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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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키나와 무술은 류큐 왕국 시대부터 발전해 온 전통 무술로,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1477년 무술 수련 금지령과 사쓰마 번의 침략으로 인해 일반 가정용품과 농기구를 무기로 사용하는 코부도가 발전했으며, 중국 무술과 결합하여 '테'(손)라는 무술이 탄생했다. 18세기에는 슈리테, 나하테, 토마리테로 분화되었고, 메이지 시대에는 '가라테'로 불리며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다. 오키나와 무술은 슈리테, 나하테, 토마리테를 중심으로 다양한 유파로 나뉘며, 각 유파는 고유의 기술과 형(kata)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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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무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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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무술 | |
명칭 | |
간지 | 手 |
히라가나 | て |
로마자 표기 | Te |
오키나와어 | Tii |
한국어 | 오키나와 무술, 오키나와테 |
역사적 배경 | |
기원 | 류큐 왕국 |
발전 시기 | 14세기 ~ 19세기 |
주요 특징 | |
기술 유형 | 손 기술 (突き, tsuki) 차기 기술 (蹴り, keri) 막기 기술 (受け, uke) 던지기 기술 (投げ, nage) 꺾기 기술 (関節技, kansetsu-waza) |
주요 스타일 (류파) | |
가라테 | 쇼린류 (小林流, Shōrin-ryū) 고주류 (剛柔流, Gōjū-ryū) 우에치류 (上地流, Uechi-ryū) 잇신류 (一心流, Isshin-ryū) 쇼레이류 (昭霊流, Shōrei-ryū) |
고무술 (고부도) | 보 (棒, Bō) 사이 (釵, Sai) 톤파 (トンファー, Tonfa) 누ン차쿠 (ヌンチャク, Nunchaku) 카마 (鎌, Kama) |
관련 정보 | |
영향 | 가라테, 고무도 |
관련 단체 | 다양한 류파별 협회 및 단체 존재 |
2. 역사
오키나와 무술은 초기에 '테'(手) 또는 '티'라고 불렸다. 이는 단순히 손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수법'이나 '무술' 자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메이지의 가라테가들에게 '테'는 곧 가라테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류큐 왕국 시대(1477년 쇼 신 왕의 무술 금지령)와 사쓰마 번 점령기(1609년 이후)를 거치며 무술 수련이 금지되자, 오키나와 무술은 비밀리에 전승되었다.[1] 이 과정에서 코부도처럼 일상 도구를 활용하는 기술이 발달하기도 했다. 또한 오키나와 고유의 '테'는 중국 무술과 결합하여 '토데'(唐手, 唐手|투디ryu, '중국 손') 또는 '오키나와테'(沖縄手, 沖縄手|우치나디ryu)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2]
18세기에는 슈리, 나하, 토마리 세 지역을 중심으로 각각 슈리테, 나하테, 토마리테라는 독자적인 스타일이 발전했으며, 이들은 집합적으로 '토데술' 또는 '토-데'(唐手)라는 계열로 묶였다.[3][4]
'토데'(唐手, とうで|토데jpn)라는 명칭은 19세기 초 중국 무술을 배우고 돌아온 사쿠가와 칸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초기에는 '중국(당나라)의 무술'이라는 의미였을 수 있다. 이 '토데'는 점차 오키나와 고유의 '테'와 융합하며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메이지 시대 후기에는 '토데'를 '가라테'(からて)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는 학교 교육 도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10]
후나코시 기친 등 여러 무술가들은 중국에서 유래한 '당수'(唐手, 토데)와 오키나와 고유의 '오키나와테'(沖縄手) 또는 '테'(手)를 구분했으며[7], 이 두 흐름이 합쳐져 오늘날의 가라테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9][11] 가라테는 다이쇼 시대(1926년 이후)부터 일본 본토에서 체계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5]
2. 1. 류큐 왕국 시대
