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스 하이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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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디스 하이스만은 189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1997년 사망한 타이타닉 호 생존자이다. 1912년 부모와 함께 타이타닉 호에 2등실 승객으로 탑승했으나, 침몰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사고 이후 미국에서 생활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와 결혼 후 영국에서 거주했다. 타이타닉 호 침몰 관련 추모 행사에 참여하고, 아버지의 유품을 돌려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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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스 하이스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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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이름 | 에디스 에일린 브라운 |
출생일 | 1896년 10월 27일 |
출생지 | 우스터, 케이프 식민지 |
사망일 | 1997년 1월 20일 |
사망지 | 사우샘프턴, 잉글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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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결혼: 프레더릭 하이스만 (1917년) 사별: 1977년 |
부모 | 토머스 브라운, 엘리자베스 포드 |
자녀 | 10명 |
알려진 정보 | 장수인이자 타이타닉의 최고령 생존자 중 한 명 |
2. 초기 생애
에디스 하이스만은 1896년 10월 27일 케이프 식민지 웨스턴케이프주 우스터(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영국 이민자 출신 아버지 토마스 윌리엄 솔로몬 브라운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어머니 엘리자베스 캐서린 (포드) 사이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 토마스는 우스터에서 호텔을 운영했다.[1] 1906년 여동생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했으며,[2] 아버지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이복 형제자매 4명이 있었으나,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다.
토마스 브라운은 남아프리카 경제의 하락을 보고, 아내와 함께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에는 엘리자베스의 여동생 조세핀 액턴이 살고 있었고,[2] 토마스는 호텔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들은 ''색슨''호를 타고 영국으로 항해했고, 토마스는 가족을 위해 타이타닉 호의 티켓을 예약했다.
2. 1. 출생과 가족
에디스 하이스만은 1896년 10월 27일 케이프 식민지 웨스턴케이프주 우스터(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영국 이민자 출신 아버지 토마스 윌리엄 솔로몬 브라운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어머니 엘리자베스 캐서린 (포드) 사이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 토마스는 우스터에서 호텔을 운영했다.[1] 1906년 여동생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했으며,[2] 아버지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이복 형제자매 4명이 있었으나,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다.2. 2. 미국 이민과 타이타닉 호 탑승
에디스 하이스만과 가족은 남아프리카 경제 하락으로 인해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로 이민을 결정했다.[3] 시애틀에는 어머니의 여동생인 조세핀 액턴이 거주하고 있었다.[3] 가족은 영국을 거쳐 타이타닉 호에 2등실 승객으로 탑승했다.[3] 배의 화물칸에는 호텔 사업에 사용할 식기, 가구, 침대 시트 등이 실려 있었다.[3]에디스는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에 배가 빙산에 충돌했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구명보트 14호에 탑승했다. 에디스와 어머니는 구조되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생존하지 못했다.[3]
3. 타이타닉 호에서의 경험
에디스는 15세의 나이로 부모님과 함께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2등실 승객으로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다. 배의 화물칸에는 호텔에서 사용할 식기, 가구, 침대 시트 1,000롤이 실려 있었다.
에디스와 가족은 카터 목사와 그의 아내 릴리안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와 어머니는 배의 도서관을 이용했고, 토마스는 흡연실을 이용했다. 에디스와 엘리자베스는 나중에 대서양을 건너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해에 대해 전혀 불안해하던 여성을 도서관에서 만났다고 회상했다. 에디스는 그 여성의 이름이나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을 만나 에디스는 그에게 "타이타닉호는 우리가 타본 배 중에 최고예요!"라고 말했다.
에디스는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에 배가 빙산에 충돌했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녀는 만년에 여러 인터뷰와 1995년에 출판된 전기 ''타이타닉에서의 일생''에서 마지막 순간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일부 세부 사항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 "아버지가 몇 분 후에 나타나셨어요. '구명조끼랑 따뜻한 옷을 입는 게 좋겠다. 갑판이 춥거든. 그냥 예방 조치야. 빙산에 부딪혔지만 별거 아니야. 복도의 스튜어드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군가가 말해줄 때까지 구명보트 갑판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배의 악단은 래그타임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우리 기분을 북돋우기 위해 연주했죠. 모두가 '가라앉지 않아. 침몰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아버지는 우리에게 키스하고 구명보트 14호에 태워주셨어요. 최대 50명이 배 밖으로 위험하게 흔들리는 배에 탔어요. 한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보트에 뛰어들었어요. 우리가 배에서 노를 저어 멀어졌을 때, 우리는 여전히 악단이 연주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찬송가였어요. 우리는 구명보트에서 거의 6시간을 보냈고, 그 동안 물도 음식도 없었어요. 아버지가 배에서 내렸을까 계속 생각했어요, 그 생각뿐이었어요. – 1995"
에디스와 엘리자베스의 발은 구명보트에 고인 물에 젖어, 결국 마비되었다. 둘 다 다음 날 아침 RMS ''카르파티아'' 호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걷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발에 혈액 순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토마스가 구조되었기를 바라며 새로운 구명보트가 올라올 때마다 난간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생존하지 못했고, 만약 시신을 찾았더라도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가 그에 대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가 구명보트에 그녀와 어머니가 내려질 때 갑판에서 에드워드식 저녁 정장을 입고 시가를 피우며 브랜디를 마시고 있었다는 것이다.[3] 뉴욕에 도착한 후, 그들은 주니어 리그 하우스에 머물다가 시애틀로 가서 이모 조세핀 액턴과 함께 살았다. 그들은 곧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재혼한 후 친척들과 함께 살았고, 로디지아로 이사했다.
