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순옹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숙순옹주는 조선 태종과 궁인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옹주로, 1420년에서 1422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435년 파원군 윤평과 혼인하여 태종의 자녀 중 가장 마지막으로 혼인했으며, 친영 제도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467년 윤평과 사별 후, 1481년 사위 심안인을 가까운 고을로 옮겨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같은 해 5월 묘지석이 건립된 것으로 보아 1481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481년 사망 - 메흐메트 2세
메흐메트 2세는 1432년에 태어나 1451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되어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고 오스만 제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었으며 1481년에 사망했다. - 1481년 사망 - 크리스티안 1세
크리스티안 1세는 올덴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왕을 지냈으며 슐레스비히 공작과 홀슈타인 백작을 겸했고 코펜하겐 대학교 설립에 기여했으나 칼마르 동맹 재건 시도는 실패했다. - 조선 태종의 자녀 - 양녕대군
양녕대군은 조선 태종의 장남으로 왕세자였으나 폐위되었고, 동생 세종을 도왔으며 숭례문 현판 글씨를 쓰는 등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 - 조선 태종의 자녀 - 함녕군
함녕군 이인은 조선 태종의 아들이자 외교적 업적을 남겼으며 세종의 신임을 받았고, 단종과 세조 시대에도 활동하다 1467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 조선의 옹주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옹주 - 영온옹주
영온옹주는 조선 순조와 숙의 박씨의 외동딸이자 효명세자의 이복 여동생으로, 11세에 옹주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3세에 요절하였으며 효명세자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숙순옹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작위 | 태종의 옹주 |
별칭 | 숙신옹주(淑愼翁主) |
배우자 | 파원위(坡原尉) 윤평 |
자녀 | 2남 1녀 ----윤분 · 윤강 · 심안인의 처 |
아버지 | 태종 |
어머니 | 후궁 이씨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1481년 |
2. 생애
숙순옹주는 태종과 궁인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연도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바로 위의 이복 언니인 숙경옹주가 1420년생이고, 태종이 1422년 승하하였으므로 1420년에서 1422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고, 《태종실록》에는 궁인(宮人)으로, 왕실 족보인 《선원록》과 야사인 《연려실기술》에는 이씨(李氏)라고만 적혀 있다.
세종실록에는 '''숙신옹주'''(淑愼翁主)로 기록되어 있으나, 세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등을 비롯한 사서에는 '''숙순옹주'''(淑順翁主)로 기록되어 있다.
1435년(세종 17년) 3월 4일, 인수부윤 윤창(尹敞)의 아들인 파원군 윤평과 혼인하였다. 숙순옹주는 태종의 자녀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혼인하였으며, 이때부터 신랑이 신부 집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자신의 집에서 혼인을 진행하는 친영(親迎) 제도가 시작되었다.[2]
1467년(세조 13년) 남편과 사별하였고, 장남을 잃은 후 둘째 아들 윤강(尹杠)에게 의지하였으나, 윤강마저 어린 딸만 두고 요절하여 남자 자손이 단절되었다. 이후 숙순옹주는 딸 윤씨와 사위 심안인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1481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묘지석이 같은 해 5월에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묘지는 본래 경기도 고양시에 있었으나, 이후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으로 이장되었다.
2. 1. 출생
태종과 궁인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연도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바로 위의 이복 언니인 숙경옹주가 1420년생이고, 태종이 1422년 승하하였으므로 1420년에서 1422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어머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고, 《태종실록》에는 궁인(宮人)으로, 왕실 족보인 《선원록》과 야사인 《연려실기술》에는 이씨(李氏)라고만 적혀 있다. 일부 대중 역사서에는 숙순옹주의 어머니가 태종의 후궁인 덕숙옹주 이씨나 후령군의 생모 이씨와 동일인이라는 기록이 존재하는데 이에 관한 역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1]
세종실록에는 '''숙신옹주'''(淑愼翁主)로 기록되어 있으나, 세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등을 비롯한 사서에는 '''숙순옹주'''(淑順翁主)로 기록되어 있다.
2. 2. 혼인
1435년(세종 17년) 3월 4일, 인수부윤 윤창(尹敞)의 아들인 파원군 윤평과 혼인하였다. 숙순옹주는 태종의 자녀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혼인하였으며, 파원군 윤평이 숙순옹주를 직접 맞이하러 갔는데, 신랑이 신부 집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자신의 집에서 혼인을 진행하는 절차인 친영(親迎) 제도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2]1467년(세조 13년) 남편과 사별하였고, 이미 장남을 잃은 숙순옹주는 둘째 아들 윤강(尹杠)에게 의지하였는데, 윤강이 어린 딸만 두고 요절하는 바람에 남자 자손이 단절되었다. 숙순옹주는 딸인 윤씨와 사위 심안인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2. 3. 사망
숙순옹주는 1481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묘지석이 같은 해 5월에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묘지는 본래 경기도 고양시에 있었으나, 이후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으로 이장되었다.3.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비고 |
---|---|---|
아버지 | 태종 | 1367 ~ 1422 |
어머니 | 궁인 이씨 | 생몰년 미상 |
남편 | 파원위 윤평 | 1420~1467[4] |
장남 | 윤분 | ?~1463[4] |
차남 | 윤강 | |
며느리 | 순흥 안씨 | 안의행의 딸 |
손자 | 윤구손 | |
손녀 | 청주 한씨 | 한세준의 처 |
장녀 | 윤씨 | 심안인의 처 |
외손자 | 심담 | |
외손자 | 심빈 |
참조
[1]
서적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및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실계보
[2]
서적
세종실록
1435-03-04
[3]
서적
성종실록
1481-01-23
[4]
간행물
국조인물고 권6 국척(國戚) - 윤평(尹泙)의 묘지명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