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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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스트는 벨기에 동플랑드르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9세기에 처음 기록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브뤼헤에서 쾰른으로 가는 길목의 요충지로 성장했으며, 플랑드르 백작령에 속했다. 12세기 중반에 건설된 시청은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 건물 중 하나이며, 15세기에는 고딕 양식의 종탑이 건설되었다. 알스트는 80년 전쟁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며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산업 혁명 시기에는 노동 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섬유 산업이 활발하며, 알스트 카니발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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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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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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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어 이름 | Oilsjt (브라반트어) |
프랑스어 이름 | Alost |
별칭 | 양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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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보 | |
국가 | 벨기에 |
지역 | 플란데런 지역 |
공동체 | 네덜란드어 공동체 |
주 | 오스트플란데런 주 |
행정 구역 | 아알스트 |
NIS 코드 | 41002 |
인구 통계 | |
인구 (2023년 1월 1일) | 88,854명 |
외국인 비율 (2005년 7월 1일) | 2.43% |
인구 피라미드 (2006년 1월 1일) | 0-19세: "19.73%" 20-64세: "60.87%" 65세 이상: "19.20%" |
인구 밀도 | 1129.68명/km² |
지리 | |
면적 | 78.65km² |
정치 | |
시장 | Christoph D'Haese (N-VA) |
다수당 | N-VA, Open VLD, CD&V |
교통 | |
전화 지역 코드 | 053 |
우편 번호 | 9300, 9308, 9310, 9320 |
웹사이트 | |
공식 웹사이트 | 아알스트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알스트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로베스 수도원의 영지로 언급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덴데르 강을 건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여 도시와 항구가 발달했다. 비록 신성 로마 제국에 속했지만 플랑드르의 영향력이 강했으며, 1046년에는 제국 플랑드르 백작령에 편입되었다.[2] 12세기 중반부터 건설된 시청은 현재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21][3] 15세기에는 고딕 건축 양식의 종탑이 세워지고 길드를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이 시기 디르크 마르텐스는 남네덜란드 최초로 인쇄소를 설립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5]
그러나 알스트는 80년 전쟁(1568–1648)과 대권 전쟁(1667년) 등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스페인과 프랑스 등 외세의 지배와 약탈로 어려움을 겪었다. 1576년 스페인 군대에 약탈당하고, 1667년에는 프랑스 튀렌 자작에게 점령되어 요새가 파괴되기도 했다.[2] 프랑스 점령기 동안 섬유 산업은 번성했으나, 1706년 라미유 전투 이후 독립할 때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2]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가 이 지역을 통치했다.[7]
1830년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알스트는 마침내 벨기에의 일부가 되었고, 오랜 외세 지배에서 벗어났다.[3] 하지만 19세기는 산업 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가 두드러졌으며, 이에 아돌프 다엔스 신부는 기독교 인민당을 이끌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사회 운동에 앞장섰다.[8] 20세기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 독일군의 폭격과 점령으로 또다시 피해를 입었다.[2][21] 또한, 전쟁 사이 기간에는 저지대 국가 전반의 파시즘 확산 속에서 협력주의 단체인 플람스 국민 연합이 이 지역에서 세력을 얻기도 했다.[9]
2. 1. 초기 역사
알스트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은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알스트는 로베스 수도원에 속한 영지인 ''빌라 알로스트''로 불렸다. 중세 시대에는 브뤼허에서 쾰른으로 가는 길이 덴데르 강을 건너는 전략적 요충지에 도시와 항구가 발달했다. 신성 로마 제국 영토였지만 플랑드르의 영향 아래 있었다.[2] 870년 문헌에는 알스트 성이 처음 언급되었다.
