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머스 아가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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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플리머스 아가일 FC는 1886년 창단된 잉글랜드의 프로 축구 클럽으로, 홈 구장은 홈 파크이다. 풋볼 리그 3부 사우스, 3부, 2부, 리그 1에서 우승했으며, 2022-23 시즌에는 리그 1에서 우승하여 챔피언십으로 승격했다. 1929-30, 1951-52, 1958-59, 2003-04, 2022-23 시즌에 우승했으며, 1996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했다. 남부 리그, 서부 리그 등에서도 우승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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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머스 아가일 FC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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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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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네임 | 플리머스 아가일 풋볼 클럽 |
애칭 | 순례자 (The Pilgrims) 초록 군단 (The Green Army) 초록 (The Greens) 아가일 (Argyle) |
창단 | 1886년 (아가일 FC) |
경기장 | 홈 파크 |
수용 능력 | 17,900명 |
구단주 | 사이먼 할렛 |
회장 | 사이먼 할렛 |
감독 | 웨인 루니 |
감독 직함 | 헤드 코치 |
리그 | EFL 챔피언십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클럽 용품 | |
홈 유니폼 | 상의: 초록색 하의: 하얀색 양말: 검은색 |
원정 유니폼 | 상의: 하얀색 하의: 하얀색 양말: 하얀색 |
써드 유니폼 | 상의: 노란색 하의: 검은색 양말: 노란색 |
2. 역사
wikitext
1930년, 1952년[10], 1959년[17], 2002년[4], 2004년[4], 2023년[57] 우승팀이며, 1996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했다.[28] 또한 남부 리그에서 1913년에,[10] 서부 리그에서 1905년에 우승했다.
'''창단 초기 (1886–1937)'''
1886년 아가일 풋볼 클럽(Argyle Football Club)으로 창단되었으며, 1886년 10월 16일 콘월의 팀인 칵스턴(Caxton)과의 첫 경기에서 2-0으로 패했다. 그 주 후반 아가일은 라운세스턴에서 던헤베드 칼리지(현재 라운세스턴 칼리지)를 2-1로 꺾고 첫 승리를 거두었다.[4] 클럽은 플리머스 유나이티드와 여러 친선 경기를 치렀지만, 경기력 부진으로 1894년에 해체되었다가 1897년에 '아가일 육상 클럽(Argyle Athletic Club)'이라는 일반 스포츠 클럽의 일부로 부활했다.[5] 1898년 아가일 FC는 첫 번째 규칙서를 발간했다. 클럽의 경기장은 플리머스 시 외곽 지역인 마시 밀스(Marsh Mills)로 지정되었다.[6]
'아가일(Argyle)'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다. 한 가지 설명은 클럽이 자체적으로 강력한 축구팀을 보유한 육군 연대인 아가일 앤드 서덜랜드 하이랜더스(Argyll and Sutherland Highlanders)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는 것이다.[7] 또 다른 설은 지역 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창립 멤버들이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 인근 선술집 '아길 선술집'(The Argyle Tavern) 또는 지역 거리 '아가일 테라스'(Argyle Terrac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8]
1903년 밥 잭(Bob Jack)의 감독 하에 사우스턴 리그에 합류하면서 완전한 프로로 전환하여 현재의 이름을 채택했다. 아가일의 첫 번째 프로 경기는 1903년 9월 1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치러졌으며, 아가일이 2-0으로 승리했다. 완전한 프로 클럽으로서의 첫 번째 홈 경기는 1903년 9월 5일에 열렸으며, 4,438명의 관중 앞에서 노샘프턴 타운을 2-0으로 꺾었다. 아가일은 1913년 사우스턴 리그에서 우승했으며,[10] 1920년에는 창립 멤버로 풋볼 리그 3부에 참가하여 첫 시즌에 11위를 기록했다.
1924년 여름, 플리머스 아가일 팀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서 친선 경기를 치르기 위해 남미를 방문했다.[11][12] 아가일은 첫 경기에서 우루과이를 4-0으로 완파했고(6년 후 최초의 월드컵에서 우승한 팀),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었다.[13] 아가일은 이어 아르헨티나의 강호 보카 주니어스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모세스 러셀(Moses Russell)은 팀의 주장을 맡아 9경기 모두 출전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아르헨티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투어 종료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스탠다드'는 "플리머스 아가일의 방문은 모세스 러셀의 뛰어난 개성과 천재성으로 가장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효과적인 스타일, 정확한 판단력, 정확하고 시기 적절한 클리어링, 강력한 킥, 그리고 머리를 사용한 유용한 플레이...축구장에서 본 가장 훌륭한 수비수이자 가장 똑똑한 선수 중 한 명입니다."라고 평했다.
1924년 7월 9일 보카 주니어스와의 경기에서, 보카 주니어스 서포터들은 자국 팀이 선제골을 넣은 후 경기장에 난입하여 11명의 홈 선수들을 어깨에 메고 경기장을 돌았다. 30분 지연 후, 심판이 경기를 재개했지만, 심판이 홈팀에게 페널티킥을 선언하면서 또 다른 난입이 촉발되었다.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아가일 선수들은 패트시 코코란(Patsy Corcoran)이 페널티킥을 차고 실축하여 또 다른 경기장 난입을 막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승부욕이 강한 러셀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코코란이 페널티킥을 차기 직전에 러셀이 그를 밀어내고 자신이 직접 킥을 성공시켰다. 이는 보카 팬들의 추가 경기장 난입을 촉발했고, 결국 경기는 중단되었다.[14]
잉글랜드로 돌아온 아가일은 1921-22 시즌부터 1926-27 시즌까지 6시즌 연속으로 3부 사우스에서 2위를 기록하며 승격을 놓치는 독특한 기록을 세웠다. 아가일은 결국 1929-30 시즌 3부 사우스에서 우승하며 풋볼 리그 2부로 승격했고, 그 시즌에는 관중이 정기적으로 20,000명에 달했다. 밥 잭 감독은 1937년, 필그림스를 지휘한 총 27년의 시간을 보낸 후 사임했다. 11년 전인 1928년, 1919년 아가일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20년에 팀을 떠났던 데이비드 잭은 볼턴 원더러스에서 아스날 FC.로 이적했는데, 이적료는 10,890파운드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였다.[15] 그는 또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였다.[16]
'''1937–198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가일은 20년간 2부 리그에 머물렀지만, 1950년에는 잭 치즘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2부 리그에서의 생활을 마감했다.[17] 그러나 1952년 3부 리그 사우스에서 우승한 후, 클럽은 곧 2부 리그로 복귀했다.[17] 클럽이 잉글리시 풋볼 리그 1부 (최상위 리그)에서 뛰는 데 가장 근접했던 때는 1952-53 시즌으로, 잉글리시 풋볼 리그 2부에서 4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최고 성적이다.[17] 1954-1955 시즌에는 조명탑이 홈 파크에 설치되었지만, 1956년 아가일은 다시 강등되었다.[17] 1959년 3부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현재는 전국 리그) '요요 클럽'으로서 필그림스의 명성은 계속되었다.[17]
