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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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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르나니》는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로, 빅토르 위고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1844년 3월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베르디의 초기 작품 중 이탈리아 외 지역에서 비교적 빠르게 공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사랑과 명예 사이의 갈등을 다루며, 테너, 바리톤, 베이스, 소프라노의 배역 조합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한다. 《에르나니》는 1903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목록에 등장하는 등 오늘날까지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2002년 일본에서 초연되었지만 2024년까지 한국에서는 전막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 역사

빅토르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는 베르디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베르디는 희곡 ''에르나니''가 초연되었을 당시 젊은 관객 중 한 명이었으며, 위고의 알렉산드린의 역동적인 에너지는 베르디의 음악에 반영되어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부여했다.[11] 위고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에르나니와 리골레토는 베르디의 경력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성공과 실패 요인에 대한 자신의 극장 감각을 강조했다. 그는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보낸 편지에서 "경험이 아무리 적더라도, 나는 일 년 내내 극장에 가고 내가 보고 듣는 것에 가장 주의를 기울인다"라고 언급하며, 작품 배치, 효과 계산, 음악 형식의 명확성 등이 부족하면 작품이 실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11]

베르디는 희곡을 4막으로 압축하는 등 작품의 모든 측면에 관여했는데, 위고의 희곡 처음 두 막은 오페라의 1막이 되었다. 그는 대본가가 자신의 운문을 자유롭게 작곡하도록 허용하는 대신, "단어-음악 분할을 축소된 형태로 영속"시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베르디는 행동의 "순간"에 따라 텍스트와 음악에 각각 어떤 비중을 부여할지 결정하며 오페라의 모든 측면을 책임지려 했다.[12]

2. 1. 작곡 배경

베르디나부코와 롬바르디의 성공 이후 여러 오페라 극장으로부터 작곡 의뢰를 받았다. 그는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회장인 난니 모체니고 후작의 제안을 받아들여 1843-44 시즌을 위한 두 개의 오페라를 의뢰받았다.[4]

베르디는 작곡료로 12,000 오스트리아 리라를 요구했는데, 이는 첫 번째 공연 후에 지불되는 조건이었다. (베르디는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난 하루만의 임금님의 경우를 기억하고 있었다).[4] 다른 조건으로는 자신의 주제와 대본 작가를 선택하고, 그에게 직접 지불할 권리를 요구했으며, 오케스트라 악보를 사전에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를 거부했다. 또한, 그는 그 시즌에 모인 단원들 중에서 가수를 선택할 권리를 가졌다.[4]

이 합의가 이루어진 후, 베르디는 여러 주제를 검토했다. 바이런의 The Corsair를 고려했지만 적합한 바리톤 가수가 없었다. 베네치아의 포스카리 가문에 관한 오페라는 검열관에 의해 금지될 것을 우려하여 포기했다. (이 두 주제는 나중에 베르디의 오페라 Il corsaro와 I due Foscari가 되었다.)

빅토르 위고의 희곡 크롬웰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크롬웰"의 원고가 프란체스코 피아베로부터 도착했고, 모체니고는 피아베가 극적 감각과 음악적 형식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베르디에게 확신시켰다.[4] 그러나 베르디는 피아베에게 간결함을 강조하며 대본 수정을 요구했다.[6]

8월 말 베니스에서 베르디와 라 페니체 극장 사장이 만났을 때, 베르디는 대본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모체니고가 1830년에 성공한 위고의 드라마 ''에르나니''를 대본 아이디어로 언급하자 베르디는 관심을 보였다.[7] 베르디는 ''에르나니''를 선택한 이유를 "사랑과 명예 사이의 갈등"이라고 설명했다.[8]

전작과 전전작의 성공으로, 베르디의 평가는 매우 높아졌다. 당시 로시니는 은퇴, 벨리니는 요절, 도니체티파리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이탈리아는 새로운 오페라 작곡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베르디는 작곡과 금전 면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추구하기 위해,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의 모체니고 후작과 협상했다. 베르디가 제시한 주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조건내용
상연료12000오스트리아 리라 (초연 종료 시 전액 지불)
소재 결정권베르디
대본 작가 선정 및 대가 지불베르디 (극장이 아닌 베르디가 지불)
가수 선정페니체 극장과 계약한 가수진 중에서 베르디가 선정



이는 이전의 조건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다.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리턴의 『리엔치』, 바이런의 여러 작품 등을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 빅토르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를 선택했다.