1046년, 알스트는 제국 플랑드르 백작령의 일부가 되었고, 브라반트 방백령의 일부를 흡수했다. 1173년에는 나머지 플랑드르 지방과 완전히 통합되었다.[2]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과의 국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도시는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브라반트와의 관계는 도시의 문장에 남아있는 흰색과 빨간색, 즉 로트링겐의 색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2세기 중반부터 시청 건설이 시작되었는데,[21] 이는 현재 벨기에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시청이다.[3] 당시의 여러 필사본들이 지금도 시립 문서 보관소에 보존되어 있다.[21] 백년 전쟁 중 알스트는 루이 드 말 편에 서서 필리프 반 아르테벨데에 맞섰으며, 로제베케 전투에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4] 1360년에는 화재로 시청과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곧 재건되었다. 15세기에는 새로운 고딕 건축 양식의 종탑이 세워졌고, 강력한 길드의 영향 아래 도시는 번영을 누렸다. 이 시기 알스트 출신 디르크 마르텐스는 남네덜란드 최초의 인쇄업자가 되어 1473년 인쇄소를 설립하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 여러 저자의 책을 출판했다.[5] 마르텐스는 후에 뢰번 가톨릭 대학교 교수가 되었고,[21] 알스트의 성 마르틴 교회에 묻혔다.[6]
알스트는 80년 전쟁 (1568–1648) 동안 큰 고통을 겪었다. 1576년에는 스페인 군대에게 약탈당했고, 1582년에는 알랑송 공 프랑수아에게 정복되었다. 1583년에는 잉글랜드 군대에 점령되었다가, 결국 3만 두카트의 대가를 받고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파르마 공 알레산드로 파르네세에게 넘어갔다. 이후 1667년 대권 전쟁 중에는 프랑스 튀렌 자작에게 점령당했으며,[2] 이때 요새가 파괴되었다. 알스트는 1706년 라미유 전투 이후 남플랑드르와 함께 다시 독립할 때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2] 프랑스 점령기 동안 섬유를 기반으로 한 경제는 번성했다.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가 이 지역을 통치했다.[7]
1830년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알스트는 마침내 벨기에의 일부가 되었다. 이로써 1056년부터 시작된 스페인 제국,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네덜란드 공화국 등 외세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3]
2. 2. 중세
알스트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알스트는 로베스 수도원의 부속지인 villa Alostla로 묘사되었다. 중세 시대에 이곳은 브뤼헤에서 쾰른으로 가는 길이 덴데르 강을 건너는 전략적 요충지로, 도시와 항구가 발달했다.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지만 플랑드르의 수도로 여겨지기도 했다.[2] 1046년, 알스트는 제국 플랑드르 백작령으로 편입되었고, 브라반트 방백령의 일부를 흡수했으며, 1173년에는 나머지 플랑드르 지방과 통합되었다.[2] 신성 로마 제국과의 국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도시는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브라반트와의 관계는 도시의 문장인 흰색과 빨간색, 즉 로트링겐의 색깔에 남아 있다.
시청 건설은 12세기 중반에 시작되었으며,[21] 이는 벨기에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청으로 알려져 있다.[3] 이 시대의 여러 필사본들이 여전히 시립 문서 보관소에 보존되어 있다.[21] 백년 전쟁 동안 알스트시는 루이 드 말과 동맹을 맺고 필리프 반 아르테벨데에 맞섰으며, 승리한 로제베케 전투에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4] 1360년에는 화재로 시청과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곧 재건되었고, 15세기에는 새로운 고딕 건축 양식의 종탑이 세워졌다. 이 시기는 강력한 길드가 도시를 이끌며 번영을 누렸던 때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알스트 출신 시민 디르크 마르텐스가 남네덜란드 최초의 인쇄업자가 되어 1473년에 인쇄소를 설립했다. 그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비롯한 여러 작가의 책을 출판했다.[5] 마르텐스는 나중에 루벤 가톨릭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으며,[21] 알스트의 성 마르틴 교회에 안치되었다.[6]
알스트는 80년 전쟁 (1568–1648) 동안 큰 고통을 겪었다.[2] 1576년에는 스페인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1582년에는 알랑송 공 프랑수아에게 정복당했다. 이후 1583년에는 잉글랜드 군대가 점령했으나, 결국 3만 두카트를 받고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파르마 공 알레산드로 파르네세에게 도시를 넘겨주었다.
2. 3. 근세
알스트는 80년 전쟁 (1568–1648) 동안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2] 1576년에는 스페인군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1582년에는 알랑송 공 프랑수아에게 정복되었다. 이후 1583년에는 잉글랜드군에게 점령되어 3만 두카트의 대가를 받고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파르마 공 알레산드로 파르네세에게 양도되었다.
이후 1667년 대권 전쟁 중 프랑스의 튀렌 자작에게 점령당했으며, 이때 도시의 요새가 함락되고 파괴되었다.[2] 이로써 프랑스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이 시기 동안 섬유 기반 경제는 번영했다. 그러나 1676년과 1701년에도 군사 행동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 점령은 1706년 라미유 전투 이후 남플랑드르와 함께 독립할 때까지 이어졌다.[2]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가 이 지역을 지배했다.[7]
2. 4. 근대
알스트는 80년 전쟁 (1568–1648) 동안 큰 고통을 겪었다. 1576년에는 스페인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고, 1582년에는 알랑송 공 프랑수아에게 정복되었다. 이후 1583년에는 잉글랜드 군대가 점령했으나, 3만 두카트를 받고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파르마 공 알레산드로 파르네세에게 도시를 넘겨주었다.