1960년대는 아가일 역사상 가장 기이한 사건 중 하나로 시작되었다.[17] 1963년 봄, 클럽은 폴란드를 미니 투어했는데, 필그림스는 국제 사이클 경주를 위한 워밍업 경기로 초청되었다.[17] 놀랍게도, 그날 아가일의 경기를 10만 명이 관람했는데, 이는 플리머스 경기에 참석한 역대 최대 관중 수였다.[17] 1965년 아가일은 풋볼 리그 컵 준결승에 2부 리그 팀으로서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진출했지만 레스터 시티에 패했다.[17] 하지만 1968년 강등으로 아가일이 3부 리그로 돌아가면서 실망스러운 10년으로 마무리되었다.[17]
1973년 3월, 아가일 역사상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 홈 파크에서 37,639명의 관중 앞에서 펼쳐졌다.[17] 아가일은 당시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였던 브라질의 거대 클럽 산투스 FC와 친선 경기를 치렀다.[17] 그날 산투스에는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인 펠레가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었다.[17] 하지만 당시 3부 리그 팀이었던 아가일은 3-2 승리를 거두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17] 그린스는 실제로 마이크 다울링, 데릭 리카드, 지미 힌치의 골에 힘입어 3-0으로 앞서나갔지만, 펠레가 반 파크 엔드에서 얻은 페널티킥으로 산투스가 반격했다.[17] 하지만 결국 산투스는 역전에 실패했고 패배했다.[17] 필그림스의 승리 후 마지막 휘슬이 울리자 엄청난 관중 난입이 발생했다.[17]
1974년, 미래의 잉글랜드 공격수이자 아가일 감독인 폴 마리너가 팀에서 활약하면서, 아가일은 다시 리그 컵 준결승에 진출했는데, 이번에는 3부 리그 팀으로서였다.[17][18][19] 아가일은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겼지만, 메인 로드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패했다.[17][18][19] 3부 리그에서 6년을 보낸 후, 아가일은 토니 웨이터스 감독 아래 1974-75 시즌에 마침내 2부 리그로 복귀했다.[17][18][19] 이는 주로 득점 파트너인 폴 마리너와 빌리 라퍼티의 활약 덕분이었는데, 이들은 총 46골을 합작했다.[17][18][19] 하지만 1977년에 클럽은 다시 강등되었다.[17] 비록 1978-79 시즌에 케빈 호지스가 아가일 데뷔전을 치르며 좋은 분위기로 10년을 마무리했고, 그는 클럽에서 620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다른 선수보다 많은 기록이다.[17]
1984년 플리머스는 3부 리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FA컵 준결승에 진출했다.[20] 아가일은 당시 1부 리그 팀이었던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을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꺾고(토미 타이난의 58분 골), 더비 카운티를 꺾는(홈 경기는 0-0으로 비겼지만 베이스볼 그라운드에서 열린 재경기에서 아가일이 0-1로 승리) 성공적인 컵 대회 여정을 보냈지만, 준결승에서 왓포드에게 빌라 파크에서 조지 라일리의 골로 1-0으로 패했다.[20] 그러나 존 호어 감독은 다음 시즌 중 해고되었고 데이브 스미스가 그를 대신했다.[21] 1985-86 시즌, 스미스가 정식으로 감독을 맡은 첫 시즌에 아가일은 3부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승격했다.[21] 다음 시즌, 승격팀임에도 불구하고 아가일은 2부 리그에서 7위를 기록하며, 디비전의 새로운 플레이오프 구역 진출과 1부 리그(현재 프리미어리그) 진출 기회를 아깝게 놓쳤다.[21] 1988년 스미스는 놀랍게도 던디를 맡기 위해 떠났고, 켄 브라운이 감독이 되었다.[22]
'''성공과 챔피언십 진출 (1986–2008)'''
플리머스 아가일은 1986년 풋볼 리그 3부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2부 리그로 승격했다.[23] 1990년대에 새로운 인물인 사업가 댄 맥콜리가 회장으로 취임했고, 그의 첫 번째 주요 결정은 데이브 켐프를 해고하고 잉글랜드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인 피터 실턴을 1991–92 시즌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한 것이었다.[23] 그러나 실턴은 아가일이 2부 리그에서 22위로 마감하면서 강등을 막을 수 없었다. 1992–93 시즌을 앞두고 잉글랜드 축구는 개편되었다. 1부 리그(최상위)는 프리미어십이 되었고, 2부 리그(두 번째)는 1부 리그가 되었으며, 3부 리그(세 번째)는 이제 2부 리그가 되는 등 변경이 있었다. 그 결과 아가일은 여전히 2부 리그에 있었지만, 이제 두 번째가 아닌 세 번째 리그가 되었다.[24]
1992–93 시즌 아가일은 3부 리그에서 중위권을 기록했지만, 피터 실턴의 팀은 다음 시즌 훌륭한 축구를 펼친 결과 3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아가일은 준결승에서 번리에게 패했는데, 이는 두 클럽 간의 치열한 라이벌리의 시작을 알렸다.[25] 1994–95 시즌에 실턴이 클럽과 결별하면서 아가일은 더욱 실망했고, 결국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3부 리그(4부 리그)로 강등되었다.[25] 선수 스티브 맥콜은 실턴의 퇴임 후 단기 계약으로 클럽의 감독이 되었지만, 시즌이 끝나자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고, 닐 워녹이 그의 후임으로 들어섰다.[26][27] 1995–96 시즌 말, 워녹은 감독으로서 첫 시즌에 플리머스를 3부 리그 플레이오프 우승으로 이끌었다. 준결승은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아가일은 콜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경기를 치렀고, 1차전에서 1–0으로 뒤졌지만, 2차전에서 홈 파크에서 3–1로 승리하면서 필그림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웸블리로 향하게 되었다.[28][29] 아가일은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다링턴을 1–0으로 꺾고 다시 한 번 3부 리그 축구를 얻었다.
그러나 워녹은 클럽이 4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간신히 피한 지 1년 만에 해고되었다.[30] 믹 존스가 그의 후임이 되었고, 그 시즌인 1997년 2월에 아가일은 '샐터게이트 전투'에 참여하여 체스터필드에서 1–2로 승리했다. 다음 시즌 아가일은 존스 감독 하에서 강등되었고, 그의 후임인 케빈 호지스 (클럽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는 승격(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3년 만에 직위를 잃었다. 이 시점에서 아가일은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고, 이는 역사상 최저점이었다.
2000년 11월 폴 스터록을 감독으로 임명한 것은 아가일 역사상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클럽을 풋볼 리그에서 강등 위기에서 구했고(그가 감독이 되었을 때 클럽은 리그 하위 4위였다), 첫 시즌에 12위로 마쳤다. 다음 시즌은 클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아가일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첼트넘 타운을 2–0으로 꺾고 클럽 및 리그 기록인 102점을 획득하며 3부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길은 2003–04 시즌에 2부 리그 타이틀을 차지할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고, 3년 만에 두 번째 승격을 이루면서 모두의 예상을 맞혔다. 2004년 3월 바비 윌리엄슨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아길의 새롭게 개편된 '챔피언십'(2부 리그)에서의 첫 경기는 밀월과의 홈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는데, 밀월은 이전 시즌 FA컵 결승 진출팀이었다. 아길의 강세는 이어졌고, 클럽은 카디프 시티에서 0–1로 승리한 후 잠시 테이블 선두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지만, 그 후 순위가 하락하여 17위로 시즌을 마쳤다. 2005–06 시즌에는 그린 군단에게 기억에 남는 결과들이 있었는데, 특히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2–0으로 이기고,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경기가 있었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왓포드에게 3–0으로 패했다. 필그림스는 그 시즌에 14위로 마쳤고, 결국 강등권에서 멀리 벗어났다.
