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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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쿠라은행은 1992년 미쓰이 은행과 타이요고베 은행의 합병으로 설립된 일본의 도시 은행이다. 1990년대 수도권에서 주요 기업 및 소매 은행으로 성장했으나, 1998년 대규모 부실 채권 처리와 도요타 자동차의 재정 지원 거절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2001년 스미토모 은행에 합병되어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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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은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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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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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 | 주식회사 사쿠라 은행 |
영문 회사명 | The Sakura Bank, Limited |
약칭 | 사쿠라 |
본사 소재지 | 서울특별시중구(구)구단미나미 1초메 3번지 1호 |
본사 우편번호 | 102-0074 |
설립일 | 1948년 ( 23년) 9월 23일 (주식회사 제국은행) |
업종 | 7050 |
통일 금융 기관 코드 | 0002 |
SWIFT 코드 | MITKJPJT |
사업 내용 | 보통 은행 업무 |
대표자 | 오카다 아키시게(마지막 대표이사 두취) |
자본금 | 1조 428억 6000만 엔 |
매출액 | 단독: 1조 9299억 7100만 엔 연결: 2조 1474억 9500만 엔 (경상이익, 2000년 3월기) |
영업 이익 | 단독: 1599억 3200만 엔 연결: 1364억 9700만 엔 (경상이익, 동기) |
순이익 | 단독: 571억 1700만 엔 연결: 625억 8100만 엔 (동기) |
순자산 | 단독: 2조 2522억 8900만 엔 연결: 2조 2085억 5400만 엔 (동기말) |
총자산 | 단독: 46조 5594억 8500만 엔 연결: 48조 4956억 800만 엔 (동) |
직원 수 | 14,930명 (단독, 동) |
지점 수 | 545개 점포 |
결산기 | 3월 31일 |
외부 링크 | 사쿠라 은행 실적 개요 |
은행 정보 | |
은행명 | 사쿠라 은행 |
영문 은행명 | THE SAKURA BANK, LIMITED |
통일 금융 기관 코드 | 0002 |
SWIFT 코드 | MITKJPJT |
점포 수 | 국내: 420점 해외: 26점 (출장소, 대리점, 주재원 사무소 포함) |
대출금 잔액 | 31조 9,399억 5,200만 엔 |
예금 잔액 | 33조 3,426억 5,500만 엔 (양도성 예금 포함) |
특이 사항 | 2000년 3월기 결산 |
기타 | |
로마자 표기 | Sakura Ginkō |
영문 명칭 | Mitsui Taiyo Kobe Bank |
2. 역사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인 1989년, 태양고베은행(TKB)과 미쓰이은행의 합병이 합의되었다. 이는 다이이치칸교은행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TKB는 개인 고객과 중소기업 고객이 많았던 반면, 미쓰이는 대형 기관 고객을 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서로 보완적인 관계였다. 이 합병은 양 은행의 강점을 활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1992년 규제 완화 이후 통합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 은행들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18][1]
1990년 4월 1일, 미쓰이은행과 태양고베은행이 합병하여 '''태양고베미쓰이은행'''으로 출범하였다. 합병 발표 당시 3년 이내에 새로운 행명으로 변경하기로 결정되었고, 1992년 4월 1일, 벚꽃잎을 모티브로 한 심볼 마크를 사용하는 사쿠라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하였다.
