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서터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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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엑서터 시티 FC는 1904년 창단된 잉글랜드 데번주 엑서터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이다. 풋볼 리그에 1920-21 시즌에 처음 참가했으며, 1932-33 시즌 서드 디비전 사우스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엑서터 시티는 두 개의 전신 클럽을 기반으로 창단되었으며, 2003년 컨퍼런스 내셔널로 강등되었지만,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며 EFL 리그 2로 승격했다. 2022년에는 EFL 리그 원으로 승격했다. 엑서터 시티는 엑서터 시티 서포터스 트러스트를 통해 팬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플리머스 아가일 FC를 주요 라이벌로 여긴다. 구단은 2010-11 시즌 아담 스탠스필드의 사망을 기리기 위해 그의 등번호 9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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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서터 시티 FC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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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클럽 명칭 | 엑서터 시티 |
전체 명칭 | 엑서터 시티 축구 클럽 |
별칭 | 더 그레시언스 (The Grecians) |
창단 | 1901년 (세인트 시드웰스 유나이티드St. Sidwell's United로 창단) |
경기장 | 세인트 제임스 파크 |
수용 능력 | 8,720명 |
소유주 | 엑서터 시티 서포터즈 트러스트 |
회장 | 닉 호커 |
감독 | 게리 콜드웰 |
리그 | EFL 리그 1 |
현재 시즌 | 2024–25 시즌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유니폼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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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엑서터 시티 FC는 1904년 창단 이후 2022년 현재까지 풋볼 리그와 컨퍼런스 리그를 오가며 다양한 역사를 써왔다.
1920-21 시즌 풋볼 리그에 처음 참가하여 1932-33 시즌 서드 디비전 사우스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승격에는 실패했다. 이후 오랫동안 풋볼 리그에서 활동했지만, 2부 리그 이상으로 승격한 경험은 없다.
2002년 우리 겔러가 팀 대표를 맡았고, 겔러와의 친분으로 마이클 잭슨이 명예 이사로 취임했다.[138]
2003년 재정 문제로 컨퍼런스 내셔널로 강등되었지만, 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FA컵 선전으로 재정 위기를 극복하고 2008년 풋볼 리그로 복귀했다.
2008년 이후 리그 1과 리그 2를 오가며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다. 2021-22 시즌 리그 2에서 2위를 차지하며 리그 1으로 승격했다.[55]
2. 1. 초기 역사 (1904-1920)
엑서터 시티 FC는 '''엑서터 유나이티드 FC'''와 '''세인트 시드웰스 유나이티드'''라는 두 개의 전신 클럽을 기반으로 창단되었다. 엑서터 유나이티드는 데번주 엑서터에 위치한 축구 클럽으로 1890년부터 1904년까지 활동했다. 1904년 엑서터 유나이티드는 지역 라이벌 세인트 시드웰스 유나이티드에 3-1로 패했고, 경기 후 두 클럽을 하나로 합병하기로 합의했다. 새로운 팀은 '''엑서터 시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엑서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경기를 계속했으며, 이곳은 현재까지 엑서터 시티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엑서터 유나이티드는 같은 이름을 가진 크리켓 팀에서 파생되었으며 "유나이티드"라는 명칭을 사용한 최초의 축구 팀 중 하나였다. 세인트 시드웰스 유나이티드(세인트 시드웰스 웨슬리안스와 세인트 시드웰스 올드 보이즈로도 알려짐)는 엑서터 시드웰 스트리트의 포레스터스 인에서 자주 모이는 사람들이 결성한 클럽이었지만, 이 선술집은 항상 드럼 앤 몽키로 알려져 있었다. 이 팀은 세인트 시드웰스의 전통적인 색상인 녹색과 흰색을 사용했다.[5]
1904년 9월 10일, 엑서터 시티는 이스트 데본 리그에서 왕립 포병대 제110 포대와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클럽 역사상 첫 공식 경기를 치렀다. 관중은 600명이었고, 승리 골은 70년 동안 이 클럽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시드 토마스가 기록했다. 시티는 첫 시즌에 이스트 데본 리그에서 11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고, 다음 세 시즌 동안은 플리머스 & 디스트릭트 리그로 이적했다. 1908년, 엑서터 시티 AFC는 유한 회사가 되었다. 시티는 풀타임 프로 팀이 되었고, 토트넘 홋스퍼를 대신하여 서던 리그 가입을 성공적으로 신청했다.

