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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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세데 사고는 1998년 6월 3일 독일 에세데에서 발생한 인터시티 익스프레스(ICE) 1 열차의 대형 탈선 사고이다. 이 사고는 시속 200km로 달리던 열차의 탄성 차륜 파손으로 시작되었으며, 설계 결함과 부실한 유지 보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101명의 사망자를 냈다. 사고 이후 독일 철도 시스템은 안전 점검을 강화하고, 탄성 차륜을 일체형 차륜으로 교체하는 등 기술적 개선을 이루었으며, 타이완 고속철도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등 국제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사고 현장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공원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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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데 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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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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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명칭 | 에셰데 열차 탈선 사고 |
발생일 | 1998년 6월 3일 |
발생 시간 | 10시 59분 |
위치 | 니더작센주 에셰데 ( 첼레 근처) |
노선 | 하노버-함부르크 철도 |
운영사 | 독일 철도 |
열차 종류 | 지멘스 ICE |
사고 유형 | 열차 탈선 사고 |
사고 원인 | 금속 피로로 인한 탄성 차륜 파손 |
연루 열차 수 | 1대 |
탑승객 | 287명 |
승무원 | 8명 (열차 6명, 유지보수 2명) |
사망자 | 101명 |
부상자 | 88명 (중상), 106명 (경상 또는 부상 없음) |
2. 사고 발생 배경
ICE 1은 1988년에 도입된 독일 최초의 고속열차이다. 초기에는 차륜이라고 하는 일체형 주조 모노블록 바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 디자인은 운행 중 마모와 불균일한 마모로 인해 순항 속도에서 공진과 진동을 유발했다. 특히 식당칸에서 식기에 심한 진동이 발생하고 유리잔이 "미끄러지는" 현상이 보고되었다.[1]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성 차륜이 도입되었다. 이 탄성 차륜은 레일 접촉 강철 타이어와 강철 휠 본체 사이에 고무 댐핑 링을 넣어 진동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노면 전차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고속 주행 환경에서의 테스트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1]
당시 독일에는 바퀴의 실제 파손 한계를 테스트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디자인과 사양은 가용 재료 데이터와 이론에 의존했으며, 수행된 실험은 연장된 마모 조건 또는 정상 순항 속도보다 빠른 속도에서의 바퀴 거동을 측정하지 않았다. 프라운호퍼 구조 내구성과 시스템 신뢰성 연구소는 1992년에 이미 DB 경영진에게 휠-타이어 파손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지만, 설계 단계에서 동적 반복 하중이 고려되지 않아 적절한 안전 여유를 갖지 못했다.[1]
2. 1. ICE 1 개발과 도입
ICE 1은 독일 최초의 고속열차로 1988년에 도입되었다.[1]2. 2. 초기 차륜 문제와 탄성 차륜 도입
ICE 1 열차는 원래 차륜이라고 하는 일체형 주조 모노블록 바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 디자인은 운행 중 마모와 불균일한 마모로 인해 순항 속도에서 공진과 진동을 유발했다. 특히 식당칸에서 식기에 심한 진동이 발생하고 유리잔이 "미끄러지는" 현상이 보고되었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도 관리자들은 엔지니어들에게 레일 접촉 강철 타이어와 강철 휠 본체 사이에 고무 댐핑 링을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ICE 차량의 서스펜션을 개선하여, 고무 댐퍼와 비교적 얇은 금속 타이어로 둘러싸인 휠 본체로 구성된 "휠-타이어" 디자인의 바퀴(탄성 차륜)가 도입되었다. 이 탄성 차륜은 이전 노면 전차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독일에서 실제 운용되기 전에 고속으로 테스트되지는 않았다.
당시 독일에는 바퀴의 실제 파손 한계를 테스트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한 프로토타입은 물리적으로 테스트되지 않았다. 디자인과 사양은 가용 재료 데이터와 이론에 의존했으며, 수행된 실험은 연장된 마모 조건 또는 정상 순항 속도보다 빠른 속도에서의 바퀴 거동을 측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퀴는 여러 해 동안 신뢰할 수 있었다.
