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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회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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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회는 삼국 시대 촉나라의 장수로, 유비와 대립하다가 처형되었다. 211년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유장의 부하로서 고패와 함께 백수관을 지키며 유비를 형주로 돌려보낼 것을 유장에게 간언했다. 212년, 유비는 장송과의 모의가 발각된 후 양회와 고패를 참수하고 익주 공략을 시작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여 처형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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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회 (삼국지)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양회
원어 이름楊懷
로마자 표기Yáng Huái
직업장군
섬긴 군주유장
사망213년
사망 시기 상세건안 17년 (율리우스력 213년 2월 8일 이전)
직책백수군 독

2. 생애

양회는 유장의 부하로, 고패와 함께 백수관(白水關)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양회와 고패는 강병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유장에게 유비형주로 돌려보내라고 여러 차례 간언하였다. 양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장로로부터 백수관을 지키도록 배정되었다는 사실 정도가 알려져 있다.[1] 방통의 계책에 따라 유비는 양회와 고패를 기습, 처형하고 백수관의 수비대를 자신의 군대에 편입시켰다.

2. 1. 유비와의 대립

211년(건안 16년) 유비가 익주목 유장의 요청으로 한중의 장로를 토벌한다면서 광한군 가맹현(葭萌縣)에 머물렀으나, 실제로는 익주를 탈취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양회와 고패는 강병을 거느리고 백수관(白水關)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유비를 형주로 돌려보내라고 유장에게 여러 차례 간언하였다. 212년, 장송과 유비 간의 모의가 누설되자 유장은 장송을 처형하고 관문을 지키는 장수들에게 유비에게 보내는 문서를 단속하라고 명령하였다. 이후 유비는 양회와 고패를 불러 처형하고 남진을 시작하였다.[1]

양회는 고패와 함께 명장으로, 백수군을 지휘하며 강력한 군세를 거느리고 백수관을 지켰다고 한다(《촉서》방통전).[1] 또한 유장에게 문서를 보내 유비형주로 철수시킬 것을 간언했으나, 유비의 뛰어난 명성에는 복종했다고 한다.[1]

건안 17년(212년), 유장은 장로를 토벌하기 위해 유비를 초빙하여 가맹에 주둔시켰다.[1] 유비는 장로를 토벌하기보다는 주민들의 민심을 얻는 데 힘쓰며 익주 평정을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1] 얼마 후 유비와 내통했던 장송이 유장에게 처형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유장은 익주의 관문을 지키는 무장들에게 문서를 보내 다시는 유비와 관계를 맺지 말라고 통고했다.[1] 이에 격분한 유비는 양회를 불러 그 무례함을 꾸짖고 처형했다(《촉서 선주전》).[1]

다만 방통은 "(유비가) 형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은 양회와 고패는 기뻐하며 스스로 찾아올 것이니, 그때 두 사람을 붙잡으면 된다"는 계책을 유비에게 말했고, 유비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촉서 방통전》), 그 처형 과정은 기록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1] 어쨌든 유비는 양회와 고패의 군세를 빼앗아 성도를 향해 진군했다.[1]

《영릉선현전》에 따르면, 유비는 연회에서 양회에게 차고 있던 비수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는데, 양회가 비수를 건네자 얼굴색을 바꾸며 "양회는 이 비수로 나를 암살하려 했다"고 외치며 주변에 매복해 있던 부하들에게 양회 등을 결박하게 했다고 한다.[1] 양회는 죽기 직전까지 유비를 욕했다고 한다.[1]

2. 2. 최후

양회는 고패와 함께 명장으로, 백수군을 지휘하며 강력한 군세를 거느리고 백수관을 지켰다고 한다(《촉서》방통전).[1] 또한 유장에게 문서를 보내 유비형주로 철수시킬 것을 간언했다. 그와는 반대로 유비의 영명함에는 복종했다고 한다.[1]

건안 17년(212년), 유장의 요청으로 장로를 토벌하기 위해 이미 초빙되어 있던 유비는 가맹에 주둔했다.[2] 유비는 장로를 토벌하기보다는 주민들의 민심을 수습하는 데 힘쓰며 익주 평정을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2] 얼마 지나지 않아 유비와 통했던 장송이 유장에게 처형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유장은 익주의 관문을 지키는 무장들에게 문서를 보내 다시는 유비와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고 통고했다.[2] 이에 격노한 유비는 양회를 불러 그 무례함을 규탄한 뒤 참수했다(《촉서 선주전》).[2]

방통은 "(유비가) 형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은 양회는 고패와 함께 기뻐하며 스스로 찾아올 것이니, 그때 두 사람을 붙잡으면 된다"는 계책을 진언했고, 유비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촉서 방통전》),[1] 그 처형 과정은 기술 간에 약간의 정합성을 잃은 듯하다. 어쨌든 유비는 양회와 고패의 군세를 빼앗아 성도를 향해 진군했다.[1]

《영릉선현전》에 따르면, 유비는 연회에서 양회에게 차고 있던 비수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는데, 양회가 비수를 건네자 얼굴색을 바꾸며 "양회는 이 비수로 나를 암살하려 했다"고 외치며 주변에 매복해 있던 부하들에게 양회 등을 결박하게 했다.[3] 양회는 죽기 직전까지 유비를 욕했다고 한다.[3]

3. 평가

방통은 고패와 양회를 유장의 명장이라 하였다.

4.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고패와 함께 부수관(涪水關)에서 유비를 감시한다. 유비가 민심만 얻고 있는 것이 불순하다며 유장에게 각종 지원을 하지 말라고 진언한다. 유비는 형주로 돌아가는 척하며 양회와 고패에게 송별을 청한다. 양회와 고패는 그 자리에서 유비를 암살하고자 했으나, 이는 방통의 함정이었다. 둘은 각각 유봉관평에게 붙잡혀 참수당한다.[3]

백수도독으로 등장하여 고패와 함께 부수관을 지키며, 형주로 돌아가는 유비를 전송할 때 암살하려 한다. 그러나 유봉관평에게 붙잡히고, 방통의 명령에 따라 고패와 함께 참수된다. 역사 기록에는 양회 등이 유비 암살을 꾀했다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참조

[1] 서적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Later Han to the Three Kingdoms (23-220 AD)
[2] 인용 Sanguozhi vol. 37
[3] 서적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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