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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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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깨총은 1918년에 개봉한 찰리 채플린 주연의 코미디 영화이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징집된 찰리가 훈련소에서 겪는 일과 전쟁터에서의 활약을 꿈을 통해 보여준다. 찰리 채플린은 이 영화를 통해 병역 기피 논란을 잠재우고 애국심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자유 채권 모금 운동에 참여했다. 이 작품은 전쟁을 코미디 소재로 다룬 최초의 영화로 평가받으며, 채플린의 작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1959년에는 채플린 본인이 재편집하여 《채플린 리뷰》라는 제목으로 재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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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총 - [영화]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연극 포스터
연극 포스터
원제Shoulder Arms
한국어 제목어깨총
일본어 제목担へ銃 (카타에 쥬우)
프랑스어 제목Charlot Soldat (샤를로 솔다)
영화 정보
감독찰리 채플린
제작찰리 채플린
각본찰리 채플린
출연에드나 퍼바이언스
시드니 채플린
헨리 버그만
앨버트 오스틴
잭 윌슨
톰 윌슨
로열 언더우드
촬영롤랜드 토서로, 잭 윌슨
편집찰리 채플린
음악찰리 채플린 (1959년 채플린 리뷰 공개 시)
배급사퍼스트 내셔널 픽처스
개봉일1918년 10월 20일 (미국), 1919년 7월 (일본)
상영 시간36분
언어무성 영화 (영어 자막)
흥행 수입70만 ~ 100만 달러
관련 정보
관련 인물찰리

2. 줄거리

찰리는 제1차 세계 대전미국군으로 징집된 병사이다.[3] 훈련소에서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훈련병 동료들에게 웃음을 주지만, 프랑스 전선에 투입된 후에는 용감하고 기발한 행동으로 동료들을 구한다.[3]

찰리는 림버거 치즈를 던져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나무로 변장하여 적진에 몰래 들어가 위험에 빠진 동료를 구출한다.[6] 또한, 프랑스 소녀를 만나 그녀와 함께 힘을 합쳐 독일군 장군을 생포하기도 한다.[6]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찰리가 훈련소에서 잠시 잠든 사이에 꾼 꿈이었다는 반전이 드러난다.[6]

3. 제작 배경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에서는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었지만, 전쟁의 실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서부 해안은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였고, 적십자사 기금 모금 행사에 채플린의 옆자리를 위해 2만 달러를 기부한 여성도 있을 정도였다.[1] 1917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비로소 전쟁의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2][3]

이러한 상황에서 1916년부터 채플린의 병역 기피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미추얼社와의 계약 내용 중 "전쟁 중에는 군사 동원 위험이 있으므로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빌미가 되었다.[4]

3. 1. 자유 채권 모금 운동 참여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국적이었던 채플린은 징병되지 않고 미국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그는 미국 정부의 전쟁 채권인 자유 채권 홍보 활동에 참여하여 이러한 비난에 대응했다.[1] 그는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메리 픽퍼드와 함께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자유 채권 판매를 독려했다.[1]

1918년 4월 1일부터 채플린은 페어뱅크스, 픽퍼드 등과 함께 “전쟁 협력”을 외치며 Liberty Bond|자유 채권영어 모금 투어를 위해 미국 전역을 순회했고, 5월 상순에 할리우드로 돌아왔다.[1]

채플린은 명확한 반전주의자였지만,[2] 징병 등록을 마쳤고 소집 명령이 내려오면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3] 영국 대사관도 채플린이 실제로 전시 채권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국가에 기여하고 있다고 옹호했다.[4]

채플린은 자유 채권 모금 투어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1916년 이후의 공격은 채플린에게 대전 협력 활동을 소극적으로 만든 요인이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된 시드니 채플린이 소극적인 채플린의 태도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버칸과 주고받은 서신에는 그 대처에 어려움을 겪은 흔적이 보인다.[5]

3. 2. 병역 기피 논란과 반박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징병되었지만, 영국 국적의 찰리 채플린은 미국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채플린은 병역 기피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채플린은 이미 징병 등록을 마쳤으며, 소집 명령이 내려오면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반박했다.[2] 또한, 자유 채권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메리 픽퍼드와 함께 자유 채권 모금 투어를 다니는 등 국가에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1][3][4]

1916년부터 채플린이 병역을 기피한다는 비판 운동이 시작되었다. 미추얼社와의 계약 당시 "전쟁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군사 동원의 위험이 있으므로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5] 채플린은 명확한 반전주의자였지만 징병 등록을 마쳤고, 소집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6] 영국 대사관도 채플린이 전시 채권을 대량 구매하여 국가에 기여하고 있다고 옹호했다.[7]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이복형제 시드니 채플린까지 "나이를 속여 병역을 기피하고 있다"고 비판받았다. 결국 찰리 채플린은 징병 검사를 받았으나, 체중 미달로 불합격되었다. 징병 검사 불합격 보도 이후 비판은 잠잠해졌지만, 그 후 수년간 흰 깃털과 비판 편지가 계속 보내졌다. '흰 깃털'은 겁쟁이를 의미하는 표시였다.

