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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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유기는 신궁으로 유명한 인물로, 여러 일화를 통해 뛰어난 궁술 실력을 보여주었다. 기원전 606년 투월초와의 대결에서 한 발의 화살로 그를 죽였으며, 백보 밖에서 버드나무 잎을 맞히는 등 '백보천양', '백발백중' 고사의 유래가 되었다. 또한, 초왕의 원숭이를 쏘라는 명을 받자 원숭이가 두려워 울부짖어 '양유호원' 고사가 생기기도 했다. 기원전 575년 언릉 전투에서는 진나라의 여기를 쏘아 죽이는 활약을 펼쳤으며, 후위에서 활을 쏘아 아군의 퇴각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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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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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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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양(養) |
이름 | 유기(由基) |
자 | 불명 |
시호 | 없음 |
출생 | 춘추 시대 |
사망 | 불명 |
시대 | 춘추 시대 |
국적 | 초나라 |
직업 | 장군 |
활동 시기 | 초 공왕 시대 |
업적 | |
주요 업적 | 백보천양(百步穿楊) |
가족 관계 | |
스승 | 감장 |
기타 정보 | |
관련 인물 | 초 공왕 반당 웅정 왕윤 (궁사) |
2. 일화
양유기는 신궁(神弓)으로 유명하며, 이와 관련된 여러 일화를 남겼다.
반당(潘黨)과 활쏘기 연습을 할 때 화살 한 발로 일곱 겹의 갑옷을 관통시켰다고 한다.
현대에는 "백발백중" 고사로 알려져 있으며, 정문의 만화 『동주영웅전』 24권, "방언의 신선수"에서 그의 용맹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2. 1. 투월초와의 대결
기원전 606년 초나라 장왕(莊王) 시절 투월초(鬬越椒)가 위가(蔿賈)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양유기는 투월초에게 활쏘기 시합을 청하였다. 이후 투월초는 양유기에게 화살을 세 발 쏘았으나 명중시키지 못하였고, 양유기는 화살 한 발로 투월초를 죽였다.2. 2. 백발백중, 백보천양의 고사
초나라 장왕과 공왕을 섬긴 양유기는 신궁(神弓)으로 유명하며, 여러 일화를 남겼다. 잠자리의 날개를 꿰뚫거나 백보 밖에서 활을 쏘아 버드나무 잎을 맞추어 '백보천양(百步穿楊)',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초왕(楚王)이 기르던 흰 원숭이에게 활을 쏘았지만, 원숭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 장난을 쳤다. 이에 초왕은 양유기를 불러 쏘게 했는데, 양유기가 활을 겨누기도 전에 원숭이가 나무에 매달리며 울부짖어 '양유호원(養由號猨)'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2. 3. 양유호원의 고사
양유기는 신궁(神弓)으로 유명하며, 이와 관련된 여러 일화를 남겼다.초나라 장왕(莊王) 시절 투월초(鬬越椒)가 위가(蔿賈)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양유기는 투월초에게 활쏘기 시합을 청하였다. 투월초는 양유기에게 화살을 세 발 쏘았으나 명중시키지 못하였고, 양유기는 화살 한 발로 투월초를 죽였다.
반왕(潘尫)의 아들인 반당(潘黨)과 활쏘기 연습을 할 당시 화살 한 발로 일곱 겹의 갑옷을 관통시켰다고 하며, 잠자리의 날개를 꿰뚫거나 백보 밖에서 활을 쏘아 버드나무의 잎을 적중시켜 '백보천양(百步穿楊)',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초왕(楚王)은 흰 원숭이를 길렀는데, 원숭이에게 활을 직접 쏘아보았지만 원숭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 장난을 쳤다. 초왕은 양유기를 불러 원숭이를 쏘게 했는데, 양유기가 활을 겨누어 화살을 쏘기도 전에 원숭이가 나무에 매달리며 울부짖어 '양유호원(養由號猨)'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2. 4. 언릉 전투에서의 활약
기원전 575년 언릉(鄢陵) 전투에서 진나라의 여기가 초나라 공왕의 눈을 맞추자, 공왕은 양유기에게 화살 두 대를 주며 여기를 쏘게 했다. 양유기는 곧바로 여기에게 가 활을 쏘아 목을 맞혔고, 공왕에게 돌아와 남은 화살 한 대를 돌려주었다. 진나라 군대가 초나라 군대를 패퇴시키자, 양유기는 숙산염의 요청으로 후위에서 활을 쏘아 진나라 군대가 추격하지 못하게 막았다.3. 관련 작품
정문의 동주 영웅전과 나카지마 아쓰시의 명인전에서 양유기가 고대 궁술 명인으로 언급된다.
3. 1. 만화
3. 2.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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