1429년, 오키나와의 세 왕국이 통일되어 류큐 왕국이 성립되었다. 이후 1477년, 쇼 신 왕은 무술 수련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여 이를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1] 하지만 이러한 금지에도 불구하고 '토테'(Tote)와 류큐 코부도(코부도)는 사람들에 의해 비밀리에 계속 전승되었다.1609년 사쓰마 번이 류큐 왕국을 침략한 이후에도 무기 소지 및 무술 수련 금지 정책은 계속 유지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농기구나 생활 도구를 무기로 활용하는 독특한 무기술인 코부도(古武道)를 발전시켰다. 또한, 오키나와 고유의 무술은 중국 무술과 결합하여 '토데'( 唐手|투디ryu ) 또는 '오키나와테'( 沖縄手|우치나디ryu )라고 불렸다.[2]
18세기까지 오키나와의 주요 세 지역인 슈리, 나하, 토마리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유파가 발달했다. 각 스타일은 각각 슈리테(Shuri-te), 나하테(Naha-te), 토마리테(Tomari-te)로 명명되었다. 20세기 초까지 오키나와의 무술은 일반적으로 '손'을 의미하는 일본어 '테'(Te) 또는 오키나와어 '티'(Ti, 手)라고 불렸으며, 지역명을 앞에 붙여 나하테, 슈리테, 토마리테 등으로 구분했다. 슈리테, 나하테, 토마리테는 집합적으로 '토데술'(Tode-jutsu) 또는 '토-데'(Tō-de)로 정의된 무술의 한 계열에 속한다.[3][4]
2. 2. 사쓰마 번 점령 이후
1477년 쇼 신 왕은 기만술 교육이 널리 퍼지는 것을 우려하여 무술 수련을 금지했지만, 토테와 류큐 코부도는 비밀리에 계속 전승되었다.[1] 1609년 일본의 사쓰마 번이 오키나와를 침략한 이후에도 이러한 무술 금지령은 계속되었다. 이 금지령은 오히려 일상용품이나 농기구를 무기로 활용하는 코부도가 발전하는 배경이 되었다. 오키나와인들은 중국 무술과 기존의 지역 무술을 결합하여 '토데'(唐手, Tuudii|투디jpn, '중국 손'이라는 의미) 또는 '오키나와테'(沖縄手, Uchinaa-dii|우치나디jpn)라고 불리는 무술 체계를 발전시켰다.[2]18세기에 이르러서는 슈리, 나하, 토마리의 세 마을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테'가 발전했는데, 이를 각각 슈리테, 나하테, 토마리테라고 부른다. 슈리테, 나하테, 토마리테는 모두 '토데술' 또는 '토-데'라고 불리는 큰 틀의 무술 계열에 속한다.[3][4]
20세기 초까지 오키나와의 무술은 일반적으로 '손'을 의미하는 일본어나 오키나와어로 '테'(手)라고 불렸으며, 지역명을 붙여 슈리테, 나하테, 토마리테 등으로 구분했다. 가라테(오키나와테 또는 가라테술)는 다이쇼 시대(1926년 이후)부터 일본 본토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쳐지기 시작했다.[5]
2. 3. 메이지 시대
류큐어에서 '手'(테)는 본래 손목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부위를 의미하지만, 무술에 한정되지 않고 '수법'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메이지 시대의 가라테가들에게 '手'는 단순히 가라테(からて)를 의미하는 단어였다.'가라테(からて)'라는 훈독은 메이지 30년대에 '당수(唐手, とうで, 류큐어로는 토디)'라는 음독에서 파생되었다. '당수(とうで)'라는 단어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19세기 초 사쿠가와 칸가가 '가라테 사쿠가와(とうでさくがわ)'라고 불렸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무렵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사토 야스츠네는 "가라테라는 이름이 확실하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아카타의 가라테 사쿠가와로부터이다"[6]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쿠가와 칸가는 20대 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무술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그가 오키나와로 돌아와 전파한 무술이 오늘날 가라테의 기원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사쿠가와가 귀국했을 당시 '당수(とうで)'는 문자 그대로 '당(唐, 중국)의 손', 즉 중국 무술을 의미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무술은 폐번치현이 이루어지기까지 약 80년 동안 오키나와 고유의 '手'와 융합하면서 독자적인 '당수(とうで)'로 발전해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수(とうで)'는 사쿠가와 이후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비교적 새로운 무술로 볼 수 있다.