사쿠라은행은 1990년대 수도권에서 주요 기업 및 소매 은행으로 성장하여 주택 융자, 투자 트러스트 판매 등 여러 면에서 일본 최대 소매 은행이었다.[19][2] 그러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경영 환경이 악화되어,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1998년에는 막대한 부실 채권 탕감에 직면하여 주요 기업 고객 중 하나인 도요타 자동차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20][3]
2000년, 사쿠라은행은 온라인 은행인 일본넷뱅크 설립 컨소시엄을 주도했으며, 일본 내 두 번째 온라인 은행 설립을 위해 소니와 협의를 시작했다.[21][4]
2001년 4월 1일, 사쿠라은행은 스미토모은행과 합병하여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되었다. 이 합병은 2000년 6월에 승인되었으며,[19] 도이치은행과 미즈호 은행에 이어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 그룹을 탄생시켰다.[22][5]
2. 1. 설립 배경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인 1989년, 태양고베은행(TKB)과 미쓰이은행의 합병이 합의되었다. 이는 다이이치칸교은행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TKB는 개인 고객과 중소기업 고객이 많았던 반면, 미쓰이는 대형 기관 고객을 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서로 보완적인 관계였다. 이 합병은 양 은행의 강점을 활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1992년 규제 완화 이후 통합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 은행들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18]1990년 4월 1일, 미쓰이은행과 태양고베은행이 합병하여 '''태양고베미쓰이은행'''으로 출범하였다. 합병 발표 당시 3년 이내에 새로운 행명으로 변경하기로 결정되었고, 1992년 4월 1일, 벚꽃잎을 모티브로 한 심볼 마크를 사용하는 사쿠라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하였다.
존속회사는 미쓰이은행이었으며, 통일 금융기관 코드도 미쓰이은행의 0002가 사용되었지만, 본점은 태양고베은행 도쿄영업부에 두었다. 미쓰이은행의 스에마쓰 켄이치 사장이 은행장에, 태양고베은행의 마쓰시타 야스오 은행장이 회장에 취임하였다. 합병으로 예금 잔액은 제일강요은행에 이어 2위, 대출금, 점포 수, 직원 수는 모두 국내 최대가 되었다.
1948년 제국은행이 분할되어 출범한 미쓰이은행은 미쓰이 그룹 재결집 지연과 점포 수 부족으로 중위권 은행에 머물렀다. 미쓰이물산에 대한 충분한 대출을 할 수 없어 후지은행과 대등한 상태가 되었고, 미쓰이 그룹 내 기업들의 비판도 컸다. 고야마 고로 사장 시대부터 자금 규모 확대는 숙원 사업이었고, 1988년 취임한 스에마쓰 켄이치 사장도 규모 확대를 위한 합병을 추진하였다. 합병 상대는 미쓰이은행과 동등하거나 하위 은행이 바람직했고, 최종적으로 같은 중위권 은행인 태양고베은행을 선택했다.
2. 2. 타이요고베미쓰이 은행 (1990-1992)
1989년 일본 자산 가격 거품이 정점에 달했을 때 미쓰이은행과 도쿄규슈은행(TKB)의 합병이 합의되었다. 이 합병은 당시 다이이치칸쿄은행에 이어 세계 2위 은행을 탄생시키려는 목적이었다. TKB는 개인 및 중소기업 고객이 많았던 반면, 미쓰이는 대규모 기관 고객을 주로 확보하고 있었기에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 이 합병은 이러한 시너지 효과를 활용하고 1992년 규제 완화 이후 통합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 은행들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1]1990년 4월 1일, 미쓰이은행(三井銀行)과 태양고베은행(太陽神戸銀行)이 합병하여 '''태양고베미쓰이은행'''(The Mitsui Taiyo-Kobe Bank, Limited)으로 출범하였다. 합병 발표 당시 3년 이내에 새로운 행명으로 변경하기로 결정되었기에, 1992년 4월 1일, 벚꽃잎을 모티브로 한 심볼 마크와 함께 사쿠라은행(さくら銀行)으로 행명을 변경하였다. 존속회사는 미쓰이은행이었으며, 통일 금융기관 코드도 미쓰이은행의 0002가 사용되었지만, 본점은 태양고베은행 도쿄영업부(도쿄도 지요다빌딩)에 두고, 미쓰이은행의 스에마쓰 켄이치(末松謙一) 사장이 은행장에, 태양고베은행의 마쓰시타 야스오(松下康雄) 은행장이 회장에 취임하였다. 합병으로 예금 잔액은 제일강요은행(第一勧業銀行)에 이어 2위, 대출금, 점포 수, 직원 수는 모두 국내 최대가 되었다.
