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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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어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는 1979년 11월 28일, 에어뉴질랜드 DC-10 기종이 남극 에레버스 산에 추락하여 탑승자 257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이다. 사고 당시 비행기는 관광 비행 중이었으며, 기상 악화와 지상 항법 컴퓨터의 오류로 인해 비행 경로가 변경되어 산과 충돌했다. 사고 조사 결과, 조종사 과실과 함께 에어뉴질랜드 측의 비행 계획 변경 미고지,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한 훈련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사고는 에어뉴질랜드의 DC-10 기종 운용 중단, 남극 관광 비행 중단을 초래했으며,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대형 재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시설은 뉴질랜드와 남극에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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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 [전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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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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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명칭 | 에어 뉴질랜드 901편 |
발생 날짜 | 1979년 11월 28일 |
사고 유형 | 통제된 비행 중 지형 충돌 |
발생 위치 | 남극 로스 섬 에레부스 산 |
탑승 인원 | 257명 |
승객 | 237명 |
승무원 | 20명 |
사망자 | 257명 (전원) |
생존자 | 0명 |
항공기 종류 | 맥도넬 더글러스 DC-10-30 |
항공기 등록번호 | ZK-NZP |
출발지 | 오클랜드 국제공항 |
경유지 | 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 |
목적지 | 오클랜드 국제공항 |
운영사 | 에어 뉴질랜드 |
콜사인 | NEW ZEALAND 901 |
추가 정보 | |
ASN 사고 ID | 19791128-0 |
Flight International 기사 | DC-10 playbacks awaited |
2. 사고의 순간
콜린스 기장은 맥머도 기지에 약 609.60m로 고도를 낮출 것이라고 통보하고, 자동비행장치로 조종을 전환했다. 바깥에는 구름층이 눈 덮인 화산과 섞여 섹터 화이트아웃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전방의 하얀 산비탈을 로스 빙붕으로 착각했다. 에어 뉴질랜드는 승무원에게 섹터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한 훈련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3] 승무원들은 루이스 만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맥머도 해협을 따라 에레버스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3]
오후 12시 49분, 지상 접근 경보 시스템(GPWS)이 작동하여 항공기가 지형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조종실 음성 녹음 장치(CVR)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었다.
: '''GPWS:''' "우, 우. 기수를 들어올리세요. 우, 우..."
: '''F/E:''' "500피트."
: '''GPWS:''' "...기수를 들어올리세요."
: '''F/E:''' "400피트."
: '''GPWS:''' "우, 우. 기수를 들어올리세요. 우, 우. 기수를 들어올리세요."
: '''CA:''' "재이륙 출력 부탁합니다."
: '''GPWS:''' "우, 우. 기수를-"
: '''CAM:''' [충돌음]
: 녹음 종료.
조종사들은 재이륙을 시도했지만, 너무 늦었다.[15][16] 6초 후, 항공기는 에레버스 산 측면에 충돌하여 폭발했고, 탑승자 전원이 즉사했다. 사고는 오후 12시 50분, 해발 약 447.14m 고도에서 발생했다.
맥머도 기지는 충돌 후 비행기에 연락을 시도했고, 오클랜드에 있는 에어 뉴질랜드 본사에 항공기와의 통신이 두절되었다고 알렸다.[3]
2. 1. 사고 당시의 주변 상황
짐 콜린스 기장과 그렉 카셍 부조종사는 남극 비행 경험이 없었지만, 에어뉴질랜드는 이들에게 이전 비행 계획 사본을 제공했다.[3] 그러나 이 비행 계획은 실제와 달랐으며, 에어뉴질랜드 지상 컴퓨터의 좌표 오류로 인해 에레버스 산 동쪽으로 약 43km 떨어진 맥머도 만 중간을 비행하는 경로가 설정되어 있었다.[8] 사고 당일, 에어뉴질랜드는 비행 계획을 수정했지만, 승무원에게는 알리지 않았다.[10] 수정된 비행 계획은 에레버스 산과 충돌할 수 있는 경로였다.[10]비행 중 승무원들은 맥머도 만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에레버스 산을 향해 비행하고 있었다.[14]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인해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결국 사고기는 산에 충돌했다.