2. 2. 대본 작업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는 베르디보다 3살 연상이었지만, 대본 작가로서의 경력은 1842년에 시작했을 뿐이었다. 피아베는 월터 스콧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대본 '앨런 캐머런'을 베르디에게 제안했으나, 베르디는 내용에 불만을 품었다.[7] 베르디는 피아베에게 《에르나니》의 오페라화를 지시하며, 대본의 간결함과 원작에 대한 충실성을 요구했다.[7] 피아베는 원작 희곡의 5막을 4막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베르디의 지시에 따라 제1-3막을 단일 제1막으로 만들었다.[11] 베르디는 마지막 2막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위고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다.[11]

2. 3. 배역 문제

베르디는 베네치아에서 인기 있던 콘트랄토 가수 카롤리나 비에티를 배역에 추가해 달라는 지배인 모체니고의 요청을 받았다.[10] 이 요청을 수락하면 주요 등장인물의 성역은 에르나니(콘트랄토), 돈 카를로(테너), 실바(바리톤), 엘비라(소프라노)가 될 터였다.[10]

하지만 베르디는 비에티 기용 안에 반대했고, 결국 젊은 에르나니(테너), 장년 카를로(바리톤), 노년 실바(베이스), 젊은 미녀 엘비라(소프라노)로 배역이 결정되었다.[10]

이는 베르디가 주역 성역 배치, 즉 영웅 테너, 라이벌 바리톤, 히로인 소프라노라는 패턴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10] 이 패턴은 이후 『레냐노의 전투』, 『일 트로바토레』, 『가면무도회』, 『운명의 힘』 등에서도 나타난다.[10]

2. 4. 초연 및 반응

1843년 나부코와 롬바르디의 성공 이후, 베르디는 여러 극단으로부터 오페라 작곡 의뢰를 받았다.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회장인 난니 모체니고 후작의 제안을 받아들여 1844년 3월 9일,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4] 주역 테너 가수 카를로 구아스코의 목 상태 불량, 주역 소프라노 소피 로베의 부실한 가창, 무대 장치의 일부 미완성 등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에르나니는 대성공을 거두었다.[13] 이 오페라는 주세페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 중 세계 초연에서 이탈리아 반도 외 각 도시에서 초연되기까지의 간격이 가장 짧은 부류에 속한다.

국가초연 연도장소비고
1844년 4월세계 초연 다음 달. 당시 베네치아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었음.
영국1845년 3월 8일런던 헤이마켓 극장
프랑스1846년파리 이탈리아 극장제목 등의 일시적인 변경.
미국1847년 4월 13일뉴욕 파크 극장
일본2002년 10월 26일비와코 홀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일본 초연[31]


2. 5. 원작자와의 갈등

빅토르 위고는 이 오페라를 "서투른 모방품"이라고 격렬하게 항의하며, 초연 2년 후 파리 초연(이탈리아 극장)에서 제목, 무대 설정 및 등장인물 이름 변경을 요구했다.[13] 결국 파리에서는 제목을 『추방자』(Il proscrittoit), 무대는 베네치아로, 배역 이름도 에르나니는 "올드라도", 카를로는 "안드레아 그리티" 등으로 변경되었다. 1840~50년대에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도 검열관이 원작자 위고, 또는 원작 희곡 『에르나니』가 너무 자극적이라고 판단했을 경우, 『추방자』 혹은 『아라곤의 엘비라』(Elvira d'Aragonait), 『카스티야의 명예』(L'onore castiglianoit) 등 다른 제목으로 상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13]

베르디의 『에르나니』가 희곡 『에르나니』의 첫 오페라화는 아니다. 이전에도 가부시(1834년), 마추카토(1844년), 그리고 이후에도 라우다모(1849년)라는 작곡가의 오페라가 있었지만, 위고는 그 어떤 작품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이전에는 도니체티가 작곡한 성공작 『루크레치아 보르자』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 원작자 위고는 파리에서의 상연 금지 또는 개작, 개제를 요구했으며, 오페라가 대성공을 거둔 경우에는 항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 등장인물