1667년 대권 전쟁 중에는 프랑스의 튀렌 자작에게 점령당했으며, 도시의 요새는 파괴되었다. 이후 1676년과 1701년에도 군사적 충돌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다. 프랑스의 지배는 1706년 라미유 전투 이후 남부 플랑드르가 독립할 때까지 이어졌다.[2] 프랑스 점령기 동안 섬유 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 경제는 번성하기도 했다.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가 이 지역을 통치했다.[7]
1830년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알스트는 마침내 벨기에의 일부가 되었다. 이로써 1056년부터 이어져 온 스페인 제국,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3] 19세기는 산업 혁명의 여파로 인한 사회적 위기가 두드러진 시기였다. 이 시기 아돌프 다엔스 신부와 그의 형제가 이끈 기독교 인민당은 섬유 산업 노동자 등 소외된 계층의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지역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당시 교황청의 회칙 새로운 사태에 따른 노동자 권리 개선 요구에 부응하는 움직임이었으나, 다엔스는 이를 넘어선 적극적인 사회 운동을 펼쳤고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8]
20세기 초,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저지대 국가 전반에 파시즘 운동이 확산되면서, 벨기에 내 협력주의 정당인 플람스 국민 연합이 알스트 지역에서도 세력을 얻었다. 알스트는 브뤼셀, 안트베르펜과 더불어 이러한 파시즘적 경향에 강하게 동조하는 지역 중 하나였다.[9] 알스트는 제1차 세계 대전(1914년)과 제2차 세계 대전(1940년) 동안 독일의 폭격과 점령으로 다시 한번 큰 피해를 입었다.[2][21]
2. 5. 현대
1830년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알스트는 이 국가의 일부가 되었고, 이는 1056년부터 시작되어 스페인 제국,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외세의 지배를 받던 오랜 기간을 끝냈다.[3] 19세기는 산업 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로 특징지어졌으며, 아돌프 다엔스 신부와 그의 기독교 인민당(Daensist Party)은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지역의 수호자로 등장했다. 이는 노동자의 권리를 확립한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레룸 노바룸lat)에 대한 대응이었으나, 다엔스는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결국 그는 자신의 활동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8]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시대에 저지대 국가에서 파시즘 운동이 탄력을 받으면서, 협력주의자 조직인 ''플람스 국민 연합'' (Vlaamsch Nationaal Verbond|플람스 나시오날 페르본트nld, 플랑드르 국민 연합)이 이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알스트는 브뤼셀, 안트베르펜과 함께 이러한 이념에 가장 강력하게 동조한 지역 중 하나였다.[9]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 독일의 폭격[2]과 점령으로 특징지어졌다.[21] 특히 1914년(제1차 세계 대전)과 1940년(제2차 세계 대전)에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3. 경제
알스트는 여전히 섬유 산업이 활발하며,[10] 이는 부분적으로 프랑스 점령기의 영향이다. 알스트는 섬유 자체뿐만 아니라 의류, 신발 및 관련 기계들을 생산한다. 시 외곽의 농촌 지역은 오래된 양조장에 납품되는 홉 생산으로 유명하며, 활발한 절화(자른 꽃) 사업도 이루어지고 있다.[7]
주요 산업으로는 전통적인 섬유 산업 외에 금속 공업, 플라스틱 공업, 가구 제조업, 건축 재료 산업, 식품 공업, 제화업 등이 있다. 알스트에는 발전소가 있으며, 총 면적 300ha가 넘는 6곳의 공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농업은 주로 호프스타트(Hofstade), 메르돌트(Meldert), 몰세르(Moorsel)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홉 재배와 화훼 재배가 중심이다. 이와 관련하여 화훼 시장과 홉 시장이 열린다.
1991년 기준 취업 인구는 31,285명으로, 이는 총 노동 가능 인구의 89%에 해당한다. 산업별 종사자 비율은 다음과 같다.
산업 구분 | 종사 비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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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산업 | 1.7% |
제2차 산업 | 28% |
제3차 산업 | 64.8% |
직업 미상 | 5% |
수도 브뤼셀로 통근하는 노동자도 상당수 존재한다.