프라운호퍼 구조 내구성과 시스템 신뢰성 연구소는 1992년에 이미 DB 경영진에게 휠-타이어 파손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설계 단계에서 동적 반복 하중이 고려되지 않았고, 결과적인 설계는 적절한 안전 여유를 갖지 못했다.
ICE 1은 당초 일체 압연 차륜을 채용했지만, 진동과 소음, 차륜의 변형 등이 생겨 승차감 악화로 이어졌다. 그래서 도이치반은 내륜과 외륜 사이에 고무를 끼운 이중 구조의 탄성 차륜을 개발했다.[11]
3. 사고 발생 과정
1998년 6월 3일, 뮌헨 발 함부르크 행 ICE 884 열차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호 (ICE 1, 전후 동력차 포함 14량 편성)가 약 200 km/h로 주행 중, 함부르크 남부의 에세데역 550m 앞에서 탈선하여 도로교의 교각에 충돌했다.[9]
사고 현장은 하노버에서 북쪽으로 42 km 떨어진 에세데의 육교에서 약 6km 전방 지점이었다. 1호차 후위 쪽 대차의 전방 차륜 바깥쪽 림이 파단된 것으로 추정된다.[10] 열차는 5.5km 정도 계속 주행했지만, 오전 10시 59분, 1호차와 2호차의 차체에 꽂힌 궤도에 의해 1호차 후부 차체를 지탱하는 부분이 오른쪽으로 탈선했다. 이로 인해 다음 분기선의 포인트가 바뀌면서 3호차의 후부는 평행하는 다른 선로로 진입했다. 3호차는 이 포인트 직후에 있던 도로 교의 기둥에 부딪쳐 파괴되었고, 결과적으로 후속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탈선했다.
선두 기관차와 후속 차량과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선두 기관차는 탈선하지 않고 거의 손상 없이 2km 주행 후 멈췄다. 1호차와 2호차는 탈선하면서 멈췄고, 3호차는 도로교의 교각에 충돌해 손상을 입었다. 4호차는 도로교를 통과 후 진행 방향 좌측으로 탈선한 다음 경사면의 우측으로 충돌해 횡전하고 숲 안에서 멈추었다. 5호차는 폭락한 도로교에 눌려 파괴되었고, 6호차에서 12호차 객차와 후부 기관차는 연결 부분에서 차례차례 겹쳐진 다음에 파손된 다리에 차례로 충돌해 완전히 파괴되었다.[11]
3. 1. 차륜 파손
1998년 6월 3일 수요일, 뮌헨발 함부르크행 ICE 884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ICE 1의 151열차)[13]은 에셰데 인근을 시속 약 200km로 주행하고 있었다. 10시 57분 28초,[14] 1호차 세 번째 차축의 바퀴에서 휠 타이어[15](Personenwage 1)가 피로 파괴로 인해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휠 타이어는 객차 바닥을 뚫고 들어가 두 좌석 사이의 구간에 박혔다.사고 후, 사고 현장으로부터 약 6km 떨어진 지점에서 약 20cm 길이와 4cm 깊이의 관이 한 경계선에서 발견되었고, 55.2km 지점에서 선로가 찢어진 것이 발견되었다. 56.4km 지점에서는 콘크리트 경계에 상당한 손상이 기록되었다.[15]
3. 2. 탈선 및 연쇄 충돌
1998년 6월 3일 수요일, 뮌헨발 함부르크행 ICE 884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ICE 1 151열차)[13]는 시속 약 200km로 주행 중이었다. 에셰데에서 약 6km 떨어진 지점에서 1호차 세 번째 차축의 바퀴에서 휠 타이어[15]가 피로로 인해 풀려 튕겨 나가 객차 바닥을 뚫고 박혔다.이 휠 타이어는 전철기의 가이드 레일에 부딪혀 철로 침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탈선한 바퀴는 두 번째 전철기의 레버를 쳐서 설정을 변경했고, 이로 인해 3호 객차의 뒷 차축이 병렬 트랙으로 전환되었다. 3호 객차는 도로 교량 교각에 충돌하여 파괴되었고,[16] 4호 객차는 다리 아래를 통과한 후 둑으로 굴러 떨어졌다. 붕괴된 다리는 5호 객차의 뒤쪽 절반을 짓눌렀다. 나머지 객차들은 지그재그 패턴으로 잔해 속으로 잭나이프되며 연쇄 충돌했다.[19] 앞쪽 동력차는 에셰데 기차역을 지나 3km 더 활주하여 멈춰 섰다.
