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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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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자선우는 흉노 내분기에 등장한 선우로, 기원전 57년 도기선우의 명령으로 우욱건왕과 함께 호한야선우를 견제하기 위해 동방에 주둔했다. 이후 세력 다툼 속에서 오자선우로 자립했으나, 도륭기에게 패배하여 호걸선우에게 의탁했다. 도기선우 멸망 후 이릉의 아들로 추대되어 다시 선우가 되었지만, 호한야선우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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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선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대립 탱리고도선우
재위기원전 57년-기원전 56년
전임자호한야선우
작위2오자도위
재위2??-기원전 57년
존호오자선우
왕조흉노
이름오자선우
원래 이름烏藉單于
사망일기원전 56년

2. 생애

포학한 악연구제선우를 견디지 못한 흉노인들이 전 선우의 아들 계후산을 호한야선우로 옹립했으며 악연구제선우는 패하고 자결했으나, 우현왕 등 악연구제선우의 잔당은 호한야선우의 제거 시도를 알아차리고 악연구제선우의 사촌형 도기선우를 옹립해 흉노는 내분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때는 오자도위로서 기원전 57년, 도기선우의 명령으로 우욱건왕과 각각 2만 기병을 거느리고 동방에 주둔하며 호한야선우를 대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유리당호와 호걸왕이 우현왕이 오자선우로 자립하려 한다고 참소하고 도기선우가 우현왕 부자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도기선우의 세력은 쇠약해졌다. 호걸왕은 유리당호가 진상을 안 도기선우에게 처단돼자 달아나 호걸선우를 자칭하고, 우욱건왕도 자립하여 거리선우를 일컬으니, 오자도위 역시 오자선우를 일컬어, 흉노에는 호한야까지 총 다섯 선우가 나타나고 말았다.

오자선우는 도기선우의 중신 도륭기에게 패배해, 도기선우에게 패배한 거리선우와 함께 서북쪽의 호걸선우에게 달아났다. 그리고 호걸선우와 함께 선우 칭호를 버리고 거리선우를 선우로 추대했다. 기원전 56년, 도기선우가 패망해 거리선우가 호한야선우에게 투항했는데, 오자도위는 이릉의 아들에게 추대돼 다시 선우가 됐으나, 호한야선우에게 사로잡혀 참수됐다.

2. 1. 흉노의 내분과 오자선우의 등장

악연구제선우의 포학함에 반발한 흉노인들은 전 선우의 아들 계후산을 호한야선우로 옹립했고, 악연구제선우는 패배 후 자결했다. 그러나 악연구제선우의 잔당인 우현왕 등은 도기선우를 옹립하여 흉노는 내분에 휩싸였다. 이 시기 오자도위는 기원전 57년, 도기선우의 명령으로 우욱건왕과 함께 각각 2만 기병을 이끌고 동방에 주둔하며 호한야선우를 견제했다.

이후 유리당호와 호걸왕이 우현왕이 오자선우로 자립하려 한다고 모함했고, 도기선우가 우현왕 부자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도기선우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호걸왕은 도기선우에게 처형된 유리당호의 진상을 알고 도망쳐 호걸선우로 자립했고, 우욱건왕도 자립하여 거리선우를 칭했으며, 오자도위 역시 오자선우로 자립하여 흉노에는 호한야선우를 포함해 다섯 명의 선우가 난립하게 되었다.

오자선우는 도기선우의 중신 도륭기에게 패배하여 거리선우와 함께 서북쪽의 호걸선우에게 달아났다. 이후 오자선우와 호걸선우는 선우 칭호를 버리고 거리선우를 선우로 추대했다. 기원전 56년, 도기선우가 패망하고 거리선우가 호한야선우에게 투항하자, 오자도위는 이릉의 아들에게 추대되어 다시 선우가 되었으나, 결국 호한야선우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2. 2. 세력 규합과 패배

악연구제선우의 포학함을 견디지 못한 흉노인들은 전 선우의 아들 계후산을 호한야선우로 옹립했고, 악연구제선우는 패배 후 자결했다. 그러나 우현왕 등 악연구제선우의 잔당은 호한야선우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하고, 악연구제선우의 사촌형인 도기선우를 옹립하여 흉노는 내분 상태에 빠졌다.

기원전 57년, 오자도위는 도기선우의 명령으로 우욱건왕과 함께 각각 2만 기병을 이끌고 동방에 주둔하며 호한야선우를 대비했다. 그러나 유리당호와 호걸왕이 우현왕이 오자선우로 자립하려 한다고 참소하고, 도기선우가 우현왕 부자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도기선우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이후 호걸왕은 유리당호가 진상을 알고 자신을 죽이려 하자 달아나 호걸선우를 자칭했고, 우욱건왕도 자립하여 거리선우를 칭했으며, 오자도위 역시 오자선우를 칭하면서 흉노에는 호한야선우를 포함해 다섯 명의 선우가 난립하게 되었다.

오자선우는 도기선우의 중신 도륭기에게 패배했고, 거리선우와 함께 서북쪽의 호걸선우에게 달아났다. 이들은 함께 선우 칭호를 버리고 거리선우를 선우로 추대했다. 기원전 56년, 도기선우가 패망하고 거리선우가 호한야선우에게 투항하자, 오자도위는 이릉의 아들에게 추대되어 다시 선우가 되었으나, 결국 호한야선우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3. 평가

4. 출전

반고의 《한서》 권94 하 흉노전제64 하에 출전한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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