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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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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창 옹씨는 삼한 시대부터 존재했던 성씨로, 고려 시대에 병부상서를 지낸 옹희태를 시조로 한다. 조선 시대에는 옹몽진 등 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옹권삼, 옹태룡 등이 있다. 본관은 순창이며, 대한민국에는 옹경일, 옹성우 등 다양한 인물이 있다. 2015년 기준 837명이 순창 옹씨로 조사되었으며, 옥천 옹씨는 한국의 귀족 가문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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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옹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성씨순창 옹씨(淳昌邕氏)
이칭옥천 옹씨(玉川邕氏)
관향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시조옹희태(邕羲泰)
중시조옹은(邕誾)
집성촌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주요 인물옹몽진
옹택규
옹권삼
옹태룡
옹경일
옹동균
옹성우
년도2015
인구767명 (순창 옹씨: 303명, 옥천 옹씨: 464명)

2. 역사

『옥천옹씨세보(玉川邕氏世』에 따르면 옹씨는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성씨로서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여러 대에 걸쳐 높은 관직과 훈작으로 영화를 누리던 명문이었다고 한다.[2]

시조 '''옹희태'''(邕羲泰)는 고려시대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3]

옹경성(邕慶星), 옹의성(邕義星), 옹명정(邕命廷) 등 고려 조에 벼슬을 지낸 옹(邕)씨의 조상들은 조선의 개국 때에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왕권이 바뀌면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은둔하거나 성을 감추고 있다가 초산(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순창의 향리로 강속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가승과 종적이 실전되었다고 한다.

옹태운의 아들인 '''옹몽진'''(邕夢辰)이 1553년(명종 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음성현감을 역임하고 충청도사, 형조좌랑, 예조좌랑, 병조정랑을 거쳐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使)에 이르러 집안을 다시 세우면서 옹몽진의 증조부인 옹은(邕誾)을 1세로 하고 있다.

순창 옹씨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다.[4]

=== 고려 시대 ===

옹경성(邕慶星)은 고려 말에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나, 국운이 기울어짐을 개탄하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옹의성(邕義星)은 도통(都統)·승선(承宣) 등을 역임하고 치안(治安)에 관한 15조를 지어 올렸다. 옹명정(邕命廷)과 옹희태(邕羲泰)는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 조선 시대 ===

옹몽진(邕夢辰)은 자가 응룡(應龍)·응기(應祈)이며 아버지는 옹태운(邕太雲)이다. 1553년(명종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판관에 이르렀다. 1567년 음성현감으로서 정치를 잘하여 백성의 오랜 폐단을 제거하여 칭송을 받았다. 문장가로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옹은필(邕殷弼)은 자가 몽득(夢得)이며, 순창 출신으로 조선 중종 35년(1540년) 식년시에 3등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아버지는 계공랑(啓功郞: 종7품 문관) 옹처겸(邕處謙)이다.[6] 옹수흠(邕守欽)은 1531년생으로 자는 여일(汝一)이다. 조선 명종 13년(1558년) 식년시(式年試) 2등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아버지는 돈용교위(敦勇校尉: 정6품 무관) 옹세결(邕世潔)이고, 동생은 옹수경(邕守敬), 옹수공(邕守恭)이다. 옹경우(邕景祐)는 1566년생으로 자는 영숙(永叔)이며, 조선 인조 2년(1624년) 식년시(式年試) 2등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아버지는 옹달선(邕達善), 동생은 옹경지(邕景祉)이다.[7] 옹경신(邕景信)은 조선 인조 2년(1624년)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훈록되고, 1636년(인조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군공을 세워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에 제수되었다. 만년에 효행(孝行)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직첩을 받았다. 옹희익(邕熙益)은 1631년생으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옹경신(邕景信)의 아들이며, 자는 겸중(謙仲)이고 순창 출신이다. 조선 효종 2년(1651년) 별시(別試) 무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8] 동생은 옹희윤(邕熙允)이다. 옹기풍(邕基豊)은 학문이 뛰어나 동몽교관에 증직되었다. 옹택규(邕宅奎)는 자(字)는 처안(處安), 호(號)는 우연(又蓮)이다. 조선조(朝鮮朝)에 문장(文章)과 시문(詩文)으로 이름을 떨쳤다. 1885년(조선 고종 22년) 부름을 받아 용양위 부사용(龍쵃衛副司勇)에 기용되고 이어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衛副司果)에 승진되었다.[9] 옹봉규(邕奉奎)는 중추원 의관을 지냈으며, 옹승규(邕勝奎)는 관찰부 주사를 역임하였다.