나무로 된 스탠드가 세워졌고, 클럽은 구장에 대한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6] 1908년 10월 3일, 시티는 웨이머스를 14-0으로 꺾고 FA컵에서 클럽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경기는 1차 예선 라운드였다. 제임스 "데이지" 벨이 6골을 넣었고, 전반전에 10골이 터졌다. 시티는 1910년에 현재의 빨간색과 흰색 유니폼으로 변경했다. 이는 시즌 초반 부진(11경기 중 2승)을 거둔 후의 조치였다. 시티는 불운하다고 여겨지던 녹색과 흰색 유니폼을 버리고, 11월 12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처음으로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경기는 0-0으로 비겼지만, 12월에 5연승을 거두면서 유니폼 변경이 정착되었다.[5]
시티는 1914년 역사적인 남미 투어를 진행하여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팀들과 8경기를 치렀다.[7] 이 투어의 마지막 경기인 1914년 7월 21일에는 전국 축구 협회의 관리하에 경기를 치른 최초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가 있었다. 이 협회는 당시 브라질 축구 협회(Federação Brasileira de Sports)로, 오늘날의 브라질 축구 연맹의 전신이며, 불과 한 달 전에 설립되었다. 아르투르 프르덴라이히를 비롯한 최고의 스타들을 보유한 브라질은 플루미넨세의 홈구장인 리우데자네이루의 라란제이라스 경기장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이 투어에서 5승 1무 2패를 기록했다. 다른 패배는 선수들이 배에서 내린 지 12시간 후에 시작된 경기에서 나왔다. 엑서터 시티는 1920년 풋볼 리그로부터 3부 리그의 창립 멤버가 되도록 초청받았다.[8]
2. 2. 풋볼 리그 시대 (1920-2003)
1920년 8월 28일 토요일, 시티의 역사적인 첫 풋볼 리그 경기가 브렌트포드를 상대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려 3-0으로 승리했다.[8][9] 시즌이 끝날 무렵, 리그 3부 리그가 지리적으로 분할되면서 시티는 3부 리그 사우스에 배정되었다.1931년, 시티는 FA컵 6라운드에 진출, 역대 홈 관중 최고 기록 앞에서 선덜랜드에게 재경기에서 4-2로 패했다.[10] 50년 후, 시티는 다시 6라운드에 진출했지만, 결국 우승팀인 토트넘 홋스퍼에게 2-0으로 패했다.[11] 엑서터는 이전 라운드에서 레스터 시티와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각각 4-0으로 이겼다.
1932-33 시즌 3부 리그 사우스에서 2위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 순위를 달성했지만, 당시에는 챔피언만 승격되어 2부 리그 승격에는 실패했다. 1963-64 시즌에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3부 리그로 승격했으나, 불과 2시즌 만에 강등되었다. 바비 색스턴의 지도하에 승격한 1977년까지 3부 리그에 머물렀다.[8]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는 시티가 3부 리그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기로, 1979-80 시즌 8위, 다음 시즌 FA컵 진출 등이 있었다. 토니 켈로우, 존 델브, 데이비드 풀라 등이 주요 선수였다. 1990년, 구단은 4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첫 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획득했다.[12] 그 시즌 시티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20번의 리그 경기 승리, 노리치 시티와의 FA컵 3라운드와 선덜랜드와의 리그 컵 4라운드 무승부를 포함해 31번의 홈 경기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13]
승격 이후, 시티는 상위 리그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테리 쿠퍼 감독과 숀 테일러, 리처드 드라이든, 클라이브 화이트헤드, 브라이언 맥더모트, 스티브 네빌과 같은 핵심 선수들의 이탈은 앨런 볼 감독에게 큰 과제였다. 1992/93 시즌 지역 라이벌 플리머스와의 더비 경기에서 두 번 모두 승리하는 등[14] 성과도 있었지만, 1994년 1월 볼 감독이 사우스햄튼으로 떠나고 쿠퍼 감독이 복귀했음에도 강등을 막지 못했다.[15]
시티는 하위 리그에서 거의 10년 동안 고전했고, 구단주 이보르 도블은 구단을 파산 상태로 만들고 구장 매각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일으켰다.[8] 1994년 11월, 구단은 파산 직전 구장을 비저에 650000GBP에 매각했지만, 지역 의회가 인수하면서 잔류할 수 있었다.[16] 1996년 8월 1일, 거의 2년간의 폐쇄 위기 끝에 파산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경기장 문제는 계속되었다.[6][8] 2003년, 시티는 3부 리그에서 23위를 기록, 컨퍼런스 내셔널로 강등되었다. 이는 리그 최하위로 마감하지 않고 자동 강등된 최초의 사례였다.[8] 시티는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1-0으로 이겼지만, 스완지 시티가 헐 시티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잔류에 실패했다.[17]