'오키나와테(沖縄手)'라는 용어는 후나코시 기친의 저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나코시에 따르면, 메이지 초기 당수 원로들은 중국에서 유래한 무술을 '''당수'''(とうで, 토-디)라고 부르고, 오키나와 고유의 무술은 '''오키나와테'''(おきなわて, 우치나-디)라고 불러 구별했다.[7] 그는 또한 자신의 저서 『가라테도 교범』(1935년)[8]에서 "근세 지나(支那) 숭배 열이 높았던 시대에, 수많은 무인들이 지나와 왕래하며 지나 권법을 수련하고, 고래의 권법, 이른바 '오키나와테'에 이를 가미하여 연구하고,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더욱 정묘함을 더했다"고 서술하며, 오키나와테에 중국 권법이 더해져 당수가 만들어졌다는 설을 주장했다.[9]
한편, 마부니 겐와는 "가라테(からて, 당수)"라는 명칭이 메이지 34년(1901년) 또는 35년(1902년)경 학교 교육에 채택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전 오키나와의 가라테가들은 오키나와 권법을 단순히 '테'라고 부르고, 중국 권법은 '토-데'라고 칭하며 구별했다는 것이다.[10]
또한 치바나 조신은 스승 이토스 야스쓰네의 말을 인용하여 "원래 오키나와에는 '테'라는 것이 있었다. ... 나중에 당수가 들어와, 기타야라의 '테'와 당수 사쿠가와의 권법이 하나로 합쳐져 당수가 되었다고 한다"고 신문 지상에서 밝힌 바 있다.[11]
이들 외에도 아사토 야스츠네, 모토부 조키, 미야기 조준 등 여러 저명한 가라테가들이 오키나와 고유 무술 '테'의 존재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에는 '테'라는 용어가 당수 이전의 오키나와테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2. 4. 오키나와테의 기원
후나코시 기친에 따르면, 메이지 초기 당수(唐手) 원로들은 중국에서 유래한 무술을 당수(唐手, 토-디)라고 불렀고, 그에 비해 오키나와 고유의 무술을 오키나와테(沖縄手, 우치나-디)라고 부르며 구별했다고 한다.[7] 후나코시는 1935년 저서 『가라테도 교범』에서[8] "근세 지나(支那) 숭배 열이 높았던 시대에, 수많은 무인들이 지나와 왕래하며 지나 권법을 수련하고, 고래의 권법, 이른바 '오키나와테'에 이를 가미하여 연구하고,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더욱 정묘함을 더했다"고 기술하며, 오키나와테에 중국 권법이 더해져 당수가 만들어졌다는 설을 제시했다.[9]마부니 겐와에 따르면, "가라테(唐手)"라는 호칭은 메이지 34, 35년경(1901-1902년) 학교 교육에 채용될 때 만들어졌으며, 그 이전 오키나와의 무술가들은 오키나와 고유 권법을 '테'(手)라고 칭하고, 중국 권법은 '토-데'(唐手)라고 칭하며 구별했다고 한다.[10] 또한 치바나 조신은 스승 이토스 야스쓰네의 말을 인용하여, "원래 오키나와에는 '테'라는 것이 있었다. [...] 나중에 당수가 들어와, 기타야라의 '테'와 당수 사쿠가와의 권법이 하나로 합쳐져 당수가 되었다"고 설명했다.[11]
아사토 야스쓰네, 모토부 조키, 미야기 조준 등 다른 저명한 가라테가들도 오키나와 고유 무술의 존재를 언급했으며, 오늘날 연구자나 가라테가들 사이에서는 '테'라고 하면 당수(唐手) 이전의 오키나와테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키나와테의 구체적인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아사토 야스쓰네는 1914년 류큐 신보 기고문 "오키나와의 무술"에서 "오키나와 고유의 무예이며 시골의 무용(마이카타)이, 이른바 가라테가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류큐 무용에서 오키나와테가 파생되었거나, 혹은 무용 속에 오키나와테의 원시적인 모습이 남아있다는 견해이다.
- 최근에는 오래전 오키나와에 전래된 중국 권법이 토착화되어 '테'가 되었고, 이것이 사쿠가와 칸가 등에 의해 새롭게 전해진 당수(토우데)와 융합하여 가라테가 형성되었다고 추정하는 연구자들도 있다(킨조 유[12]).
- 그 외에도 오키나와 스모(시마)에서 발전했다는 설, 일본 본토에서 전래된 유술이 기원이라는 설 등이 있다.
3. 주요 유파
오키나와의 전통 무술인 '테'(手)는 크게 세 가지 주요 유파로 나눌 수 있다. 이는 각 유파가 발전한 지역의 이름을 딴 것으로, 首里手|슈리테일본어(오키나와어: Suidii), 泊手|토마리테일본어(오키나와어: Tumai-dii), 那覇手|나하테일본어(오키나와어: Naafa-dii)가 그것이다. 이 세 유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으며, 현대 가라테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다.
- '''슈리테''': 류큐 왕국의 옛 수도였던 슈리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유파이다. 왕족과 귀족 계층이 주로 수련했으며, 빠르고 직선적인 움직임과 자연스러운 호흡법을 특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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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리테''': 오키나와의 토마리 마을에서 유래한 유파이다. 슈리테와 나하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실전적인 기술과 다양한 각도의 움직임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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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하테''': 류큐 왕국의 옛 상업 도시이자 현재 오키나와현의 현청 소재지인 나하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유파이다. 주로 상인과 무역상들이 수련했으며, 안정적인 자세와 강한 힘, 독특한 호흡법을 강조한다.