발족 당시 다른 대형 은행보다 약 1만 명 많은 직원 수, 당시 일본 기업 중 최다인 74명(이사 66명, 감사 8명)의 임원 수, 8명의 고문으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합병으로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가 증가하여 수익은 부진했다. 본부 조직 축소와 지점 통폐합(1994년 4월까지 69개 지점)이 이루어졌지만, 각 직책에 구 은행 출신을 동일 수만큼 배치하는 균형 인사와 구 은행 거래처 구분이 남아, 다른 은행처럼 과감한 부실채권 처리가 어렵다는 등 합병 은행의 폐해도 지적되었다. 또한, 버블 경제 붕괴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유가증권의 평가이익이 감소하여, 1992년 3월 결산에서 도시 은행 중 유일하게 BIS 규제 기준 8%를 달성하지 못하고 영구 후순위채 발행에 나섰다.
1994년 6월 29일, 스에마츠(末松) 행장이 대표권이 있는 회장으로 물러나고, 하시모토 슌사쿠(橋本俊作) 부행장(구 태양고베은행(太陽神戸銀行) 출신)이 행장으로 승진했다. 마쓰시타(松下) 회장은 고문이 되었고, 12월 17일자로 일본은행 총재에 취임했다. 이 인사는 구 은행 출신자가 번갈아 행장에 취임하는 「엇갈림 인사」로 내부 화합에 배려된 것이었다. 그러나 경영 환경은 여전히 어려웠고, 1995년 3월 결산에는 영향이 없었지만, 1995년 1월 17일에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으로 5개 지점과 2개 출장소가 심각한 피해를 입은 데다, 사택과 기숙사 등도 다수 피해를 입었다.
2. 3. 사쿠라 은행 (1992-2001)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인 1990년 4월 1일, 미쓰이은행(三井銀行)과 타이요고베은행(太陽神戸銀行)이 합병하여 타이요고베미쓰이은행(太陽神戸三井銀行)이 되었다. 이 합병은 다이이치칸교은행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미쓰이은행은 대기업 고객을, 타이요고베은행은 개인 고객과 중소기업 고객을 주로 확보하고 있어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1] 1992년 4월 1일, 타이요고베미쓰이은행은 사쿠라은행(さくら銀行)으로 행명을 변경하였다.사쿠라은행은 1990년대 수도권에서 주요 기업 및 소매 은행으로 성장했으며, 주택 융자, 투자 트러스트 판매 등 여러 기준에서 일본 최대 소매 은행이 되었다.[2] 그러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주가 하락으로 유가증권 평가이익이 감소하면서 경영 환경이 악화되었다. 1992년 3월 결산에서는 도시 은행 중 유일하게 BIS 규제 기준 8%를 달성하지 못하고 영구 후순위채 발행에 나서기도 했다.[8]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으로 5개 지점과 2개 출장소가 심각한 피해를 입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1996년 3월 결산에서는 주택금융 전문회사 부실채권 처리로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7년 경영 및 재무 내용에 대한 엄격한 시선이 쏟아지면서, 국내외 자산 축소, 지점 통폐합 및 직원 감축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계획이 세워졌다. 1998년에는 금융 안정화법에 기초한 공적 자금을 도입하고, 미쓰이 그룹 기업과 생명보험회사에 증자를 요청하여 재무 기반을 강화했다.[9] 같은 해, 사쿠라은행은 막대한 악성 대출 탕감에 직면하여 주요 기업 고객 중 하나인 도요타 자동차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3]
사쿠라은행은 리테일 사업 강화를 위해 am/pm 매장 내에 ATM 설치를 통한 편의점 뱅킹(@BANK)을 시작하고, 개인 대출 사업인 사쿠라론 파트너를 설립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2000년에는 온라인 뱅크인 일본넷뱅크(현 페이페이은행(PayPay銀行))를 설립하는 컨소시엄을 주도하기도 했다.[4]
1999년 10월 14일, 사쿠라은행은 스미토모은행(住友銀行)과의 통합을 전제로 한 전면 제휴를 발표했다. 2000년 5월 22일, 합병 후 신은행 명칭을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三井住友銀行)'''으로 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2001년 4월 1일, 사쿠라은행은 스미토모은행과 합병하여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되었다.[2] 이 합병으로 도이치은행과 미즈호 은행에 이어 당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은행업 그룹이 만들어졌다.[5]