2. 2. 좌표의 변경과 출발
승무원들은 비행 전 비행기 컴퓨터에 좌표를 입력했지만, 당일 아침 좌표가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3] 이 새로운 좌표는 비행 계획을 원래 경로에서 동쪽으로 약 43km 변경하여, 맥머도 만 대신 에레버스 산 위를 통과하도록 설정되었다.[3] 이는 승무원들이 목적지 웨이포인트를 지형도와 비교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3] 만약 확인했다면 변경 사항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1979년 11월 9일에 있었던 비행 전 브리핑에서는 에레버스 산에서 약 27nmi 서쪽, 넓은 맥머도 사운드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남쪽 비행 경로에 해당했다. 하지만, 11월 28일, 비행 당일 아침에는 에레버스 산과 일치하는 경로에 해당하여, 이 구간을 약 3962.40m 미만의 고도로 비행하면 에레버스 산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에레버스 산의 최고봉은 3794m였다.사고기는 오클랜드 국제공항에서 오전 7시 21분에 출발했다.[3]
2. 3. 에러버스 산으로의 충돌
콜린스 기장은 맥머도 기지에 약 609.60m로 하강한다고 통보하고, 항공기 자동 컴퓨터 시스템의 제어를 변경했다. 당시 상공에는 구름층이 있었는데, 눈 덮인 화산의 흰색과 섞여 화이트아웃 현상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승무원들은 전방의 에레버스 산을 로스 빙붕으로 착각했다. 에어 뉴질랜드는 승무원에게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루이스 만 상공을 비행한다고 생각하며 에레버스 산 정면으로 진입했다.[3], 지상 접근 경보 시스템(GPWS)이 작동하여 항공기가 지표면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콜린스 기장은 즉시 재이륙 절차를 수행했지만, 비행기가 자세를 전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6초 후, 사고기는 에레버스 산 측면에 충돌하여 대파되었고, 승객 전원이 즉사했다. 사고 시간은 , 좌표 위치는 해발 약 447.14m 지점이었다.

사고 직후, 맥머도 기지에서는 사고기와의 교신 두절을 통보하기 위해 오클랜드에 있는 에어 뉴질랜드 본사에 연락을 시도했다.
3. 구조와 수색
에어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직후, 미국 해군은 LC-130 허큘리스 항공기 1대와 UH-1N 트윈 휴이 헬기 2대를 동원하여 수색 및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가시거리가 64km로 보고된 상황에서 6대의 항공기가 실종된 901편을 찾기 위해 출격했다.
오후 12시 49분, 901편은 지상 접근 경보 시스템(GPWS) 경보를 울리며 에레버스 산 측면에 충돌했다. 맥머도 기지는 901편과 통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에어뉴질랜드 본사에 통신 두절을 알렸다. 미국 수색 및 구조 인원이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3]
901편은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하여 연료 보급 및 승무원 교체를 할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에어뉴질랜드는 항공기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고, 구조대는 추정 비행 경로를 따라 수색을 진행했다.
미국 해군 항공기가 에레버스 산 측면에서 잔해를 발견했고,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헬리콥터가 현장에 착륙하여 901편의 잔해와 탑승객 및 승무원 257명 전원의 사망을 확인했다.
시신과 항공기 파편은 오클랜드로 이송되었으며, 신원 확인 작업이 진행되었다.[21] 44명의 유해는 끝내 신원이 확인되지 못했고, 1980년 2월 22일 이들을 위한 장례식이 열렸다.
"오버듀 작전"으로 불린 수습 작전은 1979년 12월 9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최대 60명의 작업자가 투입되었다. 뉴질랜드 경찰관과 산악 구조대원들이 참여했다.[22]
병리학자, 치과 의사, 경찰관 팀이 참여한 개별 신원 확인 작업은 몇 주 동안 진행되었다. 짐 모건 경감이 이끄는 검시 팀은 수습 작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망한 승객과 승무원 중 83%가 신원 확인되었다.[22]
2006년, 오버듀 작전에 참여한 뉴질랜드인, 미국 시민 및 기타 국가 시민들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뉴질랜드 특별 봉사 메달(에레부스)이 제정되었다. 2009년 6월 5일, 뉴질랜드 정부는 워싱턴 D.C.에서 오버듀 작전을 지원한 일부 미국인들을 표창했다.