- -
각 유파는 고유한 기술 체계와 형(카타)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스승들을 통해 계승되어 다양한 현대 가라테 유파로 분화되었다. 각 유파의 상세한 내용, 주요 스승, 형, 그리고 후계 유파에 대한 정보는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슈리테
슈리테(首里手, 오키나와어: Suidii)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류큐 왕국의 옛 수도였던 슈리 주변 지역에서 유래한 토착 무술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용어이다.슈리테의 주요 스승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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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가와 캉가 |
마츠무라 소콘 |
이토스 안코 |
아사토 안코 |
모토부 쵸유 |
모토부 쵸키 |
야부 켄츠 |
하나시로 쵸모 |
후나코시 기친 |
얀 쵸토쿠 |
치바나 쵸신 |
마부니 켄와 |
토야마 켄칸 |
시마부쿠 타츠오 |
슈리테의 중요한 형(카타)은 다음과 같다.
슈리테를 계승한 주요 유파로는 쇼토칸, 시토류, 쇼린류, 슈도칸, 슈리류, 쇼린지류, 잇신류, 겐세이류, 키시모토 다이, 모토부류 등이 있다.
3. 2. 토마리테
泊手|토마리테일본어(오키나와어: Tumai-dii)는 오키나와의 토마리 마을에서 유래된 무술 전통을 말한다.토마리테의 중요한 오키나와 스승은 다음과 같다.
- 마츠모라 코사쿠
- 오야도마리 코칸
- 모토부 쵸키
- 캰 쵸토쿠
- 나카소네 세이유
중요한 카타(형)는 다음과 같다.
- 나이한치 (고시키)
- 은이부
- 로하이
- 완두안
- 파사이 (토마리)
- 친토
- 친수
- 친푸
- 완칸
- 완슈
- 세산
- 쥬무
- 니친
- 쥬마
- 아난쿠
토마리테를 계승한 유파로는 와도류, 모토부류, 마츠바야시류 및 소린지류가 있다.
3. 3. 나하테
那覇手|나하테일본어(오키나와어: Naafa-dii)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류큐 왕국의 옛 상업 도시이자 현재 오키나와현의 현청 소재지인 나하 주변 지역에서 기원한 무술의 한 유형을 가리키는 용어이다.나하테의 주요 인물과 형은 다음과 같다.
이름 |
---|
아라카키 세이쇼 |
히가온나 칸료 |
미야기 조준 |
교다 쥬하츠 |
마부니 켄와 |
우에치 칸분 |
형 이름 |
---|
산친 |
사이파 |
세이운친 |
시소친 |
세이파이 |
세이산 |
산세이루 |
텐쇼 |
쿠루룬파 |
슈파린페이 |
나하테를 계승한 유파에는 쇼레이류, 고주류, 우에치류, 류에이류, 시토류, 톤류 등이 있다.
4. '테' 시대의 무인들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루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해 생략)
4. 1. 초기 무인들
16세기에는 교아하곤 지키(京阿波根実基)가 "테(手)"라는 무술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18세기에는 니시히라 우에카타(西平親方), 구시카와 우에카타(具志川親方), 승려 통신(僧侶通信), 토카시키 친운상(渡嘉敷親雲上), 마카베 조켄(真壁朝顕) 등이 "테"를 익힌 무인으로 알려져 있다.4. 2. 후기 무인들
18세기에는 니시히라 우에카타(西平親方), 구시카와 우에카타(具志川親方), 승려 통신(僧侶通信), 토카시키 친운상(渡嘉敷親雲上), 마카베 조켄(真壁朝顕) 등이 "테(手)"를 사용한 무인으로 알려져 있다.참조
[1]
웹사이트
Okinawan Masters
http://www.msisshinr[...]
2011-06-20
[2]
서적
Traditional Karatedo Vol. 1 Fundamental Techniques
1985
[3]
웹사이트
Tomari-Te: The Place of the Old To-De
http://www.msisshinr[...]
2005-07-25
[4]
웹사이트
Koshinrin School of Karate: Katas
http://www.koshinrin[...]
2005-07-25
[5]
서적
Modern Bujutsu & Budo
Weatherhill, New York & Tokyo
1974
[6]
뉴스
沖縄の武技(上)
琉球新報
1914-01-17
[7]
서적
愛蔵版・空手道一路
榕樹書林
2004
[8]
웹사이트
「空手道教範 (初版・復刻版)」(富名腰義珍・著)
http://blogs.yahoo.c[...]
「まるふじ文庫」の収集武道書 - Yahoo!ブログ
[9]
서적
空手道教範
大倉広文堂
1935
[10]
서적
攻防拳法・空手道入門
榕樹書林
2006
[11]
뉴스
沖縄タイムス
1948-07-10
[12]
간행물
唐手から空手へ―その歴史的検証―
月刊武道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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