2006년 여름, 이안 할로웨이가 클럽을 맡은 첫 경기 중 하나에서 아길은 프리 시즌 친선 경기로 오스트리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를 치렀는데, 두 클럽 모두 당시 그 나라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할로웨이가 감독으로 치른 첫 공식 경기는 울브스와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긴 경기였다. 팀은 FA컵에서 최근 시즌보다 훨씬 더 나은 성과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그들은 리그 2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를 이겼다. 다음 경기에서는 챔피언십 리그 선두인 더비 카운티를 2–0으로 이겼지만, 8강에서 프리미어 리그 부진팀인 왓포드와 홈에서 경기를 치러 패했다. 아길은 2006–07 시즌을 11위로 마쳤으며, 이는 20년 만에 리그 최고 순위였다.[31]
2007–08 시즌 시작 전에, 이안 할로웨이 감독은 플리머스가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할 수 있다고 말했고, 팀은 헐 시티에서 2–3으로 승리하며 새로운 시즌을 좋은 출발을 보였다.[32] 클럽의 좋은 출발은 계속되었고, 처음 몇 달 동안 플레이오프 자리에 근접했다. 그러나 2007년 11월 21일 이안 할로웨이는 논란 속에 레스터 시티의 지휘를 맡기 위해 사임했다.[33][32]
'''재정 문제와 하락세 (2008–2018)'''
플리머스 아가일 FC는 2008년에 15위로 시즌을 마쳤고,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34] 2009년 1월 3일에는 FA컵 3라운드에서 아스널에게 3-1로 패배했다.[35] 리그 순위는 21위로, 강등권에서 한 계단 위였다.[36]
2009년 12월 10일, 폴 스터록 감독은 부진한 성적과 팬들의 불만으로 인해 해임되었다.[37] 이후 폴 마리너가 감독 대행을 맡았지만, 첫 두 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팀은 최하위로 떨어졌다.[38] 결국 2009-10 시즌, 플리머스는 풋볼 리그 2부에서 6년간의 시간을 마치고 강등되었다. 2010년 11월 20일, 브렌트포드에게 홈에서 1-2로 패한 후, 리그 1에서 20위를 기록했다.[40]
2010년 11월 23일, 대거넘 & 레드브리지를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었지만, 관중 수는 4,960명으로 매우 저조했다.[39] 얼마 지나지 않아 필그림스는 HMRC로부터 청산 명령을 받았고, 법원에 출두하여 세금 납부를 위해 63일간의 휴정을 얻었다. 2011년 5월 2일 사우스햄튼과의 홈 경기에서 3-1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40]
제임스 브렌트의 아케론 그룹이 구단을 인수하기로 했고, 피터 리즈데일은 구단을 떠날 것이라고 확인했다.[41][42] 10월 14일, 플리머스 의회에 홈 파크를 160만 파운드에 다시 매각하고, 연간 13만 5천 파운드의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44] 팀의 최종 리그 순위는 21위였지만, 3경기를 남겨두고 생존을 확보했다. 다음 시즌에도 21위를 기록하며 강등 위기를 넘겼다. 셰리던 감독은 3년 계약을 맺었고, 첫 정식 시즌에서 10위를 기록했다.
2016-17 시즌, 플리머스 아가일은 리그 2에서 2위를 기록하며 리그 1으로 승격했다.[45] 2017-18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2017년 12월부터 2018년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며 7위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핼릿 구단주 인수 이후 (2018–현재)'''
2018년 8월, 핼릿은 제임스 브렌트가 지분을 줄이고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구단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46] 핼릿은 데이비드 펠윅 CBE를 차기 회장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펠윅이 개인적인 사유로 회장직을 맡을 수 없다고 밝히면서 2018년 11월 1일에 핼릿이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47][48] 2018-19 시즌에 아가일은 리그 2로 강등되었다.[49]
2019-20 시즌을 앞두고 핼릿은 라이언 로우를 감독으로 임명하여 베리에서 그와 그의 수석 코치 스티븐 슈마허를 영입했다.[50][51] 이 감독 교체는 아가일이 리그 1으로 승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52] 그러나 다음 시즌 팀은 3부 리그에서 18위를 기록하였다. 2021-22 시즌에는 스티븐 슈마허감독 체제에서 7위를 기록했다.[53][54]
2022-23 시즌에는 새로운 메이플라워 스탠드가 완공되어 홈 파크의 수용 인원이 17,900명으로 늘어났고, 구단은 EFL 리그 1 우승을 차지하며 13년 만에 2부 리그로 복귀했다.[55][56][57] 2부리그 복귀 첫 시즌에
2. 1. 창단 초기 (1886–1937)
1886년 아가일 풋볼 클럽(Argyle Football Club)으로 창단되었으며, 1886년 10월 16일 콘월의 팀인 칵스턴(Caxton)과의 첫 경기에서 2-0으로 패했다. 그 주 후반 아가일은 라운세스턴에서 던헤베드 칼리지(현재 라운세스턴 칼리지)를 2-1로 꺾고 첫 승리를 거두었다.[4] 클럽은 플리머스 유나이티드와 여러 친선 경기를 치렀지만, 경기력 부진으로 1894년에 해체되었다가 1897년에 '아가일 육상 클럽(Argyle Athletic Club)'이라는 일반 스포츠 클럽의 일부로 부활했다.[5] 1898년 아가일 FC는 첫 번째 규칙서를 발간했다. 클럽의 경기장은 플리머스 시 외곽 지역인 마시 밀스(Marsh Mills)로 지정되었다.[6]'아가일(Argyle)'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다. 한 가지 설명은 클럽이 자체적으로 강력한 축구팀을 보유한 육군 연대인 아가일 앤드 서덜랜드 하이랜더스(Argyll and Sutherland Highlanders)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는 것이다.[7] 또 다른 설은 지역 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창립 멤버들이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 인근 선술집 '아길 선술집'(The Argyle Tavern) 또는 지역 거리 '아가일 테라스'(Argyle Terrac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8]
1903년 밥 잭(Bob Jack)의 감독 하에 사우스턴 리그에 합류하면서 완전한 프로로 전환하여 현재의 이름을 채택했다. 아가일의 첫 번째 프로 경기는 1903년 9월 1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치러졌으며, 아가일이 2-0으로 승리했다. 완전한 프로 클럽으로서의 첫 번째 홈 경기는 1903년 9월 5일에 열렸으며, 4,438명의 관중 앞에서 노샘프턴 타운을 2-0으로 꺾었다. 아가일은 1913년 사우스턴 리그에서 우승했으며,[10] 1920년에는 창립 멤버로 풋볼 리그 3부에 참가하여 첫 시즌에 11위를 기록했다.
1924년 여름, 플리머스 아가일 팀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서 친선 경기를 치르기 위해 남미를 방문했다.[11][12] 아가일은 첫 경기에서 우루과이를 4-0으로 완파했고(6년 후 최초의 월드컵에서 우승한 팀),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었다.[13] 아가일은 이어 아르헨티나의 강호 보카 주니어스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모세스 러셀(Moses Russell)은 팀의 주장을 맡아 9경기 모두 출전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아르헨티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투어 종료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스탠다드'는 "플리머스 아가일의 방문은 모세스 러셀의 뛰어난 개성과 천재성으로 가장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효과적인 스타일, 정확한 판단력, 정확하고 시기 적절한 클리어링, 강력한 킥, 그리고 머리를 사용한 유용한 플레이...축구장에서 본 가장 훌륭한 수비수이자 가장 똑똑한 선수 중 한 명입니다."라고 평했다.