3. 1. 초기 수색과 발견
미국 해군은 오후 2시에 에어뉴질랜드 901편과의 무선 교신이 실패했음을 알리며, LC-130 항공기 1대와 UH-1N 헬기 2대를 동원한 수색 구조 작업 준비를 발표했다. 오후 3시 43분에는 가시거리가 64km이며, 6대의 항공기가 수색에 나섰다는 보고가 추가되었다.901편은 오후 6시 5분에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하여 연료 보급 및 승무원 교대를 할 예정이었다. 약 50명의 승객이 하차할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비행기가 도착하지 않자 공항 직원들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19]
오후 9시, 연료가 고갈되었을 시간으로부터 약 30분이 지나자, 에어뉴질랜드는 항공기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구조대는 추정 비행 경로를 따라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전 12시 55분, 미국 해군 항공기가 에레버스 산 측면에서 잔해를 발견했으며,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오전 9시경, 추락 20시간 후, 수색 헬기가 현장에 착륙하여 901편의 잔해와 승객 및 승무원 257명 전원의 사망을 확인했다. 사고 당시 항공기 고도는 447m였다.

수직 안정판의 코루 로고는 눈 속에서 뚜렷하게 발견되었다.[20] 시신과 항공기 파편은 오클랜드로 이송되었고,[21] 44명의 유해는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 1980년 2월 22일, 희생자들을 위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승무원이 이상을 감지하고 나서 추락까지 시간이 촉박하여 긴급 상황을 알릴 무선 통신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901편을 감시하던 남극 기지는 응답이 없어진 후에도 무선 호출을 계속했고, 1시간 후 뉴질랜드 항공 본사에 상황이 통보되었다.
901편은 오후 7시 5분(NZDT, 뉴질랜드 일광 절약 시간) 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었으나, 도착하지 않아 오클랜드의 구조 연계 본부와 웰링턴의 뉴질랜드 경찰 본부에 상황이 전달되고 승객 가족에게도 알려졌다.
각 언론이 취재를 시작하여, 오후 7시에 라디오 속보가 나왔고, 텔레비전 뉴질랜드는 오후 8시 30분부터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사고 속보를 방송했다. 뉴질랜드 항공은 상황 발표를 보류하다가, 오후 9시쯤 901편이 무선에 응답하지 않고 연료 소진 시간을 지났다고 발표했다. 오후 10시 직전, 뉴질랜드 항공은 항공기가 추락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미국 해군기가 수색 결과, 오후 11시 56분(NZST, 뉴질랜드 표준시) 에레버스 산 중턱에서 잔해를 발견했다. 11월 29일 오전 1시 15분, 뉴질랜드 항공은 잔해가 발견되었으나 생존자 흔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악천후 속에서 미국 해군 헬기가 사고 현장 상공으로 날아갔고, 뉴질랜드 등반가 3명이 로프를 타고 내려가 생존자가 없음을 최종 확인하고 정오에 발표했다.