또한 알스트는 덴데르 강 유역의 서비스업 중심지로서, 교육 기관, 병원, 상사 법정, 극장, 미술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종루에는 신부 다엔스 기념관(Daensmuseum)과 1982년에 개관한 플랑드르 사회 투쟁 문서관(Archief van de Vlaamse sociale strijd)이 있다.
4. 문화
알스트는 덴데르 강 지대의 주요 서비스 중심지로서, 다양한 교육 기관, 병원, 상사 법정, 극장, 미술관 등을 갖추고 있다. 시청 옆 알스트의 종탑에는 사회 운동가였던 신부 아돌프 다엔스를 기리는 기념관(Daensmuseum|다엔스뮈세윔nld)과 플랑드르 지역의 사회 투쟁 역사를 기록, 연구하는 플랑드르 사회 투쟁 문서관(Archief van de Vlaamse sociale strijd|아르히프 판 더 플람서 소시알러 스트레이트nld)이 1982년 개관하여 운영되고 있다.
4. 1. 알스트 카니발
알스트는 매년 사순절 전에 열리는 카니발 축제로 유명하다. 축제 기간 동안 옛 시청 종탑[10] 또는 발코니[24]에서는 도시의 상징인 양파를 던지는 전통 행사가 열린다. 또한 "카니발 왕자"가 선출되어 사흘 동안 도시를 "다스리는" 권한을 갖는다.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일요일에 열리는 대규모 퍼레이드로, 약 70개 단체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자원봉사자들과 퍼레이드 차량이 도시를 행진한다. 참회 화요일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 전날)은 '보일 제네튼' (문자 그대로 "더러운 제니")의 날로 알려져 있으며, 남성들이 여장을 하고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축제는 화요일 저녁에 열리는 "인형 태우기" 의식으로 막을 내린다.
이 카니발은 한때 유네스코 무형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으나, 2019년 12월 13일 반유대주의 및 인종차별 논란으로 인해[11][12] 등록이 말소되었다. 이는 유네스코 무형 문화 유산 등록이 말소된 첫 사례이다.
4. 1. 1. 반유대주의 논란
알스트 카니발은 매년 사순절 전에 열리는 축제로 유명하지만, 최근 몇 년간 유대인을 비하하는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반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였다.[11][12]2019년, 카니발 주최 측이 널리 알려진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하자, 유네스코가 이에 대응할 것을 예상한 알스트 시장은 선제적으로 자신의 도시 카니발을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에서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13][14][15] 이러한 요청이 이루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20년 알스트 퍼레이드에서는 더욱 노골적인 반유대주의적 표현이 등장했다.[16] 갈고리 모양의 코를 하고 금화 자루 위에 서 있는 정통 유대교도 모습을 묘사한 조형물 등이 포함되었다. 이에 대해 주 벨기에 이스라엘 대사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모든 반유대주의적 만화의 금지이며, 이는 좋은 취향을 넘어 유머 감각과 아무 관련이 없고 벨기에와 같은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17] 당시 벨기에 총리였던 소피 윌메스는 이 퍼레이드를 "내부 문제"라고 언급했다.[18] 한편, 벨기에의 연방 차별 철폐 및 인종 차별 반대 센터인 UNIA는 보고서를 통해 해당 퍼레이드가 반유대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폭력을 선동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19]
4. 2. 건축물
덴데르 강변의 구시가지에는 몇몇 흥미로운 건물이 남아 있다.- 성 마틴 교회 (Sint-Martinuskerk|신트마르티누스케르크nl): 1480년에 초석을 놓은 브라반트 고딕 건축 양식의 교회로,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내부에는 루벤스의 그림 ''성 로크가 그리스도에게 알스트의 페스트를 종식시켜 달라고 간청함''을 비롯하여 가스파르 데 크레이에르, 오토 판 베인의 벽화 등이 있다. 또한, ''오줌싸개 동상''으로 유명한 조각가 히에로니무스 뒤케노와 1세(Hiëronymus Duquesnoy the Elder)가 1605년에 조각한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대리석 감실(성궤)도 있다.[2] 이 교회는 1914년에 손상을 입었다.[2]
- 알스트의 종탑과 알더먼 하우스 (Schepenhuis|스헤펜하위스nl): 시청 옆에 위치한 15세기 알스트의 종탑은 베네룩스에서 가장 오래된 기계식 카리용(52개의 종)을 갖추고 있다.[21][10] 원래 13세기 스헬데 고딕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던 인접한 알더먼 하우스(구 시청사 또는 구 주 법원)는 15세기에 재건되었다. 이 두 건물은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탑의 일부로서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2]
- 보르세 반 암스테르담 (Borse van Amsterdamnl): 17세기 건물로, 문자 그대로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를 의미하며 원래는 바르바라실(Barbarakamer)이라는 레트리션 회관이었다. 우아한 후기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준다.
