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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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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연사는 후한 말, 삼국 시대 동오의 인물로, 손권의 후궁이다. 임회군 회음현 출신으로, 손권의 총애를 받아 두 딸을 낳았으며, 238년 사망 후 황후로 추존되었다. 관대하고 질투심 없는 성품으로 손권의 사랑을 받았으며, 사후 난징 자금산의 강릉에 안장되었다. '건강실록'에는 이름이 '연씨'로 기록되어 '보연씨'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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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연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보연사
원어 이름步夫人
본명보연사(步練師)
작위동오 황후(추존)
출생일미상
사망일238년
능묘장릉
배우자손권
자녀손노반
손노육
가계
친척보즐
보천

2. 생애

보연사는 후한임회군 회음현(현재의 장쑤성 화이안 시) 출신으로, 보지의 친척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여강군(현재의 안후이성 안칭 시 일대)으로 이주했다. 199년, 여강이 손책에게 정복당하면서 강동으로 이주했고, 손권의 후궁이 되었다. 손권은 212년에 서부인을 내쫓은 후 보씨 부인을 가장 총애했다.[2] 그녀는 손권과의 사이에서 손노반과 손노유 두 딸을 낳았다.[3]

보씨 부인은 다른 부인들에게 관대했고, 손권에게 다른 여인들을 추천하여 오랫동안 총애를 받았다. 229년, 손권이 황제를 칭하고 동오를 건국했을 때, 보씨 부인을 황후로 책봉하려 했으나 신하들은 서부인을 추천했다. 손권은 결정을 미뤘고, 보씨 부인의 친척들은 그녀를 황후라 불렀다. 그러나 태자 손등은 서부인을 지지했다.[4]

보씨 부인은 238년에 사망했고, 손권은 그해 11월 24일 그녀를 황후로 추존했다.[1] 그녀는 장쑤성 난징 시 자금산의 강릉()에 안장되었다.[5] 그녀의 개인적인 이름은 삼국지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건강실록''에는 "연사"로 기록되어 "보연사"라고도 불렸다.[6] 전한의 회음후(한신)의 혈통을 이었다고 전해진다.[8]

건안 4년(199년) 12월, 여강이 손책에게 함락되자 모녀는 강남으로 이주했다. 손권은 선처인 서부인과 사별한 후 10년 동안 정실 부인을 들이지 않았지만, 왕위에 오르자 연사를 왕후로 삼고 싶어 했다. 황룡 원년(229년) 황제위에 오른 후에도 황후로 삼고 싶어 했다. 한편 황태자 손등과 신하들은 모두 서씨를 황후로 삼아야 한다고 진언했다. 결국 손권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그 누구도 황후로 세우지 않았다.[9] 이후 서씨는 병사했고, 보씨 또한 오랫동안 부인의 자리에 있었다.

적오 원년(238년) 사망하여 2월에 황후로 추증되었다. 윤 10월 1일에 책명이 내려져, 선왕의 종묘에 배향되었다. 장릉의 보부인총[10]에 안장되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2. 1. 초기 생애 및 손권과의 만남

임회군 회음현(현재의 장쑤성 화이안 시) 출신으로, 후한 말기에 태어났다. 보지의 친척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회음에서 여강군(현재의 안칭 시, 안후이 성 일대)으로 이주했다.[2] 199년, 여강은 군벌 손책에게 정복당했고, 이후 보부인은 여강에서 강동(현재 중국 남동부)으로 이주했다. 강동에서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손권의 눈에 띄어 그의 후궁이 되었다.[2]

보부인의 개인적인 이름은 삼국지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건강실록''에는 "연씨"라고 언급되어 "보연사"라고도 불렸다.[6] 전한의 회음후(한신)의 혈통을 이었다고 전해진다. 199년 12월, 여강이 손책에게 함락되자 모녀는 강남으로 이주했다.[8]

2. 2. 손권의 총애와 두 딸

보부인은 손권의 후궁으로, 빼어난 미모로 손권의 총애를 받았다. 212년 손권이 서부인을 내쫓은 후에는 손권의 가장 사랑받는 부인이 되었다.[2] 손권과의 사이에서 두 딸 손노반과 손노유를 낳았다.[3]

보부인은 다른 후궁들에게 관대하고, 남편에게 다른 여인들을 추천할 정도로 성품이 좋아 오랫동안 손권의 총애를 받았다. 229년 손권이 황제가 된 후 황후 책봉을 고려했으나, 신하들은 서부인을 추천했다. 손권은 결정을 미루었고, 결국 누구도 황후로 세우지 않았다. 보부인은 238년에 사망한 후 황후로 추존되었다.[1]

2. 3. 황후 추존

(보부인)은 후한임회군 회음현(현재의 장쑤성 화이안 시) 출신으로, 보지의 친척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여강군(현재의 안후이성 안칭 시 일대)으로 이주했다. 199년, 여강이 손책에게 정복당하면서 강동으로 이주했고, 손권의 후궁이 되었다. 손권은 212년에 서부인을 내쫓은 후 부씨 부인을 가장 총애했다.[2] 그녀는 손권과의 사이에서 손노반과 손노유 두 딸을 낳았다.[3]

부씨 부인은 다른 부인들에게 관대했고, 손권에게 다른 여인들을 추천하여 오랫동안 총애를 받았다. 229년, 손권이 황제를 칭하고 동오를 건국했을 때, 부씨 부인을 황후로 책봉하려 했으나 신하들은 서부인을 추천했다. 손권은 결정을 미뤘고, 부씨 부인의 친척들은 그녀를 황후라 불렀다. 그러나 태자 손등은 서부인을 지지했다.[4]

부씨 부인은 238년에 사망했고, 손권은 그해 11월 24일 그녀를 황후로 추존했다.[1] 그녀는 장쑤성 난징 시 자금산의 강릉()에 안장되었다.[5]

그녀의 개인적인 이름은 삼국지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건강실록''에는 "연사"로 기록되어 "보연사"라고도 불렸다.[6]

3. 평가 및 기타

보연사는 질투심이 없어 다른 여성들을 추천했기 때문에 손권으로부터 오랫동안 총애를 받았다. 측비의 신분이었지만, 궁중에서는 보부인을 황후라고 불렀고, 친척들이 상주할 때에도 그녀를 중궁(황후가 있는 궁궐, 나아가 황후 자신을 지칭)이라고 불렀다. 한편 서부인과 마찬가지로 황태자에게 의복을 보낸 적이 있지만, 서부인과 같은 정도의 존경을 받지는 못했다.[11]

4. 대중문화

코에이의 비디오 게임 시리즈인 ''진 삼국무쌍''의 일곱 번째 작품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처음 등장한다. 게임에서는 "연사"로 언급된다.[1]

5. 친족 관계

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

관계이름
아버지불명
어머니불명
남편손권
손노반
손노육


참조

[1] 서적 Sanguozhi vol. 47
[2] 서적 Sanguozhi vol. 59
[3] 서적 Sanguozhi vol. 50
[4] 서적 Sanguozhi vol. 59
[5] 서적 Sanguozhi vol. 50
[6] 서적 Jiankang Shilu vol. 2
[7] 서적 건강실록
[8] 서적 呉志
[9] 서적
[10] 서적 六朝事迹編類
[11] 서적 삼국지
[12] 서적 건강실록(建康實錄)
[13] 서적 삼국지 권46 손파로토역전
[14] 서적 삼국지 권50 비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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