2. 3. 컨퍼런스 시대 (2003-2008)
풋볼 컨퍼런스로 강등된 후, 2003년 9월 5일에 엑서터 시티 서포터스 트러스트가 클럽을 인수하여 과반수 지분을 매입했다.[18] 2007년 5월, 2002-2003 시즌 동안 클럽을 운영했던 이사 두 명이 클럽에서의 사기 거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19] 존 러셀은 징역형을, 마이크 루이스는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20] 수백만 파운드의 부채와 마땅한 대규모 투자자가 없는 상황에서 트러스트는 일반 서포터들 간의 모금 활동을 통해 클럽을 유지했다. 국세청 및 축구 당국과의 복잡한 법적 논쟁으로 인해 시티의 첫 번째 비 리그 축구 시즌은 경기장 밖의 불확실성에 시달렸다.[21] 이 주장은 결국 2004년 6월에 철회되었다.[22]2004년에는 클럽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채권자 자율 조정(CVA)이 시행되었다. 클럽의 "레드 오어 데드(Red or Dead)" 계획을 통해 수백 명의 팬들이 CVA 상환 자금으로 각각 최소 500GBP를 약정했지만, FA컵은 그리시안에게 필요한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시티는 FA컵 3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를 치렀다. 시티는 2005년 1월 올드 트래포드에서 0-0으로 비겼고,[23] 67,511명의 관중으로부터의 수입 분담금으로 653511GBP를 얻었다. 유나이티드가 2-0으로 승리한 텔레비전 중계 재경기에서 발생한 추가 수입과 클럽 서포터들의 지속적인 모금 활동 및 무보수 봉사 활동은 클럽이 부채를 상환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CVA는 2005년 12월에 청산되었다.[25]

2004년은 또한 클럽의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2004년 5월에는 1914년 시티의 남아메리카 투어를 기념하여 브라질 마스터스 팀과의 친선 경기가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렸다. 카레카와 둥가와 같은 유명 선수들이 포함된 브라질 팀은 1-0으로 승리했다.[26] 시티의 1군 팀은 2006–07 시즌을 5위로 마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옥스퍼드 유나이티드를 승부차기로 꺾은 후, 시티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모어캠비와 결승전에서 만나[27]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2-1로 패했다.[28] 엑서터는 다음 시즌에 플레이오프 결승전에 진출했다. 이번에는 엑서터가 지역 라이벌인 토키 유나이티드와의 준결승 1차전에서 홈에서 2-1로 패하면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할 것으로 보였지만, 마지막 20분 동안 3골을 몰아넣으며 4-1로 2차전을 이겼다.[29] 결승전에서 엑서터는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기록인 42,511명의 관중 앞에서 로버트 에드워즈의 골로 1-0으로 승리하여 EFL 리그 2로 승격했다.[30]
2. 4. 풋볼 리그 복귀 이후 (2008-현재)
엑서터 시티 FC는 컨퍼런스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브렌트포드에 이어 리그 투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리처드 로건의 골은 엑서터가 시즌 마지막 날 로더럼 유나이티드를 1-0으로 이기며 리그 원으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31] 2009-10 시즌은 엑서터가 잉글리시 축구 3부 리그에서 보낸 45번째 시즌이었다. 엑서터는 상위 두 리그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클럽 중 3부 리그에서 가장 많은 시즌을 보낸 기록을 가지고 있다. 16년 만에 3부 리그 첫 시즌을 한 점 차이로 잔류했으며, 시즌 마지막 날 허더즈필드 타운과의 경기에서 82분에 라이언 할리의 골로 엑서터는 승격 경쟁팀을 2-1로 이기고 그 과정에서 질링엄을 강등시켰다.[32]2010년 8월 10일, 2010-11 시즌 개막 며칠 후, 엑서터의 공격수 애덤 스탠스필드가 31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다.[33] 그 결과, 8월 14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다게넘 & 레드브리지와의 경기는 연기되었다.[34] 하지만 엑서터는 잘 회복하여 그 시즌 리그 8위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단 1점 차이로 아쉽게 탈락했다.[35]
2011-12 시즌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원정 경기 부진(시즌 전체에서 원정 2승)으로 엑서터는 리그 투로 강등되었다. 강등은 칼라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4-1로 패한 후 2012년 4월 28일에 확정되었다.[36]
엑서터는 엑서터 시티 서포터스 트러스트를 통해 팬들이 계속 소유하고 있다. 2012-13 시즌, 엑서터는 한 시즌 원정 경기 최다 승리(23경기 중 11승)라는 클럽 신기록을 세웠지만, 리그 10위를 기록했다.[37] 2012-13 시즌 말, 자금 부족과 수입 부족으로 선수단이 축소되었다.[38][39] 다음 시즌 엑서터는 16위를 기록했다.[40]
