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서터 공작 토머스 보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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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머스 보퍼트는 1399년 헨리 4세 즉위 후 가터 훈장을 받았으며, 잉글랜드 대법관, 도싯 백작, 엑서터 공작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랭커스터 공작 존 오브 곤트와 캐서린 스윈포드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헨리 4세, 헨리 5세, 헨리 6세 치하에서 군사적,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1421년 보제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기도 했으며, 1426년 사망했다. 엑서터 공작 작위는 홀랜드 가문에, 도싯 백작 작위는 조카 에드먼드 보퍼트에게 돌아갔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헨리 5세》의 등장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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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서터 공작 토머스 보퍼트 | |
---|---|
기본 정보 | |
이름 | 토마스 보퍼트 |
작위 | 엑서터 공작 |
![]() | |
가문 | 보퍼트 가 |
왕조 | 왕조 |
아버지 | 존 오브 곤트 |
어머니 | 캐서린 스윈포드 |
출생일 | 1377년 1월 경 |
출생지 | 앙주, 프랑스, 보퍼트 성 |
사망일 | 1426년 12월 31일 |
사망지 | 켄트 주, 그리니치 장원 |
매장지 | 서퍽 주,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 수도원 |
배우자 | 혼비의 마가렛 네빌 |
직업 | 대법관 해군경 북서부 해군 제독 북부 해군 제독 칼레 사령관 |
생애 | |
작위 수여 | 1416년 - 1426년 |
2. 생애
랭커스터 공작 존 오브 곤트와 그의 애첩 캐서린 스윈포드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자녀 중 셋째였다. 1390년 사실상, 1397년 공식적으로 리처드 2세에 의해 적출자로 인정받았다. 1399년 이복형 헨리 4세가 즉위하자, 이듬해인 1400년 가터 훈장을 받았다.
이후 여러 군사 경력을 쌓았다. 1402년 러들로성 수비대장, 1403년 북부 함대 제독, 1407년 칼레 주둔군 사령관, 1408년 또는 1409년 북부 및 서부 해역 제독을 역임했다. 1405년 북부 반란 토벌군 지휘를 맡았다.
1410년 1월 31일, 헨리 4세의 건강 악화로 헨리 왕세자(훗날 헨리 5세)가 실질적인 정권을 잡자, 잉글랜드 대법관에 취임했다. 1412년 1월 5일 군무로 복귀했으며, 같은 해 도싯 백작에 임명되었다.
1413년 헨리 5세 즉위 후 아키텐 지역 대리인으로 임명되었고, 1415년 아르플뢰르 함락 후 주둔군 사령관이 되었다. 1416년 노르망디 지역 대리인이 되었고, 같은 해 엑서터 공작에 서임되었다.
1417년, 헨리 5세가 노르망디에 있는 동안 스코틀랜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귀국했다. 1418년 대군을 이끌고 노르망디로 돌아와 에브뢰, 이브리, 루앙 등 도시 포위전에 참가했다. 1419년 루앙 함락 후 루앙 대리인이 되었고, 주변 여러 도시를 정복했다. 같은 해 루앙과 파리 사이 요새인 샤토 가야르를 6개월간 포위전 끝에 함락시켰다.
1418년 헨리 5세의 노르망디 내 잉글랜드 귀족 봉작 정책으로 아르쿠르 백작에 임명되었다. 1420년 트루아 조약 체결 협상을 도왔다. 1421년 보제 전투에서 조카 클래런스 공작 1세 랭커스터의 토머스가 사망하고 포로가 되었지만, 헨리 5세 유언 집행인 중 한 명으로 1422년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이후 가끔 프랑스에 머무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린 왕 헨리 6세를 보좌하는 통치 평의회에서 근무했다.
마가렛 네빌과 결혼하여 아들 헨리를 낳았으나 어릴 때 사망했다. 마가렛은 당시 왕궁에 많았던 네빌 가문 사람들과는 달리, 호너비의 토머스 네빌 경의 딸이었다.