1924년 7월 9일 보카 주니어스와의 경기에서, 보카 주니어스 서포터들은 자국 팀이 선제골을 넣은 후 경기장에 난입하여 11명의 홈 선수들을 어깨에 메고 경기장을 돌았다. 30분 지연 후, 심판이 경기를 재개했지만, 심판이 홈팀에게 페널티킥을 선언하면서 또 다른 난입이 촉발되었다.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아가일 선수들은 패트시 코코란(Patsy Corcoran)이 페널티킥을 차고 실축하여 또 다른 경기장 난입을 막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승부욕이 강한 러셀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코코란이 페널티킥을 차기 직전에 러셀이 그를 밀어내고 자신이 직접 킥을 성공시켰다. 이는 보카 팬들의 추가 경기장 난입을 촉발했고, 결국 경기는 중단되었다.[14]
잉글랜드로 돌아온 아가일은 1921-22 시즌부터 1926-27 시즌까지 6시즌 연속으로 3부 사우스에서 2위를 기록하며 승격을 놓치는 독특한 기록을 세웠다. 아가일은 결국 1929-30 시즌 3부 사우스에서 우승하며 풋볼 리그 2부로 승격했고, 그 시즌에는 관중이 정기적으로 20,000명에 달했다. 밥 잭 감독은 1937년, 필그림스를 지휘한 총 27년의 시간을 보낸 후 사임했다. 11년 전인 1928년, 1919년 아가일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20년에 팀을 떠났던 데이비드 잭은 볼턴 원더러스에서 아스날 FC.로 이적했는데, 이적료는 10,890파운드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였다.[15] 그는 또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였다.[16]
2. 2. 1937–198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가일은 20년간 2부 리그에 머물렀지만, 1950년에는 잭 치즘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2부 리그에서의 생활을 마감했다.[17] 그러나 1952년 3부 리그 사우스에서 우승한 후, 클럽은 곧 2부 리그로 복귀했다.[17] 클럽이 잉글리시 풋볼 리그 1부 (최상위 리그)에서 뛰는 데 가장 근접했던 때는 1952-53 시즌으로, 잉글리시 풋볼 리그 2부에서 4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최고 성적이다.[17] 1954-1955 시즌에는 조명탑이 홈 파크에 설치되었지만, 1956년 아가일은 다시 강등되었다.[17] 1959년 3부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현재는 전국 리그) '요요 클럽'으로서 필그림스의 명성은 계속되었다.[17]1960년대는 아가일 역사상 가장 기이한 사건 중 하나로 시작되었다.[17] 1963년 봄, 클럽은 폴란드를 미니 투어했는데, 필그림스는 국제 사이클 경주를 위한 워밍업 경기로 초청되었다.[17] 놀랍게도, 그날 아가일의 경기를 10만 명이 관람했는데, 이는 플리머스 경기에 참석한 역대 최대 관중 수였다.[17] 1965년 아가일은 풋볼 리그 컵 준결승에 2부 리그 팀으로서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진출했지만 레스터 시티에 패했다.[17] 하지만 1968년 강등으로 아가일이 3부 리그로 돌아가면서 실망스러운 10년으로 마무리되었다.[17]
1973년 3월, 아가일 역사상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 홈 파크에서 37,639명의 관중 앞에서 펼쳐졌다.[17] 아가일은 당시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였던 브라질의 거대 클럽 산투스 FC와 친선 경기를 치렀다.[17] 그날 산투스에는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인 펠레가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었다.[17] 하지만 당시 3부 리그 팀이었던 아가일은 3-2 승리를 거두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17] 그린스는 실제로 마이크 다울링, 데릭 리카드, 지미 힌치의 골에 힘입어 3-0으로 앞서나갔지만, 펠레가 반 파크 엔드에서 얻은 페널티킥으로 산투스가 반격했다.[17] 하지만 결국 산투스는 역전에 실패했고 패배했다.[17] 필그림스의 승리 후 마지막 휘슬이 울리자 엄청난 관중 난입이 발생했다.[17]
1974년, 미래의 잉글랜드 공격수이자 아가일 감독인 폴 마리너가 팀에서 활약하면서, 아가일은 다시 리그 컵 준결승에 진출했는데, 이번에는 3부 리그 팀으로서였다.[17][18][19] 아가일은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겼지만, 메인 로드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패했다.[17][18][19] 3부 리그에서 6년을 보낸 후, 아가일은 토니 웨이터스 감독 아래 1974-75 시즌에 마침내 2부 리그로 복귀했다.[17][18][19] 이는 주로 득점 파트너인 폴 마리너와 빌리 라퍼티의 활약 덕분이었는데, 이들은 총 46골을 합작했다.[17][18][19] 하지만 1977년에 클럽은 다시 강등되었다.[17] 비록 1978-79 시즌에 케빈 호지스가 아가일 데뷔전을 치르며 좋은 분위기로 10년을 마무리했고, 그는 클럽에서 620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다른 선수보다 많은 기록이다.[17]
1984년 플리머스는 3부 리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FA컵 준결승에 진출했다.[20] 아가일은 당시 1부 리그 팀이었던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을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꺾고(토미 타이난의 58분 골), 더비 카운티를 꺾는(홈 경기는 0-0으로 비겼지만 베이스볼 그라운드에서 열린 재경기에서 아가일이 0-1로 승리) 성공적인 컵 대회 여정을 보냈지만, 준결승에서 왓포드에게 빌라 파크에서 조지 라일리의 골로 1-0으로 패했다.[20] 그러나 존 호어 감독은 다음 시즌 중 해고되었고 데이브 스미스가 그를 대신했다.[21] 1985-86 시즌, 스미스가 정식으로 감독을 맡은 첫 시즌에 아가일은 3부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승격했다.[21] 다음 시즌, 승격팀임에도 불구하고 아가일은 2부 리그에서 7위를 기록하며, 디비전의 새로운 플레이오프 구역 진출과 1부 리그(현재 프리미어리그) 진출 기회를 아깝게 놓쳤다.[21] 1988년 스미스는 놀랍게도 던디를 맡기 위해 떠났고, 켄 브라운이 감독이 되었다.[22]
2. 3. 성공과 챔피언십 진출 (1986–2008)
플리머스 아가일은 1986년 풋볼 리그 3부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2부 리그로 승격했다.[23] 1990년대에 새로운 인물인 사업가 댄 맥콜리가 회장으로 취임했고, 그의 첫 번째 주요 결정은 데이브 켐프를 해고하고 잉글랜드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인 피터 실턴을 1991–92 시즌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한 것이었다.[23] 그러나 실턴은 아가일이 2부 리그에서 22위로 마감하면서 강등을 막을 수 없었다. 1992–93 시즌을 앞두고 잉글랜드 축구는 개편되었다. 1부 리그(최상위)는 프리미어십이 되었고, 2부 리그(두 번째)는 1부 리그가 되었으며, 3부 리그(세 번째)는 이제 2부 리그가 되는 등 변경이 있었다. 그 결과 아가일은 여전히 2부 리그에 있었지만, 이제 두 번째가 아닌 세 번째 리그가 되었다.[24]1992–93 시즌 아가일은 3부 리그에서 중위권을 기록했지만, 피터 실턴의 팀은 다음 시즌 훌륭한 축구를 펼친 결과 3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아가일은 준결승에서 번리에게 패했는데, 이는 두 클럽 간의 치열한 라이벌리의 시작을 알렸다.[25] 1994–95 시즌에 실턴이 클럽과 결별하면서 아가일은 더욱 실망했고, 결국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3부 리그(4부 리그)로 강등되었다.[25] 선수 스티브 맥콜은 실턴의 퇴임 후 단기 계약으로 클럽의 감독이 되었지만, 시즌이 끝나자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고, 닐 워녹이 그의 후임으로 들어섰다.[26][27] 1995–96 시즌 말, 워녹은 감독으로서 첫 시즌에 플리머스를 3부 리그 플레이오프 우승으로 이끌었다. 준결승은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아가일은 콜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경기를 치렀고, 1차전에서 1–0으로 뒤졌지만, 2차전에서 홈 파크에서 3–1로 승리하면서 필그림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웸블리로 향하게 되었다.[28][29] 아가일은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다링턴을 1–0으로 꺾고 다시 한 번 3부 리그 축구를 얻었다.
그러나 워녹은 클럽이 4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간신히 피한 지 1년 만에 해고되었다.[30] 믹 존스가 그의 후임이 되었고, 그 시즌인 1997년 2월에 아가일은 '샐터게이트 전투'에 참여하여 체스터필드에서 1–2로 승리했다. 다음 시즌 아가일은 존스 감독 하에서 강등되었고, 그의 후임인 케빈 호지스 (클럽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는 승격(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3년 만에 직위를 잃었다. 이 시점에서 아가일은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고, 이는 역사상 최저점이었다.
2000년 11월 폴 스터록을 감독으로 임명한 것은 아가일 역사상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클럽을 풋볼 리그에서 강등 위기에서 구했고(그가 감독이 되었을 때 클럽은 리그 하위 4위였다), 첫 시즌에 12위로 마쳤다. 다음 시즌은 클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아가일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첼트넘 타운을 2–0으로 꺾고 클럽 및 리그 기록인 102점을 획득하며 3부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길은 2003–04 시즌에 2부 리그 타이틀을 차지할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고, 3년 만에 두 번째 승격을 이루면서 모두의 예상을 맞혔다. 2004년 3월 바비 윌리엄슨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아길의 새롭게 개편된 '챔피언십'(2부 리그)에서의 첫 경기는 밀월과의 홈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는데, 밀월은 이전 시즌 FA컵 결승 진출팀이었다. 아길의 강세는 이어졌고, 클럽은 카디프 시티에서 0–1로 승리한 후 잠시 테이블 선두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지만, 그 후 순위가 하락하여 17위로 시즌을 마쳤다. 2005–06 시즌에는 그린 군단에게 기억에 남는 결과들이 있었는데, 특히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2–0으로 이기고,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경기가 있었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왓포드에게 3–0으로 패했다. 필그림스는 그 시즌에 14위로 마쳤고, 결국 강등권에서 멀리 벗어났다.
