·김영남 발언·행보 주목…황우여 부총리 참석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15-04-22
[46] 뉴스 조코위 인니대통령 "반둥회의 핵심가치 실행돼야"(종합) : 자카르타서 신전략파트너십 강화 3개 문서 채택하고 폐막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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