- 란트호이스 (Landhuisnl): 알스트 주의 원래 행정 관청 건물로 1643년에서 1646년 사이에 지어졌다. 멋진 로코코 양식의 정면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고전풍 시청사(1825년-1830년)와 전체를 구성한다.
- 성 요셉 교회 (Sint-Jozefkerk|신트요제프케르크nl): 19세기 네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이다.
- Onze-Lieve-Vrouw van Meuleschettekapel: 19세기에 지어진 예배당이다.
- 베긴회 수도원: 원래 베긴회 수도원 건물 중에서는 1787년에 시작된 고전풍 교회만 남아 있다.
- 디르크 마르텐스 동상: 네덜란드 최초의 인쇄업자인 디르크 마르텐스 (1450–1534)를 기리는 동상이 있다.[10]
- 시청 광장 갤러리: 시청 광장에는 마르텐스와 카를 5세의 동상이 있는 갤러리가 있다.
- 오래된 양조장: 자체적으로 홉을 재배하는 오래된 양조장이 있다.[2]
- 흐로트 파르크: 도시의 공원이다.
5. 스포츠
알스트에는 여러 개의 프로팀이 있다.
- 농구 클럽 오카피 알스타
- 축구 클럽 엔드라흐트 알스트는 벨기에 2부 리그에서 활약한다.
- 1960년대에 창단된 배구 클럽 VK 알스트는 1부 리그에서 활동한다.
- MotoGP 팀 렙솔 혼다의 본사는 벨기에 알스트에 있다.
6. 자매 도시
7. 저명한 출신 인물
- 조 보거트 (1956년 출생), 벨기에 뉴 비트 DJ
- 루이 폴 본 (1912년–1979년), 작가, 저널리스트
- 프란츠 쿠몽 (1868년–1947년), 고고학자, 역사학자, 언어학자
- 아돌프 단스 (1839년–1907년), 사제, 정치인
- 마크 드 비 (1939년 출생), 텔레비전 작가
- 피터 드 브루인 (1931년–1987년), 디자이너, 실내 건축가
- 발레리우스 드 사데레르 (1867년–1941년), 화가
- 헤르트 드 플리에헤르 (1971년 출생), 축구 골키퍼
- 루이 드헤셀레르 (1911년–1988년), 정치인
- 렘코 에베네폴 (2000년 출생), 프로 사이클 선수
- 베르트 크루이만스 (1966년 출생), 스탠드업 코미디언
- 헤르만 르 콩트 (1929년–2008년), 의사, 노인학자
- 베르나르 르 그렐 (1948년 출생), 탐사 저널리스트, 정치 고문, 작가
- 루크 루이익스 (1958년 출생), 유로 동전 공통 디자인 담당자
- 디르크 마르텐스 (1446년경–1534년), 남부 네덜란드의 최초의 서적 인쇄업자
- 모니카 트리에스트 (1941년 출생), 신시내티 대학교와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여성학 프로그램 창립자
- 일세 위터스프로트 (1967년–2020년), 알스트 시장
- 피터 쿠케 반 알스트 (1502년–1550년), 화가, 조각가, 건축가
- 루크 반 덴 보스 (1947년 출생), 사회주의 정치인
- 피터 판 데르 헤이덴 (1976년 출생), 벨기에 및 국제 축구 선수
- 파트리크 판 호테헴 (1969년 출생), 카운터테너
- 곤다 반 스테인 (1964년 출생), 고전학자
- 드미트리 베르훌스트 (1972년 출생), 작가, 시인
- 세바스티앵 베르훌스트 (1907년–1944년), 벨기에 국제 축구 선수
- 윌프리트 베세마엘 (1950년 출생), 사이클 선수
- 사빈 아펠만스 - 테니스 선수
- 엘렌 마리리스 - 피겨 스케이팅 선수
- 로렌스 데플러스 - 사이클 선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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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VOLKINGSCIJFERS PER PROVINCIE EN PER GEMEENTE OP 1 JANUARI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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ユネスコ、人種差別と登録抹消 文化遺産のベルギーのカーニバ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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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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