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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산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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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산혜적은 17세에 출가하여 여러 곳을 유력하며 수행한 승려이다. 담원에게 깨달음을 얻고, 위산 영우를 15년 동안 사사했다. 앙산에 거주하면서 그곳의 고승들과 함께 수행했으며, 스승 위산 영우와 그의 계통을 합쳐 위앙종이라고 불렀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일화가 있으며, 스승과의 열반경 논쟁에서 독특한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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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산혜적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앙산혜적선사
선불기적 6권 앙산혜적선사
이름앙산혜적
생몰년804년 - 890년
시호지통선사
존칭해당 없음
출생지광동성소관시취장구
몰지해당 없음
속성섭(葉)
종파위앙종
사찰해당 없음
스승위산영우
제자해당 없음
저작해당 없음
출생803년
입적887년
부모해당 없음
배우자해당 없음
자녀해당 없음
친척해당 없음
관련 정보
별칭소석가 (리틀 붓다)
중요 인물위앙종 창시자

2. 생애

앙산혜적은 17세에 출가하여 여러 곳을 다녔으며, 담원을 만나 크게 깨달았다. 이후 위산 영우를 15년 가량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앙산(장시성宜春市원저우 구)에 머물렀기 때문에 앙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이름난 승려들과 함께 수행에 정진했다.[1]

스승 영우가 있던 위산과 합쳐져 훗날 '''위앙종'''이라 불리게 되었다.[1]

2. 1. 출가와 수행

17세에 출가하여 각지를 유력했다. 담원을 만나 크게 깨달았다. 그 후, 위산 영우를 만나 15년 전후 동안 영우를 사사했다. 후에 앙산(장시성宜春市원저우 구)에 거주했으므로 그 이름이 되었다. 이후 그곳에서 고승, 명승들과 함께 수행에 힘썼다.[1]

스승이 거주했던 위산과 합쳐 그 계통은 후에 '''위앙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1]

2. 2. 위앙종

17세에 출가하여 각지를 유력했다. 담원을 만나 크게 깨달았다. 그 후, 위산 영우를 만나 15년 전후 동안 영우를 사사했다. 후에 앙산(장시성이춘 시위안저우 구)에 거주했으므로 그 이름이 되었다. 이후 그곳에서 고승, 명승들과 함께 수행에 힘썼다.

스승이 거주했던 위산과 합쳐 그 계통은 후에 '''위앙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 일화

앙산 혜적은 스승 위산 영우에게 열반경에 대한 질문을 받고 "100퍼센트 마설(魔說)입니다"라고 답했다. 스승은 이 대답에 대해 "앞으로 그대는 누구에게서도 완전히 자유롭다네"라며 혜적을 높이 평가했다.[1]

3. 1. 손가락 절단

앙산혜적은 15살에 출가를 하려고 했으나, 부모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2년 뒤, 부모 앞에서 손가락 2개를 자르고 출가를 하였다. 이는 달마 앞에서 왼팔을 자른, 선종 2대 조사인 혜가와 같은 행동이었다.[4]

3. 2. 열반경 논쟁

어느 날 앙산 혜적은 스승 위산 영우로부터 "열반경 40권 중에서 부처의 설법(붓다의 참된 가르침)과 마설(악마가 붓다의 이름을 빌려 설한 거짓 가르침)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혜적은 "100퍼센트, 마설입니다"라고 단언했다. 이를 들은 스승은 화를 내기는커녕 "앞으로 그대는 누구에게서도 완전히 자유롭다네"라고 평가했다.[1]

4. 평가 및 자료

仰山慧寂|앙산혜적중국어에 대한 평가는 송고승전 권12에서 찾아볼 수 있다.[1] 仰山慧寂|앙산혜적중국어에 대한 자료는 경덕전등록 권12에서 찾아볼 수 있다.[2]

참조

[1] 서적 潭州潙山靈祐禪師語録
[2] 웹인용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7> 앙산혜적 : 꺼지지 않은 불씨"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1-08-24
[3] 웹인용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7> 앙산혜적 : 꺼지지 않은 불씨"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1-08-24
[4] 웹인용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7> 앙산혜적 : 꺼지지 않은 불씨"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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