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소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안동소주는 신라 시대부터 유래된 증류식 소주로, 몽골의 고려 침입 시기에 안동으로 전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가양주로 전승되다가 1920년 상업화되었으나, 1962년 주세법 개정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후 198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1990년 민속주로 다시 생산되었다. 안동소주는 조옥화와 박재서 두 명의 식품 명인에 의해 제조되며, 조옥화는 전통 방식을, 박재서는 쌀 누룩을 사용하는 차별화된 방식을 사용한다. 45도의 고도주임에도 숙취가 적고 풍미가 뛰어나며, 제조 방법에 따라 다양한 도수의 제품이 생산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경상북도의 무형문화재 - 구미발갱이들소리
구미발갱이들소리는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논매기 소리로, 발갱이들이라는 지명 유래에 대한 설이 전해지며, 1970년대부터 조사를 통해 영남아리랑이 발굴되어 영향을 미쳤고, 구미시는 보존과 전승을 위해 전수관을 개관하고 보존회를 창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 소주 -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2011년 하이트맥주와 진로의 합병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대 주류 기업으로, 국내 주류 시장을 선도하며 다양한 브랜드로 국내외 시장에서 활약하고 해외 수출도 활발하지만, 소주 시장 과점 및 노조 갈등 등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도 있는 기업이다. - 소주 - 롯데칠성음료
1950년 설립되어 롯데그룹에 인수된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 펩시, 처음처럼, 클라우드 등 다양한 음료 및 주류 브랜드를 보유한 대한민국의 음료 및 주류 제조 회사로, CJ제일제당 음료 부문, 두산주류BG 등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으나 가격 담합 등으로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 안동시의 문화유산 - 징비록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전말과 원인, 자신의 과오 등을 기록하여 반성하고 후대에 같은 전란을 경계하고자 한 책으로, 임진왜란 전모를 기록한 귀중한 사료이다. - 안동시의 문화유산 -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었으며, 임하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으나 이식 공사를 통해 보존되었고, 마을 주민의 단합을 상징하며 매년 제사가 거행된다.
안동소주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유형 | 소주 |
원산지 | 안동, 한국 |
명칭 | |
한국어 | 안동소주 |
한자 | 安東燒酒 |
로마자 표기 | Andong soju |
문화재 정보 | |
국가 | 경상북도 |
유형 | 무형문화재 |
지정 번호 | 12 |
지정일 | 1987년 5월 13일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
문화재청 | 22,00120000,37 |
2. 유래
안동소주는 안동지방의 이름난 집에서 전수되어 오던 증류식 소주로, 일반 백성들은 안동소주를 상처, 배앓이,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에 구급처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동소주는 안동지방의 이름난 집에서 전수되어 오던 증류식 소주로, 일반 백성들은 안동소주를 상처, 배앓이,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에 구급처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안동소주는 쌀, 보리, 조, 수수, 콩 등 다섯 가지 곡물을 물에 불린 후 시루에 쪄서 만든다. 여기에 누룩을 섞어 10일가량 발효시켜 진술을 만들고, 이 진술을 솥에 담고 소주고리를 얹어 불을 지피면 진술이 증류되어 소주가 만들어진다. 목성산의 맑은 물이 사용되어 맛과 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안동소주는 신라시대부터 그 기원을 잡는다.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여왔다. 신라 괘릉에서 출토되는 이국적 용모를 한 무인상과 페르시아 유리잔은 신라와 아랍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되었다. 당나라 때부터 증류식 술을 마셔왔다고 하는데, 신라와 당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증류식 술이 신라 시대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8]
안동소주의 직접적인 기원은 몽골군에 의해 안동에 소주가 전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 간섭기 고려와 원이 연합하여 일본정벌을 하던 때, 특히 1281년 2차 일본정벌 때 충렬왕이 안동에 행궁을 설치하고 30여 일 이상 머물렀다. 이때 충렬왕은 안동행궁에서 일본정벌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원나라에 장수를 파견하여 이 사실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때 퇴각하던 원나라 군사도 안동을 경유하여 돌아갔다. 따라서 안동지역소주는 충렬왕이 안동에 머물던 1281년이었을 것이라 판단된다.[9]
3. 역사
안동소주는 신라시대부터 그 기원을 잡는다. 증류기술은 아랍 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여왔다. 신라 괘릉에서 출토되는 이국적 용모를 한 무인상과 페르시아 유리잔은 신라와 아랍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되었다. 또한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증류식 술을 마셔왔다고 하는데, 신라와 당나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증류식 술을 신라 시대부터 마셔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8]
안동소주의 직접적인 기원은 몽골군에 의해 안동에 소주가 전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 간섭기 고려와 원나라가 연합하여 일본정벌을 하던 때, 특히 1281년 2차 일본정벌 때 충렬왕이 안동에 행궁을 설치하고 30여 일 이상 머물렀다. 이때 충렬왕은 안동행궁에서 일본정벌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원나라에 장수를 파견하여 이 사실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때 퇴각하던 원나라 군사도 안동을 경유하여 돌아갔다. 따라서 안동지역소주는 충렬왕이 안동에 머물던 1281년이었을 것이라 판단된다.[9]
조선 연산군 때 안동으로 귀양왔던 농암 이현보가 중종반정 후 지평(持平)으로 복직되어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직무에 충실하여 동료간에 소주도병(燒酒陶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기록에서 소주의 역사적 일단을 볼 수 있다.