3. 2. 수색 활동 기한
"오버듀 작전"(Operation Overdue)으로 명명된 901편의 수습 작전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특히 탑승객 중 24명이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압력도 작용했다.[22] 이 작전은 1979년 12월 9일까지 진행되었으며, 한 번에 최대 60명의 수습 작업자가 현장에 투입되었다.[22]4. 사고 조사
901편 추락 사고는 세계에서 가장 외딴 지역 중 한 곳에서 발생했지만, 사고 현장 증거는 광범위했다. 조종실 음성 기록 장치와 비행 데이터 기록 장치는 모두 정상 작동하여 내용을 판독할 수 있었다. 또한, 관광 비행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객들이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었고, 추락 직전의 순간을 담은 사진 자료들이 많이 확보되어 사고 조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24][25][26]
이러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뉴질랜드 항공 사고 수석 조사관 론 치핀데일은 사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1980년 6월 12일에 공개했다.[27] 그러나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는 피터 마혼 판사가 이끄는 왕립 조사 위원회를 구성해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4. 1. 공식 사고 조사보고서
론 치핀데일 뉴질랜드 사고 조사 담당 경감은 조종사 과실을 주된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27] 그는 콜린스 기장이 관례적인 최저 고도보다 낮게 비행하기로 결정했고, 승무원들이 비행기의 위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해당 고도를 유지한 것에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27]관례적인 최저 고도는 양호한 기상 조건에서도 약 1828.80m 이하로 하강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장은 비행기가 해상(맥머도 해협 중앙 및 몇몇 작고 낮은 섬) 상공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전의 901편 조종사들은 승객에게 더 나은 경치를 제공하기 위해 해당 지역 상공을 낮게 비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에어뉴질랜드 자체 여행 잡지의 사진과 뉴질랜드 스콧 기지에 주둔한 인원들의 직접적인 증언으로 확인되었다.
사고 조사 보고서는 1980년 6월 12일에 공개되었다.[27]
4. 2. 마혼 판사의 조사
피터 마혼 판사가 주도한 조사 위원회는 에어 뉴질랜드가 조종사에게 알리지 않고 비행 계획을 변경한 것을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결론지었다.[31][32] 변경된 비행 계획은 항공기가 산 측면을 따라가는 대신 에레버스 산 바로 위를 지나가도록 경로를 설정했다.마혼 판사는 또한 항공사 임원들과 고위 조종사들이 조사 내용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인 거짓말의 연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31][32] 그는 조사관들에게 증거를 숨기고 거짓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마혼은 원래 조사 보고서를 작성한 론 치핀데일이 제트 여객기 운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치핀데일의 조사 방식이 허술하여 중요한 정보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특히, 비행 계획 변경의 중요성과 남극 특유의 기상 조건(화이트아웃)을 간과했다고 강조했다. 마혼은 조종사들이 비행 계획 변경 사실을 알았더라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마혼 판사의 보고서는 1981년 4월 27일에 공개되었다.[28]
5. 사고에 대한 법적 분쟁
901편 추락 사고 이후, 조종실 음성 기록 장치와 비행 데이터 기록 장치 등 광범위한 증거 자료가 확보되어 사고 원인 규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24][25][26]
뉴질랜드 항공 사고 수석 조사관 론 치핀데일은 1980년 6월 12일 사고 보고서를 발표, 조종사 과실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27] 그러나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는 피터 마혼 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왕립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여 추가 조사를 진행, 1981년 4월 27일 마혼 보고서를 통해 에어뉴질랜드 측의 과실을 지적하며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마혼은 보고서에서 항공사 임원과 선임 조종사들이 "조직적인 거짓말의 연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며,[31][32] 치핀데일의 조사 기법에 결함이 있고, 비행 계획 변경의 중요성과 남극의 특수한 기상 조건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에어 뉴질랜드와 마혼 판사 간의 법적 공방은 뉴질랜드 고등법원, 항소법원, 런던의 추밀원 사법위원회까지 이어졌다.