이러한 비판은 채플린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1917년에는 보수파를 중심으로 비판 운동이 다시 일어났다. 채플린과 빌헬름 2세를 짝지어 풍자하는 그림도 등장했다. 채플린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시드니와 고문 변호사 네이선 버칸은 채플린의 인기가 하락할까 봐 두려워했다. 채플린은 시드니와 버칸의 설득으로 1918년에 자유 채권 모금 투어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3. 3. 제작 과정

찰리 채플린이 《어깨총》 기획을 시작한 것은 자유 공채 모금 투어에서 돌아온 직후로 추측되며, 주변에서는 "이런 때에 전쟁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충고도 있었다.[1][2] 그러나 채플린은 "비극이 오히려 유머 정신을 자극한다"는 신념으로 제작을 강행했다.[1][3] 5월 하순에는 '위장'이라는 가제로 제작이 시작되었다.[1]

처음에는 5부작으로 기획되었으며,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1][2]

  • 1부: "가정 생활" - 찰리의 가정 생활과 징병 검사 장면
  • 2부: "전쟁" - 훈련소와 전선 장면
  • 3부: "축연" - 독일 황제를 생포한 찰리를 유럽 군주들이 칭찬하는 장면


결말은 프레드 카르노 극단 시절의 연극 '겁 없는 지미'와 키스톤 스튜디오 시절의 '술 취한 교수', 에사네이 스튜디오 시절의 '찰리의 청소부'와 같이 꿈결 형태를 취했다.[4]

6월 한 달 동안 "가정 생활"을 촬영했고, 세 명의 아역 배우가 기용되었다.[5] 아내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고, 식기를 집어던지는 장면으로만 암시되었다.[5] 징병 검사 장면에는 그림자극이 활용되었다.[5] 그러나 "가정 생활"은 최종적으로 폐기되었고, 징병 검사 장면은 1983년 영국 템즈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 '알 수 없는 채플린'에서 처음 공개되었다.[6]

7월부터 8월 14일까지는 "전쟁"을 촬영했다.[7] 메리 드레스러가 스튜디오를 방문하기도 했다.[7] 채플린은 야외 촬영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로스앤젤레스 근교 비벌리힐스의 구릉 지대와 윌셔 블러바드 및 셔먼오크스의 산림 지대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나무로 변장한 찰리가 독일군 상사에게 쫓기는 장면에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비치기도 했다. 셔먼오크스 촬영에서는 토관을 이용한 개그가 고안되었는데, 실제로 사용 중인 토관을 부수는 촬영을 감행했다. 극중 독일군의 기관총은 실제로는 연합국군에서 사용하던 루이스 기관총이었다.

8월 14일에는 에드나 퍼바이언스가 연기하는 프랑스 여성과의 만남 장면을 촬영했다. 촬영 일정은 늦어졌지만, 8월 15일부터 22일까지는 '공채' 촬영으로 제작이 중단되었다. '공채' 완성 후 제작을 재개하여 9월 16일에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다. 제목도 '위장'에서 '어깨총'으로 변경되었고, "축연" 장면은 촬영되지 않았다.

4. 등장인물

5. 작품의 의의 및 평가

《어깨총》은 전쟁을 소재로 한 최초의 코미디 영화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채플린 특유의 연출이 돋보인다.[4] 이전까지 영화에서 전쟁은 심각한 주제로만 다루어졌으나, 《어깨총》은 전쟁의 참혹함과 부조리함을 풍자하면서도 인간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여 새로운 코미디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18년 10월 21일 뉴욕 타임스는 《어깨총》에 대해 "차플린의 코미디가 저급인지 고급인지, 예술적인지 조악한지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가 있었지만, 그가 스크린 바보를 연기할 때 웃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평했다.

채플린은 전쟁을 단순히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았다. 전쟁터의 찰리는 고독하며, 자신에게만 우편물이 오지 않아 다른 병사들의 편지를 몰래 읽는 장면에 많은 참전 용사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7] 채플린 연구가 오노 히로유키는 "당시 전쟁 영화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병사들의 고독과 슬픔을 그린 예는 없었고, 전의를 고양시키는 작품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영화사가 데이비드 로빈슨은 "상징적으로도, 실제 전투를 경험한 사람들일수록 《어깨총》의 진가를 더 잘 이해한 관객이었다"라고 언급했다. 버스터 키튼은 끔찍한 재난도 코미디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증거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6. 채플린 리뷰

1959년, 찰리 채플린은 《개의 삶》(1918년)과 《가짜 목사》(1923년)와 함께 《어깨총》을 재편집하여, 재편집된 3편을 《채플린 리뷰》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 이 재편집본에는 채플린이 직접 음악과 내레이션을 추가했고, 서두에는 실제 전쟁 필름이 삽입되었다.[1] 현재 유통되고 있는 버전은 이 1959년판이다. 《어깨총》에서는 《개의 삶》과 《가짜 목사》와 달리 오리지널 타이틀 백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타이틀 백에서는 아래에서 손이 뻗어 사인을 하고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데, 그 손은 채플린 자신이다. 뮤추얼 사 시대에 채플린 영화의 위작이 많이 유통되었던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채플린이 직접 타이틀 백에 사인하여 작품이 "진짜 채플린 영화"임을 증명한 것과 관련이 있다.[2] 채플린은 왼손잡이였지만, 타이틀 백에서의 사인은 오른손으로 쓰여 있다.

참조

[1] 잡지 Happy New Year https://archive.org/[...] 1918-12-27
[2] 서적 Chaplin's War Trilogy: An Evolving Lens in Three Dark Comedies, 1918-1947 McFarland, Incorporated, Publishers
[3] 서적 The comic mind: comedy and the movi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 서적 Chaplin in the Sound Era: An Analysis of the Seven Talkies https://books.google[...] McFarland 2015-07-11
[5] 웹사이트 영화『担え銃/チャップリンの兵隊さん』 https://filmarks.com[...] つみき 2023-09-04
[6] 웹사이트 65. Shoulder Arms (1918) http://chaplin.bfi.o[...] 英国映画協会
[7] 웹사이트 STEAMBOAT BILL, JR. https://festival.i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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