배역성악설명
에르나니테너산적 두목, 실제로는 아라곤의 귀족
돈 카를로스바리톤스페인의 왕
돈 루이 고메츠 디 실바베이스스페인의 대공, 엘비라의 숙부
엘비라소프라노실바의 조카, 그의 피후견인
조반나메조소프라노
돈 리카르도테너
자고베이스
반역자들, brigands, attendants, 기사들, 하인들, 귀족들, 귀부인들합창


4. 줄거리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대본 작가


1519년 아라곤, 아헨, 사라고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산적 두목 에르나니는 엘비라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늙은 실바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에르나니는 엘비라를 납치하려 하고, 엘비라는 에르나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농부로 변장한 카를로 왕이 나타나 엘비라에게 구애하지만, 엘비라는 거절한다. 에르나니와 카를로 왕이 결투를 벌이려는 순간 실바가 나타나고, 리카르도가 카를로 왕의 정체를 밝힌다.

실바의 성에서 에르나니는 순례자로 변장하여 피난처를 요청하고, 실바는 이를 허락한다. 에르나니와 엘비라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실바가 이를 발견한다. 실바는 에르나니를 왕으로부터 보호하고, 에르나니는 실바에게 빚을 진다. 카를로 왕이 도착하지만, 실바는 에르나니를 넘겨주지 않는다.

아헨의 샤를마뉴 대성당


아헨의 샤를마뉴 대제 묘지에서 카를로는 황제가 되면 삶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음모자들의 모임을 엿듣던 카를로는 에르나니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음모자들을 체포하고 처형하려 한다. 에르나니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엘비라는 카를로에게 용서를 간청한다. 카를로는 마음을 바꾸어 그들을 용서하고 엘비라와 에르나니의 결혼을 허락한다.

엘비라와 에르나니의 결혼식 날, 나팔 소리가 들리고 실바가 나타나 에르나니에게 맹세를 지키라고 요구한다. 에르나니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엘비라의 품에서 죽어간다.

4. 1. 1막: 산적

아라곤 산맥의 산적 야영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산적들은 두목 에르나니가 우울한 이유를 묻고, 에르나니는 엘비라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늙은 실바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답한다.(Come rugiada al cespite|꽃이 해를 향하듯이it) 그는 산적들에게 엘비라를 납치해달라고 부탁한다.[1]

엘비라의 방에서, 엘비라는 다가오는 결혼에 대해 걱정하며 에르나니를 기다린다. (Ernani, Ernani involami|에르나니, 에르나니, 나를 구원해줘it) 그녀는 에르나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이때 농부로 변장한 카를로 왕이 나타나 구애하지만 엘비라는 그를 거절한다. 카를로가 강제로 엘비라를 데려가려 하자 에르나니가 나타나 그를 막는다. 두 사람이 결투를 벌이려는 순간, 실바가 나타나 두 남자가 자신의 약혼녀 방에 있는 것에 분노한다.(Infelice!... e tu credevi|불행한 남자여! 당신은 이 아름다운...것이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네it)[18][19] 그러나 리카르도가 나타나 카를로의 정체를 밝히자 모두 놀란다. 카를로는 실바에게 자신은 에르나니를 시종으로 데려온 것이라 둘러대며 에르나니의 목숨을 구한다.

4. 2. 2막: 손님

실바의 성에서 결혼 축하연이 열리고 있을 때, 순례자로 변장한 에르나니가 나타나 실바에게 피난처를 요청하고, 실바는 이를 허락한다.[20] 에르나니는 엘비라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엘비라는 제단에서 자살할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이중창 "아, 지금 죽을 수 있다면"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실바가 이 장면을 발견한다.[20]

위고의 연극 장면: 에르나니가 피난처를 찾고 있다.