2. 4. 스미토모 은행과의 합병 (2001)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인 1989년에 합의된 TKB(미쓰이)와 다이이치칸교은행의 합병은 다이이치칸교은행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TKB는 개인 고객 및 중소기업 고객이 많았던 반면, 미쓰이는 대형 기관 고객을 주로 확보하고 있어 상호 보완적이었다. 이 합병의 목적은 이러한 시너지를 활용하여 유럽 은행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고, 1992년 규제 완화에 따른 통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18]사쿠라은행은 1990년대 수도권에서 주요 기업 및 소매 은행으로 성장했으며, 주택 융자, 투자 신탁 판매 등 여러 면에서 일본 최대 소매 은행이었다.[19] 1998년에는 막대한 부실 채권을 탕감했으며,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주요 기업 고객 중 하나인 토요타 자동차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20]
2000년, 사쿠라은행은 온라인 은행인 일본넷뱅크 설립 컨소시엄을 주도했으며, 일본 내 두 번째 온라인 은행 설립을 위해 소니와 협의를 시작했다.[21]
2001년 4월 1일, 사쿠라은행은 스미토모은행과 합병하여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되었다. 이 합병은 2000년 6월에 승인되었으며,[19] 도이치은행과 미즈호 은행에 이어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 그룹을 탄생시켰다.[22]
3. 주요 사업 및 서비스
사쿠라은행은 소매 금융, 기업 금융, 투자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했다. 개인 고객에게는 예금, 대출, 투자 상품 등을 제공했고, 기업 고객에게는 자금 조달, 인수 합병(M&A) 자문, 리스크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특히, 사쿠라은행은 일본넷뱅크(현 페이페이은행) 설립을 주도하는 등 일본 금융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3. 1. 온라인 뱅킹
사쿠라은행은 2000년 일본넷뱅크(현 페이페이은행) 설립 컨소시엄을 주도했으며, 소니와 일본 내 두 번째 온라인 뱅킹 설립을 논의했다.[21][4] 이는 일본의 거품 경제 이후 일본 금융 시장의 변화와 온라인 뱅킹의 성장에 발맞춘 행보였다.4. 경영 전략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 1989년 합의된 TKB-미쓰이의 합병은 다이이치칸교은행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은행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TKB가 개인 고객 및 중소기업 고객이 많았던 반면 미쓰이는 대형 기관 고객들이 주 기반이었다. 이 합병의 목적은 이들의 시너지를 지렛대 삼아 유럽 은행에 대항하여 경쟁력을 더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1992년 규제 완화에 따른 통합이 예견되었다.[18]
사쿠라은행은 1990년대 수도권에서 메이저 기업이자 소액 거래 은행이 되었으며 주택 융자, 투자 트러스트 세일 등 여러 기준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장 큰 소액 거래 은행이기도 했다.[19]
합병으로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가 증가하여 수익은 부진했다. 본부 조직 축소와 지점 통폐합(1994년 4월까지 69개 지점)이 이루어졌지만, 각 직책에 구 은행 출신을 동일 수만큼 배치하는 균형 인사와 구 은행 거래처 구분이 남아, 다른 은행처럼 과감한 부실채권 처리가 어렵다는 등 합병 은행의 폐해도 지적되었다. 버블 경제 붕괴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유가증권의 평가이익이 감소하여, 1992년 3월 결산에서 도시 은행 중 유일하게 BIS 규제 기준 8%를 달성하지 못하고 영구 후순위채 발행에 나섰다.
