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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수오네뇨키 열차 충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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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8년 수오넨요키 열차 충돌사고는 1998년 3월 7일 핀란드 수오넨요키 역 북쪽 20km 지점 아이락셀라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이다. 이잘미발 헬싱키 중앙역행 인터시티 열차와 코우볼라 경유 화물 열차가 충돌했으며, 인터시티 열차 기관사가 정지 신호를 무시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사고 이후 핀란드에서는 자동 열차 제어 시스템이 확대 설치되었고, 신호 중계기가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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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수오네뇨키 열차 충돌사고
사고 개요
이름수오넨요키 열차 충돌 사고
수오넨요키 열차 충돌 사고
사고 현장
날짜1998년 8월 12일
시간오전 5시 58분 12초
위치수오넨요키 역 인근, 코우볼라 기점 225km
국가핀란드
노선 및 운영
노선피에크새매키-쿠오피오 선
운영자VR 그룹
사고 상세
사고 종류충돌
사고 원인신호 오판독, 신호 오작동 가능성
피해 상황
열차2대
승객51명
사망자0명
부상자26명
피해불명
재산 피해불명
기타
참고 자료OTKES 보고서 (핀란드어)

2. 사고 상황

이살미역에서 코우볼라역을 경유하여 헬싱키 중앙역으로 가던 인터시티 제72 열차(IC72)는 수오넨요키 북쪽 20km 지점인 아이락셀라에서 화물 제2051 열차(VR 2051)와 교행할 예정이었다. 원래는 아이락셀라에서 IC72 열차가 본선으로, 화물 열차는 교행선에서 대기하며 교행할 예정이었으나, 사고 당일 화물 열차가 30분 지연되면서 수오네뇨키 역에서 교행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이 때문에 IC72 열차는 3분 지연될 예정이었다.

IC72 열차는 예정대로 출발했으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운행하여 마주 오던 화물 열차와 충돌했다. 양 열차 기관사는 비상 제동을 걸고 열차에서 뛰어내려 생존했다. 충돌 당시 IC72 열차는 44km/h, 화물 열차는 25km/h로 운행 중이었다. IC72 열차는 4m 뒤로 밀려났고, 화물 열차 기관차는 첫 화차와 연결이 끊기고 후부가 들어 올려져 전차선을 절단했다.

2. 1. 사고 당시 상황

이살미역에서 코우볼라역을 경유하여 헬싱키 중앙역으로 가던 인터시티 제72 열차는 수오넨요키 북쪽 20km 지점인 아이락셀라에서 화물 제2051 열차와 교행할 예정이었다. 사고 당일 화물 열차는 30분 지연 운행 중이었고, 수오네뇨키 역에서는 인터시티 열차를 본선에 정차시킨 후 화물 열차를 부본선으로 통과시키려 했다. 이 때문에 인터시티 열차는 3분 지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터시티 열차는 이를 알지 못한 채 예정대로 오전 5시 57분 1초에 역을 출발했고, 철도 신호기의 정지 신호를 보지 못하고 통과했다. 마주 오는 열차를 확인한 두 열차의 기관사는 비상 제동을 걸었다. 당시 제72 열차는 시속 71km, 제2051 열차는 시속 27km로 운행 중이었다.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두 열차의 기관사는 운전실 문을 열고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

관제실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무선으로 기관사를 호출했으나, 기관사는 이미 뛰어내렸고 열차는 충돌한 후였기 때문에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인터시티 열차는 속도가 빨랐고, 화물 열차는 무거웠기 때문에 화물 열차 쪽은 비상 제동 효과가 없었고, 충돌 자체도 피해가 컸다. 인터시티 열차는 전 편성이 4m 뒤로 밀려났고, 화물 열차 쪽 기관차는 첫 화차와 연결기가 끊기고 후부가 들어올려져 전차선을 끊었다. 다른 탈선 피해는 없었다.

2. 2. 충돌 이후 상황

관제실에서 상황을 파악한 후 무전으로 기관사를 호출했으나, 기관사는 이미 뛰어내리고 열차는 충돌한 후였으므로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화물열차 쪽은 비상 제동이 효과가 없었고, 충돌 피해가 컸다. 인터시티 열차는 전 편성이 4m 뒤로 밀려났고, 화물 열차 쪽의 기관차는 첫 화차와 연결기가 끊기고 후부가 들어올려져서 전차선을 끊었다. 이외의 탈선 피해는 없었다.

3. 사고 원인

1998년 수오네뇨키 열차 충돌사고는 IC72 열차 기관사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면서 발생했다. 기관사는 차장의 출발 신호 벨 소리를 듣고 역을 출발하는 데 집중했으며, 밝은 햇빛 때문에 신호등을 명확하게 보기 어려웠고, 인터시티 기관사들 사이에서 시간표를 초 단위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사고의 한 원인이었다.

3. 1. 기관사의 판단 착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인터시티 열차 기관사가 정지 신호를 무시한 것이었다. 화물 열차가 평소에는 먼저 지나가기 때문에 주 신호기를 진행으로 착각하였고, 차장의 발차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주 신호가 정지일 줄 예상하지 못했다. 인터시티 열차 기관사 역시 초 단위로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성급하게 발차하였다. 아침 햇살 때문에 신호기를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

인터시티 열차 기관사는 연동 장치 이상으로 신호를 잘못 보았다고 주장하였으나, 연동 장치는 이상이 없었다.

3. 2. 기타 요인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인터시티 열차 기관사가 정지 신호를 무시한 것이었다. 화물 열차가 평소에는 먼저 지나가기 때문에 주 신호기를 진행으로 착각하였고, 발차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주 신호가 정지일 줄 예상하지 못했다. 인터시티 열차 기관사 역시 초 단위로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성급하게 발차하였다. 아침 햇살 때문에 신호기를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

인터시티 열차 기관사는 연동 장치 이상으로 신호를 잘못 보았다고 주장하였으나, 연동 장치는 이상이 없었다. 다른 원인으로는 밝은 햇빛 때문에 기관사가 빨간 신호를 명확하게 볼 수 없었고, 인터시티 기관사들 사이에서 시간표를 초 단위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4. 사고 이후

이 사고는 귈랴스 철도 사고와 함께 자동 열차 제어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핀란드는 수년 동안 모든 주요 노선에 이 시스템을 설치하였으며, 모든 여객 노선과 하루에 몇 대의 열차만 운행하는 노선을 제외한 모든 화물 전용 노선까지 확대하였다.

두 기관차, Sr1 3042호(화물 열차)와 3031호(인터시티)는 수리되어 운행에 복귀했다.

이 충돌 사고와 자동 열차 제어의 확대로 헬싱키 중앙역을 제외한 모든 역에서 신호 중계기가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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