실바는 에르나니에게 한 약속을 지켜 왕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로 결심하고, 에르나니는 실바에게 영원한 빚을 지게 된다. 삼중창 "아니, 나는 더 무서운 복수를 하고 싶다"에서 실바의 복수심이 드러난다.[20] 돈 카를로스가 도착하여 성이 잠겨 있는 이유를 묻자, 실바는 에르나니를 넘겨주기를 거부한다. 카를로의 아리아 "보게 될 것이다, 용감한 늙은이"에서 돈 카를로스는 실바의 용기에 감탄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에르나니를 찾지 못한다.[20]

실바는 왕이 엘비라를 인질로 잡았을 때조차 약속을 지킨다. 실바는 에르나니를 풀어주고 결투를 신청하지만, 에르나니는 거부하고 엘비라를 왕으로부터 구출하는 계획에 실바와 협력한다.[20] 에르나니는 실바의 소환에 언제든 응하겠다고 맹세하며, "오 위대한 신이여, 맹세를 들어주소서"라고 노래한다.[20]

1844년 12월 26일 파르마에서 추가된 내용에 따르면, 로시니의 요청으로 베르디는 테너 니콜라 이바노프|니콜라 이바노프 (테노르)it를 위한 웅장한 아리아를 작곡했다.[20] 에르나니는 부하들을 모으고, 복수 아리아 "나는 삶을 멸시하고, 더 이상 나를 유혹하지 않는다"를 부르며 막을 마무리한다.[20]

실바와 엘비라의 결혼식 날, 수도사로 변장한 에르나니가 찾아오고, 실바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실바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엘비라는 에르나니를 여전히 사랑하며 결혼하면 자결할 각오임을 밝히고, 두 사람은 포옹한다. 돌아온 실바는 분노하여 에르나니를 처단하려 하지만, 칼로가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에르나니를 찾는다. 실바는 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에르나니를 숨겨주고, 칼로는 엘비라를 인질로 데려간다. 남겨진 실바와 에르나니는 국왕을 함께 물리치기로 맹세하고, 에르나니는 자신의 뿔피리를 실바에게 맡기며 뿔피리가 울리면 죽겠다고 약속한다.

4. 3. 3막: 자비

아헨의 샤를마뉴 대제 묘지에서 카를로는 차기 신성 로마 황제 선출을 위해 관련 국가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샤를마뉴의 무덤을 방문한다. 카를로는 자신이 황제가 되면 삶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카바티나: ''오, 나의 젊은 시절의 꿈''/ "오, 나의 젊음의 꿈과 속임수여"). 묘지 뒤에 숨어 있던 그는 실바와 에르나니를 포함한 음모자들의 모임을 엿듣는다. 에르나니는 카를로를 죽이겠다고 맹세한다. 카를로의 수행원들이 들어와 음모자들을 놀라게 하면서 음모는 실패로 돌아간다. 왕은 모든 반역 귀족을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에르나니가 앞으로 나서서 자신도 그렇게 죽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는 산적 에르나니가 아니라 아라곤의 돈 후안이며, 그의 영토를 빼앗겼다고 말한다. 카를로의 황후가 되기로 했던 엘비라는 그의 연인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고, 카를로는 마음이 바뀌어 그들을 모두 용서하고 엘비라의 손을 에르나니의 손에 얹어준다.

아헨 대성당 내부, 카를 대제(샤를마뉴)의 묘실이 있는 지하 묘소에서 카를로는 황제 선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반 계획이 있음을 알고 스스로 카를 대제의 묘실에 몸을 숨겨 모반자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음모자들이 들어오고, 그 안에는 에르나니와 실바도 있었다. 대성당 밖에서 카를로가 황제로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3발의 포성이 울린다. 동시에 카를 대제의 묘실의 큰 문이 열리고, 그림자가 나타나자 반란자 일당은 "카를 대제가 살아 돌아왔는가"라고 놀란다. 그림자, 즉 카를로는 "반란자여, 나야말로 카를 5세다"라고 칭한다. 카를로의 황제 선출을 축하하는 일행이 성당 안으로 입장하고, 카를로는 반란자들을 체포하여 공작부터 백작까지는 참수형을, 그 이하의 자들은 감옥으로 보내라고 명령한다. 에르나니는 자신도 아라곤의 전 귀족 가문 출신인 돈 조반니라고 신분을 밝히고, 동료들과 함께 죽음을 원한다. 카를로도 그것을 받아들인다. 엘비라가 카를로에게 달려가 에르나니의 사면을 간청했을 때, 카를로는 이 묘소에 잠든 카를 대제의 유덕, 즉 자비의 마음을 자신도 이어받는다고 생각하고, 음모자 일동을 즉시 방면하고, 에르나니에게는 귀족으로서의 가문 부활과 엘비라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일동은 카를로 신 황제의 자비를 칭찬하지만, 카를로에 대한 반란도 무너지고, 결혼할 예정이었던 엘비라도 잃은 실바만이 홀로 고통을 맛본다.