2006년 여름, 이안 할로웨이가 클럽을 맡은 첫 경기 중 하나에서 아길은 프리 시즌 친선 경기로 오스트리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를 치렀는데, 두 클럽 모두 당시 그 나라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할로웨이가 감독으로 치른 첫 공식 경기는 울브스와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긴 경기였다. 팀은 FA컵에서 최근 시즌보다 훨씬 더 나은 성과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그들은 리그 2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를 이겼다. 다음 경기에서는 챔피언십 리그 선두인 더비 카운티를 2–0으로 이겼지만, 8강에서 프리미어 리그 부진팀인 왓포드와 홈에서 경기를 치러 패했다. 아길은 2006–07 시즌을 11위로 마쳤으며, 이는 20년 만에 리그 최고 순위였다.[31]
2007–08 시즌 시작 전에, 이안 할로웨이 감독은 플리머스가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할 수 있다고 말했고, 팀은 헐 시티에서 2–3으로 승리하며 새로운 시즌을 좋은 출발을 보였다.[32] 클럽의 좋은 출발은 계속되었고, 처음 몇 달 동안 플레이오프 자리에 근접했다. 그러나 2007년 11월 21일 이안 할로웨이는 논란 속에 레스터 시티의 지휘를 맡기 위해 사임했다.[33][32]
2. 4. 재정 문제와 하락세 (2008–2018)
플리머스 아가일 FC는 2008년에 15위로 시즌을 마쳤고,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34] 2009년 1월 3일에는 FA컵 3라운드에서 아스널에게 3-1로 패배했다.[35] 리그 순위는 21위로, 강등권에서 한 계단 위였다.[36]2009년 12월 10일, 폴 스터록 감독은 부진한 성적과 팬들의 불만으로 인해 해임되었다.[37] 이후 폴 마리너가 감독 대행을 맡았지만, 첫 두 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팀은 최하위로 떨어졌다.[38] 결국 2009-10 시즌, 플리머스는 풋볼 리그 2부에서 6년간의 시간을 마치고 강등되었다. 2010년 11월 20일, 브렌트포드에게 홈에서 1-2로 패한 후, 리그 1에서 20위를 기록했다.[40]
2010년 11월 23일, 대거넘 & 레드브리지를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었지만, 관중 수는 4,960명으로 매우 저조했다.[39] 얼마 지나지 않아 필그림스는 HMRC로부터 청산 명령을 받았고, 법원에 출두하여 세금 납부를 위해 63일간의 휴정을 얻었다. 2011년 5월 2일 사우스햄튼과의 홈 경기에서 3-1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40]
제임스 브렌트의 아케론 그룹이 구단을 인수하기로 했고, 피터 리즈데일은 구단을 떠날 것이라고 확인했다.[41][42] 10월 14일, 플리머스 의회에 홈 파크를 160만 파운드에 다시 매각하고, 연간 13만 5천 파운드의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44] 팀의 최종 리그 순위는 21위였지만, 3경기를 남겨두고 생존을 확보했다. 다음 시즌에도 21위를 기록하며 강등 위기를 넘겼다. 셰리던 감독은 3년 계약을 맺었고, 첫 정식 시즌에서 10위를 기록했다.
2016-17 시즌, 플리머스 아가일은 리그 2에서 2위를 기록하며 리그 1으로 승격했다.[45] 2017-18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2017년 12월부터 2018년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며 7위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 5. 핼릿 구단주 인수 이후 (2018–현재)
2018년 8월, 핼릿은 제임스 브렌트가 지분을 줄이고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구단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46] 핼릿은 데이비드 펠윅 CBE를 차기 회장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펠윅이 개인적인 사유로 회장직을 맡을 수 없다고 밝히면서 2018년 11월 1일에 핼릿이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47][48] 2018-19 시즌에 아가일은 리그 2로 강등되었다.[49]2019-20 시즌을 앞두고 핼릿은 라이언 로우를 감독으로 임명하여 베리에서 그와 그의 수석 코치 스티븐 슈마허를 영입했다.[50][51] 이 감독 교체는 아가일이 리그 1으로 승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52] 그러나 다음 시즌 팀은 3부 리그에서 18위를 기록하였다. 2021-22 시즌에는 스티븐 슈마허감독 체제에서 7위를 기록했다.[53][54]
2022-23 시즌에는 새로운 메이플라워 스탠드가 완공되어 홈 파크의 수용 인원이 17,900명으로 늘어났고, 구단은 EFL 리그 1 우승을 차지하며 13년 만에 2부 리그로 복귀했다.[55][56][57] 2부리그 복귀 첫 시즌에 플리머스는 21위를 기록했다.[58][59][60]
3. 경기장
홈 파크는 플리머스 대공습으로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67] 전쟁 후 재건된 홈 파크는 2002년 5월에 1단계 공사가 완료되었다. 새로운 데번포트 엔드는 2001년 박싱 데이에 토키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위해 개장했고, 반 파크 엔드도 같은 날 개장했다. 린드허스트 스탠드는 2002년 1월 26일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위해 다시 문을 열었다.[68][69] 경기장은 페버렐의 주거 지역과 매우 가까운 센트럴 파크에 위치해 있다.
2005–06 챔피언십 시즌 말, 클럽은 125년 임대 계약에서 경기장을 해제하기 위해 플리머스 시의회로부터 270만 파운드에 경기장을 구매하기로 결정했고, 2006년 12월에 완료되었다. 2007년 여름, 클럽은 메이플라워 구역에 3,500개의 임시 좌석을 추가하여 수용 인원을 20,922명에서 19,888명으로 줄였다.[71] 2009년 12월, 홈 파크는 2018년 월드컵 경기를 개최할 경기장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나,[72] 잉글랜드는 개최지로 선정되지 못했다. 플리머스 아가일은 2011년 3월에 행정 절차에 들어갔고, 2011년 10월 14일에 160만 파운드에 경기장을 시의회에 다시 매각했다.[73][74]
그 후 클럽은 제임스 브렌트[75]에게 인수되었고, 그는 새로운 메이플라워 그랜드스탠드와 관련 레저 단지 건설 계획을 제출했다.[76][77] 계획에는 1,500석의 관람석이 있는 아이스 링크, 아이맥스 스크린이 있는 10개 스크린 영화관, 120개의 침실을 갖춘 호텔 및 4,200제곱미터의 소매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 허가는 2013년 8월 15일에 승인되었다. 개발은 2013년 9월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며, 2015년 6월 현재, 계획은 철회되었지만 계획 허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경기장의 가족 구역은 데번포트 엔드의 1구역에서 린드허스트 스탠드와 반 파크 엔드 사이의 '주 코너'로 옮겨졌고, 콘코스에는 어린이 활동 구역이 설치되었다.[78] 2017년 1월, 이사 사이먼 핼릿은 메이플라워 그랜드스탠드 개조에 사용할 목적으로 클럽에 500만 파운드를 투자했다.[79] 회장 제임스 브렌트는 2018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020년에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80]
FA컵 3라운드 재경기 대 리버풀과의 경기를 위해 임시 좌석이 설치되었고,[81] 리그 2 경기 대 엑서터 시티와의 경기에도 유지되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티켓이 판매되지 않았다. 이 경기 직후 좌석은 철거되었다.[82] 2021년 메이플라워 스탠드의 재개발이 완료되어 경기장의 수용 인원이 17,900명으로 확장되었다.[83]
4. 서포터
플리머스 아가일 팬들은 '그린 아미(Green Army)'로 불리며, 12번 유니폼은 이들을 위해 비워져 있다.[84][85] 아가일 팬들은 플리머스 주민들을 지칭하는 "재너스(Janners)"라고도 불린다.[84][85]
1946-47 시즌 평균 23,290명의 관중을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세웠으나, 1980년대 축구 훌리건의 영향으로 관중 수가 감소했다.[86][87] 1980년대 중반에는 '더 센트럴 엘리먼트(The Central Element)'라는 훌리건 단체가 활동하기도 했다.[88] 이들은 센트럴 파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다른 클럽의 훌리건 단체와 충돌하기도 했다.[89]
현재 클럽의 주요 지지 기반은 플리머스 시와 콘월, 데번 출신이며, "데번포트 엔드(Devonport End)"는 가장 열정적인 팬들이 모이는 곳이다. 2021–22 시즌부터 모든 홈 경기 전에 '더 재너 송(The Janner Song)'이 연주된다.[90]
풋볼 팬 센서스의 2003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플리머스 아가일 팬들은 엑세터 시티를 주요 라이벌로 꼽았다.[91][92] 엑세터 시티와 토키 유나이티드는 전통적인 데번 지역 라이벌이며, 스윈던 타운, 포츠머스, 브리스톨 시티, 브리스톨 로버스와도 라이벌 관계가 있다. 2019/20 시즌, 플리머스 아가일은 엑세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4-0으로 패하며 웨스트 컨트리 더비 최대 패배 기록을 세웠다.[94][95]
5. 라이벌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전통적인 라이벌은 같은 지역에 위치한 엑서터 시티와 토키 유나이티드이다.[91][92] 이 두 클럽은 서던 풋볼 리그에서 1908년에 처음으로 공식 경기를 치렀다.[93] 2002년 플리머스가 엑서터 시티를 3:0으로 이긴 이후, 엑서터와 토키가 하부 리그에 머물면서 라이벌 관계가 다소 무뎌졌다. 2019/20 시즌에는 플리머스 아가일이 엑서터 시티에게 4-0으로 패했는데, 이는 현대 축구에서 웨스트 컨트리 더비 최대 패배 기록으로 남아있다.[94][95]
브리스톨 시티, 포츠머스(포츠머스와 플리머스 더비는 조선소(Dockyard) 더비라 불린다)와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스윈던 타운, 브리스톨 로버스와는 덜 격렬한 라이벌 관계가 존재한다.