4. 사고 원인 분석
ICE 1에 사용되던 이중 구조 차륜(탄성 차륜)은 굴곡되면서 표면이 과열되었고, 이로 인해 차륜 외피에 균열이 발생했다. 이중 구조 차륜은 본래 노면 전차나 트램처럼 단거리를 저속으로 달리는 차량에 사용되었으나, 장거리를 고속으로 달리는 ICE 1에서는 열화와 손상이 더 빨랐다. DB는 비용 절감을 위해 강도 검사에서 불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차륜을 계속 사용했고, 결국 차륜 손상으로 이어져 대참사가 발생했다.[11]
이 사고는 해체된 탄성 바퀴뿐만 아니라 다리와의 근접성, 전복 지점, 바퀴가 열차 앞쪽에 위치하여 많은 객차가 탈선하게 된 점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피해를 키웠다.
4. 1. 복합적인 원인
에세데 사고는 단순한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참사였다.ICE 1에 사용되었던 탄성 차륜의 외륜 휨으로 생긴 금속 피로에 의한 균열이 원인이었다.[11] ICE 1은 당초 일체 압연 차륜을 채용했지만, 대차에 코일 스프링을 사용했기 때문에 진동과 소음, 차륜의 변형 등이 생겨 승차감이 나빠졌다. 그래서 도이치반은 내륜과 외륜 사이에 고무를 끼운 이중 구조의 탄성 차륜을 개발했다.[11]
이 탄성 차륜은 승차감이 우수한 반면, 외압으로 외륜에 균열이 생기기 쉬운 결점이 있었다. 본래는 노면 전차와 같이 외압이 작은 저속 차량에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한 차륜이며, 외압이 큰 고속 철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사고 전날 해당 차량의 정기 점검에서 외륜의 마모 정도가 기준치를 초과하여 차륜 교환이 필요했지만, 정비사는 "승차감이 조금 나빠지는 정도이고 문제 없다"고 판단하여 차륜을 교환하지 않고 다음 날 운행에 투입한 것도 원인이었다.
당시 ICE 1에는 차륜이나 대차에 이상이 생기면 비상 제동이 걸리는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바퀴가 파손된 직후 열차가 멈췄다면 이후의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열차를 멈추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일련의 사건을 초래했다. 열차 관리자는 문제에 대해 직접 조사할 때까지 열차를 멈추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는 회사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 결정은 법원에서 지지되었고, 열차 관리자는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 그는 고객 서비스 직원이었고 열차 유지 보수 담당자나 엔지니어가 아니었으므로, 열차를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판단을 내릴 권한은 다른 승객과 마찬가지로 없었다.
1997년에는 공기 스프링 대차가 개발되어, 일체 압연 차륜으로도 승차감 개선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제2세대 ICE 2부터 다시 일체 차륜이 채용되었다. 그러나 ICE 1에서는 탄성 차륜이 그대로 사용되었[11]기 때문에, 금속 피로로 차륜이 파손되어 재래선 포인트가 전환되어 3량째 이후가 재래선으로 유도되어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피해의 심각성을 높이는 데에는 다리와의 근접성, 전복 지점, 그리고 바퀴가 열차 앞쪽에 위치하여 많은 객차가 탈선하게 된 점 등 여러 요인이 기여했다.
4. 2. 주 원인: 탄성 차륜의 설계 결함
ICE 1에 사용된 탄성 차륜은 원래 노면 전차와 같이 저속 차량에 적합한 설계였다. 그러나 ICE 1은 고속 주행을 하므로 탄성 차륜은 금속 피로에 취약했다. DB는 비용 절감을 위해 강도 검사에서 불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차륜을 사용했다.[11]설계 과정에서 동적 반복 하중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고, 안전 여유가 부족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 타이어는 휠이 회전할 때마다 타원형으로 변형되어 피로가 누적되었다. (ICE 열차에서는 하루에 약 50만 번 발생)
- 모노블록 휠과 달리 균열은 타이어 안쪽뿐만 아니라 바깥쪽에도 형성될 수 있었다.