4. 4. 4막: 가면을 쓴 사나이

이제 귀족으로 복귀하여 "아라곤의 돈 조반니"로 칭해지는 에르나니와 엘비라의 결혼식 날, 사람들은 축연에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멀리서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에르나니만이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창백해진다. 실바가 등장하여 죽음의 약속을 이행해 달라고 다그친다. 엘비라는 실바에게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하지만, 복수의 귀신이 된 그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에르나니는 자결하고, 엘비라에게 자신과의 사랑을 기억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2]

엘비라와 에르나니는 막 결혼했는데, 에르나니는 경악하며 나팔 소리를 듣는다. 실바가 도착하여 에르나니에게 말없이 단검을 건넨다. 에르나니는 "사랑의 잔을 마실"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지만(''Ascolta, ascolta un detto ancor''/ "들어보세요, 한 마디만 더...")[1], 겁쟁이라며 실바에게 저주받은 에르나니는 맹세를 지키고 가슴에 칼을 꽂는다(실바와의 삼중창: ''È vano, o donna, il piangere, è vano'' / "당신의 울음은 헛된 일입니다, 여자여").[1] 그는 엘비라의 품에서 죽어가며 그녀에게 살라고 말한다.[1]

5. 음악

이 오페라는 솔로 아리아와 이중창을 확장하고, 서정적인 곡들을 묶는 음악 시퀀스에 대한 유연한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고정된 형식에 대한 새로운 고려를 보여주었다.[21] 3막은 일관성 있는 극적 구조를 통해 베르디 음악 드라마의 수사학적 감각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21]

남성 보컬 원형의 개념을 통해 극 중 인물 간의 갈등과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소프라노 음역과 특정 남성 목소리 사이의 거리에 따라 열정의 강도가 달라졌는데, 베이스(데 실바)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차갑고 절제된 관계를, 바리톤(왕, 돈 카를로)은 다소 가까워지지만 간접적이고 모호하게, 테너(에르나니)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오랫동안 상호적인 관계에 가까워진다.[23]

3막은 베르디가 비교적 확장된 음악 공간(약 25분) 안에 완벽한 구조적 단위를 담아낸 첫 번째 사례로 평가받는다.[24] 오페라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오프닝 호른 모티프와 호른에 대한 언급은 마지막 호른 소리로 끝을 맺으며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주역 성우의 배치, 즉 영웅으로서의 테너, 그 라이벌인 바리톤, 그 두 사람에게 연정을 받는 히로인의 소프라노라는 조합은 일정한 패턴을 확립했다. 이 패턴은 이후의 『레냐노의 전투』, 『일 트로바토레』, 『가면무도회』 그리고 『운명의 힘』에 이르기까지 많은 오페라에서 답습되었다.

5. 1. 특징

이 오페라는 솔로 아리아와 이중창을 확장하고, 서정적인 곡들을 묶는 음악 시퀀스에 대한 유연한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고정된 형식에 대한 새로운 고려를 보여주었다.[21] 특히 3막은 일관성 있는 극적 구조를 통해 베르디 음악 드라마의 수사학적 감각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21]

남성 보컬 원형의 개념을 통해 극 중 인물 간의 갈등과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소프라노 음역과 특정 남성 목소리 사이의 거리에 따라 열정의 강도가 달라지는데, 베이스(데 실바)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차갑고 절제된 관계를, 바리톤(왕, 돈 카를로)은 다소 가까워지지만 간접적이고 모호하게, 테너(에르나니)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오랫동안 상호적인 관계에 가까워진다.[23]

3막은 베르디가 비교적 확장된 음악 공간(약 25분) 안에 완벽한 구조적 단위를 담아낸 첫 번째 사례로 평가받는다.[24] 또한 오페라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오프닝 호른 모티프와 호른에 대한 언급은 마지막 호른 소리로 끝을 맺으며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주역 성우의 배치, 즉 영웅으로서의 테너, 그 라이벌인 바리톤, 그 두 사람에게 연정을 받는 히로인의 소프라노라는 조합에 일정한 패턴을 확립했다. 이 패턴은 이후의 『레냐노의 전투』, 『일 트로바토레』, 『가면무도회』 그리고 『운명의 힘』에 이르기까지 많은 오페라에서 답습되게 된다.