프리 시즌에 클럽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한 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브라질에서 짧은 투어를 가졌다.[41] 엑서터는 플루미넨세 23세 이하 팀과 0-0으로 비겼고, 투피와 리우 크리켓 클럽을 각각 2-1, 3-1로 이겼다.[42][43][44] 2014-15 FA컵 1라운드에서 엑서터는 당시 100계단 아래에 있는 워링턴 타운에게 1-0으로 패했다.[45] 2014-15 시즌 리그 투에서 10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 진출은 마지막 몇 주 동안 아쉽게 무산되었다.[46][47] 2015-16 시즌에는 14위를 기록했으며, 이 시즌에는 FA컵에서 프리미어 리그 리버풀과 2-2로 비긴 경기가 있었다.
2016-17 시즌 엑서터는 부진한 출발을 보였고 11월까지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48] 그러나 경기력 반전을 통해 리그 5위를 기록하고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했다.[49] 칼라일에서 열린 준결승 1차전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한 후, 2차전은 2-2로 팽팽하게 진행되어 연장전에 돌입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5분에 잭 스테이시의 장거리 슛으로 엑서터는 결승전에 진출하여 웸블리에 진출할 수 있었다.[50] 결승전은 5월 28일에 열렸고 엑서터는 블랙풀과 맞붙었다. 3분 만에 골을 내주면서 승격에 대한 희망은 산산조각 났고, 동점골을 넣었지만 결국 엑서터는 2-1로 패했다.[51]
2017-18 시즌에는 다시 한 번 플레이오프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이번에는 코번트리에 패했다.[52] 2018년 6월 1일, 엑서터는 12년 동안 감독을 맡았던 폴 티즈데일이 클럽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고, 전 주장 겸 23세 이하 팀 코치였던 맷 테일러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발표했다.[53] 2022년 4월 26일, 엑서터는 배로우를 상대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2-1로 승리하며 EFL 리그 원으로 승격했고[54] 2021-22 EFL 리그 투 시즌을 2위로 마쳤다.[55]
3. 경기장
엑서터 시티 FC는 1904년 창단 이후 현재까지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엑서터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이었으며, 엑서터 유나이티드와 세인트 시드웰스 유나이티드가 합병하여 엑서터 시티가 창단된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1908년에는 나무로 된 스탠드가 세워졌고, 클럽은 구장에 대한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6]
4. 라이벌
구단은 "그레시안스"(The Grecians)라는 별칭을 사용하는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08년 구단이 세인트 시드웰스 교구와 관련이 있어 이 이름을 채택했다는 설이 있다. 역사적으로 세인트 시드웰스 교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리스인" 또는 "그레시안스"로 알려졌다.[56] 이는 교구가 도시 성벽 밖에 있었기 때문일 수 있는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그리스 군대가 트로이의 성벽을 포위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연례 경계 구타 행사 때 도시 소년들과 세인트 시드웰스 출신들 간의 경쟁 때문에 이러한 연관성이 생겨났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57]
또한, '그리시 언스'(Greasy Un's)라고 불리는 세인트 시드웰스의 어린이 집단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 구장 근처 시드웰 스트리트에 있는 보석상의 시계에 '그레시안스'라는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는 설도 있다.[57] 엑서터의 웨일스어 이름인 ''카르위스크''(Caer = 요새, Wysg = Exe - 엑스 강가의 요새, 콘월어 Karesk와 유사)가 변형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시민들은 ''카르 이스컨스''로 알려졌다가 그레시안스로 변형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57]
5. 선수
[72]
2024년 11월 13일 현재 엑서터 시티 FC의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2 | DF | 잭 맥밀란 | |
3 | DF | 벤 퍼링턴 | |
6 | MF | 라이언 우즈 | |
7 | DF | 데메트리 미첼 | |
8 | MF | 에드워드 프랜시스 | |
10 | FW | 잭 에이치슨 | |
11 | FW | 밀레닉 알리 | |
12 | MF | 리스 콜 | |
13 | FW | 야닉 빌트스헛 | |