1994년 6월 29일, 스에마츠(末松) 행장이 대표권이 있는 회장으로 물러나고, 하시모토 슌사쿠(橋本俊作) 부행장(구 태양고베은행(太陽神戸銀行) 출신)이 행장으로 승진했다. 이 인사는 구 은행 출신자가 번갈아 행장에 취임하는 「엇갈림 인사」로 내부 화합에 배려된 것이었다. 1995년 1월 17일에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으로 5개 지점과 2개 출장소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아폴로리스, 다테호 화학공업(タテホ化学工業), 후지타(フジタ), 미쓰이 건설 등의 경영 재건 문제, 지점 통폐합, 구 은행의 파벌 대립 등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1996년 3월 결산에서 주택금융 전문회사 부실채권 처리로 적자를 기록했다.
1997년 6월 1일, 오카다 아키시게(岡田明重) 상무(구 미쓰이 은행(三井銀行) 출신)가 행장에, 타카사키 마사히로(高崎正弘) 상무(구 태양고베은행(太陽神戸銀行) 출신)가 회장에 취임하여, 구 미쓰이 은행(三井銀行) 주도의 경영이 명확해졌다. 같은 해 12월 미쓰이 그룹의 식품상사 도쇼쿠(東食)이 회사 정리법 적용을 신청하는 사태에 이르러, 경영 및 재무 내용에 대한 엄격한 시선이 쏟아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국내외 자산 축소, 지점 통폐합 및 직원 감축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계획이 세워졌다. 구 태양고베은행의 비수익 거래 정리의 일환으로, 아사히 은행(あさひ銀行)과의 지점 교환이 1997년 3월부터 이루어져, 구 태양고베은행(太陽神戸銀行)의 비수익 지점 12개[8]를 양도했다.
1998년 3월 31일, 금융 안정화법에 기초한 공적 자금(영구 후순위채 1000억엔)을 도입한 데 이어, 8월 31일 증자 계획을 발표하고, 미쓰이 그룹 기업과 생명보험회사에 인수를 요청하여, 제3자 배정 증자에 의한 보통주 발행(1998년 12월 25일 약 862억엔[9]) 및 해외 자회사의 우선주 발행(1998년 12월 24일 약 2588억엔 및 1999년 3월 30일 250억엔)을 실시했다. 증자를 통해 재무 기반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점 분야인 리테일 사업 추진을 위해, 에이엠·피엠·재팬(エーエム・ピーエム・ジャパン)과 제휴하여, am/pm 매장 내에 사쿠라은행의 ATM 설치를 통한 편의점 뱅킹(@BANK(앳뱅크)로 명명)을 시작한 외에, 개인 대출 사업인 사쿠라론 파트너, 일본 최초의 인터넷 전문 은행인 재팬넷은행(현·페이페이은행(PayPay銀行))을 설립했다.
1999년 10월 14일 스미토모은행(住友銀行)과의 통합을 전제로 한 전면 제휴를 발표했다.
5. 조직 문화
사쿠라 은행은 합병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직원 수가 다른 대형 은행보다 약 1만 명이나 많았고, 임원 수도 74명으로 당시 일본 기업 중 가장 많았다. 이는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증가로 이어져 수익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본부 조직을 축소하고 지점을 통폐합했지만, 각 직책에 구 미쓰이 은행 출신과 구 태양고베은행 출신을 같은 수만큼 배치하는 균형 인사와 구 은행 거래처 구분이 남아있어, 다른 은행처럼 과감한 부실채권 처리가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는 합병 은행의 폐해로 지적되기도 했다.
1994년 6월 29일, 스에마츠 행장이 대표권이 있는 회장으로 물러나고, 하시모토 슌사쿠 부행장(구 태양고베은행 출신)이 행장으로 승진했다. 이는 구 은행 출신자가 번갈아 행장에 취임하는 '엇갈린 인사'로, 내부 화합을 위한 조치였다.