5. 1. 사법 심사
뉴질랜드 항공 사고 수석 조사관 론 치핀데일이 작성한 사고 보고서는 1980년 6월 12일에 공개되었다.[27] 이 보고서는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조종사 과실을 지목하고, 콜린스의 관례적인 최저 고도보다 낮게 강하한 결정과, 승무원이 비행기 위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해당 고도를 유지한 점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27]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는 피터 마혼 판사가 수행하는 사고에 대한 추가적인 단독 왕립 조사 위원회를 발표했다. 1981년 4월 27일에 공개된 보고서는 승무원의 잘못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마혼은 추락 사고의 단일하고 지배적이며 효과적인 원인이 승무원에게 알리지 않고 에어뉴질랜드가 지상 항법 컴퓨터의 비행 계획 경로 좌표를 변경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새로운 비행 계획은 항공기를 산 측면을 따라가는 대신 산 바로 위로 지나가도록 했다. 화이트아웃 조건, 즉 "극지광의 악의적인 속임수"로 인해 승무원은 눈앞의 산을 시각적으로 식별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멀리 떨어진 평평한 지평선의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내는 섹터 화이트아웃이라는 희귀한 기상 현상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마혼은 비행 승무원이 수천 시간의 비행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항공기의 관성 항법 시스템의 극도의 정확성에 대한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혼은 보고서에서 항공사 임원과 선임 조종사들이 조사를 은폐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하여 증거를 은폐하고 조사관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조직적인 거짓말의 연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31][32]
1981년 5월 20일, 에어 뉴질랜드는 마혼의 조사 비용의 절반 이상을 지불하라는 명령과 보고서에서 내린 일부 사실 인정에 대해 뉴질랜드 고등법원에 사법 심사를 신청했다. 이 신청은 항소법원으로 회부되었고, 항소법원은 만장일치로 비용 지불 명령을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다수의견으로 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으며, 특히 에어 뉴질랜드 경영진이 지상 직원의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 조사에서 위증을 공모했다는 마혼의 판단을 기각하지 않았다.
마혼은 항소심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여 런던의 추밀원 사법위원회에 항소했다. 지상 승무원이 항공기의 비행 계획을 재프로그래밍하고 비행 승무원에게 알리지 않은 점은 항소심에서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고, 따라서 추밀원에서도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사고가 조종사 과실이 아닌 비행 경로에 대해 잘못된 지시를 받은 항공 승무원의 결과라는 그의 결론은 유지되었다.
법관인 디플록 경의 지휘 하에 있는 추밀원 사법위원회의 법관들은 에어 뉴질랜드 경영진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마혼의 판결이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여, 마혼이 자연 정의를 위반했다고 결론 내림으로써 항소심에서 소수의 의견과 효과적으로 동의했다. 1983년 10월 20일에 내려진 판결에서 사법위원회는 마혼의 항소를 기각했다.[28][33]
왕립 조사 위원회 보고서는 사고에 이르게 된 요인으로 다음 10가지를 열거했다.
번호 | 요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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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기장은 항법 시스템을 완전히 신뢰했다. DC-10으로 그가 비행한 2,872시간 동안, AINS는 매우 정확하게 작동했다. |
2 | 노선 훈련 및 당일 아침의 브리핑 모두에서 비행 경로와 지형이 동시에 표시된 지도가 기장에게 제시되지 않았다. |
3 | 비행 전날 밤에 기장은 스스로 지도상에 비행 경로를 프로트했다. |
4 | 비행 경로의 최종 도착 지점은 출발 6시간 전에 수정되었다. |
5 | 기장도 다른 승무원도 경로 변경에 대해 통보받지 못했다. |