14 | MF | 일마리 니스카넨 | |
16 | FW | 팻 존스 | |
17 | MF | 칼렙 와츠 | |
18 | DF | 빈센트 하퍼 | |
19 | FW | 소니 콕스 | |
22 | GK | 해리 리 | |
26 | DF | 피어스 스위니 | |
27 | FW | 조쉬 매제니스 | |
28 | MF | 케빈 맥도날드 | |
29 | FW | 무스타파 카라욜 | |
31 | FW | 제이 버드 | |
34 | MF | 가브리엘 빌링턴 | |
37 | GK | 숀 맥도날드 | |
38 | DF | 맥스 엣지콤 | |
46 | MF | 리암 오크스 | |
47 | MF | 제이크 리차즈 | |
48 | DF | 루이 칼리스 |
2010-11 시즌 중 직장암으로 사망한 아담 스탠스필드를 기리기 위해, 구단은 그의 등번호 9번을 다음 9시즌 동안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2020-21 시즌부터 이 등번호는 구단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 선수만 착용한다.[73][74] 2022년 9월 2일, 스탠스필드의 아들 제이 스탠스필드가 엑서터 시티로 시즌 장기 임대 형식으로 복귀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어 등번호 9번을 착용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75]
5. 1. 현재 선수 명단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4 | DF | 트리스탄 크라마 | 프랑스 |
5. 2. 임대 선수 명단
updated|업데이트됨영어 2024년 11월 13일[72]번호 | 국가 | 포지션 | 이름 | 비고 |
---|---|---|---|---|
1 | GK | 조 휘트워스 |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임대 | |
4 | DF | 트리스탄 크라마 | 브렌트포드에서 임대 | |
15 | DF | 존리 예페코 | 레인저스에서 임대 | |
20 | MF | 카마리 도일 |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에서 임대 | |
21 | FW | 아마니 리차즈 | 레스터 시티에서 임대 |
5. 3. 유명 선수
엑서터 시티 FC에서 주목할 만한 전직 선수로는 1927-28 시즌에 29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한 해리 지가 있다. 그는 엑서터 시티에서 한 시즌만 뛰고 선수 생활을 마쳤는데, 다리 골절로 선수 생활이 끝났다. 지는 이전에 번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8] 아스널과 잉글랜드에서 활약한 클리프 바스틴, 1963년 FA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우승 메달을 획득한 모리스 세터스, 그리고 나중에 볼턴 원더러스와 잉글랜드에서 활약한 골키퍼 딕 핌 등이 있다. 1921년 핌이 볼턴으로 이적하면서 5000GBP의 이적료를 받았고, 이를 통해 엑서터 시티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구매할 수 있었다.다른 유명 선수로는 1930년대의 다득점 스트라이커 프레드 휘틀로, 엑서터 시티에서 495경기에 출전한 아놀드 미첼,[76] 엑서터 시티의 역대 최다 득점자인 토니 켈로우, 엑서터 시티의 가장 성공적인 시기에 활약했던 재능 있는 골키퍼 이안 메인, 프레드 빈니,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활약한 데런 로보텀 등이 있다. 전 잉글랜드 윙어 리 샤프는 2002-03 시즌 디비전 3 캠페인 시작 시기에 엑서터에서 4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전 엑서터 시티 선수 조지 리더는 1950년 월드컵 결승전의 심판을 맡아 최초의 잉글랜드인 심판이 되었다.[77]
데이비드 플리트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엑서터에서 뛰면서 14골을 기록했다. 그는 이후 토트넘 홋스퍼를 포함한 여러 성공적인 클럽의 감독을 맡았고,[78] 이후 ITV와 BBC 라디오 5 라이브에서 축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엑서터 시티 아카데미 출신인 딘 벅시, 조지 프렌드, 맷 그라임스, 에탄 암파두, 올리 왓킨스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대니 시본과 엘리엇 프리어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암파두(전 아스널이자 엑서터 시티 선수였던 콰메 암파두의 아들)는 2017년 웨일스 국가대표로 데뷔하여 UEFA 유로 2020에서 조국을 위해 뛰었다. 한편, 엑서터 시티에서 2017년 EFL 영 플레이어 오브 더 시즌으로 선정되었고, '클럽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엑서터를 떠난 왓킨스는[79][80] 2021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그리시안스에서 활약한 제이미 매키는 QPR에서 60번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 출전했고,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 9번의 경기에 출전했다. 프로 축구 선수 협회가 2007년 12월에 발표한 설문 조사에서 앨런 뱅크스는 엑서터 시티 팬들이 선정한 역대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꼽혔다.