안동소주는 주식인 쌀로 만드는 술이기 때문에 안동소주 제조법이 안동 지역 일부 집에서만 전승되었고, 부유한 사람들이 귀한 손님을 접대할 때나 선물을 보낼 때 소주를 빚어서 사용했고, 의서(醫書)에서는 소주가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현재 안동 지역민의 제보에서도 상처, 배앓이, 식욕 증진, 소화불량에 소주를 구급 처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동소주는 가양주로 전승되어 오다 1920년 안동시에 공장을 세워 ‘제비원소주’라는 상표로 상품화되었다가 1962년 주세법 개정으로 순곡소주 생산이 금지되어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 뒤 1987년에 와서 안동소주 제조비법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조옥화씨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면서 1990년 민속주로 생산과 판매가 다시 이루어졌다.[10]
4. 양조법
안동소주는 증류주이다. 17세기 장계향이 저술한 『음식디미방』에는 찐 쌀 18ℓ에 누룩 9ℓ, 물 36ℓ를 섞어 7일간 발효시킨 후, 술을 물과 2:3 비율로 섞어 증류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2] 현재는 증류할 술을 보통 15일 정도 발효시킨다.
일반 백성들은 안동소주를 상처, 배앓이,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에 구급처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안동소주 제조 과정은 다음과 같다.
현재 안동소주를 만드는 법은 조옥화(식품 명인 제20호)와 박재서(식품 명인 제6호)가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 전승되고 있다.
4. 1. 조옥화의 방식
조옥화의 안동소주 제조 방식은 다음과 같다.
조옥화는 안동소주 제조 및 보존으로 2000년 9월 18일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며느리 배경화와 아들 김연박이 그 전통을 잇고 있다.[5]
4. 2. 박재서의 방식
박재서 명인이 제조하는 안동소주는 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고, 전술을 만들 때 3단 사입을 거쳐 28일간 술을 빚어 청주를 만든다. 그 다음 청주를 중탕 방식으로 증류하여 만드는데, 100일 이상의 정제와 숙성 과정을 거치므로 누룩 냄새와 불 냄새가 없고 은은한 곡주향이 나는 부드러운 안동소주가 된다.[7]
3단 사입이란 박재서 명인 고유의 방식으로, 온도가 유지되도록 발효시키는 것이다.[7]
박재서 명인은 반남 박씨 시조 박응주의 25대손이며, 500년 동안 가문에 전해 내려온 안동소주 계보를 잇고 있다. 이러한 전통 보존 공로로 박재서 명인은 1995년 7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로 지정되었다.[6]
5. 보유자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는 故 조옥화와 박재서이다. 조옥화는 1987년 5월 13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고, 박재서는 전통식품명인 제6호이며, 故 조옥화는 전통식품명인 제20호이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전후한 정부의 민속주 발굴에 힘입어 안동소주를 이어가고 있다. 조옥화는 전통적인 안동소주 양조비법으로 제조, 전승, 보존하여 1987년 5월 13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으며, 2000년 9월 18일 식품명인 제20호로 지정받았다. 현재 안동소주는 며느리 배경화와 아들 김연박에게 전승되어 그 맥을 계승하고 있다.
박재서는 안동에서 500여 년 가문의 전통 안동소주 제조비법을 이어온 반남 박씨 25대손으로 가문 전통의 안동소주 양조비법으로 제조, 전승, 보존하여 1995년 7월에 전통식품명인 6호로 지정받았다.
한국에서는 안동소주에 식품명인을 두 명으로 지정하였는데, 조옥화와 박재서의 제조방법과 안동소주의 재료가 서로 많이 달라 두 명에게 전통식품명인을 지정하였다.[7]
분류 | 박재서 | 조옥화 |
---|---|---|
지정 장인 | 박재서 | 조옥화 |
지정일 | 1995.07.15 | 2000.09.18 |
장인 번호 | 6호 | 20호 |
지정 상세 | 안동소주 장인 | 안동소주 장인 |
6. 특징
민속주 안동소주는 45°의 고도주임에도 마신 뒤 향기가 입안에 은은하게 퍼져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고 마시고 난 뒤 숙취가 전혀 없다. 여러 번 되풀이되는 연속 증류방식으로 만들어지면서 불순물이 완벽하게 제거돼 오래 보관할수록 풍미가 더욱 좋아진다.[7]
식품명인이 두 명 지정되어 제조법도 조옥화와 박재서의 방법 두가지로 나뉜다. 조옥화가 만드는 안동소주는 전통성 유지를 위해 오직 45° 안동소주만 생산하는 것에 반해, 박재서가 만드는 안동소주는 다양한 소비자 층 형성을 위해 45°, 35°, 22°, 19°의 소주를 생산한다.[7]
7. 다른 지역 민속주
참조
[1]
웹사이트
andong soju (Doosan Encyclopedia)
http://terms.naver.c[...]
[2]
서적
Eumsik dimibang
http://www.davincima[...]
2017-04-14
[3]
웹사이트
Origin of Andong soju
http://www.andongsoj[...]
[4]
뉴스
Korean traditional alcoholic beverages go global-프린트화면
http://www.koreahera[...]
2017-10-09
[5]
웹사이트
Soju Style – Cravemag Hong Kong & Macau
http://www.cravemag.[...]
2017-10-09
[6]
웹사이트
Profile: Park Jae-seo
http://www.andongsoj[...]
[7]
웹사이트
안동소주
http://www.adsoju.co[...]
[8]
웹인용
민속주 안동소주 (경북무형문화재12호, 전통식품명인20호 조옥화 할머니가 만듭니다)
http://www.andongsoj[...]
2009-12-29
[9]
서적
지방사와 지방문화
[10]
웹사이트
문화재청
http://www.cha.go.kr[...]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