가까운 과거에는 루턴 타운과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는데, 2001-02 시즌 플리머스가 승격할 당시 루턴 감독이었던 조 키니어의 격앙된 발언이 원인이었다. 또한, 레스터 시티로 무책임하게 팀을 옮긴 이안 할로웨이 감독 때문에 레스터 시티와도 라이벌 의식이 생겼으며, 2008년 2월 킹 파워 스타디움에서 플리머스가 1:0으로 승리할 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플리머스 아가일 팬들은 '그린 아미(Green Army)'로 불리며, 12번 유니폼은 이들을 위해 비워져 있다. 아가일 팬들은 플리머스 주민들을 지칭하는 "재너스(Janners)"로 불리기도 한다.[84][85]
1940년대 클럽은 역대 최고 평균 관중 수를 기록했으며, 1946-47 시즌 평균 23,290명의 팬이 경기를 관람했다. 1980년대 초까지 관중 수는 비교적 높게 유지되었으나, 1984-85 시즌에는 평균 537명만이 경기를 관람하며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축구 훌리건의 주요 시대였기 때문으로, 당시 '더 센트럴 엘리먼트(The Central Element)'라는 훌리건 단체가 등장하기도 했다.[86][87] 이들은 센트럴 파크를 언급하는 의미를 담은 이름을 가졌으며, 라이벌 단체와의 충돌을 일으켰다.[88]
오늘날 클럽의 주요 지지 기반은 플리머스 시 출신이지만, 서쪽의 콘월과 데번 출신도 있다. "데번포트 엔드(Devonport End)"는 가장 열정적인 팬들이 경기를 관람하는 곳이다. 2021-22 시즌부터 모든 홈 경기 전에 '더 재너 송(The Janner Song)'이 연주된다.[90]
6. 선수
2024년 8월 19일 현재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122]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2 | DF | Bali Mumba/발리 뭄바영어 | 잉글랜드 |
3 | DF | Nathanael Ogbeta/나다니엘 오그베타영어 | 잉글랜드 |
4 | MF | Jordan Houghton/조던 호턴영어 | 잉글랜드 |
5 | DF | 훌리오 프레게수에로 | 스페인 |
6 | DF | Kornél Szűcs/코르넬 스츼영어 | 헝가리 |
7 | FW | Ibrahim Cissoko/이브라힘 시소코영어 | 네덜란드 |
8 | DF | Joe Edwards (footballer, born 1990)/조 에드워즈영어 (주장) | 잉글랜드 |
9 | FW | Ryan Hardie/라이언 하디영어 | 스코틀랜드 |
10 | FW | Morgan Whittaker/모건 휘태커영어 | 잉글랜드 |
11 | MF | 칼럼 라이트 | 잉글랜드 |
15 | FW | Mustapha Bundu/무스타파 분두영어 | 시에라리온 |
17 | DF | Lewis Gibson (footballer)/루이스 깁슨영어 | 잉글랜드 |
18 | MF | 다르코 가비 | 잉글랜드 |
20 | MF | Adam Randell/아담 란델영어 | 잉글랜드 |
21 | GK | Conor Hazard/코너 해저드영어 | 북아일랜드 |
22 | DF | 브렌던 갤러웨이 | 짐바브웨 |
23 | FW | Ben Waine/벤 웨인영어 | 오스트레일리아 |
24 | DF | Saxon Earley/색슨 얼리영어 | 잉글랜드 |
26 | FW | Muhamed Tijani/무하메드 티자니영어 | 나이지리아 |
27 | MF | 아담 포쇼 | 잉글랜드 |
29 | DF | Matthew Sorinola/매튜 소리놀라영어 | 잉글랜드 |
32 | MF | Will Jenkins-Davies/윌 젠킨스-데이비스영어 | 웨일스 |
34 | MF | Caleb Roberts/칼레브 로버츠영어 | 잉글랜드 |
35 | FW | Freddie Issaka/프레디 이사카영어 | 웨일스 |
44 | DF | Victor Pálsson/빅토르 팔손is | 아이슬란드 |
; 임대 영입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7 | FW | Ibrahim Cissoko/이브라힘 시소코영어 (툴루즈 FC) | 네덜란드 |
18 | MF | 다르코 자비 (리즈 유나이티드 FC) | 잉글랜드 |
26 | FW | Muhamed Tijani/무하메드 티자니영어 (SK 슬라비아 프라하) | 나이지리아 |
; 임대 방출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33 | GK | 잭 베이커 (Plymouth Parkway F.C./플리머스 파크웨이 FC영어) | 잉글랜드 |
36 | DF | 조쉬 버나드 (Tavistock A.F.C./태비스톡 FC영어) | 잉글랜드 |
37 | DF | 잭 매튜스 (Tavistock A.F.C./태비스톡 FC영어) | 잉글랜드 |
6. 1. 현재 선수 명단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현재 선수 명단은 2024년 10월 4일 기준이다.[96] 선수들의 국적은 FIFA 자격 규정에 따라 표시되어 있으며, 복수의 FIFA 비회원국 국적을 가진 선수도 있을 수 있다.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1 | GK | 제임스 비트너 | 잉글랜드 |
2 | DF | 케빈 멜러 | 잉글랜드 |
3 | DF | 벤 퍼링튼 | 잉글랜드 |
4 | MF | 리 콕스 | 잉글랜드 |
5 | DF | 커티스 넬슨 (주장) | 잉글랜드 |
6 | MF | 올리버 노번 | 아일랜드 |
7 | FW | 루이스 알레선드라 | 잉글랜드 |
8 | MF | 제이슨 반튼 | 잉글랜드 |
9 | FW | 루번 리드 | 잉글랜드 |
10 | FW | 마빈 모건 | 잉글랜드 |
11 | FW | 도미닉 블리저드 | 잉글랜드 |
13 | DF | 안디 켈럿 (볼튼 원더러스 FC에서 임대) | 잉글랜드 |
14 | MF | 타일러 하비 | 잉글랜드 |
15 | DF | 폴 우튼 | 잉글랜드 |
16 | DF | 칼 맥휴 | 아일랜드 |
17 | MF | 보비 리드 (브리스틀 시티 FC에서 임대) | 잉글랜드 |
18 | MF | 매트 르코인트 | 잉글랜드 |
19 | FW | 네이슨 토머스 | 잉글랜드 |
22 | FW | 딘 스몰리 | 잉글랜드 |
23 | GK | 루크 매코믹 | 잉글랜드 |
24 | FW | 리버 알런 | 잉글랜드 |
25 | DF | 아런 벤틀리 | 잉글랜드 |
28 | DF | 안소니 오코너 | 아일랜드 |
29 | MF | 피터 하틀리 부주장 | 잉글랜드 |
44 | DF | 정민준(U-15)Call up | 대한민국 |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12번은 서포터들을 위해 비워져 있다.