- 타이어가 얇아질수록 동적 하중이 증가하여 균열 성장이 가속화되었다.
- 타이어의 평평한 부분과 융기, 부풀어 오른 부분은 동적 하중을 크게 증가시키고 마모를 가속화했다.
ICE 1은 원래 일체형 주조 차륜을 사용했으나, 운행 중 금속 피로와 불균일한 마모로 인해 진동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철 타이어와 강철 휠 본체 사이에 고무 댐핑 링을 사용하는 탄성 차륜이 도입되었으나, 이는 고속 주행에 적합하지 않았다. 1997년, Üstra는 저속 노면 전차에서 탄성 차륜의 피로 균열을 발견하고 도이치반에 경고했지만, 도이치반은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2]
프라운호퍼 구조 내구성과 시스템 신뢰성 연구소는 사고 원인 조사 결과, 설계 단계에서 동적 반복 하중이 고려되지 않았고 안전 여유가 부족했음을 지적했다.[4]
4. 3. 부차적 원인: 유지 보수 미흡
ICE 1 열차에는 원래 차륜이라고 하는 일체형 주조 모노블록 바퀴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디자인은 운행 중 금속 피로와 불균일한 마모로 인해 순항 속도에서 공진과 진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식당칸에서 식기에 심한 진동이 발생하고 테이블 위에서 유리잔이 "미끄러지는" 현상이 보고되었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레일 접촉 강철 타이어와 강철 휠 본체 사이에 고무 댐핑 링을 사용한 탄성 바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탄성 차륜은 "휠-타이어" 디자인으로, 고무 댐퍼와 비교적 얇은 금속 타이어로 둘러싸인 휠 본체로 구성되었다.
당시 독일에는 바퀴의 실제 파손 한계를 테스트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한 프로토타입은 물리적으로 테스트되지 않았다. 디자인과 사양은 가용 재료 데이터와 이론에 크게 의존했다.
1997년 7월, 참사 1년 전, Üstra는 하노버의 노면 전차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회사로, 약 24 km/h로 운행하는 노면 전차의 이중 블록 바퀴에서 피로 균열을 발견하고 도이치반을 포함한 다른 사용자에게 경고를 통해 발견 사항을 보고했다. 그러나 도이치반은 열차에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2]
프라운호퍼 구조 내구성과 시스템 신뢰성 연구소(프라운호퍼 LBF)는 1992년 DB 경영진에게 휠-타이어 파손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었다. 설계 단계에서 동적 반복 하중이 고려되지 않았고,[4] 결과적인 설계는 적절한 안전 여유를 갖지 못했다.
뮌헨에 위치한 도이치반 정비 시설의 기술자들은 금속 피로 감지 장비 대신 표준 손전등만을 사용하여 타이어를 육안 검사했다.[5] 이전에는 첨단 검사 장비를 사용했지만, 이 장비가 많은 오탐 오류 메시지를 생성하여 신뢰할 수 없다고 간주되어 사용이 중단되었다.
에셰데 참사 전 주에, 세 번의 별도 자동 검사에서 바퀴에 결함이 있음을 나타냈다. 사고 두 달 전, 승무원 및 기타 열차 직원이 결함이 있는 바퀴가 있는 대차에서 발생하는 소음 및 진동에 대해 8건의 별도 불만을 제기했지만, 회사는 바퀴를 교체하지 않았다.[2]
사고 전날 해당 차량의 정기 점검에서 외륜의 마모 정도가 기준치를 초과하여 차륜 교환이 필요했지만, 정비사는 "승차감이 조금 나빠지는 정도이고 문제 없다"고 판단하여 차륜을 교환하지 않고 다음 날 운용에 투입했다.