=== 일제강점기 ===

옹권삼(雍權三, 1892년 ~ 1988년)은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양윤숙(楊允淑) 의진에 군량과 서신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10] 1909년 음력 10월 20일에는 순창군 내에서 군자금 2백냥을 모금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10] 1910년 1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12년 징역 2년 8월로 감형되어 출옥하였다.[10]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10]

옹태룡(邕太龍, 1892년 ~ 1988년, 전라북도 순창)은 1909년 2월 12일 최산흥(崔山興) 의진에 들어가, 순창군 목과면 방축동 동장 김석중(金錫仲)에게서 군자금 1백냥을 거두는 등의 활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11] 1910년 4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11]

=== 대한민국 ===

대한민국에는 옹경일(1972년 ~ ) 한국 무용가, 옹동균(1991년 ~ ) 축구 선수, 옹성우(1995년 ~ ) 가수 겸 배우, 옹상수( ~ 2014년) 한국 예술가 겸 KBS 방송국 PD 등이 있다.

2. 1. 고려 시대

옹경성(邕慶星)은 고려 말에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나, 국운이 기울어짐을 개탄하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옹의성(邕義星)은 도통(都統)·승선(承宣) 등을 역임하고 치안(治安)에 관한 15조를 지어 올렸다. 옹명정(邕命廷)과 옹희태(邕羲泰)는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2. 2. 조선 시대

옹몽진(邕夢辰)은 자가 응룡(應龍)·응기(應祈)이며 아버지는 옹태운(邕太雲)이다. 1553년(명종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판관에 이르렀다. 1567년 음성현감으로서 정치를 잘하여 백성의 오랜 폐단을 제거하여 칭송을 받았다. 문장가로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옹은필(邕殷弼)은 자가 몽득(夢得)이며, 순창 출신으로 조선 중종 35년(1540년) 식년시에 3등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아버지는 계공랑(啓功郞: 종7품 문관) 옹처겸(邕處謙)이다.[6] 옹수흠(邕守欽)은 1531년생으로 자는 여일(汝一)이다. 조선 명종 13년(1558년) 식년시(式年試) 2등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아버지는 돈용교위(敦勇校尉: 정6품 무관) 옹세결(邕世潔)이고, 동생은 옹수경(邕守敬), 옹수공(邕守恭)이다. 옹경우(邕景祐)는 1566년생으로 자는 영숙(永叔)이며, 조선 인조 2년(1624년) 식년시(式年試) 2등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아버지는 옹달선(邕達善), 동생은 옹경지(邕景祉)이다.[7] 옹경신(邕景信)은 조선 인조 2년(1624년)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훈록되고, 1636년(인조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군공을 세워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에 제수되었다. 만년에 효행(孝行)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직첩을 받았다. 옹희익(邕熙益)은 1631년생으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옹경신(邕景信)의 아들이며, 자는 겸중(謙仲)이고 순창 출신이다. 조선 효종 2년(1651년) 별시(別試) 무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8] 동생은 옹희윤(邕熙允)이다. 옹기풍(邕基豊)은 학문이 뛰어나 동몽교관에 증직되었다. 옹택규(邕宅奎)는 자(字)는 처안(處安), 호(號)는 우연(又蓮)이다. 조선조(朝鮮朝)에 문장(文章)과 시문(詩文)으로 이름을 떨쳤다. 1885년(조선 고종 22년) 부름을 받아 용양위 부사용(龍쵃衛副司勇)에 기용되고 이어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衛副司果)에 승진되었다.[9] 옹봉규(邕奉奎)는 중추원 의관을 지냈으며, 옹승규(邕勝奎)는 관찰부 주사를 역임하였다.