6 | 승무원은 발레니 제도와 케이프 할렛 통과 시 좌표 확인을 실시했으며, AINS는 매우 정확하게 작동했다. |
7 | 맥 센터는 TE901편의 최종 도착 지점이 맥머도의 약 43.45km(약 43km) 서쪽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맥머도 기지 서쪽에 있는 소만 상공에서 저고도로 진입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
8 | 맥 센터는 TE901편에 맥머도 사운드에서 약 457.20m(약 460m)까지 강하하도록 권고했다. 그 고도에서는 시정이 약 64.37km(약 64km)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
9 | 기장은 이 권고를 받아들여 강하를 결정했다. |
10 | 로스 섬 북쪽에 있는 루이스 만 상공의 흐린 구름의 상황과 눈으로 덮인 지형의 흰색이 조합되어 화이트아웃 현상을 일으켰다. |
보고서는 이 중 하나라도 빠졌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요 사고 원인으로 "항공사가 승무원에게 알리지 않고 비행 계획을 수정했다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5. 2. 추밀원 사법위원회 항소
에어 뉴질랜드는 마혼의 조사 비용의 절반 이상을 지불하라는 명령과 마혼이 보고서에서 내린 일부 사실 인정에 대해 뉴질랜드 고등법원에 사법 심사를 신청했다. 이 신청은 항소법원으로 회부되었고, 항소법원은 만장일치로 비용 지불 명령을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다수의견으로 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으며, 특히 에어 뉴질랜드 경영진이 지상 직원의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 조사에서 위증을 공모했다는 마혼의 판단을 기각하지 않았다.[28]마혼은 항소심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여 런던의 추밀원 사법위원회에 항소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그의 조사 결과, 즉 지상 승무원이 항공기의 비행 계획을 재프로그래밍하고 비행 승무원에게 알리지 않은 점은 항소심에서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고, 따라서 추밀원에서도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사고가 조종사 과실이 아닌 비행 경로에 대해 잘못된 지시를 받은 항공 승무원의 결과라는 그의 결론은 유지되었다.[28]
맥머도 기지 인근에서 조종사에게 약 1828.80m의 최소 고도를 명시한 에어 뉴질랜드의 문제와 관련하여 사법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러나 법관인 디플록 경의 지휘 하에 있는 추밀원 사법위원회의 법관들은 에어 뉴질랜드 경영진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마혼의 판결이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여, 마혼이 자연 정의를 위반했다고 결론 내림으로써 항소심에서 소수의 의견과 효과적으로 동의했다. 1983년 10월 20일에 내려진 판결에서 사법위원회는 따라서 마혼의 항소를 기각했다.[28][33]
항공 연구원 존 킹은 그의 저서 ''뉴질랜드 비극, 항공''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증거 164"는 맥머도 해협의 복사된 다이어그램으로, 로스 섬의 서쪽을 통과하는 남쪽 비행 경로와 섬의 동쪽을 통과하는 북쪽 비행 경로를 보여주었다. 다이어그램은 두 경로가 어디서, 어떻게, 심지어 합쳐지는지 보여주기에는 충분히 남쪽으로 확장되지 않았으며, 두 경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 다이어그램이 비행 승무원의 브리핑 문서에 포함되었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마혼은 왕립 조사 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에어 뉴질랜드의 경영진과 사원들이 공모하여 증거 은폐 및 은닉 공작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동사를 고발했다. 마혼은 에어 뉴질랜드와 교통부 민간 항공국에 조사에 소요된 비용을, 또한 에어 뉴질랜드에는 과징금으로 당시 금액으로 150000NZD의 지불을 명령했다.
이에 불복한 에어 뉴질랜드는 항소 법원에 재심사를 청구했다. 항소 법원은 마혼이 항공 회사 간부를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사법권의 관할 밖이라는 이유로 에어 뉴질랜드에 대한 지불 명령은 무효로 했다.
항소 법원의 결정 후, 마혼은 고등 법원 직을 사임하고 추밀원에 상고했다. 1983년 7월에 청문회가 열렸고, 10월에 추밀원은 결론을 내렸다. 추밀원은 "지극히 마지못해" 항소 법원의 결정을 지지하여, 마혼의 주장은 기각되었다. 그 위에, 추밀원의 기록에는 "판사에 의해 행해진 치밀하고 훌륭한 조사"에 대한 찬사가 남겨졌다.