2014년, 엑서터 시티 FC는 엑서터 칼리지, 유산 복권 기금, 사우스 웨스트 유산 신탁 및 엑서터 시티 서포터즈 트러스트 역사 그룹과 협력하여 명예의 전당을 출범시켰다.[81] 명예의 전당은 클럽에 '진정한 레전드'들이 이룬 업적과 공헌을 기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82][91]
다음 선수들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헌액 | 이름 | 국적 | 포지션 | 선수 경력 | 리그 | 참고 | |
---|---|---|---|---|---|---|---|
출장 | 골 | ||||||
2014 | 앨런 뱅크스 | FW | 1963–66, 1967–73 | 258 | 101 | [82] | |
클리프 바스틴 | FW | 1928–29 | 17 | 6 | [82] | ||
레그 클라크 | MF | 1927–37 | 315 | 18 | [82] | ||
더모트 커티스 | FW | 1963–66, 1967–69 | 157 | 33 | [82] | ||
지미 자일스 | DF | 1971–75, 1977–81 | 313 | 13 | [82] | ||
토니 켈로우 | FW | 1976–78, 1980–84, 1985–88 | 332 | 129 | [82] | ||
아놀드 미첼 | MF | 1952–66 | 495 | 44 | [82] | ||
딕 핌 | GK | 1911–21 | 203 | 0 | [82] | ||
2017 | 피터 해치 | DF | 1973–82 | 346 | 18 | [91] | |
그레이엄 리스 | FW | 1954–66 | 345 | 85 | [91] | ||
애덤 스탠스필드 | FW | 2006–10 | 158 | 39 | [91] | ||
시드 토마스 | FW | 1904–08 | 38 | 16 | [91] |
- 조지 리더 1919-1920
- 제리 프랜시스 1983-1984
- 존 윌킨슨 1995-2001
- 도널드 굿맨 2002-2003
- 리 샤프 2002
- 조지 프렌드 2005-2008
- 제이미 매키 2005-2008
- 크레이그 눈 2009
- 오스카 얀손 2009
- 트로이 아치볼드-헨빌 2009-2012, 2016-2018
- 벤 해머 2011
- 로완 리케츠 2012
- 클린턴 모리슨 2014-2016
- 이선 암파두 2016-2017
- 리 마틴 2018-
5. 4. 영구 결번
2010-11 시즌 중 직장암으로 사망한 아담 스탠스필드를 기리기 위해, 구단은 그의 등번호 9번을 다음 9시즌 동안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2020-21 시즌부터 이 등번호는 구단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 선수만 착용한다.[73][74] 2022년 9월 2일, 스탠스필드의 아들 제이 스탠스필드가 엑서터 시티로 시즌 장기 임대 형식으로 복귀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어 등번호 9번을 착용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75]6. 역대 감독
컨퍼런스 내셔널 플레이오프 우승: 2007-08
리그 2 준우승: 2008-09
리그 2 올해의 감독: 2009
풋볼 리그 트로피 결승 진출: 2010-11
리그 2 플레이오프 결승 진출: 2016-17, 2017-18
리그 2 준우승: 20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