2024년 8월 19일[122] 현재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2 | DF | Bali Mumba/발리 뭄바영어 | 잉글랜드 |
3 | DF | Nathanael Ogbeta/나다니엘 오그베타영어 | 잉글랜드 |
4 | MF | Jordan Houghton/조던 호턴영어 (부주장) | 잉글랜드 |
5 | DF | 훌리오 프레게수에로 | 스페인 |
6 | DF | Kornél Szűcs/코르넬 스츼영어 | 헝가리 |
7 | FW | Ibrahim Cissoko/이브라힘 시소코영어 (툴루즈 FC에서 임대) | 네덜란드 |
8 | DF | Joe Edwards (footballer, born 1990)/조 에드워즈영어 (주장) | 잉글랜드 |
9 | FW | Ryan Hardie/라이언 하디영어 | 스코틀랜드 |
10 | FW | Morgan Whittaker/모건 휘태커영어 | 잉글랜드 |
11 | MF | 칼럼 라이트 | 잉글랜드 |
14 | FW | 마이클 오바페미 (번리에서 임대) | 아일랜드 |
15 | FW | Mustapha Bundu/무스타파 분두영어 | 시에라리온 |
17 | DF | Lewis Gibson (footballer)/루이스 깁슨영어 | 잉글랜드 |
18 | MF | 다르코 가비 (리즈 유나이티드 FC에서 임대) | 잉글랜드 |
19 | FW | 앙드레 그레이 | 자메이카 |
20 | MF | Adam Randell/아담 란델영어 | 잉글랜드 |
21 | GK | Conor Hazard/코너 해저드영어 | 북아일랜드 |
22 | DF | 브렌던 갤러웨이 | 짐바브웨 |
23 | FW | Ben Waine/벤 웨인영어 | 오스트레일리아 |
24 | DF | Saxon Earley/색슨 얼리영어 | 잉글랜드 |
25 | GK | Marko Maroši/마르코 마로시sk | 슬로바키아 |
26 | FW | Muhamed Tijani/무하메드 티자니영어 (SK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임대) | 나이지리아 |
27 | MF | 아담 포쇼 | 잉글랜드 |
28 | MF | Rami Al Hajj/라미 알 하즈sv | 스웨덴 |
29 | DF | Matthew Sorinola/매튜 소리놀라영어 | 잉글랜드 |
31 | GK | Daniel Grimshaw/대니얼 그림쇼영어 | 잉글랜드 |
32 | MF | Will Jenkins-Davies/윌 젠킨스-데이비스영어 | 웨일스 |
34 | MF | Caleb Roberts/칼레브 로버츠영어 | 잉글랜드 |
35 | FW | Freddie Issaka/프레디 이사카영어 | 웨일스 |
44 | DF | Victor Pálsson/빅토르 팔손is | 아이슬란드 |
; 임대 영입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7 | FW | Ibrahim Cissoko/이브라힘 시소코영어 (툴루즈 FC) | 네덜란드 |
18 | MF | 다르코 자비 (리즈 유나이티드 FC) | 잉글랜드 |
26 | FW | Muhamed Tijani/무하메드 티자니영어 (SK 슬라비아 프라하) | 나이지리아 |
; 임대 방출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33 | GK | 잭 베이커 (Plymouth Parkway F.C./플리머스 파크웨이 FC영어) | 잉글랜드 |
36 | DF | 조쉬 버나드 (Tavistock A.F.C./태비스톡 FC영어) | 잉글랜드 |
37 | DF | 잭 매튜스 (Tavistock A.F.C./태비스톡 FC영어) | 잉글랜드 |
6. 2. 유명 선수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유명 선수 목록은 다음과 같다.[118]연도 | 수상자 |
---|---|
1966 | 자니 뉴먼 |
1967 | 노먼 파이퍼 |
1968 | 팻 던 |
1969 | 데이비드 번사이드 |
1970 | 데릭 리카드 |
1971 | 짐 퍼넬 |
1972 | 데이브 프로반 |
1973 | 닐 헤이그 |
1974 | 어니 머친 |
1975 | 폴 마리너 |
1976 | 폴 마리너 |
1977 | 닐 램스보텀 |
1978 | 조지 포스터 |
1979 | 프레드 빈니 |
1980 | 조지 포스터 |
1981 | 데이비드 켐프 |
1982 | 존 심스 |
1983 | 고든 니즈벳 |
1984 | 고든 스태니포스 |
1985 | 토미 타이넌 |
1986 | 케빈 호지스 |
1987 | 토미 타이넌 |
1988 | 스티브 체리 |
1989 | 토미 타이넌 |
1990 | 니키 마커 |
1991 | 케니 브라운 |
1992 | 드와이트 마셜 |
1993 | 스티브 맥콜 |
1994 | 스티브 맥콜 |
1995 | 마크 에드워시 |
1996 | 믹 히스코드 |
1997 | 크리스 빌리 |
1998 | 마틴 바로우 |
카를로 코라진 | |
1999 | 믹 히스코드 |
2000 | 폴 맥그리거 |
2001 | 웨인 오설리반 |
2002 | 그레이엄 코플란 |
2003 | 폴 워튼 |
2004 | 미키 에반스 |
2005 | 폴 워튼 |
2006 | 데이비드 노리스 |
2007 | 릴리앙 날리스 |
2008 | 크리스티안 티마르 |
2009 | 로맹 라리에 |
2010 | 칼 플레처 |
2011 | 칼 플레처 |
2012 | 막심 블랑샤르 |
2013 | 오니모어 바세라 |
2014 | 루벤 리드 |
2015 | 루크 맥코믹 |
2016 | 그레이엄 케리 |
2017 | 소니 브래들리 |
2018 | 그레이엄 케리 |
2019 | 후벤 라메이라스 |
2020 | 안토니 사르세비치 |
2021 | 조 에드워즈 |
2022 | 마이클 쿠퍼 |
2023 | 마이클 쿠퍼 |
2024 | 모건 휘태커 |
플리머스 아가일 FC 창립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구단 팬들은 역대 최고의 플리머스 아가일 선수들을 선정했다.[108]
'''감독''': 폴 스터록
다음은 플리머스 아가일 FC 소속으로 FIFA 월드컵에 자국 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이다.
- 조지 베이커 (1958년)
- 로리 팰런 (2010년)
이 외에도 대런 캠벨, 브루스 그로벨라, 그레이엄 스택, 하야시 아키히로, 데이비드 버튼, 데이비드 스톡데일, 로이드 존스, 마크 에드워지, 에릭 판 로섬, 타리보 웨스트, 라리 마비알라, 야니크 보라시에, 크레이그 캐스카트, 제임스 체스터, 카리 아르나손, 데이비드 그레이, 잭 스티븐스, 벤 깁슨, 조 브라이언, 브렌던 갤러웨이, 스티븐 세세뇽, 워렌 조이스, 댄 고슬링, 스콧 싱클레어, 리 마틴, 개리 틸, 크레이그 눈, 제이슨 펀천, 폴 갤러거, 루돌프 두알라, 딘 팔렛, 코너 플리핸, 바비 리드, 후벤 라메이라스, 사이먼 처치, 조세 박스터, 매트 더비셔, 덱스터 블랙스톡, 실뱅 에방크스-블레이크, 레온 클라크, 애슐리 번스, 제이미 매키, 에밀 므펜자, 루카스 유트키에비츠, 조 메이슨, 브래들리 라이트-필립스, 케니 쿠퍼, 조엘 그랜트 등 많은 선수들이 플리머스 아가일 FC를 거쳐갔다.