2. 1. 초기 생애와 가문
랭커스터 공작 존 오브 곤트와 그의 애첩 캐서린 스윈포드 사이에서 태어난 네 자녀 중 셋째였다.[1] 처음에는 사생아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1390년에 사실상, 1397년에 공식적으로 적출로 인정받았다.[1] 1399년 이복형 헨리 4세가 즉위하자, 이듬해인 1400년 가터 훈장을 받았다.[1]2. 2. 헨리 4세 치하의 경력
1399년, 배다른 형인 헨리 4세가 즉위하자 1400년에 가터 훈장을 받았다.[5] 이후 여러 군사 직책을 맡았다. 1402년 러들로성 장관, 1403년 북부방면함대 제독, 1407년 칼레 주둔군 사령관, 1408년 혹은 1409년 북부 및 서부방면 해역제독을 역임했다. 이 기간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임무는 1405년 북부 반란 진압군의 지휘를 맡은 것이었다.[5]1410년 1월 31일, 헨리 4세의 건강 악화로 아들 헨리 5세가 실질적인 정권을 맡게 되자, 잉글랜드 대법관에 임명되었다.[5] 1412년 1월 5일까지 대법관 직을 수행하다가 군사 업무로 복귀했고,[5] 같은 해 도싯 백작에 서임되었다.[6]
2. 3. 헨리 5세 치하의 경력
1413년 헨리 5세 즉위 후 토머스 보퍼트는 아키텐의 대리 관리로 임명되었다. 1415년 아르플뢰르 함락 후 주둔군 사령관이 되었다. 1416년 노르망디 대리 관리가 되었고, 엑서터 공작에 서임되었다.1417년 헨리 5세가 노르망디에 머무는 동안, 토머스는 스코틀랜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귀국했다. 1418년 대군을 이끌고 노르망디로 돌아와 에브뢰, 이브리, 루앙 공성전에 참가했다. 1419년 루앙 함락 후 루앙 관리가 되었고, 주변 여러 도시를 정복했다. 같은 해 루앙과 파리 사이의 요새 샤토 가야르를 6개월간의 공성전 끝에 함락시켰다.
헨리 5세는 노르망디에 잉글랜드 귀족 봉작 정책을 추진했고, 1418년 토머스는 아르쿠르 백작에 임명되었다.
1420년 토머스는 트루아 조약 체결 교섭에 참여했다. 1421년 보제 전투에서 클래런스 공작 1세 랭커스터의 토머스가 살해되었고, 이때 토머스는 포로가 되었다.
2. 4. 헨리 6세 치하와 사망
보퍼트는 헨리 5세의 유언 집행자 중 한 명으로, 헨리 5세가 사망한 1422년 잉글랜드로 돌아왔다.[1] 그는 어린 헨리 6세의 통치 평의회에서 활동했지만, 프랑스에도 다소 머물렀다.[1]토머스는 마가렛 네빌과 결혼했다. 당시 왕궁에는 네빌 성씨를 가진 인물이 많았으나, 마가렛은 이들과 달리 호너비의 토머스 네빌 경의 딸이었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 헨리 보퍼트가 태어났으나, 어릴 때 사망했다.
1426년 12월 31일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426년 12월 27일 또는 1427년 1월 1일이라는 다른 날짜도 제시되었다.[1] 그의 모든 작위(엑서터 공작, 도싯 백작, 아르쿠르 백작)는 소멸되었다.[1] 엑서터 공작 작위는 홀랜드 가문에 복귀되었고, 도싯 백작 작위는 그의 조카인 서머싯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모르탱 백작)에게 다시 만들어졌다.[1]
3. 작위
4. 유산
토머스 보퍼트는 자식 없이 사망하여 그가 가진 모든 작위는 소멸되었다. 엑서터 공작 작위는 홀랜드 가문에 복귀되었고, 도싯 백작 작위는 그의 조카에게 수여되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와 《헨리 6세 1부》에 등장한다.
5. 문장
왕국의 적법한 손자로서, 보퍼트는 파란색과 담비색의 좁은 테두리로 구분된 왕국의 문장을 사용했다.[9][10]
참조
[1]
서적
Magna Carta Ancestry
[2]
서적
Britain's Royal Families: The Complete Genealogy
[3]
online
Beaufort, Thomas, duke of Exeter (1377?–1426)
2008-01-03
[4]
서적
Royal Ancestry: A Study In Colonial And Medieval Families
[5]
서적
Handbook of British Chronology
Royal Historical Society
1961
[6]
웹사이트
8th entry, plaintiff
http://aalt.law.uh.e[...]
1413
[7]
서적
The Complete Peerage
https://archive.org/[...]
St. Catherine Press
1926
[8]
DNB
Beaufort, Sir Thomas (d. 1427), Duke of Exeter
[9]
웹사이트
Marks of Cadency in the British Royal Family
http://www.heraldica[...]
[10]
EB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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