1997년 6월 1일, 오카다 아키시게 상무(구 미쓰이 은행 출신)가 행장에, 타카사키 마사히로 상무(구 태양고베은행 출신)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구 미쓰이 은행 주도의 경영이 명확해졌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미쓰이 그룹의 식품상사 도쇼쿠가 회사 정리법 적용을 신청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경영 및 재무 내용에 대한 엄격한 시선이 쏟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쿠라 은행은 국내외 자산 축소, 지점 통폐합 및 직원 감축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다. 또한, 구 태양고베은행의 비수익 거래 정리의 일환으로, 아사히 은행과의 지점 교환이 이루어졌다.[8]
6. 마케팅 및 홍보
1991년 1월 1일부터 은행의 TV 광고가 허용됨에 따라, 전년 가을부터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쥴리 드레퓌스를 이미지 캐릭터로 기용했다. 1992년 4월 은행 이름 변경 시에는, 같은 해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드레퓌스가 출연하는 은행 이름 변경을 알리는 TV 광고가 간토·간사이 지역 민영 방송에서 집중적으로 방영되었다.[14]
1998년 2월부터는 히로스에 료코를 이미지 캐릭터로 기용했다.[15]
다이요고베미쓰이은행 시절 캐릭터 통장 등의 마스코트 캐릭터는 다이요고베은행이 채택했던 산리오의 에디&에미, 미쓰이은행이 채택했던 곰돌이 푸가 그대로 병용되었으나,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은행 이름 변경에 맞춰 마스코트 캐릭터는 새로워졌다. 「파라사&딘키 다이노스」라는 공룡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하여 통장과 현금카드, 기념품으로 준비된 저금통 등에 등장했다.[16] 1999년 2월 1일부터는 도라에몽을 새로운 캐릭터로 기용했다.[17]
7. 파벌
구 미쓰이 은행과 구 태양고베은행(太陽神戸銀行, TKB)은 합병 후에도 파벌 갈등이 존재했다. 합병으로 인해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가 증가하여 수익은 부진했고, 본부 조직 축소와 지점 통폐합이 이루어졌지만, 각 직책에 구 은행 출신을 동일 수만큼 배치하는 균형 인사와 구 은행 거래처 구분이 남아있어 과감한 부실채권 처리가 어려웠다.[18] 이러한 문제는 합병 은행의 폐해로 지적되었다.
1994년 6월 29일, 스에마츠(末松) 행장이 회장으로 물러나고, 구 태양고베은행 출신 하시모토 슌사쿠(橋本俊作) 부행장이 행장으로 승진했다. 이는 구 은행 출신자가 번갈아 행장에 취임하는 '엇갈림 인사'로, 내부 화합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1997년 6월 1일, 스에마츠 회장과 하시모토 행장이 퇴임하고, 구 미쓰이 은행(三井銀行) 출신 오카다 아키시게(岡田明重) 상무가 행장에, 구 태양고베은행 출신 타카사키 마사히로(高崎正弘) 상무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구 미쓰이 은행 주도의 경영이 명확해졌다.
1997년 3월부터 구 태양고베은행의 비수익 거래 정리를 위해 아사히 은행(あさひ銀行)과의 지점 교환이 이루어졌고, 구 태양고베은행의 비수익 지점 12개[8]가 양도되었다.
8. 융자 계열
다이에, 미놀타카메라, 아식스, 미도리십자, 글로리, 노리츠, 산요전기철도, 일본정화 등이 구 태양고베은행 계열이다.
8. 1. 구 미쓰이 은행 계열
니키카이 가맹 기업으로는 도쿄전력, 소니, 이토요카도, 토요타자동차, 노무라증권, 쇼보 등이 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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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和証券SBキャピタル・マーケッツとさくら証券の統合および商号変更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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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くら信託銀行株式の中央三井信託銀行への譲渡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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銀行CMにも自由化の波 転居多い4月に照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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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メージキャラクター起用のお知ら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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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くら銀、あす "開花" 今晩一斉に表示変更 重要帳票、管理を徹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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