6. 사고의 영향
901편 추락 사고는 외딴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조종실 음성 기록 장치와 비행 데이터 기록 장치가 모두 작동 상태로 발견되어 해독되었고, 관광 비행 특성상 승객들이 소지한 카메라 필름 대부분을 현상하여 추락 직전 상황을 담은 사진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24][25][26]
론 치핀데일 뉴질랜드 항공 사고 수석 조사관은 1980년 6월 12일 사고 보고서를 통해 조종사 과실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짐 콜린스 기장이 관례적인 최저 고도(약 1828.80m})보다 낮게 비행했고, 승무원이 비행 위치를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고도를 유지한 점을 문제 삼았다.[27] 하지만 이전 901편 조종사들이 승객들에게 더 나은 경치를 제공하기 위해 맥머도 해협 상공을 낮게 비행한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 에어뉴질랜드 자체 여행 잡지 사진과 스콧 기지 주둔 인원들의 증언으로 확인되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피터 마혼 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왕립 조사 위원회를 구성했다. 마혼은 1981년 4월 27일 보고서에서 에어뉴질랜드가 승무원에게 알리지 않고 지상 항법 컴퓨터의 비행 계획 경로 좌표를 변경한 것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변경된 비행 계획은 항공기가 산 측면이 아닌 산 위를 지나가도록 했으며, 화이트아웃과 섹터 화이트아웃이라는 희귀한 기상 현상 때문에 승무원이 산을 시각적으로 식별하기 어려웠다. 마혼은 승무원들의 비행 경험과 관성 항법 시스템의 정확성에 대한 신뢰, 맥머도 기지 관제탑의 저고도 비행 승인 등을 고려할 때 승무원 과실은 없다고 판단했다.[29][30]
마혼은 보고서에서 항공사 임원과 선임 조종사들이 "조직적인 거짓말"을 통해 조사를 은폐하려 했다고 비난했지만,[31][32] 추밀원 사법위원회는 1983년 10월 20일 판결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마혼의 항소를 기각했다.[28][33]
901편 추락 사고는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재해이자, 에어뉴질랜드 역사상 최악의 사고이며, 뉴질랜드 평시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재해이다.[34][35][36]
2009년 에어뉴질랜드 CEO 롭 파이프는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기념 조형물을 공개했으며,[44][45] 2019년 저신다 아던 총리도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46][47]
사고 원인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고, 1999년 모리스 윌리엄슨 당시 교통부 장관은 책임 공방을 넘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가 사고 당시 에어뉴질랜드 운항 계획자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6. 1. DC-10 기종 및 남극 관광 비행에 대한 영향
901편 사고는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와 함께 맥도넬 더글러스 DC-10 기종의 명성에 큰 타격을 준 사건이었다.[37] 이 사고는 DC-10 항공기가 관련된 사고 중 터키 항공 981편 추락 사고, 아메리칸 항공 191편 사고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냈다. 에어뉴질랜드는 사고 이전부터 DC-10 기종을 보잉 747로 교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이 사고로 인해 DC-10 기종의 운용 중단이 앞당겨졌다. 1981년 중반부터 보잉 747로 기종 교체가 이루어졌고, 1982년 12월 에어뉴질랜드의 DC-10은 마지막 비행을 마쳤다.[38]이 사고는 남극 관광 비행의 중단 또한 가져왔다. 에어뉴질랜드는 사고 이후 모든 남극행 비행을 취소했으며,[38] 콴타스 항공도 1980년 2월 남극 비행을 중단했다가 1994년 제한적으로 운항을 재개했다.[38] 사고기의 잔해는 여전히 에레버스 산 언덕의 눈과 얼음 속에 묻혀 있으며, 눈이 녹는 시기에는 공중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39]
6. 2. 안전 조치 강화
에어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이후, 항공 안전 규정이 강화되고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이 개선되었다.[42] 특히, 조종사들은 남극 비행 전 철저한 브리핑과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게 되었으며, 비행 계획 변경 시 반드시 승무원에게 통보하도록 절차가 강화되었다.[8]사고 초기에는 조종사 과실이 주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나, 뉴질랜드 민간 항공기 조종사 협회(NZALPA) 등의 비판과 추가 조사 결과, 에어뉴질랜드의 비행 계획 수정 및 승무원 미통보, 안전 관리 절차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밝혀졌다.[10]
특히, 에어뉴질랜드는 남극 관광 비행 횟수가 늘어나면서 조종사 훈련 내용을 간소화하고, 숙련된 조종사 동승 규정을 폐지하는 등 안전 대책을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최저 안전 고도에 대한 정보 제공 및 확인 절차도 미흡하여 조종사들이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저고도 비행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었다.[13]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뉴질랜드 항공 당국은 다음과 같은 안전 조치를 강화했다.