5. 2. 유명한 아리아


  • "Dell'esilio nel dolore" (에르나니)
  • "Vieni meco, sol di rose" (카를로)
  • "Da quel di che t'ho veduta" (카를로)
  • 꽃봉오리 속의 이슬처럼 Come rugiada al cespite (소프라노)
  • 에르나니, 나를 데리고 도망가주오 Ernani,Ernani involami (엘비라)
  • 나는 불행한 사나이 Infelice! e tu credevi (실바)

6. 한국에서의 공연

1925년 3월 카피 가극단이 제국극장에서 Ernaniit 하이라이트(발췌 상연)를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다.[30] 나가이 가후는 같은 달 11일 공연을 관람하고 단장정일승에 관련 내용을 기록했지만, Ernaniit에 대한 감상은 남기지 않았다.

1979년 11월 9일, "로제의 회"에서 Ernaniit를 상연했다는 자료가 있다. 지휘는 모리 타다시, 관현악은 신일본 필이 맡았고, 엘비라 역에는 이탈리아에서 조반나 비기를 초청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불명확하다.

2002년 10월 26일 비와코 홀에서 "비와코 홀·프로듀스 오페라"로 일본 초연이 이루어졌다. 후쿠이 케이(에르나니), 후쿠시마 아키야(돈 카를로), 코테츠 카즈히로(실바), 코하마 타에미(엘비라) 등이 출연했고, 와카스기 히로시가 지휘, 교토시 교향악단이 연주했다.[31]

2002년 일본 초연 정보를 통해 한국에서도 Ernaniit의 존재가 알려졌고, 오페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2024년까지 한국에서 전막 공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조

[1] 문서 Parker, p. 71
[2] 서적 Guinness Book of Music Sterling Publishing
[3] 간행물 Occasional papers, nos. 174–179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Graduate School of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4] 문서 Budden (1984), pp. 139–141
[5] 문서 Kimbell, in Holden 2001, pp. 980–981
[6] 문서 Verdi to Piave, 8 August 1843, in Budden (1984), p. 141
[7] 문서 Verdi to Mocenigo, in Budden (1984), pp. 141–142
[8] 문서 Budden (1984), p. 142
[9] 문서 Budden (1984), p. 143
[10] 문서 Budden (1984), p. 145
[11] 문서 Verdi to Brenna, 15 November 1843, in Budden (1984), p. 145
[12] 문서 De Van (1998), p. 77
[13] 문서 Budden (1984), p. 146
[14] 문서 Phillips-Matz 1997, pp. 163–164, referencing Marcello Conati, "''Ernani'' di Verdi; le critiche del tempo" in ''Ernani ieri e oggi''.
[15] 웹사이트 Parma's 2005 "Festival Verdi" http://www.teatroreg[...] 2009-02-09
[16] 웹사이트 Operabase http://operabase.com[...] 2018-03-26
[17] 문서 List of singers taken from Budden, p. 138.
[18] 문서 Budden notes: "the cabaletta is a thoroughly undistinguished piece and it offers the ultimate absurdity of an 'exit aria' with no exit to follow", pp. 167-168
[19] 문서 Parker notes that there is no direct evidence that Verdi sanctioned this addition, p. 71.
[20] 문서 Budden, p. 169
[21] 문서 Parker (1998), pp. 72–73
[22] 문서 Budden (1984), p. 147
[23] 문서 Baldini (1980), p. 74
[24] 문서 Baldini (1980), p. 83
[25] 웹사이트 Steven Schoenherr, Recording Technology History http://history.sandi[...] 2010-03-12
[26] 웹사이트 Recordings on operadis-opera-discography.org.uk http://www.operadis-[...]
[27] 문서 Note: this recording does not include Silva's act 1 cabaletta.
[28] 문서 Recording details for the 1983 Met Ernani DVD: {{OCLC|212394683}}.
[29] 문서 Note: this recording does not include Silva's act 1 cabaletta nor Ernani's final aria and cabaletta at the end of act 2
[30] 웹사이트 昭和音楽大学オペラ研究所 オペラ情報センター http://opera.tosei-s[...]
[31] 웹사이트 昭和音楽大学オペラ研究所 オペラ情報センター http://opera.tose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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