7. 클럽 기록
플리머스 아가일 FC는 여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18] FA컵 최고 성적은 1983–84 시즌의 준결승 진출이며,[118] 리그컵에서는 1964–65, 1973–74 시즌에 준결승에 진출했다.[118] EFL 트로피에서는 2022–23 시즌에 준우승을 기록했다.[117]
홈 파크에서 열린 경기 중 최다 관중 기록은 1936년 10월 10일 애스턴 빌라와의 세컨드 디비전 경기로, 43,596명이 입장했다.[118] 1929년 4월부터 12월까지 25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세웠다.[118]
최다 점수차 승리 경기는 1932년 1월 16일 홈 파크에서 밀월을 상대로 8-1 승리, 1994년 5월 7일 빅토리아 파크에서 하트리풀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8-1 승리, 그리고 2004년 1월 3일 홈 파크에서 체스터필드를 상대로 7-0 승리를 거둔 경기이다.[118] 특히, 체스터필드전에서는 17분 만에 5골을 넣어 잉글랜드 프로 경기 최단 시간 5골 기록을 경신했다. 최다 점수차 패배 경기는 1960년 12월 17일 스토크 시티와의 세컨드 디비전 경기로, 0-9로 패배했다.[118]
승리 시 승점 2점을 부여하던 시절, 최다 리그 승점은 서드 디비전 사우스 1929-30 시즌의 68점이다.[118] 승리 시 승점 3점을 부여하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서드 디비전 2001-02 시즌에 102점을 기록했다.[118] 최다 리그 득점은 서드 디비전 사우스 1925-26 시즌과 1951-52 시즌의 107골이다.[118]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은 잭 콕이 서드 디비전 사우스 1926-27 시즌에 기록한 33골이다.[118]
순위 | 선수 | 경력 | 출장 | 골 |
---|---|---|---|---|
1 | 케빈 호지스/케빈 호지스영어 | 1978–1992 | 620 | 87 |
2 | 새미 블랙/새미 블랙sco | 1924–1938 | 491 | 184 |
3 | 폴 워튼/폴 워튼영어 | 1995–2008 2012–2015 | 491 | 66 |
4 | 프레드 크레이그 (스코틀랜드 축구 선수)/프레드 크레이그sco | 1912–1915 1919–1930 | 467 | 5 |
5 | 조니 윌리엄스 (1935년생 축구 선수)/조니 윌리엄스영어 | 1955–1966 | 448 | 55 |
6 | 조니 호어/조니 호어영어 | 1965–1975 | 441 | 17 |
7 | 팻 존스 (잉글랜드 축구 선수)/팻 존스영어 | 1947–1958 | 441 | 2 |
8 | 미키 에반스 (아일랜드 축구 선수)/미키 에반스ga | 1990–1997 2001–2006 | 432 | 81 |
9 | 잭 레슬리 (잉글랜드 축구 선수)/잭 레슬리영어 | 1921–1934 | 401 | 136 |
10 | 모세스 러셀/모세스 러셀wal | 1914–1915 1919–1930 | 400 | 6 |
순위 | 선수 | 경력 | 골 | 출장 |
---|---|---|---|---|
1 | 새미 블랙/새미 블랙sco | 1924–1938 | 184 | 491 |
2 | Wilf Carter/Wilf Carter (footballer)영어 | 1957–1964 | 148 | 275 |
3 | 토미 타이넌/토미 타이넌영어 | 1983–1985 1986–1990 | 145 | 310 |
4 | Jack Leslie/Jack Leslie (English footballer)영어 | 1921–1934 | 136 | 401 |
5 | 모리스 태드먼/모리스 태드먼영어 | 1947–1955 | 112 | 253 |
6 | 잭 비들러/잭 비들러영어 | 1929–1939 | 103 | 256 |
7 | 프레디 버치/프레디 버치영어 | 1906–1915 | 92 | 239 |
8 | 케빈 호지스/케빈 호지스영어 | 1978–1992 | 87 | 620 |
9 | 레이 보든/레이 보든영어 | 1927–1933 | 85 | 153 |
10 | 미키 에반스/미키 에반스 (1973년생 축구 선수)ga | 1990–1997 2001–2006 | 81 | 432 |
8. 역대 감독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감독 목록은 다음과 같다.[116]
감독 | 임기 |
---|---|
프랭크 브레텔 | 1903 ~ 1905 |
밥 잭 | 1905 ~ 1906, 1910 ~ 1938 |
윌리엄 풀러턴 | 1906 ~ 1907 |
잭 트레서던 | 1938 ~ 1947 |
지미 레이 | 1947 ~ 1955 |
잭 로울리 | 1955 ~ 1960 |
닐 도걸 | 1960 ~ 1961 |
엘리스 스터타드 | 1961 ~ 1963, 1970 ~ 1972 |
앤디 비티 | 1963 ~ 1964 |
말콤 앨리슨 | 1964 ~ 1965, 1978 ~ 1979 |
데릭 업튼 | 1965 ~ 1968 |
빌리 빙엄 | 1968 ~ 1970 |
토니 웨이터스 | 1972 ~ 1977 |
마이크 켈리 | 1977 ~ 1978 |
바비 색스턴 | 1979 ~ 1981 |
바비 몬커 | 1981 ~ 1983 |
조니 호어 | 1983 ~ 1984 |
데이브 스미스 | 1984 ~ 1988 |
켄 브라운 | 1988 ~ 1990 |
데이비드 켐프 | 1990 ~ 1992 |
피터 실턴 | 1992 ~ 1995 |
스티브 맥콜 | 1995 |
닐 워녹 | 1995 ~ 1997 |
믹 존스 | 1997 ~ 1998 |
케빈 호지스 | 1998 ~ 2000 |
폴 스터록 | 2000 ~ 2004, 2007 ~ 2009 |
바비 윌리엄슨 | 2004 ~ 2005 |
토니 풀리스 | 2005 ~ 2006 |
이안 할러웨이 | 2006 ~ 2007 |
폴 마리너 | 2009 ~ 2010 |
피터 리드 | 2010 ~ 2011 |
칼 플레처 | 2011 ~ 2013 |
존 셰리던 | 2013 ~ 2015 |
데릭 아담스 | 2015 ~ 2019 |
라이언 로위 | 2019 ~ 2021 |
스티븐 슈마허 | 2021 ~ 2024 |
이안 포스터 | 2024 |
웨인 루니 | 2024 ~ |
9. 우승 기록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우승 기록은 다음과 같다.[118]
리그 | 순위 | 연도 |
2부 리그 (3부 리그) (개정된 리그 표시법) | 우승 | 2004 |
3부 리그 (3부 리그) (기존 리그 표시법) | 우승 준우승 | 1959 1975, 1986 |
3부 리그 (4부 리그) (개정된 리그 표시법) | 우승 플레이 오프 우승 | 2002 1996 |
3부 리그 남부 | 우승 준우승 | 1930, 1952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
남부 리그 | 우승 준우승 | 1913 1908, 1912 |
서부 리그 1부 리그 | 우승 | 1905 |
서부 1부 리그 B | 준우승 | 1907 |
남서부 지역 리그 | 우승 | 1940 |
'''리그'''
- 3부 사우스 / 3부 / 2부 / 리그 1 (3부)
- *우승: 1929–30, 1951–52, 1958–59, 2003–04, 2022–23
- *준우승: 1921–22, 1922–23, 1923–24, 1924–25, 1925–26, 1926–27, 1974–75, 1985–86
- 3부 / 리그 2 (4부)
- *우승: 2001–02
- *준우승: 2016–17
- *승격: 2019–20
- *플레이오프 우승: 1996
- 사우스런 리그
- *우승: 1912–13
- 웨스턴 리그
- *우승: 1905–06
'''컵'''
- EFL 트로피
- *준우승: 2022–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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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Park capacity set for 17,900 after stage one of redevelopment work is completed
https://www.paf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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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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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ymouth Argyle – Historical Football K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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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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