또한, 당시 ICE 1에는 차륜이나 대차에 이상이 생기면 비상 제동이 걸리는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4. 4. 기타 요인
교량 양쪽에 단단한 받침대 대신 얇은 교각 두 개가 교량을 지지하는 방식이 사고 피해를 키웠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6] 1977년 그랜빌 열차 참사에서 붕괴된 교량 역시 비슷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고 이후 건설된 교량은 이러한 취약점이 없는 캔틸레버 설계를 사용하고 있다.객차 차체에서 충돌 시 "지퍼처럼 뜯어진" 용접 방식이 사용된 점도 사상자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6]
당시 ICE 1에는 차륜이나 대차에 이상이 생기면 자동으로 비상 제동이 걸리는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5. 사고 이후의 변화와 영향
이 사고로 DB는 프랑스 TGV가 보여준 고속 주행 기록과 차량 유지보수 강화를 참고하여, 사고 방지 대책을 향상시키고 고속철도 네트워크를 확충하며 차내 서비스를 충실히 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사고가 발생한 에시데 역 옆에는 복구 후 위령 기념비와 공동 묘지가 세워졌다.[20] 사고 원인이 된 ICE 1의 탄성 차륜은 모두 일체형 차륜으로 교체되었으며, 1999년 6월 말까지 완료되었다.[11]
이 사고로 독일산 철도 차량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진행 중이던 타이완 고속철도 프로젝트에서 독일산 차량이 제외되는 주요 요인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신칸센 차량이 선정되었다.
사고 현장에는 위령 기념물 등을 설치한 메모리얼 파크가 조성되어 있다.[12]
5. 1. 법적 책임
사고 직후, 도이체반(Deutsche Bahn)은 사망자 한 명당 30000DEM (약 19000USD)를 해당 유족에게 지급했다. 이후 도이체반은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했다. 도이체반은 생존자와 유족에게 3000만달러 이상을 지급했다고 밝혔다.[2]2002년 8월, 도이체반의 임원 2명과 엔지니어 1명이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은 53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온 전문가들이 증언했다. 이 사건은 2003년 4월 플리 바겐으로 종결되었다. 독일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고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다고 인정되고 검사와 피고가 합의하면, 피고는 벌금을 납부하고 유죄 판결 없이 기소는 기각될 수 있다. 각 엔지니어는 10000EUR (약 12000USD)를 지불했다.[2]

5. 2. 기술적 개선
사고 이후, ICE 1의 탄성 차륜은 모두 일체형 차륜으로 교체되었으며, 1999년 6월 말까지 완료되었다.[11] 또한 독일 철도 네트워크 전체에서 장애물에 근접한 유사한 형태의 분기기가 있는지 점검했다.구조 작업 중 알루미늄 프레임과 압력 방지 창문이 구조 장비에 예상치 못한 저항을 보였기 때문에, 모든 열차는 파손 틈새가 있는 창문으로 재장착되었다.
5. 3. 안전 의식 강화 및 시스템 개선
이 사고 이후 DB는 프랑스 TGV가 보여준 고속 주행 기록과 차량 유지보수 강화를 참고하여, 사고 방지 대책을 향상시키고 고속철도 네트워크를 확충하며 차내 서비스를 충실히 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사고가 발생한 에세데 역 옆에는 복구 후 위령 기념비와 공동 묘지가 세워졌다.[20]5. 4. 국제적 영향
이 사고로 독일산 철도 차량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진행 중이던 타이완 고속철도 프로젝트에서 독일산 차량이 제외되는 주요 요인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신칸센 차량이 선정되었다.[20]DB는 프랑스 국철이 TGV로 달성하고 있는 고속 주행 기록과 차량의 유지보수 강화, 사고 방지 대책 향상, 고속철도 네트워크 확충, 차내 서비스 충실화와 같은 방향으로 개선했다. 사고가 발생한 에시데 역 옆에는 복구 후 위령 기념비가 마련되었고 공동 묘지도 세워졌다.[20] 사고 후, 사고 원인이 된 ICE 1의 탄성 차륜은 모두 일체형 차륜으로 교체되었으며, 1999년 6월 말까지 완료되었다.[11]
사고 현장에는 위령 기념물 등을 설치한 메모리얼 파크가 조성되어 있다.[12]
6. 추모
사고 현장에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공식 추모 공원이 조성되었다.[7] 추모 공원에는 희생자 수와 같은 101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각각의 나무는 희생자 한 명을 나타낸다.[8]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도 설치되어 있다.[8] 사고 생존자 중 한 명인 우도 바우흐는 개인적으로 추모비를 세웠다.[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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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Praxisrelevante Bewertung des Radbruchs vom ICE 884 in Esch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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