3. 1. 탑승 생활
에디스 하이스만은 15세의 나이로 부모님과 함께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2등실 승객으로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다.[3] 에디스와 가족은 카터 목사 부부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와 어머니는 배의 도서관을 이용했고, 아버지는 흡연실을 이용했다. 에디스는 대서양 횡단 경험이 있음에도 항해에 불안해하는 여성을 만났고,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에게 "타이타닉 호는 우리가 타본 배 중에 최고예요!"라고 말했다.3. 2. 침몰 당시의 기억
에디스 하이스만은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했을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3] 아버지는 "구명조끼와 따뜻한 옷을 입는 게 좋겠다"며 "빙산에 부딪혔지만 별거 아니"라고 안심시켰다.[3] 배의 악단은 승객들의 기분을 북돋우기 위해 래그타임을 연주했다.[3]에디스는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고 구명보트 14호에 탑승했다. 구명보트에는 최대 50명이 탑승했으며, 여자 옷을 입은 남자가 뛰어들기도 했다.[3] 구명보트에서 약 6시간 동안 물과 음식 없이 구조를 기다렸다.[3]
RMS ''카르파티아'' 호에 의해 구조되었으나, 발이 젖어 동상에 걸릴 뻔했다.[3]
4. 침몰 이후의 삶
4. 1. 아버지의 죽음과 미국 생활
4. 2.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의 귀환과 결혼
가족은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와 친척들과 함께 생활했다. 어머니는 재혼했다. 에디스는 1917년 5월 프레데릭 땡크풀 하이스만을 만나 6월 30일에 결혼했다. 슬하에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다가 사우스햄튼에 정착했다. 1977년 남편 프레데릭이 사망했다.5. 타이타닉 관련 활동 및 기념
1995년 4월 15일, 98세의 하이스만은 90세의 생존자 에바 하트와 함께 그리니치, 런던의 국립 해양 박물관에서 열린 추모 정원 개장에 참석하여 침몰 83주년을 기념하는 화강암 기념비를 세웠다.
1996년 8월, 99세의 그녀는 동료 생존자 미셸 마르셀 나브라틸과 엘레노어 일린 존슨과 함께 타이타닉호 난파 지점으로 크루즈를 타고 가서 선체의 큰 부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했다. 현장을 떠나기 전, 그녀는 84년 전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한 바다에 장미를 던졌다. 또한 잉글랜드 사우샘프턴 프리맨틀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1991년, RMS 타이타닉 Inc.의 조지 툴록은 그녀에게 해저에서 건져 올린 그녀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선물했다.[4] 그녀는 1912년 4월 15일, 그녀의 아버지가 구명보트 14호에 탑승한 아내와 딸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마지막으로 그 시계를 보았다. 그들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고, 그는 배와 함께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계는 하이스만에게 "평생" 대여되었고, 그녀가 5년 후 사망했을 때 RMS 타이타닉 Inc.에서 회수했다.[5]
5. 1. 추모 활동
1995년 4월 15일, 하이스만은 타이타닉호 침몰 8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에바 하트와 함께 런던 그리니치의 국립 해양 박물관에서 열린 추모 정원 개장에 참석했다.[4] 이들은 화강암 기념비를 제막했다. 1996년 8월, 그녀는 미셸 마르셀 나브라틸, 엘레노어 일린 존슨과 함께 타이타닉호 침몰 지점을 방문했다.[4]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점에 장미를 던졌다.[4] 잉글랜드 사우스햄튼 프리맨틀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4] 1991년에 그녀는 RMS 타이타닉 Inc.의 조지 툴록에게서 해저에서 건져올린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선물받았다. [4] 이 시계는 그녀에게 "평생" 대여되었고, 그녀가 사망한 뒤 RMS 타이타닉 Inc.에서 회수했다.[5]5. 2. 유품 회수
1991년, RMS 타이타닉 Inc.의 조지 툴록은 해저에서 건져 올린 그녀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에디스에게 선물했다.[4] 1912년 4월 15일, 그녀의 아버지가 구명보트 14호에 탑승한 아내와 딸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마지막으로 그 시계를 보았다. 그들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고, 그는 배와 함께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4] 시계는 하이스만에게 "평생" 대여되었고, 그녀가 5년 후 사망했을 때 RMS 타이타닉 Inc.에서 회수했다.[5] 1996년 8월, 그녀는 미셸 마르셀 나브라틸, 엘레노어 일린 존슨과 함께 타이타닉호 난파 지점으로 크루즈를 타고 가서 선체의 큰 부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했다. 현장을 떠나기 전, 그녀는 84년 전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한 바다에 장미를 던졌다.[4]6. 사망
에디스는 1997년 1월 20일, 100세의 나이로 사우스햄튼의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침대 옆에는 밀짚모자, 뻣뻣한 칼라와 나비 넥타이를 한 아버지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6] 그녀는 타이타닉 호 생존자 중 가장 오래 산 사람 중 한 명이다. 메리 데이비스 윌번은 1987년 104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최장수 생존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6]
7. 유산 및 평가
참조
[1]
웹사이트
Elizabeth Catherine Brown: Titanic Survivor
https://www.encyclop[...]
2021-07-17
[2]
웹사이트
Edith Eileen Brown: Titanic Survivor
https://www.encyclop[...]
2021-07-17
[3]
웹사이트
Edith Haisman, 100, Dies – Was Oldest Survivor of Titanic – Obituary
https://query.nytime[...]
1997-01-23
[4]
서적
Unsinkable: the full story of the RMS Titanic
[5]
서적
Rhetorics of display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2006
[6]
웹사이트
Edith Haisman, 100, Dies – Was Oldest Survivor of Titanic – Obituary
https://query.nytime[...]
199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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