- 조종사 훈련 강화: 남극 비행 전, 경험이 풍부한 조종사의 감독하에 숙련 비행을 실시하고, 전용 비디오 교재와 텍스트 교육, 시뮬레이터 훈련을 통해 그리드 항법 등 특수 항법에 대한 숙련도를 높이도록 했다.[3]
- 비행 계획 변경 절차 강화: 비행 계획 변경 시 반드시 승무원에게 통보하고, 변경된 비행 계획에 대한 충분한 브리핑을 실시하도록 했다.[8]
- 최저 안전 고도 확인 절차 강화: 비행 전 브리핑에서 최저 안전 고도를 명확히 제시하고, 조종사가 이를 인지하고 준수하도록 교육했다.[13]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항공 안전 의식을 높이고 유사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노력했다.
7. 추모
901편 추락 사고는 뉴질랜드에서 평시에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재해이자, 뉴질랜드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재해이다.[35] 이 사고는 당시 역대 4번째로 치명적인 항공 사고였으며, 에어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고로 남아있다.[36]
이 사고는 맥도넬 더글러스 DC-10 기종의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사고 전부터 기종 교체 논의가 있었으나, 사고로 인해 1981년 중반부터 보잉 747로 교체가 가속화되었고, 1982년 12월에 에어뉴질랜드의 마지막 DC-10 운항이 종료되었다.[38] 또한, 이 사건은 상업적 남극 관광 비행의 종말을 가져왔다. 에어뉴질랜드는 사고 이후 모든 남극 비행을 취소했고, 콴타스는 1980년 2월에 남극 비행을 중단했다가 1994년에 제한적으로 재개했다.[40] 2013년에 콴타스가 전세한 보잉 747-400이 오클랜드에서 출발하여 남극 대륙 상공을 관광 비행하기 전까지 뉴질랜드에서 남극으로 가는 모든 전세 비행이 중단되었다.[40]
2008년, 마혼 판사는 항공 안전에 대한 탁월한 기여를 인정받아 뉴질랜드 항공 조종사 협회로부터 짐 콜린스 기념상을 사후에 수여받았다.[43] 2009년, 에어뉴질랜드 CEO 롭 파이프는 사고 이후 회사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했으며, 본사에서 기념 조형물을 공개했다.[44][45] 2019년 11월 28일, 사고 40주년 기념일에 뉴질랜드 총리 저신다 아던은 국가 정부와 함께 희생자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46][47]
사고 항공기의 등록 번호 ZK-NZP는 재발급되지 않았다.
7. 1. 뉴질랜드 내 추모 시설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던 16명의 승객과 시신을 찾지 못한 28명의 승객을 위한 기념관은 오클랜드 글렌 에덴의 와이쿠메테 묘지에 있다. 기념관 옆에는 일본 벚나무가 있는데, 이는 에어뉴질랜드 901편에 탑승하여 사망한 24명의 일본인 승객을 기리기 위해 심어졌다.[50]
에어뉴질랜드 901편 승무원을 위한 기념관은 오클랜드 공항 동쪽 끝의 톰 피어스 드라이브에 있다.[51]
7. 2. 남극의 추모 십자가
사고를 추모하기 위해 스콧 기지 위의 산에 나무 십자가가 세워졌다. 원래의 십자가는 낮은 온도, 바람, 습기에 의해 훼손되어 1986년에 알루미늄 십자가로 교체되었다.[48][49] 1979년 중 사고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약 3km 남동쪽 지점에 사고를 추도하는 나무 십자가가 세워졌고,[85] 시간이 지나 훼손되어 1987년 1월 30일에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된 것으로 교체되었다.[85][86]2010년 1월, 조각된 코루에는 사망자의 유족들이 쓴 편지가 담겨 있었으며, 남극 십자가 옆에 놓였다.[52] 원래는 사고 30주년인 2009년 11월 28일에 희생자 유족 6명이 현장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악천후로 인해 두 달 연기되었다.[53] 2011년에는 첫 번째 코루 캡슐과 똑같은 두 번째 코루 캡슐을 스콧 기지에 설치할 계획이었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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