2. 3. 일제강점기

옹권삼(雍權三, 1892년 ~ 1988년)은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양윤숙(楊允淑) 의진에 군량과 서신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10] 1909년 음력 10월 20일에는 순창군 내에서 군자금 2백냥을 모금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10] 1910년 1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12년 징역 2년 8월로 감형되어 출옥하였다.[10]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10]

옹태룡(邕太龍, 1892년 ~ 1988년, 전북 순창)은 1909년 2월 12일 최산흥(崔山興) 의진에 들어가, 순창군 목과면 방축동 동장 김석중(金錫仲)에게서 군자금 1백냥을 거두는 등의 활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11] 1910년 4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11]

2. 4. 대한민국

대한민국에는 옹경일(1972년 ~ ) 한국 무용가, 옹동균(1991년 ~ ) 축구 선수, 옹성우(1995년 ~ ) 가수 겸 배우, 옹상수( ~ 2014년) 한국 예술가 겸 KBS 방송국 PD 등이 있다.

3. 본관

옥천(玉川)은 순창의 별칭이다. 순창은 전라북도 남부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원래 백제의 도실군(道實郡)인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고쳤고, 940년(고려 태종 23) 순창(淳昌)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018년(현종 9) 남원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5년(명종 5) 감무를 설치함으로써 독립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순창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전라도 남원도호부 순창군의 토성(土姓)으로 (薛)·염(廉)·(林)·(趙)·옹(邕) 5성이 기록되어 있다.[5] 1896년 전라북도 순창군이 되었다.

4. 분관

옹(邕)씨와 한자 표기가 다른 옹(雍)씨는 2015년 기준 130명이 있다. 옹(雍)씨는 1930년 국세조사 때 처음 나타난 성씨로 경상남도 창원군 능남면 안민리에 8가구가 있었다.[12] 당시 옹도식(雍道植)에 의하면 그의 조상이 2백여 년 전 순창에서 이주해 왔다고 하는데 조사 결과 순창 옹씨(淳昌邕氏)의 오기(誤記)로 밝혀졌다.[12] 파평 옹씨(坡平 雍氏)는 1960년에는 50명, 2000년에는 135명, 2015년에는 12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5. 집성촌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과 정읍시, 그리고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에 순창 옹씨 집성촌이 있다.

6.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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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16세17세18세19세20세21세22세23세24세25세
규(奎)종(鍾)원(源)상(相)환(煥)재(在)현(鉉)태(泰)근(根)병(炳)균(均)


7. 인구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옹(邕)씨는 2000년에 772명, 2015년에는 837명으로 조사되었다. 옥천 옹씨(玉川 邕氏)는 보수적인 순혈 양반가문이며 한국의 귀족(貴族)가문이다.

2000년 옥천 옹씨 120가구 407명, 순창 옹씨 105가구 353명이 조사되어 총 760명이었다. 2015년에는 옥천 옹씨 303명, 순창 옹씨 464명이 조사되어 총 767명이었다.

참조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옹몽진
[2] 웹인용 정복규의 성씨 칼럼 - 옥천 옹씨 https://web.archive.[...] 2014-08-11
[3] 네이버지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
[4] 한국학중앙연구원인물
[5] 문헌 《세종실록》 151권, 지리지 전라도 남원도호부 순창군 http://sillok.histor[...]
[6] 문헌 『가정19년경자식2월23일생원진사방목(嘉靖十九年庚子式二月二十三日生員進士榜目)』
[7] 문헌 『천계4년갑자10월13일사마방목(天啓四年甲子十月十三日司馬榜目)』
[8] 문헌 『신묘별시무과방목(辛卯別試武科榜目)』
[9] 두산백과 옹택규 - 두산백과 https://terms.naver.[...]
[10] 웹인용 옹권삼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https://web.archive.[...] 2014-08-11
[11] 웹인용 옹태룡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https://web.archive.[...] 2014-08-11
[12] 웹인용 파평 옹씨 - 부천족보전문도서관 https://web.archive.[...]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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